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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명 한국 근대사 연구의 쟁점
    • 저자 한승훈·양진아·김기성·김헌주·김제정·예지숙·홍종욱·한혜인·양지혜·김정인·김주용·조형열·소현숙·염복규·정병욱·이동훈
    • 발행일 2023-11-30
    • 정가 30,000원

    □ 한국 근대사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고찰하며, 새로운 연구방향 모색 이 책은 2000년대 이후 양적으로 크게 증가한 한국 근대사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되짚어 보고 새로운 연구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다. 한국 근대사는 그동안 동아시아의 역사 갈등, 역사교과서 논란, 과거사 청산 문제 등 역사 인식과 해석을 둘러싼 각종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강제징용, ‘위안부’ 동원 등 일제 말기 이루어진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는 한일 간 역사 갈등의 핵심 주제이자 외교 문제로 비화된 지 오래다. 친일파 문제는 2000년대 초반의 국가적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 규명 작업 이후에도 여전히 논쟁적이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평가 등도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제 학계를 넘어 대중의 역사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근대사에 관한 역사 해석은 역사 인식의 차이를 넘어서 국내외의 정치적 대립으로 그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서도 한국 근대사에 관한 학계의 연구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해방 직후부터 시작된 한국 근대사 연구는 19세기 대외 위기 속에서 조선이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원인과 과정, 그 결과 등을 규명하기 위한 민족주의적이고 수탈론적인 관점의 연구가 1970년대까

  • 주자학에서 선악 개념의 위상 유학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물으면 대부분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답하지, 선(善)이라고 답하지는 않는다. 기존 연구를 보아도 이기론, 심성론, 수양론을 주제로 삼을 뿐 선악이 별도의 연구 주제로 다루어진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저자는 주희(朱熹, 1130~1200)의 저작에는 선악에 대한 언설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그의 글 곳곳에서 선과 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이기(理氣)·음양·성(性)·태극·인의예지 같은 유학의 핵심 개념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주자학의 중심부에 있는 이기, 심성, 격물, 성의 등의 개념들이 각기 고유한 의미를 지니지만 선악이 빠지면 구심점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 가령 리(理)는 절대선을 정립하기 위해서 도입되었고, 기(氣)는 뿌리 깊은 악의 원인을 해명하기 위해서 동원되었으며, 격물(格物)이나 성의(誠意)는 뿌리 깊은 악을 극복하기 위해 재해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도·태극·음양 같은 다른 개념 또한 마찬가지이며, 주자학의 모든 개념을 연결하는 공통의 문제의식이 있다면 바로 선과 악의 문제라고 말한다.    선과 악은 가장 보편적인 가치 개념 주희의 스승은 31세의 주희에 대해 “선을

  • 지도는 우리가 이해하는 세상을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로, 지도 제작자가 이해한 세상을 표현한 주관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이 그린 자국 지도나 세계지도를 통해 당시의 세계관, 역사관, 지리관 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조선과 일본 양국에서 제작되었던 일본 지도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조선 사람이 일본에 대해 가졌던 인식의 변화와 실제 일본의 변모를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며 설명하였다. 왜구 침략 등 외교적인 현안이 많았던 조선 전기는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그 결과 1471년(성종 2) 신숙주 주도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편찬했다. 여기에는 <해동제국총도(海東諸國總圖)>·<일본본국지도(日本本國之圖)>·<일본국서해도규슈지도(日本國西海道九州之圖)>·<일본국이키섬지도(日本國壹岐島之圖)>·<일본국쓰시마섬지도(日本國對馬島之圖)>·<유구국지도(琉球國之圖)> 등 모두 6개 일본 지도가 자세히 실려 있다. 반면 조선 후기는 전란 복구와 당쟁, 세도 정치 등으로 내부 문제에 집중하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자연히 위축되었다. 이는 지도 제작에도 영향을 끼쳐 『

  • 한반도 직물이 원제국 등장이라는 위기를 어떤 기회로 승화시켰는지 짚어 본 경제사적 검토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고려와 원제국이 공존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 한반도 직조업계는 외부 직물의 유입, 그로 인한 국내 직조 환경의 교란, 기존 수출품의 위상 변동 등 적지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이 책은 한반도의 직물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고, 그런 도전을 고려와 조선인들이 어떤 기회로 발전시켜 나갔는지 다양한 문헌 기록과 사료를 통해 짚어 본 경제사적 검토이다. 이 책 제목에서 ‘탄생’했다고 말하는 새로운 직물은 크게 두 가지이다. 원제국의 출현을 목도한 고려인들이 제국의 직물로부터 자극과 영감을 받아 탄생시켰던 고려만의 특수 직금(織金)인 ‘직문저포(織紋苧布)’, 그리고 제국의 몰락 와중에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한반도인이 새로이 구축했던 여러 교직물(交織物)이다. 한반도는 이미 원제국이 등장하기 전부터 탁월한 직조 기술, 아름다운 자수문화, 그리고 모시와 마포 등 여러 우수 인피직물(靭皮織物) 의 생산 역량을 구비하고 있었다. 이전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이런 전통은 10세기 이래 고려 사회에서 더욱 번성하였고,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 가기도 했다. 수많은 견직물이 중국에서 들어와 고려

  • 기원전 2세기 후반부터 기원 전후한 시기까지 진·변한지역은 물질문화 차원에서 심원한 변화를 겪었다. 일정한 경관에 기념물적 석축 분묘를 배치한 선대의 전통이 저물고, 청동기와 더불어 철부를 부장한 목관묘가 집단화된 형태로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이 같은 진·변한지역의 물질문화 변동기를 초기 목관묘문화기로 잠정하고, 크게 청동기, 토기, 철기로 나누어 그 변화 과정을 추적한다. 이때 같은 시기 중국에서 고대국가가 성장하고 인접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가면서 동북아 내 새로운 사회문화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었음을 주목한다. 이로써 새로운 기술과 정보의 단순 전파와 수용으로 일정 지역의 문화 변동을 설명하던 기존의 방법론을 뛰어넘어, 이 책은 동북아지역 집단 내 이동, 접촉, 전달, 수용의 상호작용 속에서 진·변한지역 초기 목관묘문화기를 구명한다.  

  • □ 고려의 마지막 신하, 목은 이색의 시와 삶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 후기 성균관 대사성, 정당문학 등을 지낸 문신이자, 평생 6,000여 수의 시를 남긴 문장가이다. 이 책은 격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구축한 방대한 이색의 시 세계와 그를 기록한 각종 문헌을 통해 이색의 삶의 행로, 사유와 마음을 복원해낸다. 즉, 이색의 짧은 전기이자 작품 선집이라고 할 수 있다.    □ 바람서리에도 동량 될 재목은 자라난다네  이색은 고려 말 충청도 한산(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지역 향리의 후예이자, 고려 말 문신 이곡(李穀, 1298~1351)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8세 때 숭정산을 시작으로 19세 때 모란산까지,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산사를 찾아다니며 수학하다가, 고려의 향시와 원나라의 과거에 모두 합격하면서 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려의 과거 자제 비록 참 재주 있어도 다만 운남 사람과의 상대로만 여긴다네. 하물며 나는 문장도 못하고 사람됨도 비루하니 비록 하늘 운명이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 시기하리. 밝은 달을 따라 다시 계수나무에 오르려 하니 이미 누런 꽃이 괴목에 붙었음을 보네. 더구나 이 겨울 추위 모피 모자를 파고들지만 바람서리에도 동량 될 재목은 자라난다네. ― 이색

  • 이 책은 현재까지 출판된 『해심밀경소』 「지바라밀다품」의 모든 교감본을 문헌학적 원칙에 따라 종합하고 보완·검토한 재교감본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역주한 것이다. 원측의 『해심밀경소』는 현장(玄奘)이 번역한 『해심밀경』의 주석서로, 동아시아 불교사상사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저술이 찬술된 7세기 중후반의 중국은 국제적 문화의 융성이 절정에 다다랐고, 중국의 불교 사상계 또한 그 역량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해심밀경소』는 이러한 시대에서야 비로소 탄생할 수 있는 인류 문명의 빛나는 사상적 업적이다. 지론학파, 섭론학파, 법상학파로 이어지며 변용·계승되어 온 중국 유식불교 사상의 역량이 이 저서에 총집결되어, 이후 동아시아 불교 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해심밀경소』는 인도 유식사상이 한역 불전에 의해 동아시아 유식사상으로 변용·수용되는 사유의 치열한 분투 과정을 집약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문헌이다. 『해심밀경소』는 전체 8품으로, 대승의 가장 뛰어난 경계·수행·과보를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해심밀경소』 총 8품 중 제7 「지바라밀다품」을 역주한 것이다. 제7 「지바라밀다품」은 『해심밀경』 중 수행을 주제로 하는 품이다. 여타의 품들이 수행을 할 수 있는 확신에 이르도록, 즉 수행을 실천

  • 미국의 팽창주의와 내정 개입 19세기 말 이후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 제국으로 성장한 미국은 각국의 내정에 개입했다. 미국은 세계 도처에서 최고 지도자를 제거해 정권 교체를 달성했는데, 최고 지도자에 대한 제거 공작을 입안한 경우는 실제로 감행한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 ‘제거’라는 말에는 그 최대치라고 할 수 있는 암살이 포함된다. 비리를 폭로해 정계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강제 은퇴나 하야, 선거에 나선 유력 인물을 낙선시키는 공작도 제거 작전에 포함될 수 있으며 이보다 약한 단순 견제 구상도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한국의 정권 수립 과정에서부터 미국은 직접적인 개입자로 혹은 간접적인 조정자·후견자로 한국 정치의 막후에 있었다. 공개적인 성명을 발표해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비밀공작을 통해 특정인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여야 간 타협을 도모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비밀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수행했다. 미국은 한국 정치 전환기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사후에는 언제나 “한국인의 뜻에 따랐으며 내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한국 정치에 끼친 미국의 영향에 대한 연구가 한국 현대 정치사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갈등 국면

  • 미국의 팽창주의와 내정 개입 19세기 말 이후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 제국으로 성장한 미국은 각국의 내정에 개입했다. 미국은 세계 도처에서 최고 지도자를 제거해 정권 교체를 달성했는데, 최고 지도자에 대한 제거 공작을 입안한 경우는 실제로 감행한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 ‘제거’라는 말에는 그 최대치라고 할 수 있는 암살이 포함된다. 비리를 폭로해 정계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강제 은퇴나 하야, 선거에 나선 유력 인물을 낙선시키는 공작도 제거 작전에 포함될 수 있으며 이보다 약한 단순 견제 구상도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한국의 정권 수립 과정에서부터 미국은 직접적인 개입자로 혹은 간접적인 조정자·후견자로 한국 정치의 막후에 있었다. 공개적인 성명을 발표해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비밀공작을 통해 특정인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여야 간 타협을 도모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비밀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수행했다. 미국은 한국 정치 전환기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사후에는 언제나 “한국인의 뜻에 따랐으며 내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한국 정치에 끼친 미국의 영향에 대한 연구가 한국 현대 정치사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갈등 국면

  • 미국의 팽창주의와 내정 개입 19세기 말 이후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 제국으로 성장한 미국은 각국의 내정에 개입했다. 미국은 세계 도처에서 최고 지도자를 제거해 정권 교체를 달성했는데, 최고 지도자에 대한 제거 공작을 입안한 경우는 실제로 감행한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 ‘제거’라는 말에는 그 최대치라고 할 수 있는 암살이 포함된다. 비리를 폭로해 정계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강제 은퇴나 하야, 선거에 나선 유력 인물을 낙선시키는 공작도 제거 작전에 포함될 수 있으며 이보다 약한 단순 견제 구상도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한국의 정권 수립 과정에서부터 미국은 직접적인 개입자로 혹은 간접적인 조정자·후견자로 한국 정치의 막후에 있었다. 공개적인 성명을 발표해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비밀공작을 통해 특정인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여야 간 타협을 도모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비밀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수행했다. 미국은 한국 정치 전환기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사후에는 언제나 “한국인의 뜻에 따랐으며 내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한국 정치에 끼친 미국의 영향에 대한 연구가 한국 현대 정치사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갈등 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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