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연 사람들

축구, 사람과 함께하는 것

현재 한국학지식정보센터 백과사전편찬실에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성광동씨를 만나보았다. 그는 1997년 한국학대학원과 인연을 맺고 현재 강산이 두번 변하는 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함께하고 있다. 사람과 함께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편안한 인상이 더욱 빛나게 느껴진다.


성광동 사진

축구를 좋아하신다구요?

축구, 등산, 탁구, 농구, 요가 등 몸으로 움직이는 것은 다 좋아해요. 잘은 못하지만 땀 흘리며 서로 몸을 부대끼고, 열심히 뛰고나서 거친 숨을 몰아 쉴 때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연구원에 출근해서 맡은 업무를 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사람들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고, 일정에 쫓길 때도 있어요. 그래도 운동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많은 생각들을 비워낼 수 있죠. 그 에너지로 또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운동을 하다 보면 건강도 챙길 수 있고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속 마음도 나눌 수 있고요. 사람들과 함께 운동을 하다 보면 업무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조금더 부드럽게 풀어낼 수 있는 경우도 있어요. 건강해지고 사람들도 알아 간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성광동 사진

축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실은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정말 약골이었어요. 한 번은 친구들과 농구 시합을 하는데, 상대방 진영까지 한 번 갔다 오고 나니 도저히 뛸 체력이 안 되는 거예요. 그 정도로 허약 체질이었죠. 그래서 대학 다닐 때부터 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농구, 축구, 탁구 등등 공을 가지고 하는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여러 운동 중에서도 축구를 참 좋아하게 됐던 것은 한국학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천연잔디에서 축구를 하게 되면서부터예요. 그 때는 지금 분위기와 달라서 저녁을 먹고 나서는 기숙사에 있던 남학생들은 모두가 축구를 했었죠. 선배들과 부대끼면서 축구를 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처음엔 수비였다가 그래도 젊으니까, 체력이 되니까 슬금슬금 앞으로 공격으로 나갔죠. 그러다가 골도 넣고요. 사실, 그전까지는 축구하면서 골을 넣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군대에서 축구할 때도 제대하는 그날까지 한 골도 못 넣었으니까요.

그렇게 골 맛도 보고, 선배들과 어울려서 땀을 흘리며 부대끼는 게 참 좋았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축구를 늘 하고 있어요.


필드에서 뛰는 축구와 관중석에서 보는 축구 중 어떤 것이 더 매력적인가요?


축구를 즐기는 방법이 여러 가지죠. TV에서 축구 경기를 보는 것, 직접 경기장에서 관람하는 것, 그리고 내가 직접 뛰는 것...

TV로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은 축구를 하지 않는 사람들, 예를 들면 아내와 딸과 함께 어울려서 보는 맛이 있고요. 경기장에서 관람하는 것은 실제 축구 경기의 분위기와 선수들의 모습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마치 용수철처럼 사뿐히 튀어 오르는 선수들의 헤딩 모습에서 생기랄까 뭐 그런 상큼한 느낌을 받아요.

그리고 내가 직접 뛰는 것은 정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랄까? 숨이 차고, 심장이 터질 만큼 뛰고 나면, 그 뒤에 찾아오는 상쾌함이 너무 좋죠. 마치 한 여름 소나기가 잠시 지나고 날 때 느끼는 그 상쾌함처럼.

저는 이 세 가지 중에 제가 직접 뛰는 걸 좋아해요. 볼을 경합하다 밀려서 운동장에 나뒹굴 때도 있고, 골로 연결되는 멋진 패스를 할 때도 있고, 또 어쩌다 가끔 골을 넣을 때도 있고요.

직접 뛰는 경기도 하시나요?

조기축구회 사진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경에 낙생고등학교 건너편, 낙생농협 앞 운동장에 오시면 저를 보실 수 있어요. 판교에서 축구를 한 햇수가 7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연구원에서 축구를 한동안 할 수 없을 때 인연을 맺은 축구팀입니다.

매주 자체적으로 미니 게임을 할 때도 있고, 성남의 다른 팀과 시합을 할 때도 있어요. 우리는 그걸 ‘A매치’라고 하죠...ㅎ

처음에는 간혹 공격도 나가곤 했는데 점차 뒤로 물러나고 있어요. 나이가 들고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니 젊은 친구들한테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수비를 전담하고 있어요. 가끔 골키퍼를 볼 때도 있고요. 수비만큼은 그래도 체력이 되니까 악착같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뒤로 물러나면 날수록 축구할 때 움직이는 사람들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와요. 앞서 나가서 골을 넣는 화려한 플레이도 멋지지만 돌진해 오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나이가 들어 축구하면서 새삼 느껴요. 어렵게 공격해서 한 골은 넣는 거나, 애써 상대의 공격을 차단해서 한 골을 막는 거나 똑같이 시합을 이기기 위해 의미 있는 역할입니다. 특히 골키퍼를 볼 때 상대의 마지막 슈팅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막아낼 때면 골망을 가를 때 느끼는 기분 이상이에요.

나이 들어 축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축구가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거예요. 각자의 역할이 자신의 상태에 적합하게 주어지고,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또 다른 사람들과 협력을 할 때, 그 팀이 후회 없는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듯이 삶도 그런 것 같아요.

성광동 사진

한중연 생활은 어떠신가요?

2006년 4월에 「향토문화전자대전」 편찬 사업에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입사했어요. 대학원 시절 잠시 출판사 일을 했던 경험이 한국학지식정보센터로 연결되었던 거죠. 그 후 2007년 7월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개정증보 편찬 사업에 연구원으로 들어오게 되었죠. 원래 한국학대학원 출신이라, 1997년에 입학한 때부터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인연을 맺어 오고 있는 셈이죠.



‘공부’에 관한 소재로 논문도 많이 쓰시고 연구를 하신다고 들었어요. 원래 ‘공부’를 좋아하시나요?

철학, 그 중에서 성리학이 전공이예요. ‘공부’는 성리학의 ‘공부론’, 다시 말해 ‘수양론(修養論)’에 대한 내용이죠.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다움을 추구하고, 또 그런 사람이 되려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죠. 그래서 일반적인 의미의 공부는 별로 못하는 것 같아요. 그냥 고전의 구절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연구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공부’주제의 강연이라 청소년 대상 강연자로 인기가 정말 많았어요. 기억에 남는 학교나 강연 중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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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찾아가는 한국학콘서트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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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중 소통하는 모습

강연할 때 참 애매한 경우가 많았어요. ‘공부’가 그 ‘공부’가 아닌데, 중고등학생에게 그걸 이야기 한다는 게 참 어려웠어요. 그래서 처음 만든 강의안을 계속해서 수정하여 수준을 평이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번은 청주의 ‘신흥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했을 때였어요. 윤리 선생님이 관심도 많고, 학생들에게 애정이 많으신 분이셨어요. 고3을 대상으로 한 강의였는데, 학생들도 잘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고. 그런데 그 선생님이 학생들보다 더 흥이 나셨던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하셨고, 카톡에 “한국학중앙연구원,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도 보내주셨어요.

또, 거제의 ‘옥포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했을 때였는데요. 강의 며칠 전 갑자기 대상포진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요. 다행히 초기라, 상황을 봐 가면서 강의를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됐지요. 그런데 다른 강사를 섭외하기도 시간이 촉박했고 사업주관부서의 입장도 있는지라 약봉지를 가득 싸매들고 내려갔습니다. 그날은 강의도 이상하리만큼 술술 잘 풀렸고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독한 약기운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강의할 때면 꼭 한국학중앙연구원을 잠깐 소개해요. 어떤 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한중연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질문을 했습니다. 답변을 꼼꼼하게 하면서 한중연을 홍보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담으로 말씀드리면 제 얼굴이 동안인가봐요...(^^) 영광의 한 중학교에 갔을 때였어요. 교장선생님과 잠깐 대화를 나누며 한국학중앙연구원을 소개하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저를 한동안 빤히 쳐다보시더니, 조심스레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여기 좋은 여선생님이 한 분 계시는데 혹시 결혼하지 않았으면 소개시켜 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결혼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니 많이 아쉬워 하셨어요.(웃음)

근무하시면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사람들과 만나서 일을 계획하고 또 그대로 이뤄가는 과정이 좋은 것 같아요. 마음에 꼭 들어맞는 사람도 있고 또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티격태격 하며 뭔가를 만들어가는 상황이 좋은 것 같아요.

일에 지치거나 오후에 머리가 지끈거릴 때면 정보센터 뒤편으로 해서 원내를 거닐면 생각도 정리되고 참 좋습니다. 근무하는 곳 바로 곁에 한 발짝만 내딛으면 자연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아요. 가끔 아는 분들을 초대해서 연구원 경내를 구경시켜 줄 때면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해요. 이런 곳에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가장 즐거운 건, 퇴근 후에 잔디구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거죠. 올해는 잔디 상황이 좋지 않아서 못하고 있지만 축구를 할 때면 모든 스트레스가 다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요. 천연잔디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최고의 근무 환경이죠.

퇴근 후나 주말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연구원 한악회사진

연구직이라 퇴근 이후는 전공에 관련된 작업을 해요. 책을 읽거나, 논문을 쓰거나, 그런 시간을 갖죠. 주말에도 잠시라도 책을 보려고 해요. 연구원에 자주 나오기도 해요. 특히 토요일은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되니, 그동안 미뤄뒀던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죠.

토요일에는 주로 조기축구를 하고,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전공 선후배들과 은퇴하신 선생님과 함께 등산을 해요. 보통은 가까운 곳으로 가지만, 간혹 먼 곳으로 등산을 하는 경우도 있죠. 작년에는 한국학대학원의 '응옥'이라는 베트남 여학생도 우리와 함께 광주광역시의 무등산에 다녀오기도 했죠. 서석대까지 함께 올라갔어요.

그렇지만 올해부터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늘리려고 해요. 딸이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구요. 평일에는 예전보다 조금 일찍 들어가고 토요일에도 집에서 보내는 횟수를 예전보다 늘렸어요.

이후엔 어떻게 삶을 계획하실 생각인가요?

딸이 그린 그림

<소년과 개구리> 딸이 그린 그림

활동하는 축구팀에는 60세가 되신 분도 있어요. 건강관리를 잘 하셨던 분이죠. 저도 건강하게 60이 넘어서도 축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지긋이 들어도, 몸과 정신이 건강한 상태로 책을 읽고 사색하고, 또 글도 쓰고 하면서요... 그리고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공부했던 지식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해요. 나이가 들어서도 내 자신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리고 미래의 큰 꿈이 하나 있는데요. 한 일 년 정도 기간을 잡아서 아내와 딸과 함께 셋이서 세계 여행을 하는 거예요.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혼자서라도 여행을 꼭 다녀오고 싶어요...^^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어떻게 보면 하고 있는 일들이 정적이잖아요. 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부서 동료들과 있다가 퇴근하는 경우도 많아요. 또 예전에 비해 사람도 많아지고 새로 오신 분들도 많은데... 한데 모이는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체육대회도 있고 해서 대학원생과 전교직원이 모두 모이는 행사가 해마다 한 두 번씩은 있었어요. 그 때 모르는 분들과 안면을 익히고 통성명을 했죠. 지금은 전혀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가끔은 전체가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박하지만 꿈이 하나 있어요. 딸아이와 함께 책을 내고픈 마음이 있어요. 아이가 삽화를 그리고, 제가 글을 쓰고. 아이의 생각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어요. 아이의 상큼함이 곧 사라지기 전에요.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라 반항기가 다분해요. 더 걷잡을 수 없기 전에 아이와 소통하면서 아이의 생각을 그려보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네요.(웃음)

인터뷰 내내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축구와 등산과 땀흘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가는 성광동 연구원의 모습에 환한 미소가 지어진다.

typhoon@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