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연 사람들
"결국은 연구원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으로 어떤 부서의 어떤 직무라도 피하지 않고 부딪혔습니다" -강병수 실장-

입사일 / 퇴직일이 언제인가요?
저는 1983년 6월 20일 공채 1기로 연구원에 첫 발을 디뎠어요. 퇴직일은 지난 2016년 12월 31일 이구요. 저는 만 33년 6개월 동안 직장생활 전부를 연구원에서만 보냈네요.
입사하실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당시 연구원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연구원의 고풍스런 건물과 대중교통도 없는 산중의 자연 환경에 무게감과 함께 책임감도 막중하게 느꼈어요. 이러한 공공기관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떤 일도 가볍게 봐서는 안 되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했구요.
연구원 설립이 5년 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연구원이 차지하고 있는 권위는 국민들에게는 대단한 기대였어요. 그리고 학계에서도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당시 유수한 학자들이 연구원에 파견되어 많은 연구업적들을 내셨지요. 연구원 구성원들도 소속감과 자부심은 다른 기관들이 부러워할 정도였구요.
약 40여년이 되는 시간동안 기관 차원에서 많은 성과를 냈는데요, 그중 가장 큰 성과인 민족문화대백과 사전 발간에 참여하셨다구요?

교육부장관(당시 조완규)상을 받는 모습
네, 그렇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사업은 5천년 역사에서 문화 사업으로는 가장 큰 규모였고, 매우 성공적 업적이라 평가되고 있어요. 1980년부터 1991년까지 12년 동안 173억 원 정부예산이 투입되었는데요. 지금의 물가로 상정해보면 1천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사업에는 정부와 학계 및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공동으로 참여하였고 저는 그중 역사분야 조선분과 실무 담당자였어요. 매년 연말이 되면 원고를 수합하기 위해 전국 각 대학에 출장을 다녔고, 해당 분야 최고 학자들의 원고를 받아내기 위해 계속 사양하는 필자들에게 수없는 전화와 방문을 통해 옥고(玉稿)를 받아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항목들을 읽을때는 감회가 새롭더군요. 1992년에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완료에 참여한 실무자로서 교육부장관상(당시 조완규 장관)을 받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33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을 듯한데요, 그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1985년 백과사전 편찬 국제학술대회

1998년 한국학정보센터 업무추진 협의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편찬 완료할 시기에 컴퓨터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1997년에는 한국학정보센터를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연구원의 전산정보화에 앞장선 개척적인 일로 여기에도 함께 참여하였어요. 하이텔과 천리안을 통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일부 항목을 서비스하기도 했지요. 또 하나는 『한국민족문화대배과사전』 내용에 대비되면서 서로 보완관계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편찬사업을 추진시키는 실무진에 참여하여 이를 성사시키는 데 일조한 기쁨은 감출 수가 없었지요.

1988년도 사무실(서대문)에서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초본 완료 당시
업무에 있어 힘든 점이 있으셨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부 예산이라 당해 연도 예산 지출과 제한된 기간에 가나다순으로 권수에 맞춘 항목의 집필이 완료되어야 하므로 학교와 학문에 여념이 없는 학자들에게 수준 높은 원고를 받아 내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1년에 써야 할 예산을 쓰지 못할 경우 예산이 조정되었고, 어려운 원고를 기간 내 받아내야 하는 입장인 저희들로서는 학식이 높은 학자들이 시간을 쪼개어 원고를 쓰는 분들이라 그들의 처지도 충분히 헤아려야 되었기 때문이었어요.
퇴직 후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가요??
연구원 재직 시 장서각에 소장된 독립운동가 자료를 연구하는 5년 계획사업에 연구책임자로 참여하고 있구요. 시간 관계상 미뤄두었던 어학 공부도 하고 있고, 문화생활로 시문학반 활동으로 시도 쓰고 있으며, 동네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네요.

생전 서정주 시인의 생가에서 시문학반 문우들과

서정주 시인의 친필 사진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어려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생상담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또 현재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지만, 주민센터 등에서 역사 강좌도 만들어서 해 볼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원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한말 씀 해주신다면?
저는 재직 당시 연구원 구성원들 모두가 충분한 능력과 인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고 항상 존중하는 자세로 모든 이들을 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도 저를 존중해주면서 저의 일도 잘 도와주었지요. 그것이 저의 일의 성과로 나타나고, 결국은 연구원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으로 어떤 부서의 어떤 직무라도 피하지 않고 부딪혔습니다.
퇴직을 하고보니 밖에서 바라보는 연구원은 연구원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기관으로 보고 있고 그 기대도 무척 높습니다. 그만큼 본인의 맡은 자리에서 각자의 책임감을 가지고 옳은 것을 위한 희생도 요구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