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습재 일기
기숙사 생활
이 단
중국(한국학대학원 경제학전공 박사과정)

시습재, 그러니까 나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대학원생들의 기숙사와의 인연은 2005년 2월에 시작되었다. 겨울 추위가 꽤 매서웠던 어느 날, 나는 경제학과 석사과정 입학을 앞두고 중국 단동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낯선 공간을 찾아왔다. 그 이후 내가 시습재에서 생활한 기간이 5년이 넘는다. 사실 우리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았던 기간으로 치면 시습재가 가장 오래된 셈이다.
내가 처음 시습재에 입주하던 때는 건물이 완공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아주 깨끗하고 보기도 좋았다. 같은 방을 쓰며 생활한 첫 번째 룸메이트는 나와 오랜 기간 함께 지냈다. 미술사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언니였는데,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당시 언니는 서울에 집이 있고 다른 대학에 출강하면서 공부하는 처지여서 항상 기숙사에서 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주 며칠씩 머무르곤 했는데, 올 때마다 맛있는 것도 가져오고 편안하게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늘 언니가 오는 날이 기다려졌다.
언니와 나는 같은 ‘말띠’로 띠동갑이었다. 어느 날 띠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내가 ‘중국에서 사람들은 말띠가 운이 좋다고 믿기 때문에 말띠 아이가 태어나면 환영을 받고, 양띠는 인기가 없다’고 했다. 언니는 웃으며 한국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양띠 여자는 성격이 부드럽다고 생각하고, 말띠 여자는 양띠에 비해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나는 언니의 말을 듣고 ‘중국과 한국의 문화가 비슷한 점이 많지만 국민들의 일상에서는 이렇게 사소하고 재미있는 차이도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언니에게 ‘아마 중국인의 양띠는 산양띠이고 한국인의 양띠는 면양띠일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그 시절의 기숙사 생활은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즐겁게 지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시습재 2동 3층의 쉬는 터

편안한 우리 방
석사논문을 제출하고 졸업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제 더 이상 시습재에서 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 일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어서인지 2015년 2월에 나는 다시 시습재로 돌아왔다. 맨 처음 왔던 때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시설이나 시스템에 큰 변화가 없었다. 나는 2층에 있는 방에서 1년 동안 산 다음 석사과정 때 살았던 방으로 이사하였다. 왠지 그 방이 더 편안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젊은 나이가 아니니 밤을 새워 공부하는 건 무리라고 여겨져서 룸메이트와 함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자고 약속하고 지내고 있다. 곁에서 서로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며 같이 식사하고 산책하는 친구가 있어서 유학 생활이 견딜 만하지만 외롭고 힘든 때도 많다. 특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 공부하다가 나 스스로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까지 겹치게 되면, 그냥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먼 훗날 지금의 기숙사 생활을 그리워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년 8월 이후에는 단동의 내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시습재에서 지낼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 만큼 남은 시간 동안 논문을 잘 마무리하고 친구들과 아름다운 추억도 많이 쌓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