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1 / 2 ( 총 게시물 17개 )
  • 이 책은 조선시대 언관(言官) 심낙수가 남긴 문집 『은파산고(恩坡散稿)』 권8에 수록된 「순충열전(純忠列傳)」과 「당역열전(黨逆列傳)」을 역주한 것으로, 심낙수가 충신과 역신을 판별하여 비평을 가한 기록이다. 심낙수(1739~1799)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경문(景文), 호는 은파(恩坡)로 1775년 장원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 지냈다. 비록 그는 노론 시파였으나 언관으로서 당파의 구분 없이 역적 소탕에 앞장서며 토역확대론(討逆擴大論)을 견지하였다. 이런 점에서 ‘충역열전’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심낙수 개인의 의식과 의리론이 그대로 반영된 저술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는 당쟁(黨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경종과 영·정조 시기의 조정은 극심한 당쟁으로 얼룩졌고, 급기야 영조 재위 기간에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임오화변(壬午禍變)이 발생하였다. 각 당파에 속한 인물들은 자신들의 당파만을 충신으로 자처하였고,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자들은 모조리 역적이라 낙인을 찍고 몰아세웠다. 심낙수는 거대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직접 목도한 26명의 인물 중 끝까지 사도세자와 정조를 온몸으로 지키고자 한 충신 17인과, 권세를 틀어쥐고 역모를 꾀한 역신 9인을 각각 「순충열전」과 「당역열전」으로 기록

    • 도서명 조선 국왕의 군대 사용법
    • 저자 원창애, 주영하, 나영훈, 이왕무, 정정남, 송양섭, 윤진영, 노영구, 김충현, 정해은
    • 발행일 2022-07-15
    • 정가 16,000원

    17세기 조선은 임진왜란 및 명·청 교체기의 동아시아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국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중앙 군대를 새롭게 재편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설립된 훈련도감의 군병은 급료를 받는 최초의 직업 군인으로서 국왕 호위와 도성 방어를 전담했다. 임진왜란 중에 설립되어 1882년 폐지될 때까지 약 300년간 유지된 훈련도감은 이 기간 동안 일지 형식으로 베껴 쓴 공문서 자료집인『훈국등록』93책을 남겼는데, 이 사료를 통해 훈련도감의 주요 기능은 물론 군대의 일상, 군병들의 거주지였던 한성 안팎의 풍속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숙종 시대『훈국등록』의 내용을 군사훈련, 산성 축성, 둔전 경영, 능행, 호궤, 면신례 등의 10개 주제로 엮어 소개한다. 군 통수권자로서 숙종은 양난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신무기 개발, 새로운 군사편제와 전법 모색, 왜검술 도입 등 군사력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연하친병’이라 불리던 훈련도감 군병들은 국왕을 가까이에서 호위하며 국왕의 특별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았다. 그들은 능행과 군사훈련의 수고를 치하하는 호궤에서 특별한 날에 정해진 계층만 먹을 수 있는 쇠고기와 최상품 술을 맛볼 수 있었고, 궁핍을 면하도록 신발, 망건 등 각종 물품과 군기의 제조 판매까지 허락받았으며, 민‧형사 사건에

  • 요괴는 기본적으로 신성과 마성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인간은 요괴의 신성과 마성을 접하면서 요괴에게 도움을 받거나 해를 입는다. 결국 요괴는 인간세계에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닌, 인간과 친숙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요괴는 그 실존 여부를 떠나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다. 전통시대 이래로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요괴에 대한 고찰은 인간의 경계심과 공포, 욕망 등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연구이자, 문화현상으로서의 요괴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갖는다. 이 책은 요괴 혹은 요괴 퇴치담을 중심으로 「최고운전」, 「금방울전」, 「명주보월빙」 등 한국 고전소설 76편에 등장하는 요괴 서사를 심도 있게 분석함으로써 한국형 요괴학의 시작을 알리고, 더 나아가 요괴 서사 연구를 통해 한국 고전소설사의 지평을 열고자 한다. 먼저 한국 고전소설 속 요괴 서사를 7가지 관점에서 다루었다. 우선 ‘요괴’라는 용어에 대한 학술적 개념을 정의하고, 각 작품별 요괴 서사 단락을 ‘요괴의 등장-요괴의 작란-요괴의 퇴치’로 이어지는 3단계로 정리했다. 그리고 빈도 및 중요도에 따라 요괴 정체를 ‘여우, 용·뱀, 돼지·원숭이, 나무, 기타 동물 및 무생물, 정체 미상’으로 분류한 뒤, 요괴의 정체 변신 유무를

  • □ 새로운 한국고대사 자료의 발견과 신라사의 복원  한국고대사 관련 자료는 지역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에 흩어져 있고, 그것은 다시 문자 자료와 비문자 자료로 나눈다. 문자 자료는 역사서, 문집, 고문서, 금석문, 목간 등이 있고, 비문자 자료는 벽화를 포함한 회화와 고고학적 유적 및 유물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자료가 동아시아 전역에 산재하나, 실제 자료의 양과 내용은 고려나 조선시대 등의 다른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하고 제한적이다. 그래서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은 그간 자료 부족이라는 고충을 겼어왔는데, 근래에 새로운 자료가 지속적으로 출현함으로써 한국 고대사학계는 신라사 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기존 사서류 외에도 당나라에 전하는 신라 관련 금석문, 목간, 승려들이 남긴 불경 주석과 관련 저술, 유학자들의 문집류에 실린 글, 그리고 그들이 남긴 전승은 신라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자료이다. 이러한 자료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라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살필 필요가 있다. 신라인이 남긴 기록을 당시의 시점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미 우리가 알고 받아들였던 지식에 오류가 없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앞서 말한 다양한 자료를 통해 신라사를 기존 이해를 뛰어 넘어 보다 구

  • □ 17세기 서양의 과학과 철학으로 신의 섭리를 증명한 천주교 교리서 ‘주제(主制)’는 주제자(主制者) 혹은 주제자인 신의 섭리를 뜻하고, ‘군징(群徵)’은 ‘여러 증거를 통해 증명한다’는 의미이다. 『주제군징(主制群徵)』은 17세기 중국에서 활동한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 湯若望, 1591~1666)이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도덕신학자이자 예수회사인 레시우스(Leonardus Lessius, 1554~1623)가 라틴어로 쓴 『무신론자와 정치가들에 대항한 신의 섭리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논의』(총2권) 제1권을 발췌하여 수정·번역한 책이다. 아담 샬은 신이 ‘우주 전체의 완성’이라는 공적인 목적을 위해 만물을 창조하였고, 이는 개별 사물의 모양, 구조, 활동 양상, 다른 사물 간 관계 등에서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개별 사물의 존재와 활동 양상을 통해 신의 존재와 섭리를 증명한다. 이에 더해 중국 유가 지식인들에게 기독교 신학을 설득하기 위해 유가 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독자적인 내용도 기술하였다.  □ 라틴어본 참고 최초 역주본, 정확한 번역과 풍부한 주석 최근 한국서학사 연구가

  • 이 책은 17세기 조선 왕실 가족 구성원 중 6명의 왕녀와 왕자의 혼인기록인 『가례등록』과 『명안공주가례등록』을 역주한 것이다. 먼저 『가례등록』은 인조의 아들 셋(인평대군, 숭선군, 낙선군)과 효종의 딸 셋(숙 안공주, 숙명공주, 숙정공주)의 가례를 한 권의 책으로 함께 엮은 것이다. 17세기 초·중반에는 왕실 가족 내 위계에 따라 의례의 종류가 동일할 경우 함께 묶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명안공주가례등록』은 명안공주의 가례만을 개별적으로 기록한 가례등록이다. 『가례등록』 이후 왕자녀의 가례등록을 인물별 단권(單券)으로 제작한 첫 사례이다. 1680년(숙종 6)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개별적으로 작성한 공주의 가례등록으로는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명안공주는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세 명의 공주 가운데 유일하게 혼례를 치른 공주이다. 명안공주의 가례등록을 시작으로 이후 왕녀와 왕자의 가례등록은 모두 개별적인 단권 형태로 제작되어 현전한다. 이 외에도 두 자료에는 모두 출합의 기록이 들어가 있다. 여기서 ‘출합’은 왕실의 분가(分家)를 일컫는 왕실용어이다. 출합기록은 왕실 가족의 혼인 후 거주방식과 신혼살림의 규모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 발기는 사람이나 물건의 명칭 및 수량을 열거한 기록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한자어 건기(件記)의 이칭이 바로 발기이다. 한자어로는 ‘件記(건기)’, ‘單子(단자)’, ‘發記․拔記(발기)’ 등으로 표기하고, 한글로는 ‘ᄇᆞᆯ긔’ 또는 ‘발긔’ 등으로 적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왕실고문서 왕실발기류 948건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책은 장서각 소장 왕실발기류 948건과 경상국립대 소장 206건 중 중요 자료를 엄선해 수록했다. 시기적으로는 1823년 순조의 첫째 딸 명온공주의 부마를 간택하는 간택기에서부터 1930년 접대발기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 동안 다양한 왕실의례를 설행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발기를 수록했다. 이들 왕실발기류는 용도에 따라 크게 복식발기류, 패물발기류, 음식발기류, 진상(進上)·반사(頒賜) 발기류 등으로 나뉜다. 행사를 기준으로 나누면 가례·명절·탄일·진찬·제향 등에 사용된 왕실발기류가 대부분이다. 발기류의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복식·금침·음식·기명 등의 목록과 수량을 열거하거나, 사람의 이름이나 역할·상격의

  • 한국은 다문화, 다중언어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200만 명 이상이며, 이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학생, 근로자, 결혼이민자들은 한국인과의 접촉에서 혹은 한국에 살고 있는 다른 언어권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서 한국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한편, 국제어인 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적 자원을 활용하여 의사소통한다. 다중언어 사회의 언어 능력은 발음‧어휘‧문법의 정확성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으며, 다양한 전략과 방법들이 의사소통에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동원된다. 이 책은 이러한 횡단적 언어 수행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다중언어 의사소통 양상을 고찰한다. 한국인을 포함하여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어떠한 전략과 방법을 사용하는지, 대화를 어떠한 구조로 전개하는지, 한국의 공간들은 어떠한 다중언어 경관을 보이는지, 외국인의 발화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는 어떠하며, 한국어가 모어(母語)가 아닌 이들의 한국어 사용을 우리 사회는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등의 문제를 다룬다. 더불어 다중언어주의의 관점에서 한국어교육의 목표는 ‘정확한 언어 지식의 습득‘보다는 ‘유창한 언어 사용 능력의 향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 다양한 종교적 실천 가운데서 특히 1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종교적 행위는 종교 교단과 신자 개개인의 종교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위이다. 1년 동안 어떤 종교적 행위를 어떤 규칙에 맞추어 행하는가를 살펴보면 해당 종교 교단의 특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대순진리회, 대한불교조계종, 한국기독교장로회, 원불교, 천주교의 연중 종교생활을 살핀다. 이 종교단체들은 ‘연중 종교생활’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교세 규모, 연구 자료의 개방성, 독특성 등을 기준으로 하여 선정하였다. 이 책은 문헌 종교학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는 한국의 종교학계에 현장 종교학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에 담긴 한국인들의 종교생활 속 차이와 유사성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해나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종교생활에 대한 이해를 더하는 독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 이 책은 일제 강점기를 온몸으로 마주하며 살았던 종교인이자 교육자였던 김교신(金敎臣, 1901~1945)과 유영모(柳永模, 1890~1981)에 관한 이야기이다. 두 사람 모두 나라를 잃고 피식민으로 사는 상황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애썼다. 비록 그들의 면면이 일제에 항거하고 무력으로 투쟁하는 ‘투사’의 면모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한 ‘조선혼(魂)’을 보여 주었다. 김교신과 유영모의 인연은 함석헌에서 비롯한다. 유영모는 짧은 일본 체류를 마친 후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때 학생으로 함석헌을 만나 교유한다. 함석헌은 이후 도쿄로 유학을 떠나 김교신을 만나 기독교를 접하면서 향후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는 동인지인 『성서조선』을 창간했다. 귀국 후 함석헌의 소개로 만나게 된 김교신과 유영모는 삶의 행적에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지만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경으로 단순한 ‘사제지간’ 혹은 ‘교우지간’의 관계를 넘어서는 친연성을 보여 주었다. 이들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연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나라 사랑’ 혹은 ‘민족의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TOP
전체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