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아름드리

한반도철도의 과거와 미래, 침략의 길에서 공생발전의 길로

한반도 철도의 정치경제학 책 표지

정태헌, <한반도철도의 정치경제학-일제의 침략통로에서 동북아공동체의 평화철도로>
(2017, 도서출판 선인)

한국학진흥사업단의 2011년도 한국학총서(모던코리아 학술총서) 사업에 선정된 <한국철도의 역사와 문화-침략의 길에서 공생발전의 길>(연구책임자: 고려대 정태헌 교수) 연구팀은 본 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3년간의 연구와 2년간의 정리, 저술 작업을 거쳐 <한국철도의 역사와 문화 총서>(역사지리, 정치, 사회, 문화, 경제)를 발간하였다. 정태헌 교수가 집필한 <한반도철도의 정치경제학-일제의 침략통로에서 동북아공동체의 평화철도로>(2017, 도서출판 선인)는 5권으로 이루어진 총서 중 하나이다. 필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한반도철도의 역사와 미래를 함축하는 개념으로 명명한 부제(‘침략의 길에서 공생발전의 길로’)로 담았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총아로서 무한한 진보를 상징한 철도는 구미인들에게 국민국가를 만드는 동맥혈관 역할을 한 근대문명의 전령사였다. 그러나 (반)식민지에서 철도는 국민경제 형성과 주체적 발전을 억압한 제국주의 침략의 첨단도구였다. 21세기 한반도철도의 역할은 무엇일까? 한반도철도 100여년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이 책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는 ‘철도주권’이다. 1899년 경인철도 부설로 시작된 한반도철도의 역사는 ‘수탈과 개발’의 식민지시기, 압축성장을 이룬 1970~80년대를 거쳐 KTX로 상징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굴곡의 과정을 겪어왔다. 한반도철도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선으로 출발했지만 동북아 공생발전선의 핵이 되어야 한다.

근대의 사전(encyclopedia)적 특징으로 근대(주권)국가, 자본주의, 국민주권 등을 거론한다. 근대 자본주의 경제의 세 주체(개인, 기업, 정부) 중 주권국가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국가는 거대한 시장을 조성하고 자국 기업을 위한 국내외정책을 시행하면서 자유무역정책 또는 그와 반대로 보호무역정책을 추진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세계사 차원’의 시대구분 개념으로 근대를 차용하지만, 이러한 근대 개념은 식민지에 적용될 수 없다. 한반도에서 (국가 없는)‘식민지자본주의’ 경제의 운영의 주체는 일본 정부, 조선총독부, 일본과 조선의 일본인자본가였다. 한반도는 식민지자본주의 ‘성장’의 결과 해방 후 최빈국 대열에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날에도 ‘철도의 날’로 기념하는 1899년 9월 18일, 한반도에서 최초로 경인철도가 개통되었다. 일본이 부설한 철도였다. 󰡔독립신문󰡕 기자의 눈에는 “나는 새도 미쳐 따르지 못”할 속도로 “대한사람의 눈을” 놀라게 한 경이로움에 갇혀, 인천항의 일본인들이 일장기(히노마루)를 내걸고 자축하는 상황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광수는 󰡔무정󰡕에서 증기기관차와 공장에서 나오는 “도회의 소리”, “문명의 소리”를 모르는 “흰옷 입은 사람들”을 질책했다. 반면에 미국에게 ‘개항’된 일본이 조선과 크게 달랐던 점은 철저한 철도주권 인식이었다.


경부철도 부설을 위해 미국에서 들여온 자재에 한 꽃씨가 섞여 들어와 철도 연선을 따라 엄청난 속도로 꽃이 퍼져나갔다. 민초들은 이 예쁜 꽃을 나라를 망하게 한 풀이라면서 망국초, 개망초, 왜풀이라고 불렀다. 왜 당시의 의병, 민초들이 일본이 부설한 철도에 적대적이었고 열차에 돌을 던졌을까를 되돌아봐야 한다.


일제가 부설권, 나아가서 소유권까지 장악한 한반도철도의 운영 주체는 일본정부와 그 하부기관인 통감부-조선총독부(때로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였다. 사상 초유의 대공사인 부설공사가 전국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한국인 철도자본이나 토목자본의 성장은 봉쇄되었다. 반대로 일본의 철도자본과 토목자본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해방 후 철도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조선인이 단순노무직에 집중된 철도종사원 고용구조는 고착되어 있었다.


일본육군의 주도로 설립된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는 한반도철도를 7년 8개월 간 위탁경영하기도 했다. 육군군벌의 영수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일본총리(1916.10~1918.9)로 재임할 때 조선-만주 철도의 통일적 운영을 명목으로 위탁경영을 결정(1917.7.31)했다. 3·1운동 후 해군 출신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1919년 8월,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직영 환원 주장이 거세졌다. 위탁경영이 한반도철도 정책을 불철저하게 하고 조선총독(부)의 ‘권위’를 훼손시킨다는 이유였다. 결국 육군의 반대 속에서 일본 정부는 직영 환원을 결정(1924.10.28)했다.

철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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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철도의 위탁경영과 직영 사이에 식민지성의 본질적 차이는 없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정책은 시기를 떠나 만주침략정책에 종속된 가운데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한반도철도를 조선총독부 직영으로 환원하고 함경도 지방 철도망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당시의 시기적 조건이나 국제환경에 비춰 그것이 만주침략정책에 효율적이고 이를 위해 한반도에 식민지자본주의 ‘개발-수탈’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한반도철도망은 일제의 의도대로 대륙침략의 통로로서 경부-경의 라인을 따라 만주-일본 연결을 최우선 목표로 한 종관노선이 뼈대가 되었다. 철도노선(驛) 역시 그 요구에 따라 군대(군수) 수송, 한반도의 농산물과 지하자원 반출에 편리하도록 일본-조선-만주를 빠르게 연결하면서 일본인들이 터전을 잡은 식민도시 중심으로 선정되었다. 한반도경제의 개발이나 산업연관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철도는 일단 부설되고 나면 경로의존성을 띠게 마련이어서 해방 후 철도정책 역시 경부라인을 축으로 이뤄졌다. 석탄, 시멘트 개발을 위한 산업철도 부설도 기존 노선을 횡단하여 연결하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경제의 지역 불균형 문제는 경부라인에 그 원인(遠因)이 소급된다. 해방 후 또 다른 종단노선(전라선)을 균형있게 사용하는 철도망은 구축되지 못했다.


전철화, 복선화, 고속철도 부설은 한국철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좁은 국토에 70년 이상 지속된 분단으로 ‘섬’에 갇힌 상황에서 벗어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국철도는 종관철도망을 장점으로 전환시켜 북한 철도를 통해 한반도를 관통(trans)하는 TKR(Trans Korea Railroad)로 전환되어 TSR(Trans Siberian Railroad), TCR(Trans China Railroad)을 통해 유럽으로 이어지는 대동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한반도철도망에 스며있는 침략과 전쟁의 역사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수단으로 전환될 때 한국철도는 역사의 대전환을 만드는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주변국 모두가 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실리적 이해관계가 서로 간에 두텁게 얽혀 있을 때 평화체제는 공고해진다. 한반도는 19세기 말~20세기를 지나는 긴 세월 동안 불행으로 점철되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21세기 인류가 지향해야 할 좌표를 만들어낼 수 있는 토양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철도야말로 그걸 만들어갈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소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