2021년 장서각 특별전 '장서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 개최
2021년 장서각 특별전 '장서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 개최
  • 전시일정 2021-10-22 ~ 2022-01-21
  • 전시장소 장서각 전시실
  • 문의 031-730-8820
전시소개

장서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

 ∘ 전시기간: 2021. 10. 22 - 2022. 01. 21 
     ※ 11월 15일부터 월~토, 09:30-17:30까지 운영합니다. 관람객들의 요청으로 전시기간 연장 및 토요일 전시실을 전격 개방하오니, 많이 관람해주십시오. 단, 12월 25일과 1월 1일은 공휴일이므로 휴관합니다. 
 
 ∘ 전시장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1층 전시실
 
 ∘ 방역패스 의무시설 지정에 따른 접종완료 또는 PCR음성확인서 확인
     ※ 적용기간: 2021. 12. 6.(월) ~ 2022. 1. 2.(일)
     ※ 확인연령: 만18세 이상
     ※ 전자출입명부(QR코드) 사용 의무화(수기 입력 가능하나 접종완료 확인 필수)
     ※ 전시해설 회당 제한인원 6명으로 축소 운영
     ※ 마스크를 미착용하거나, 37.5도 이상 발열 및 호흡기 의심증상 발현시 입장을 제한합니다.
 

 ∘ 특별강연: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특별강연 영상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홈페이지와 장서각 유튜브에 게시합니다. 글 제목을 클릭하시면 바로 연결됩니다.

  1. 장서각 소장 의궤의 특징(이욱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2. 조선왕조의 기록화(정은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3. 성주이씨 초상화의 특징과 가치(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I. 조선왕조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다

1978년 6월 30일 개원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1981년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조선의 왕실 도서관에 기반을 둔 고전적 94,104점(한국본 42,562점, 중국판 27,313점, 일본판 13,602점 등)을 이관받았다. 이로써 한국의 고전적은 물론 동양의 고전적을 겸비한 전문 도서관 ‘장서각藏書閣’이 새롭게 개관하였다.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이관된 장서각 도서는 조선 왕조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는 자료들이 대부분이다. 창덕궁 봉모당의 역대 국왕의 어제와 어필, 선원보각의 왕실보첩, 무주 적상산사고의 실록, 각 군영의 등록 자료, 연경당에서 낙선재로 이관된 한글 소설, 종묘와 각 왕릉의 재실 자료, 칠궁七宮자료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제1부에서는 장서각 소장 도서 중 1992년부터 2021년에 걸쳐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국보 4건과 보물 10건을 소개한다.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과 봉모당본朝鮮王朝實錄赤裳山史庫本奉謨堂本

17세기 | 3책 | 목활자본 | 국보 제151-4호
18~19세기 | 6책 | 금속활자본 | 국보 제151-5호

  

적상산사고에 봉안하였던 조선왕조실록의 산엽본散葉本 3책과 봉모당奉謨堂에 봉장奉藏하기 위해 실록 중 국왕의 생애와 관련된 글을 모아 부록으로 편찬한 실록부록 6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조선 철종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으로 정리하였다. 완성된 실록은 재난에 대비하고자 춘추관사고春秋館史庫(서울),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강화),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봉화),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평창),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무주)의 전국 5대 사고史庫에 보관하였다. 이 중 적상산사고본 실록은 625전쟁 때 북한으로 반출되었으며, 장서각에는 『성종실록』, 『인조실록』, 『효종실록』의 산엽본이 전한다. 봉모당본은 1776년(정조 즉위) 정조가 국왕의 전모典謨 자료를 봉안하기 위해 봉모당을 설치한 후 실록의 부록을 별도로 인쇄하여 보관한 것에서 비롯하였다. 현재 장서각에 남아있는 실록 부록은 『영종대왕실록부록』, 『정종대왕실록부록』, 『순종대왕실록부록』, 『순조대왕실록부록 속편』, 『헌종대왕실록부록』, 『철종대왕실록부록』으로 모두 6책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
 1613년(광해군 5) | 25권 25책 | 목활자본 | 36.0×21.8cm | 국보 제319-2호

     

조선 중기 의관 허준許浚(1539~1615) 등이 선조의 명으로 중국과 조선의 의서를 집대성하여 1610년(광해군 2)에 편찬하고, 1613년(광해군 5) 간행한 의서이다. 

1596년(선조 29) 선조의 명으로 허준·정작鄭碏·양예수楊禮壽·김응탁金應鐸·이명원李命源·정예남鄭禮男 등이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에 맞는 간략하고 실용적인 의서 편찬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597년 정유재란을 맞아 편찬이 중단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 허준이 다시 편찬을 지속하여 1610년 완성하였다. 1613년 훈련도감에서 간행하였으며, 25권 25책이다. 『동의보감』의 체제는 목록 상하 2권, 내과의 질병을 다룬 내경편 4권, 외과의 질병을 다룬 외형편 4권, 내과와 외과를 제외한 여러 가지 병증을 다룬 잡병편 11권, 약물에 관한 지식을 다룬 탕액편 3권, 침을 통해서 병을 고치는 방법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침구편 1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1613년에 목활자를 활용하여 인쇄하고 사고史庫에 분상하여 보관하였다. 현재 초판본 완질 25권 25책이 국보로 지정되어 장서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 남아 있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
1694년(숙종 20) | 1축 | 필사 | 88.5×2,414.0cm | 국보 제335호

1694년(숙종 20) 개국공신에서 보사공신保社功臣까지 이십공신二十功臣의 신구 공신 및 자손을 거느리고 회맹제를 치른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회맹문서로 가로 길이가 약 24m에 달한다. 회맹제는 국왕의 주관하에 세자와 왕자를 비롯해 신구 공신 및 적장자손이 참석하여 북단北壇에서 천지신명과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내고 그 희생犧牲의 피를 입에 바르며 단결을 맹세하는 의례이다.

이 회맹축은 보사공신의 녹훈과 파훈, 그리고 복훈을 배경으로 제작되었으며, 남인과 서인의 환국을 통한 숙종의 정치력과 왕권 강화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치사적 사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또한 호화롭고 장대한 장황 및 그에 필요한 직물, 상아, 옥 등을 활용한 당대 최고의 공예기술의 수준을 이해할 수 있다. 이외에도 본 회맹축에는 제작연대와 제작사유가 명확히 적혀 있으며, 당시 최고의 서사관인 이익신李翊臣이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 및 종묘 축제문을 썼다. 또 숙종의 이름을 가린 붉은색의 휘지諱紙가 붙어 있으며, 맨 마지막에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안보되었다.

 
 

월중도越中圖

1719년(정조 15)경 | 1첩(8폭) | 종이에 채색 | 35.7×40.5cm | 보물 제1536호

 

1791년(정조 15)경 단종端宗(1441~!457)을 추숭하기 위해 영월寧越에 있는 유배지 자취와 그의 충신들과 관련한 주요 사적을 그린 화첩이다. 단종에 대한 복위는 숙종 연간에 이루어졌고,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에 남겨진 자취를 찾고 복원하기 시작한 것은 영조와 정조 대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다. 월중도<장릉도莊陵圖>, <청령포도淸泠浦圖>, <관풍헌도觀風軒圖>, <자규루도子規樓圖>, <창절사도彰節祠圖>, <민충사도愍忠祠圖>, <읍치도邑治圖>, <영월도寧越圖> 등 총 8폭으로 구성되었고, 각 화면의 우측 상단에 관련 도설圖說을 기록하였다.

월중도는 그림의 내용과 회화적 수준을 고려할 때, 정조에게 보고하기 위한 어람용으로 제작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정조 연간 역대 선왕의 유품을 보관하던 창덕궁 봉모당의 서목을 1910년에 정리한 봉모당후고봉장서목奉謨堂後 庫奉藏書目월중도가 포함되어 있다. 월중도는 숙종 연간 단종의 복위에 이어 영조 및 정조 연간에 지속된 단종 관련 사적의 정비와 추숭 과정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그린 기록화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아국여지도俄國輿地圖
1884년(고종 21)경 | 1첩 | 종이에 채색 | (표지)35.8×27.2cm | 보물 제1597호

 

1879년(고종 16)부터 1884년(고종 21) 조러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무관武官 출신 김광훈金光薰과 신선욱申先郁이 조선과 인접한 청나라와 러시아 국경을 정탐한 후 고종에게 그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지도이다.

지도의 목록에는 녹둔도鹿芚島, 서선택瑞僊澤, 나선동羅鮮洞을 비롯하여 청계淸界, 사말리沙末里에 이르기까지 민촌民村 29곳의 이름을 차례로 기록하고 지명 아래 호수戶數와 인구를 적었는데, 총 2,640, 2만 313명이라 밝혔다. 목록 다음에는 20면에 걸쳐 각 민촌의 채색 지도를 순서대로 이어 그렸다. 지도에는 19세기 말 두만강 어귀와 연해주, 인근 청국과 러시아의 지리, 인구, 물산, 군영시설, 거리 등을 기입하였다. 권미에는 김광훈과 신선욱이 작성한 청아여지형정석의서淸俄輿地形情釋義序를 수록하였다. 그 내용은 근래 러시아가 조선과 인접하여 두만강 한 줄기로 경계를 삼았는데, 1879년 이래 청나라와 러시아에 머물면서 대략 그 국경의 실상을 정탐한 형정形情을 그려내 여지輿地 1본과 정조偵調 초록抄錄을 임금에게 보고함으로써 성심聖心의 우려를 해소하고자 하였음을 밝혔다.

 

 

II. 조선의 공신과 명가의 역사를 보존하다

유서깊은 명가에서 장서각에 기탁한 자료 중 지정문화재는 공신 관련 자료, 전적, 고문서, 필적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공신 관련 자료가 가장 많은데, 교서, 녹권, 사패교지, 회맹록, 공신화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신교서와 공신화상이 대표적이다. 전적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원나라의 마지막 법전인 『지정조격』은 원을 비롯한 고려와 조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창제 직후 석가의 일대기를 찬양한 『월인천강지곡』은 한글 연구의 소중한 자료이다. 또한 조선 전기 명과의 관계에서 종계변무를 해결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치른 과거의 합격자를 수록한 방목도 있다. 고문서로는 조선 초 지방의 문중에서 자녀들에게 재산을 분재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 관직 교대 시 보고 문서 등이 있다. 기묘명현들의 글씨를 수록한 필첩 2건과 17세기 문인이자 정치가 2인의 필적은 각각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학문적 소양에 따라 쓴 필적으로 정치사는 물론 서예사 연구에도 크게 기여하는 유물이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1447년(세종 29) | 권상 1책 | 금속활자본(갑인자) | 31.0×20.5cm | 국보 제320호 | (주)미래엔 기탁

한글이 창제반포된 후 세종이 직접 한글본인 석보상절을 대본으로 하여 지은 총 583장의 장편 시가이다. 제목의 월인천강은 부처님이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달이 천강을 비추는 것과 같다는 비유로 지은 것이다. 내용은 석가의 일대기를 칭송한 석보상절의 내용을 읊은 것으로, 서사본사결사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의 원고가 완성된 1447년(세종 29) 7월과 1448년(세종 30) 8월 사이에 완성되어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석보상절의 교정 및 간행과 거의 같은 시기에 월인천강지곡이 지어졌고 간행된 셈이다월인천강지곡은 상하 3책으로 간행되었으나, 이 가운데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월인천강지곡(상)에 전하는 194곡의 노래와 월인천강지곡(중)의 낙장 2곡 그리고 월인석보에서 확인되는 302.5곡을 합해 498.5곡이다. 한편, 월인석보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을 합한 것이지만, 석보상절을 대폭 수정하였고, 최대한 원간본 월인천강지곡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려 하였다.

 
 

지정조격至正條格

1346년(충목왕 2) | 2책 | 목판본 | | 24.0×15.5cm | 보물 제2118호 | 경주 양동 경주손씨 송첨 종가 기탁

원나라 순제順帝 지정至正 6년(1346)에 간행하여 반포한 원나라의 법전이다.

『지정조격』은 원나라 최후의 법전으로, 1338년 3월 편찬에 착수하여 1345년 11월 완성된 다음 이듬해 4월 5일 반포되었다. 원나라는 중원 대륙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몽골의 관습률과 중국 전래의 율령을 통치에 적용하기 위하여 체제 정비가 필요하자 지정 연간에 당시 각종 성문법과 불문법 조항들인 조격을 모아서 『지정조격』으로 편찬하였다. 책은 단례斷例와 조격條格 두 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단례는 각 안건에 대한 결단사례決斷事例를 포함하는 일종의 형법전이고, 조격은 칙령격식勅令格式을 계승한 행정법전에 해당한다. 『지정조격』은 『고려사』 기록에 보이듯이 원나라뿐만 아니라 고려에서도 준용되면서 고려 사회에 끼친 영향이 컸다. 그리고 조선은 1423년(세종 5) 외교와 의례 등에 참고하기 위해 승문원에 명하여 국내에서 50부를 따로 인쇄하고 배포하였다. 경주 양동 경주손씨 송첨 종가의 손사성孫士晟(1396~1477)은 집현전에서 연구를 목적으로 열람한 이후 이 책을 가전하였다. 그리고 장서각은 2002년 현장 자료 조사 과정에서 이 책을 발굴하였고, 2007년 영인교주편을 간행하여 학계에 소개하였다. 『지정조격』은 세계 유일의 원나라 법전으로 원과 고려의 사회상은 물론 조선 초기 법체계 구성의 특징을 규명할 핵심 자료이다.

 

 

장서각의 공신화상功臣畵像

  
   <손소 적개공신화상孫昭敵愾功臣畵像>      <이충원 호성공신화상李忠元扈聖功臣畵像>   

공신은 국가의 최고 덕목인 '충'을 표상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국가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보상과 함께 공신화상을 그려 이를 널리 표창했다. 한당漢唐의 고제를 본받아 조선도 개국과 함께 공신화상 제도를 시행했다. 그리하여 1392년(태조 1)부터 1728년(영조 4)까지 300여 년간 총 28회에 걸쳐 945명의 공신이 녹훈되고 900점 가까운 공신화상이 그려졌다.

공신화상은 충훈부와 공신도감의 주관 아래 도화서에서 그렸다. 초상화를 잘 그리는 화가가 적어 화가는 도화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차정되었다. 재료는 각 관서에서 조달한 최상품이 사용되었다. 최초의 개국공신화상은 1395년(태조 4)부터 장의동의 장생전에 17년간 걸려있었으나, 세종 대 이후부터는 공신가에서 봉안했다. 그리하여 대개는 공신가의 사당이나 영당 또는 공신을 배향한 서원이나 사우에 봉안되었다. 이는 공신화상의 정교적 의미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정치적 효과와 함께, 문중 중심의 제의적 의미가 강하게 부가되는 또 다른 사회적 효과를 가져왔다. 근래 각 문중에서 장서각에 기탁한 조선 초기와 중기 및 후기의 공신화상들은 이를 생생하게 증언해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III. 민간의 희귀 전적을 구입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1978년 6월 개원 이래 한국본은 물론,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의해 찬술되거나 간행 및 필사된 희귀 전적과 선본善本을 중심으로 구입하여 총 9,704종 24,590책을 소장하고 있다. 장서각에서 구입한 개인 장서가의 수집본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혼란스런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도 산실된 고전적을 찾아 수집하고, 이를 후세의 정신적 자산으로 보존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자료들이다. 더구나 개인의 비장품을 장서각이 소장하게 됨으로써 보다 안전하게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앞으로 그 책들과 인연을 맺을 수많은 연구자들과 애서가들에게는 물론, 국가와 사회적으로도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장서각 구입본 가운데 안춘근과 윤석창으로부터 구입한 9점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1992년에는 『입학도설入學圖說』 등 6점이, 2007년에는 『국조정토록國朝征討錄』 등 3점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1378년(우왕 4) | 2권 1책 | 목판본 | 21.2×15.6cm | 보물 제1132호

원나라에서 받아온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의 내용을 대폭 늘려 1372년(공민왕 21)에 백운白雲(1298~1374)이 상하 2권으로 엮은 것이다. ‘불조직지심체요절또는불조직지심체라고도 불린다이 책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비롯하여 오등회원五燈會元등에서 역대 여러 부처와 고승들의 법어, 대화, 편지 등 중요한 내용을 뽑아서 편찬한 것이다. 한국의 승려는 신라 대령大嶺선사의 이야기가 채록되어 있다

이 책의 중심 주제인 ‘직지심체’는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에서 따온 것이다. ‘직지直指’는 직접 가리키는 것, ‘인심人心’은 감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지닌 불심佛心이다. ‘견성見性’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불심 자체임을 체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처가 되어[成佛] 있는 것이다. 즉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심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노안의 선옹禪翁이 여말의 선풍을 드높이고자 편찬한 책이라는 데 그 의의가 크다. 이 책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간행기록에 의하면 1378년(우왕 4) 6월에 백운화상이 입적한 여주 취암사鷲巖寺에서 제자 법린 등이 1377년(우왕 3) 청주 흥덕사興德寺에서 간행한 금속활자본을 바탕으로 간행한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목판본의 저본이 되었던 금속활자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의 영본零本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조정토록國朝征討錄

1614년(광해군 6) 이후 | 1책 | 목활자본 | 28.5×18.1cm | 보물 제1511호

1419년(세종 1) 대마도 정벌부터 1510년(중종 5) 삼포왜란까지 조선 전기 7차례에 걸친 왜구와 여진에 대한 정벌 기록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1614년(광해군 6) 후금 파병을 위한 참고자료로서 광해군의 열람을 거치게 되었고, 이후 훈련도감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현재 유일본으로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체제는 목록과 범례에 이어, 상권에 「정대마도征對馬島」, 「정파저강征婆猪江」, 「정건주위征建州衛」, 하권에 「정건주위征建州衛」, 「정니마거征尼麻車」, 「정서북로구征西北虜寇」, 「정삼포반왜征三浦叛倭」로 구성되어 있다. 대마도와 삼포왜란 정벌은 왜구를 대상으로, 파저강, 건주위 등 5건의 정벌은 여진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각 정벌의 배경과 추이, 지휘 체계와 작전 명령, 동원된 병력과 군량에 관한 사항, 전후의 포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편년체編年體로 상세하게 기술되었다. 실록 자료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승정원일기』와 지도, 지리지 등을 폭넓게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성리학적 포폄褒貶 원칙이 강조되면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서례序例를 근거로 조선의 군사 행동은 정征과 토討, 적병의 행위는 구寇와 반叛, 적을 격파한 경우는 참斬과 노虜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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