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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외관계’ 즉, ‘외교’는 고구려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이다. 고구려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하여, 서ㆍ북쪽은 대륙, 남쪽은 반도, 동쪽은 바다와 접해 있었다. 고구려는 선진 국가였던 고조선과 부여의 터전에서 이들 문화를 초석으로 삼아 주변 여러 나라와 투쟁하고 교류하며 성장해왔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에서 중국뿐만 아니라 북방 유목국가, 멀리 중앙아시아 등의 문화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고구려의 국제성 및 개방성을 드러낸다. 또한 이는 고구려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대외관계가 차지했던 비중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고구려 후기 대외관계는 지배층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국제관계가 맞물려 상호 연동하며 전개되었다. 이 책은 고구려의 ‘내정(內政)’과 ‘외정(外政)’을 상호 연동시켜 바라봄으로써 각 시기별 고구려 안팎의 모순관계가 어떻게 귀결되어갔는지 검토했다. 고구려 후기 대외관계사는 그동안 자료의 특성상 대백제ㆍ신라관계와 대남북조관계, 수ㆍ당전쟁을 중심으로 논의가 집중되었다. 최근 들어 고고자료가 축적되고 다양한 연구시각에서 유연, 돌궐, 거란 등 북방 여러 나라와의 관계를 접근함으로써 상당한 연구의 진척을 이루었다. 다만, 개별ㆍ분산적으로 연구가 진행

  • 근대 이후 대부분의 종교는 제도화를 거쳐 교단 형태로 발전한다. 교단들은 같은 종교의 구획 안에서 특징적인 요소들을 강화하거나 교리 해석을 달리하여 개별적인 역사와 정체성을 쌓아왔다. 그에 따라, 한국의 종교 현상을 이해하는 데 교단 연구는 필수요소가 되었다. 그동안 교단 연구는 총 29개의 교단을 대상으로 이론 연구의 진행 과정과 연구 주제, 성격 등을 분석한 교단 연구사를 성찰하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전망해왔다. 『한국 종교교단 연구Ⅻ - 연구사 편』에서는 기존의 이론 연구가 포괄하지 못한 교단의 개별 영역을 연구한 역사를 종합하고 성과를 정리했다. 불교 분야에서는 연구가 오래 축적된 천태종단 연구사를 검토한다. 천주교 영역에서는 교세 변동과 사회교리 등에 관한 연구사를 종합하며, 개신교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와 선교 과정, 조직신학 연구들을 검토한다. 신종교 교단의 역사와 신종교 연구의 역사를 조망하고 그 성격을 분석하며 전체 논의를 마무리한다.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교단의 연구사를 담은 것은 아니지만, 주요 교단의 연구사 분석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여 일종의 연구사 지도를 그린다. 이를 통해, 하나의 종교 안에서 각자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개별 교단의 연구 현황을 정리하고, 관련 연구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 도서명 한국학 학술용어
    • 저자 이지원, 한경구, 심경호, 최성철, 이경구, 강인철, 계승범, 서영희, 주영하, 이강한, 염정섭, 이영호, 전우용, 김동춘, 이종석, 정수남, 김인수, 이상직, 손정수
    • 발행일 2020-08-31
    • 정가 40,000원

    한국학 학술용어의 출현과 한계 오늘날 한국인들이 한국에 관한 지적 탐구의 결과물로 인정하는 문서기록들은 중국 전한(前漢)의 『사기(史記)』와 진(晉)의 『삼국지(三國志)』,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수집, 배열, 분류, 분석으로 이어지는 근대적 방법론에 의한 한국학은 제국주의 시대에 출현했다. 유럽을 표준과 정상의 위치에 두고 다른 지역을 평가, 해석하는 오리엔탈리즘과 그 영향 아래에서 한국에 대한 식민지 침탈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일본인들의 지적 욕망이 초창기 근대 한국학의 내용을 규정했다. 식민지 시기 한국인에 의한 한국학 연구는 ‘문화 민족을 토매인우(土昧人遇)’하는 유럽 제국주의와 일본 군국주의의 지적 공모(共謀)에 동조하거나 저항하면서 전개되었다. 제국주의 시대에 한국학은 세계에 관한 지식의 일부로 편입되었으며, 그 때문에 세계, 아시아, 동양 등의 권역을 시야에 넣지 않고서는 한국학을 연구할 수 없었다. 동양과 서양, 아시아적 생산양식, 노예제와 봉건제, 중세와 근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종교와 민속 등 유럽에서 창안되어 일본과 중국에서 번역된 개념어들이 한국학을 연구하기 위한 필수 학술용어로 자리 잡았다.   한국학 학술용어의 변용과 확대 일본 식민지배로부터의 해방은 한국인의 자의식이 해방되

  • 이 책은 2014년 九州大學出版會에서 발행한 『朝鮮中近世の公文書と国家-変革期の任命文書をめぐって』을 완역한 것이다. 저자인 가와니시 유야는 현재 일본에서 한국 고문서를 주전공으로 연구하는 거의 유일한 연구자이다. 그는 외국에서 조선 초기의 실물 문서, 특히 임명문서 현황을 전체적으로 조사 분석하고, 문서에 기재된 제도 용어와 인장의 시기별 변화 양상을 치밀하게 지적해 내는 등 매우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2009년에는 실물은 확인되지 않고 사진 자료를 통해 그 존재만 알려졌던 조선 초기 이화상의 처에게 발급된 봉작문서에 대해 문서 해제 수준을 넘어서 조선 초기 문무관의 처에 대한 봉작제도의 변천 과정과 『경국대전』 체제가 정착하기 이전에 통용된 문서 양식을 면밀히 살펴 학계에 발표했다. 또한 김해김씨족보에 수록된 김천부라는 인물에게 발급된 고려 말의 관직 임명문서 연구에서, ‘차부’라는 원나라에서 사용했던 관문서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고 어떠한 문서 양식을 갖추고 있었는지를 고찰함으로써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0년에는 조선 후기 문인 이재 황윤석이 그의 필사본 일기 『이재난고』에 고려 말과 조선 초기 고문서 여러 점을 전사해 놓은 사실을 확인하고, 비록 황윤석이 원본 문서를 보고 자신의 일기에 옮겨 적은 전사본이지

    • 도서명 호남 고문서 연구
    • 저자 허원영, 정은주, 노인환, 권수용, 조미은, 정수환, 이현주, 정욱재, 유지영
    • 발행일 2020-07-31
    • 정가 16,000원

    호남 지역은 가전(家傳) 고문서뿐만 아니라 개인 저술과 국가에서 제작한 지도 등 다양한 문헌 자료가  남아 있으며, 그 영역도 사회ㆍ경제, 사상사와 미술사, 제도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책은 이러한 호남 지역 고문서의 여러 주체, 즉 국가, 가문, 개인 등이 추구했던 다양한 가치와 지향점을 살폈다. 총 3부, 먼저 1부는 호남 지역의 지방 통치와 행정, 제도를 다루었다. 1장은 지방 통치를 위해 국가가 제작한 󰡔1872년 지방지도󰡕 중 호남 지역의 지도를 분석하고, 2장은 조선시대에 전라도에 속한 제주 3읍을 관할했던 제주목사와 관련한 다양한 고문서를 통해 제주목사의 문서 행정을 추적했다. 3장은 해남지역의 고급 향리였던 정우형(鄭愚衡)이 수신한 간찰 자료를 통해 그 지역에서 이루어진 명례궁 궁방전의 수세 과정, 그리고 이에 대한 백성의 대응을 살폈다. 2부는 가전 고문서를 바탕으로 해당 가문과 인물의 사회ㆍ정치ㆍ경제적 활동을 분석했다. 1장은 영광 영성정씨 고문서를 통해 정조 대 무신 정호남(丁好南, 1736~1812)의 가계와 관직 활동을 살피고, 2장은 남원 순흥안씨 안처순(安處順, 1492~1534) 후손가 자료를 통해 조선 후기 가문이 정체성을 구축하고 공유자산의 운용으로 중종 내부의 호혜와 협동의 규약을 실천하는 과정을 검토했다. 3장은 해남

  • ‘내훈’ 또는 ‘여훈’ 등으로 지칭되던 전통시대 여성 교육은 여성이 그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을 잘 받들게 하기 위한 교육이었던 반면에, 20세기 초에 형성된 근대 가정학은 구시대적 생활 풍속을 개량하고 훌륭한 국민을 양성해내는 주체로서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다. 이러한 동아시아 가정학이 전파되는 중심에는 일본의 근대 여성 교육자 시모다 우타코(下田歌子)가 있었다. 19세기 말 유럽의 근대식 여성 교육의 현장을 시찰하고 돌아와 발표한 시모다의 여성 교육에 관한 저술들은 중국과 한국에서 여러 차례 번역 수용되었으며, 그 번역의 계보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각국의 근대 가정학 성립사를 기술하는 중요한 토대가 확보된다. 이 책의 연구 대상인 󰡔신식부인치가법(新式婦人治家法)󰡕(1925)은 시모다로부터 비롯된 동아시아 근대 가정학 저술의 번역 계보에 속해 있는 저작으로, 이 책에서는 ‘번역’과 ‘어휘’의 문제를 중심으로 󰡔신식부인치가법󰡕의 언어 사용 양상을 분석한다.   

  • 9세기 중반 발해는 해동성국이라 불릴 정도로 동북아시아의 최강국으로 성장했지만, 925년 12월 거란에 의해 부여부가 급습당하고 그 후 한 달 만에 상경용천부가 함락되면서 멸망했다. 이 같은 갑작스러운 패망으로 인해 발해 멸망을 둘러싼 회한과 당혹감은 ‘수수께끼 발해’라는 별칭까지 더해져 다양한 역사 해석과 추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발해의 패망을 거란에 의한 일순간의 패퇴 과정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지난한 저항과 부흥 운동으로 연장하여 조망해보려는 논의가 전개되어왔다. 발해 멸망 이후 금이 흥기하던 1150년까지 200년 가까운 시기 동안 이어진 부흥 운동은 역사상 매우 드문 것이었기에 이에 주목하여 발해의 연구 대상 시기를 확대했고, 더 나아가 발해 유민의 거취를 추적하는 연구도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학계의 관심은 거란에 편속되어 발해 문화를 계승해나간 이들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거란으로 넘어간 발해인 대부분은 발해시대에 땅을 일구어 성장과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냈던 기층민이었다. 이들은 이후 다른 왕조의 피복속민이 되었지만, 여전히 발해의 옛 땅에서 발해의 생활 습속을 이어나갔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발해와 요ㆍ금을 시대적 연속선상에서 이해하기 위한 첫 행보이다. 발해 멸망 후 그 지역의 모습, 발해인의 생활 등이 요

  • 고려 초기에는 거란과 여진을 물리치고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동시에 송과 외교적으로 활발히 교류했다. 중기에는 송이 북방의 요와 금에 의해 강남으로 밀려나면서 이들 국가와 복잡한 외교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특히 몽골이 등장하여 북방을 통합한 후에는 남송과 몽골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했고, 원과의 오랜 항쟁 끝에 원나라의 부마국이 된 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외교적 수완이 필요했다. 말기에는 원의 쇠퇴와 명의 등장, 남쪽에서 왜구의 잦은 약탈이라는 혼란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외교적 역량이 중요했다. 인접국과의 긴박한 정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바로 외교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한 외교관계 속에서 표전과 서신 등의 문서가 만들어졌고, 사신들이 오가면서 그 심회를 읊은 사행시를 남겼다. 이 책은 이러한 고려시대의 외교문서와 사행시를 중심으로 먼저 1부에서는 고려시대 외교문서의 내용과 현황, 그리고 문학적 특성을 고찰했다. 표전을 저작한 문장가, 특히 박인량(朴寅亮), 김부식(金富軾), 이규보(李奎報), 이제현(李齊賢), 이곡(李穀),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의 문학적 성취를 확인하고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고려가 약소국의 상황에서도 외교문서를 통해 중국을 설득하고 감동하게 해 현안을 해결하였던 만큼, 그 구성과 표현 등을 분석함으로써

  • 책의 생산과 유통은 역사 일반에 관련된 문제인 동시에 지식사·사상사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어떤 책을, 어떤 주체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는가?”라는 물음은 특정 지식과 사상의 생산 의도를 묻는 것이다. 책의 유통을 엄밀히 고찰하는 것은, 지식과 사상의 유포 이면에 있는 권력의 문제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넓게 말해, 책의 생산과 유통을 따지는 것은 한 사회의 성격을 추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서적문화사에서 숙종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족(士族)이 국가를 이끌었던 조선에서 책은 이들의 의도에 따라 생산되고 유통되었다. 조선이 끝날 때까지 책의 인쇄, 출판, 생산, 유통 등 거의 모든 문제의 결정권은 사족이 장악하고 있었다. 비록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와 예송, 환국 등 내부적인 큰 진통을 겪으면서도, 조선의 사족체제는 이후 3세기 동안 유지되었다. 사족 체제에 봉사하는 서적문화는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그 기본적인 성격이 변하지 않았고, 숙종조의 변화도 이러한 기본적 성격 위에서의 세부적 변화였다. 당시의 정국 변화는 사족을 지역별로 정치권력에서 배제하는 과정이었고, 여기서 등장한 경화세족의 존재와 당쟁은 숙종조 나아가 조선 후기 서적문화를 간섭하였다. 숙종조에 사족체제가 다시 보유하게 된 서적의 인쇄&

  • 이 책은 일본의 신화학자 다카기 도시오(高木敏雄)가 1917년 일본어로 출판한 『新日本敎育昔噺』을 처음으로 완역한 것이다. 다카하시 도루(高橋亨) 등 당시 일본의 관학자들은 조선의 사회관찰자임을 자처하며 부정적이고 비관적‧운명론적 내용의 설화를 근거로 한국인들의 민족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와 달리 다카기 도시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주로 선집하여 독자들이 웃고 즐기며 이야기를 읽는 가운데 교훈을 얻기 바랐고, 다른 일본인들이 출판한 옛이야기집에 비해 다양하고 개성 있는 작품을 많이 실어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다카기 도시오의 미덕은 한국 옛이야기에서 ‘해학과 전복’의 미학을 발견하여 작품을 선집 한 점이다. 해학은 억압받는 대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를 향한 시선을 동정적으로 만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해학은 교훈적 메시지를 은근히 숨겨 직접적 표현보다 더 효과적으로 주제를 드러낸다. 그의 옛이야기에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짓궂은 장난이 허다하게 그려진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의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예측하기 힘든 결말을 갑작스럽다고 보여준다. 지략담이나 바보담을 통해서는 어리석음이나 욕심, 따라 하기, 게으름으로 인한 실패와 몰락, 고지식함을 비웃고 지혜를 강조하였다. 도박이나 욕심, 게으름, 술 취함 등을 경계하였지만, 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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