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조선의 기록유산
∘ 전시기간 : 2023. 09. 21 - 2023. 12. 31
∘ 운영요일 및 시간 : (9월) 월~금 운영, (10~12월) 월~토 운영
※ 휴관일자 : 일요일 및 국가지정 공휴일(추석연휴 9월 28일 ~ 10월 3일), 한글날(10월 9일), 성탄절 (12월 25일) 및 12월 16일(자체 시설 정비)
※ 20인 이상 단체 관람은 사전 예약이 필요하며 시간제로 운영합니다.(10:00~11:30 / 13:30~15:00 / 15:00~16:30)
- 예약전화: 031-730-8820 / 평일 10시~16시
※ 20인 미만 개인 및 단체 관람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언제든지 가능하나 전시실 내 관람객이 많을 경우 입장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운영 시간 10:00 ~ 11:30 / 13:30~16:30)
∘ 전시장소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1층 전시실
1. 왕실의 문화를 기록하다
조선 왕조는 5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 아래 문치文治와 예교禮敎를 통한 문명국가를 지향했다. 이를 위해 국가의 경영과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을 방대한 기록으로 남겨 문명국가로서의 위상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장서각에 소장된 왕실문헌과 어제·어필도 이러한 조선 왕조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는 소중한 기록유산이다. 그동안 장서각에서는 보존의 일환으로 왕실 자료 가운데 높은 품격과 사료적 가치를 지닌 작품을 정밀하게 복제하여 원 자료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전시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왕실의 문화를 기록하다’에서는 조선 왕실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주요 작품 20여 점을 소개한다. 여기에는 14세기 말 「조온사패왕지」부터 20세기 초 「고종어필 정헌」에 이르기까지 조선 왕조 전반에 걸친 각종 왕실 자료가 망라되었다. 세부적으로 조선 왕조를 건국한 태조의 어진을 복원하였으며, 왕실의 기록과 기록화, 국왕의 글씨로 구분하여 조선 왕실의 기록유산을 한눈에 감상함으로써 장서각 보존과학의 정밀함과 우수성을 실감할 수 있게 하였다.
장조, 순조, 헌종 태봉도
정조어필 시국제입장제생
1798년 9월 9일에 시행된 성균관의 국제菊製에서 정조가 유생들을 깨우치기 위해 작성한 유시문諭示文이다. 정조는 자신이 내린 국제의 시험 문제를 유생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백지로 제출하자, 3일 동안 기한을 주고 문제의 뜻을 이해하여 답안지를 다시 제출하게 하였다. 이후 정조 자신이 직접 채점하여 1등으로 뽑힌 생원 윤행경尹行慶에게 『규장전운奎章全韻』을 하사하였다. 이 문서는 정조가 직접 내린 시제試題의 의미와 성균관 유생의 학문 수준을 질책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어 당시 인재 육성을 위한 고심을 잘 보여준다.
2. 명가의 역사를 보존하다.
장서각은 한국학중앙연구원 개원 이후부터 지금까지 민간의 생활 문화가 깃든 고문헌과 고문서의 가치에 주목해왔다. 이에 멸실되어 가는 전국 명가의 고문헌을 발굴하고 수집하여 현재까지 17만여 점을 수집하였다. 장서각에서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고문서집성』을 발간하여 조선시대 사대부 및 민간의 삶과 일상에 대한 실질적 사례 연구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한편, 장서각은 희귀성과 사료적 가치가 높은 유물을 발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간에서 멸실 위기에 놓인 유물을 우선적으로 보존처리하여 그 복원을 위해 힘써왔다. 뿐만 아니라 정밀한 복제본을 제작하여 기탁 문화재에 대한 현장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 ‘명가의 역사를 보존하다’에서는 가문의 보물이 국가의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기여한 전국 명가의 유물을 장서각의 보존과학 기술로 재현하여 소개하였다. 이와 함께 명가의 유물을 수집하는 과정에 얽힌 이야기와 대표 유물을 중심으로 명가의 역사와 삶을 함께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박세당 필적 서계유묵
박세당(1629~1703)의 시문 및 간찰 등을 수록한 유묵첩이다. 박세당은 주자학에 대한 독자적 견해를 견지하고 실사구시의 학문 태도를 강조했던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이다. 총 3첩으로 구성된 『서계유묵』은 대부분 문인門人인 이정신李正臣(1660~1727)에게 증여한 시문과 서간이며, 처남인 남구만南九萬(1629~1711)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서간도 확인된다. 이밖에도 중국 역대 명가 글씨에 대한 박세당의 품평과 감식안이 담긴 서간, 박세당의 초상 제작과 관련한 아들 박태보朴泰輔(1654~1689)의 글도 수록되어 정치사 및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정학묵 금관조복
고종 대 문신 정학묵(1829~1903)이 착용한 조복으로, 국가적인 경사나 명절 때 축하 의식에서 입는 예복이다. 양관梁冠·의衣·상裳·중단中單·대대大帶·혁대革帶·후수後綬·패옥佩玉·홀笏·화靴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진에서 확인할 수 없지만 폐슬蔽膝도 존재한다. 정학묵은 1860년(철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당상관인 삼사의 승지와 이조참의를 지냈으며, 1902년(광무 6)에는 종2품 가선대부의 품계에 올랐다. 이 조복은 운학문雲鶴紋과 금환金環으로 장식된 후수와 육량관, 상아홀, 서대犀帶 등을 갖춘 대한제국기 고위 관직자의 관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준형 유서
독립운동가 이준형(1875~1942)이 1942년 9월 2일 자결 전에 아들 이병화李炳華(1906~1952)에게 남긴 유서이다. 이준형은 1911년 부친 이상룡李相龍(1858~1932)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하였고, 1932년 부친의 서거와 일본군의 만주 침공을 계기로 귀국한 후에 집안을 재정비하고 부친의 유고遺稿를 정리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1942년 부친의 문집인 『석주유고石洲遺稿』의 정리를 마쳤으나, 일제의 싱가포르 승전소식을 듣고 독립의 희망이 희박해졌다고 판단하여 자결하였다. 유서에서 그는 간단한 장례 절차, 며느리에 대한 애정, 손자에 대한 학업 등을 당부한 뒤 절명시 「임절운臨絶韻」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