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의 향기

방목(榜目) 찾아 3만리

양창진 사진
양창진
한국학학술정보관 한국학정보화실장

고려와 조선의 과거 급제자 정보는 한국학중앙연구원만이 제공하는 특별한 대국민 정보 서비스이다. 그동안 집안에서 ‘우리 몇 대조 할아버지는 과거에 장원급제했다’는 식으로 손자 손녀들에게 말하면서 자부심을 심어주곤 했는데 이 정보가 구축되면서 구체적인 근거 없이는 말하기가 어려워 졌다. 그러다 보니 막상 인물정보를 구축하고 서비스를 시작하자 전국의 문중(門中)과 문중 일에 관계하는 분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다. 지금도 인물정보의 이용자 게시판을 보면 이런 분들이 일상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급제자가 완벽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1만 5천여명에 이르는 조선조 문과 급제자는 전체가 정리되었다. 이와 달리 무과, 사마시, 잡과 등은 최진옥 교수와 정해은 선생 등의 선구적 노력을 통해 기본적인 내용들이 정리되었지만 그래도 갈 길이 멀었다. 이러한 분들의 노력이 합쳐져 지금까지 정리된 급제자 정보가 10만 여명에 이를 정도가 되었으니 양적으로도 결코 적지 않다. 그나마 이 정도 양의 자료를 축적하는 것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가능했다.

과거 급제자들의 신상명세서가 기록된 자료를 방목(榜目)이라 하는데, 합격자 본인의 생년, 본관 및 아버지, 할아버지, 합격 당시의 거주지 등 다양한 가계 정보까지 같이 수록되어 있어 인물 관계 정보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이다. 방목은 모든 과거 시험이 끝난 후 만들어 배포되었고 급제자들은 이것을 베껴서 평생의 영광으로 알고 보관했다, 이런 방목은 한 곳에 모두 소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때문에 종합 정리를 위해서는 일일이 찾아서 수집해야 했다. 방목을 찾아 헤맨 사례를 소개해 본다.

한 번은 중국 북경대학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던 무과방목 한 책이 소장되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 자료를 확보하고 싶었지만 그곳 까지 갈 경비가 없었다. 설혹 간다고 해도 북경대학 도서관 당국이 열람과 촬영을 허가해 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한국학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의 중국인 지인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불법(?) 촬영을 의뢰하였다. 기다림의 시간이 몇 달 지난 후 휴대폰을 이용하여 촬영한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1679년에 시행된 정시무과(庭試武科) 급제자 22명의 명단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 시험의 장원 급제는 밀양손씨 손세주(孫世胄)이니 밀양손씨 후손들로서는 가문의 영광이라 여기지 않을까?

1679년 기미정시방목(己未庭試榜目)_북경대 소장

1679년 기미정시방목(己未庭試榜目)_북경대 소장

이런 식으로 미국의 하버드 옌칭 도서관, 일본 동양문고 등을 휘젓고 다녔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대학도서관 및 박물관들에 방목들이 조금씩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라고 해서 해당 자료를 확보하기 쉬운 것도 아니었다. 특히 사립대학이나 사설 박물관 등에 소장된 자료는 국가 기관이 아니어서 자료를 열람하거나 복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한 이용자가 대구에 있는 G대학에 우리가 보지 못한 무과방목이 있다는 정보를 알려 주었다. 촬영을 의뢰하였지만 예측했던 대로 불허하였다. 그래서 직접 방문 열람을 요청하였더니 허락한다는 연락을 해 왔다. 그리고 촬영은 불허하지만 열람하면서 메모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자료 열람을 위해 비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아침 일찍 운전하여 대구로 갔다. 같이 간 동료 선생님과 같이 그 자리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자료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우리가 스마트폰 등으로 촬영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때문인지 자신이 보는 옆에서 입력을 하도록 했다. 본인이 담당하는 자료의 관리 지침을 준수하는 해당 직원의 놀라운 직업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곧 도서관 문을 닫아야 하니 빨리 끝내라고 담당 직원이 재촉하였다. 언제 이 자료를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어 입력 데이터와 다시 한 번 대조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거의 4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하여 1710년과 1735년에 시행된 문무과방목(文武科榜目)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여기에 수록된 무과 급제자는 도합 110명이었다. 지금도 인물정보를 보다 보면 과거 급제자 정보는 있지만 관련 이미지가 서비스되지 않는 것은 이런 식으로 입력된 자료들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 가끔 우리가 입력하지 못한 방목들이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정리가 가능한 방목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의 실물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과거 급제자 정리에서 누락된 퍼즐들을 맞추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방목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빈다.

uridul@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