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1 / 2 ( 총 게시물 18개 )
    • 도서명 한국의 동물상징
    • 저자 이강한, 우정연, 이상해, 이창일, 김성혜
    • 발행일 2020-12-30
    • 정가 35,000원

    동물은 인간과 오랫동안 공생해오면서 여러 형태의 상호작용을 해왔다. 인간에게 있어 동물은 함께 살아나가는 친구이기도 했고, 식량자원이나 노동력 자체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동물을 상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와 유물 속에는 역사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한국의 동물상징을 살펴보는 것은 실은 한국인과 문명의 내면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의 긴 역사와 문화 속에서 동물이 어떻게 표현되고 묘사돼왔는지를 살폈다. 역사, 철학, 고고학, 건축 등 각 분야의 학자들이 고대, 고려·조선, 근·현대의 동물 문양과 동물 조형 사례를 수집·분석함으로써 역사와 문화 속에 면면히 존재했던 다채로운 동물 인식, 그것이 보여주는 각 동물들의 상징하는 바를 조명했다. 한국사 전 기간을 관통하는 보편적 추세의 진단, 직종과 처지와 지향의 차이를 넘어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보였던 동물인식 및 상징, 사고방식과 정서를 추적했다.   ○ 고대사회의 동물상징 먼저 ‘토우’라는 물질자료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라는 문헌자료에 나타나는 동물을 비교하여 한국 고대사회 중에서도 특히 신라사회에서 동물이 지녔던 의미를 고찰했다. 이를 통해 신라인이 장제용 또는 의례용으로 제작

  • 조선은 국가의 중요 서적들을 보관하기 위해 궁궐 안에는 내사고(內史庫)인 춘추관사고를, 지방에는 외사고(外史庫)를 설치했다. 실록을 편찬·보관했던 중국, 베트남 등의 나라 가운데 외사고를 설치하고 운영했던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외사고는 고려 고종 때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에 대비하여 역대 실록의 부본(副本)을 해인사에 보관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북방으로부터의 병화(兵禍)를 우려하여 남쪽의 읍치에 설치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본을 제외한 실록이 모두 소실된 후, 조선 후기부터는 깊은 산중이나 섬에 설치했고, 실록을 보관하는 건물인 사각(史閣)과 왕실 보첩을 보관하는 선원각(璿源閣)을 함께 갖추어 운영했다. 이 책의 주제인 적상산사고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외사고 중 한 곳으로, 1614년(광해군 6) 전라도 무주의 험준한 적상산성 안에 건립했다. 1616년에 『선조실록』을 봉안했으며, 1634년(인조 12) 묘향산사고의 자료를 이안(移安)하면서부터 외사고로서 본격적으로 기능했다. 적상산사고의 자료는 조선 후기의 수정실록 편찬이나 역사적 전례 고출에 널리 활용되었다. 그 이유는 춘추관사고가 이괄의 난으로 조선 전기 실록이 소실되고, 강화의 정족산사고본 자료가 병자호란으로 결본이 많은 데 비해서 결본 없이 완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적상산사고는 300

  • 봉모당(奉謨堂)은 조선 왕조의 어제와 어필 등을 봉장하던 대표적인 존각으로 정조 즉위년인 1776년에 설치되었다.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건립하면서 그 부속 건물로 봉모당을 지어 역대 국왕의 유물을 일괄적으로 보관하게 하였다. 봉모당에 보관된 자료는 역대 국왕의 어제, 어필, 어화, 고명, 유고, 선원보, 선원세보, 국조보감, 열성지장 등으로, 1780년대에 작성된 『봉모당봉안어서총목록』에 의하면 당시 봉모당에 보관되어 있던 물품은 총 5,439종에 이른다. 이 책은 국조보감, 열성지장통기, 영조 대 어제훈서류, 어제집 편찬, 무안왕묘비의 어제어필, 지석류 탁본의 제작, ‘봉모당인’ 압인본의 현황과 자료군 분석 등을 주제로 봉모당 자료의 의미와 가치를 서지학, 역사학, 한문학, 미술사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연구하여 소개한다.

  • 옛 지도는 과거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창이며, 현재 풍경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이다. 특히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아 있는 수많은 지도는 농촌과 비교해 급격하게 변모한 도시공간을 이해하는 데 유효하다. 지도는 ‘지리학의 독특한 언어’이기 때문에 지리학자들은 지도를 이용하여 지역과 공간을 읽고 해석하며 표현한다. 지역과 공간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의사소통하는 데 있어 다른 어떤 수단보다 지도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하는 의문을 해결하는 데도 지도는 큰 역할을 한다. 지도는 각종 기호를 사용하여 일정한 비율로 줄인 제작 당시의 지역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의 지도를 비교하면, 지역의 변화 과정을 시각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이 책은 경주・공주・나주・강릉・충주・수원・춘천・군산・익산・김천 등 한국 중소도시 10곳의 경관 변화가 사람들의 삶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으며, 그 풍경이 품은 의미와 시간, 목적은 무엇인지 살폈다. 각 시대 지도를 비교해 한국 중소도시의 시가지 확대 과정, 도로 및 철도의 증설 및 신설, 도로망의 변모, 주요 시설의 건설과 변용, 토지 이용과 자연환경의 변화 등을 분석했다. 먼저 각종 문헌을 분석하여 도시의 지리적 위치, 조선시대까지의 연혁

    • 도서명 대동금석서 연구
    • 저자 남동신, 강호선, 이명미, 김경래, 나종현, 최경환, 양혜원
    • 발행일 2020-11-10
    • 정가 60,000원

    신라부터 조선까지 한국의 주요 금석문을 엮은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최초 소개 『대동금석서』는 17세기 후반 이우(李俁)‧이간(李侃) 형제가 우리나라의 금석문 280여 종에 대한 탁본 400여 건을 수집하여 서법(書法) 중심으로 편집한 탁본첩으로, 같은 시기에 편찬된 『금석청완(金石淸玩)』과 더불어 현존하는 우리나라 탁본첩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한국 금석학의 보고이다. 그러나 『대동금석서』는 20세기 전반에 경성제대 교수로 있던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수중에 들어간 이후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에 기증되었던 탓에 자료로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 자체가 잊혀졌다. 오늘날 대다수 연구자들이 자료로 활용하는 『대동금석서』는 원본이 아니라 1932년 경성제대 법문학부에서 전체 7첩 가운데 삼국시대부터 고려 말기까지의 탁본 155건을 선별하여 영인 출판한 것이다. 이 영인본에는 원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조선시대의 금석문 탁본이 모두 누락되었고, 선명하지 못한 일부 탁본은 10첩본 『금석청완』에 실린 같은 비석의 다른 탁본을 대신 실었다. 이번에 발간된 『대동금석서 연구』는 『대동금석서』 7첩본을 직접 조사하여 소개하는 최초의 연구서이다. 금석문의 사료적 가치 재조명과 새로운 자료의 발굴 금석문은 한국 고·중세사 연구에서 『삼국사기』·『삼국유사

  • 의례는 꾸밈에 기초한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이 예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외면을 통해 내면을 가꾸는 것이 의례이다. 이 책은 의례를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인 외적인 부분에 치중하였다. 금책(金冊), 복식(服飾), 노부(鹵簿), 제기(祭器), 홀기(笏記), 발기[件記], 제물 등과 같이 의례에서 사용하는 구체적인 의장, 기물, 음식 등을 주제로 삼았다. 이러한 대상물을 ‘의물(儀物)’이라 한다. 이는 의례에서 사용되는 물건이란 의미와 함께 의례의 상황에서 달라진 가치를 존중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의례라는 시공간 내에서 성스러운 물건으로 간주된다. 이 책은 이러한 의물의 성스러운 성격을 보여주고자 이들이 등장하는 봉책, 관례, 가례, 다례, 진연, 국장 등의 의례를 함께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의물이 의례와 관계 맺는 방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의물은 도구적인 성격을 지닌다. 의복이나 패물, 그리고 음식을 진상 또는 하사할 때 사용한 발기 자료는 물품을 적은 명세서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구적 자료를 통해 우리는 의례적 현실에 보다 더 접근할 수 있다. 한글로 적인 홀기, 책문, 발기 등을 통해서 우리는 여성이 의례에 어떻게 개입하였는지도 비로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의물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각각의 의물이 생산되고

  • 북한은 미스터리한 나라다. 1990년대 이후 극심한 식량난으로 3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김정일 정권이 유지되었고 세계 유일의 3대 권력 세습이 이루어져 김정은이 북한의 새로운 최고지도자로 등장했다. 북한 전체 인구의 10~13퍼센트를 차지하는 조선노동당 당원들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유일지배 체제를 출범시키고 공고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1990년대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와 그로부터 초래된 극심한 식량난과 생활난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가 여전히 지탱되는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북한 유일지배 체제의 3대 세습을 뒷받침하고 있는 조선노동당 당원 통제의 특성을 지도자별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고 북한 정권의 변화를 전망한다.

  • ‘한류(韓流, The Korean Wave)’라는 이름의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은 1990년대 말부터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했다. 오늘날 지구상 6개 대륙 가운데 어느 한 곳도 한류의 물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지역적 확대뿐만 아니라 콘텐츠의 다양화 즉 영화·방송·음악·공연·게임·만화·패션·뷰티·음식·광고·관광 등 소비문화와 오락문화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서 한류‘산업’이 세계화하고 있다. 이렇듯 한류는 20여 년의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오늘날 한류가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간 만큼이나 역류(逆流)에도 부딪히고 있다. 한류가 각 나라의 문화, 민족 감정, 정부 정책 등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한류의 수용과 거부의 사유와 정도는 국가마다 다르다. 한류가 세계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류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목적과 배경 그리고 문제의식하에 혐한류(嫌韓流) 형태의 역류가 극성기에 달한 일본, 역류가 ‘반감’과 ‘저항’이라는 정서적 차원의 반발을 넘어

  • 선율과 악조, 박과 장단 등 한국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개념과 용어를 둘러싼 연구사의 쟁점들을 정리한 책이다. 한국음악이론과 관련하여 발생한 쟁점들은 대개 한국음악의 특수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전통적으로 음악인들이 사용하던 음악 용어와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한국음악이론이라고 하더라도 서양음악을 비롯한 비(非)한국음악까지 포괄하여 설명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춘 용어와 이론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면서 발생하였다. 1장에서는 한국음악 연구의 성과와 현황을 살펴보고, 2장에서는 한국음악의 선율과 조에 대한 쟁점을, 3장에서는 한국음악의 박과 장단에 대한 쟁점을 중심으로 학자들 간의 의견이 어떻게 다르고, 어떤 근거를 가지고 각자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장별로 10여 개의 질문을 뽑아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k스피릿 새전북신문

  • 조선시대 왕실보첩은 전통시대 친족의식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료이다. 성리학적인 친족의식이 정착되기 전에는 부계와 모계 양쪽 친족을 모두 중히 여겼다. 따라서 조선 초부터 기록된 왕실보첩은 부계와 모계를 모두 중시하는 등 조선 이전의 전통적 친족의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조선 왕실보첩은 수록 내용이나 형식에 따라서 보(譜)·록(錄)·첩(牒)·도(圖) 등 다양했다. 조선 초기부터 편찬되었던 역대 국왕의 친족만을 기재한 『선원록(璿源錄)』, 역대 국왕의 가족만을 적어 놓은 『어첩(御牒)』, 역대 국왕의 『팔고조도(八高祖圖)』, 국왕과 왕후의 친족을 적은 『돈녕보첩(敦寧譜牒)』 등이 있다. 왕실보첩의 큰 특징은 국왕과의 촌수를 밝혀서 친족 범위 내의 인물만을 수록한 점이다. 이러한 왕실보첩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 때 다시 편찬하나, 오류가 많아 수정이 불가피했지만 국가 재정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종친과 관료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왕실보첩의 수정 편찬을 청했고, 숙종 대에 이르러 왕실보첩의 수정은 물론 새로운 보첩까지 편찬되었다. 이때 수정 편찬된 왕실보첩은 오류 수정에 그치지 않고, 부계 위주, 철저한 종통의식, 적서 차별, 남녀 구별 등 성리학적 친족의식을 크게 반영했다. 이 책은 17세기 숙종 대 왕실보첩이 정리, 편찬되는 과정을

TOP
전체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