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의 향기

기록문화유산, 소통과 공감의 중심에 서다!

-온라인 소식지 100회를 기념하며-

강문종 사진
강문종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 책임연구원

옛사람들의 향기를 찾아 나서다!

2009년 1월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연구원)은 매월 온라인 소식지를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기록문화유산에 담긴 역사와 문화적 특징을 보다 쉽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어 모든 독자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 제공을 위하여 ‘옛사람의 향기’를 구성하였다. 이 코너를 통하여 그 동안 장서각에 소장된 국가왕실문헌과 민간사대부문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그 특징과 의미 그리고 가치들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연구자들은 비로소 한국인문정신문화의 정수가 담긴 장서각 소장 기록문화유산 속에서 옛사람들의 지적․문화적 향기를 찾아냈고, 그 향기는 온라인 소식지에 실려 수많은 독자들에게 퍼지기 시작하였다.

기록문화유산과 독자들의 가교 역할을 하다!

김학수 조교수(당시 장서각 국학자료조사실장)의 ‘내사본 서책의 이모저모’가 온라인 소식지 제2호(2009년 2월호) ‘옛사람의 향기’에 실리면서 그 출발을 알렸다. 이후 온라인 소식지 99호(2017년 4월)에 이욱 연구원의 ‘신주(神主)는 혼령일까? 몸일까?’에 이르기까지 24명의 연구자에 의해 총 95건의 원고가 독자들을 만났다. 국왕을 둘러싼 왕실의 이야기, 사대부들의 정신세계와 일상의 모습들, 여성들의 삶과 애환, 각 분야 전문가들의 활동, 민초들의 삶, 그림과 문학 속의 풍경과 일상들이 기록문헌을 벗어나 옛사람들의 향기로 다가왔다. 특히 이 코너를 통하여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들인 경우 신문의 기사로 재구성하기도 하고, 가공하여 방송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온라인 소식지 ‘옛사람들의 향기’는 한국학 분야 전문가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장서각 소장 기록문화유산의 내용과 의미 그리고 그 가치를 전달해 주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새로운 100회를 준비하며

우리는 늘 소통과 공감을 말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만의 언어로 벽을 만들고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노라고 강변한다. 물론 각 자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그리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유익한 지식을 모를까?! 왜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모를까?! 왜 이렇게 우수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배우려고 하지 않을까?! 차~암 문제야!”라고 한들 이러한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적 역량으로 재구성 혹은 재구조화를 통하여 새로운 인문적 지식을 만들고 일반적인 언어로 전달할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온라인 소식지 ‘옛사람의 향기’는 장서각 소장 기록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수많은 독자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채널이 될 것이다. 새로운 100회를 준비하면서 보다 다양한 주제를 개발하고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여 흥미롭고 유익한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일들을 꾸준하게 진행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의 문화적 역량을 높이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내부자들, 그 주역이 되다!

‘옛사람의 향기’ 95건의 원고를 집필한 24명의 연구자들은 모두 각 자의 위치에서 한국학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장서각 소장 기록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자신이 생산한 지적 콘텐츠를 환원시키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을 소개 하면 아래와 같다.

kmoon@aks.ac.kr

<지난 옛 사람의 향기>

※ 오랜 시간동안 이 코너를 만들어주신 필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호 2009년 2월 김학수 내사본 서책의 이모저모
3호 2009년 3월 박용만 영조와 숙빈최씨
4호 2009년 4월 윤진영 묵향에 담긴 기품과 절조
5호 2009년 5월 심영환 조선초기 원(元)나라 선우추(鮮于樞) 초서(草書)의 전래
6호 2009년 6월 정수환 형이 동생의 영전에 올린 祭文
7호 2009년 7월 정해은 잊혀진 조선의 단병무예를 찾아가는 길, 『어영청중순등록(御營廳中旬謄錄)』
8호 2009년 8월 김학수 옛 사람들의 중매담
10호 2009년 10월 없음 「列聖朝進講冊子次第」
11호 2009년 11월 윤진영 관반들의 동고동락(同苦同樂) ; 장서각 소장 관반제명첩(館伴題名帖)
12호 2009년 12월 심영환 조선초기 조맹부의 《진초천자문》
13호 2010년 2월 정해은 조선시대 국왕의 유모 봉보부인
14호 2010년 3월 김학수 옛 사람의 사제담(師弟談) -정경세와 소현세자-
15호 2010년 4월 박용만 수치를 씻어라
16호 2010년 5월 윤진영 신고식과 금오계첩(金吾契帖)
17호 2010년 6월 심영환 실물문서와 전사본의 차이
18호 2010년 7월 정수환 남자 종을 말 한 마리와 맞바꾸다
19호 2010년 8월 정해은 왕후와 왕세자빈이 종묘에 행차한 이유는?
20호 2010년 9월 김학수 어수지교(魚水之交) -인조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21호 2010년 10월 박용만 경술국치와 어느 한말 지식인의 삶
22호 2010년 11월 윤진영 아희도 속의 멋과 운치
23호 2010년 12월 심영환 문서의 발굴과 의의
24호 2011년 1월 정수환 종이 상전에게 자기 토지를 팔다
25호 2011년 2월 정해은 조선시대 궁중의 세시 풍속
26호 2011년 3월 김학수 옛 사람들의 동기의식 -방목(榜目)과 계회도(契會圖)-
27호 2011년 4월 박용만 살아서 남기는 기록
28호 2011년 5월 심영환 조선초 吉再의 추증과 <追贈牒>의 復元
29호 2011년 6월 정수환 한 번의 만남에서 평생의 벗으로  
30호 2011년 7월 정해은 아들 낳는 여성이 아름답다 !  
31호 2011년 8월 안장리 슬기로운 사람 영조
32호 2011년 9월 이동희 경연(經筵)과 서연(書筵)
33호 2011년 10월 김학수 시호(諡號) -역사를 두려워하는 마음-
34호 2011년 11월 박용만 영조의 딸 사랑
35호 2011년 12월 심영환 고문서의 복원과 이용
36호 2012년 1월 윤진영 어변성룡(魚變成龍)의 꿈
37호 2012년 2월 정수환 자신을 10냥에 파는 문서 -자매명문
38호 2012년 3월 정해은 조선시대 여성의 바깥나들이, 온천행
39호 2012년 4월 안장리 ‘  문종(文宗)’과 ‘문조(文祖)’를 그리며  
40호 2012년 5월 원창애 우복 정경세(鄭經世)의 자녀 교육
41호 2012년 6월 김학수 조선조 정치사의 흐름과 공신: ‘조선의 공신’특별전 개요
42호 2012년 7월 박용만 권좌에서 밀린 왕자, 월산대군의 처세와 한시
43호 2012년 8월 심영환 ‘勸農’이라는 兼職의 유래
44호 2012년 9월 윤진영 태평성대의 풍경
45호 2012년 10월 정수환 17세기 어느 서울 양반의 과거합격 기념 재산 물려주기
46호 2012년 11월 정해은 조선시대 말[馬]을 위한 수의학서, 『마경언해』
47호 2012년 12월 안장리 행실이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지만 죽어서의 이름[諡號]은 남에게서 얻어지는 것이다.
48호 2013년 1월 김창겸 ‘쇠대가리’,강수(强首)선생
49호 2013년 2월 안승준 역사속의 상생
50호 2013년 3월 김인회 불효녀 심청과 효녀 심청
51호 2013년 4월 하은미 세조는 부처가 되고자 했을까
52호 2013년 5월 이민주 조선의 패션리더 기생, ‘하후상박(下厚上薄)’형의 새로운 패션을 만들다
53호 2013년 6월 정은주 외교의 핵심은 事大나 特權이 아닌 愛民이다
54호 2013년 7월 이욱 종묘(宗廟)의 미학
55호 2013년 8월 김봉좌 운수 좋은 날 : 혼례 날받이
56호 2013년 9월 허원영 신(神)이 보살핀 문서, 제주도 호적중초(戶籍中草)
57호 2013년 10월 원창애 조선시대과거시험특혜–직부(直赴)
58호 2013년 11월 심영환 몽골시대 고려인 李達漢의 팍바(’Phags-pa, 八思巴) 문자 宣命
59호 2013년 12월 윤진영 <영조 어진(御眞)>을 보는 코드
60호 2014년 1월 정해은 여성의 머리꾸미기와 <가체신금사목>
61호 2014년 2월 김백희 윤리적 공동체와 <오륜가>
62호 2014년 3월 김나형 4책짜리 승정원일기의 향기
63호 2014년 4월 김덕수 조선의 문인, 명나라 사신과 필력을 겨루다
64호 2014년 5월 안장리 시대를 읽는 사람과 명분을 세운 사람
65호 2014년 6월 안승준 어느 할머니의 재산 상속 이야기 -시시왕래(時時往來)와 삭삭왕래(時時往來)
66호 2014년 7월 김봉좌 옛 한글로 쓴 조선 사대부가 여인의 한평생
67호 2014년 8월 이민주 조선여인의 피부손질, 한류의 원동력이 되다
68호 2014년 9월 이욱 신(神)이 좋아하는 음식, 인간(人間)이 좋아하는 음식.
69호 2014년 10월 정은주 박제가의 시화 속 ‘관수觀水’와 ‘어락魚樂’에 대한 단상
70호 2014년 11월 하은미 소박한 백자 접시 위에 놓여진 푸른 한 글자 ‘祭’
71호 2014년 12월 허원영 “임청각(臨淸閣)매매증서” - 400년 대종택을 팔아 독립자금을 대다.
72호 2015년 1월 원창애 영조의애틋한효심이담겨있는
73호 2015년 2월 심영환 649년간의 오해 – 기록의 진실 혹은 거짓
74호 2015년 3월 윤진영 창덕궁 태봉도의 비밀
75호 2015년 4월 정수환 예나 지금이나 고달픈 ‘내 집 마련’
76호 2015년 5월 정해은 조선 태종비 원경왕후의 성공과 좌절,
77호 2015년 6월 김백희 그림으로 공부하는 성리학적 인간의 본질
78호 2015년 7월 김덕수 제주 여인, 만덕의 나눔 실천
79호 2015년 8월 백영빈 조선시대의 엄친아
80호 2015년 9월 안장리 문종(文宗)과 시권
81호 2015년 10월 안승준 조선의 상업문서와 민생
82호 2015년 11월 김봉좌 왕실 발기로 보는 조선 왕실의 혼례 문화
83호 2015년 12월 이민주 저고리 본에 새겨진 새 신부의 소망
84호 2016년 1월 이욱 새해사직단에서한해의농사를빌다.
85호 2016년 2월 정은주 2016년 붉은 원숭이해를 맞이하며
86호 2016년 3월 하은미 조선시대 사람들도 홍동백서를 검색했을까
87호 2016년 4월 허원영 한산이씨 수당고택, 「조선사연구초」확의 「悼申丹齋」
88호 2016년 5월 원창애 의열(義烈)이란시호를받은영빈이씨
89호 2016년 6월 심영환 朝鮮 最古의 임명문서-도응왕지
90호 2016년 7월 윤진영 세자의 낙서
91호 2016년 8월 정수환 조선 의리의 상징 오달제
92호 2016년 9월 강문종 「기각한필(綺閣閒筆)」, 여성의 주체적 내면 그 징후를 엿보다!
93호 2016년 10월 박성호 고문서, 20년 만의 고향 방문
94호 2016년 11월 노인환 장서각에온공신교서,1613년성시헌익사공신교서
95호 2016년 12월 강문종 국가가 나선 노총각, 노처녀 결혼 이야기
96호 2017년 1월 노인환 과거 합격 60주년 기념행사, 회방(回榜)
97호 2017년 2월 박성호 보길도에서 만난 고산의 발자취와 세전(世傳) 고문헌
98호 2017년 3월 강문종 <가심쌍완기봉>이 들려주는 파격적인 이야기!
99호 2017년 4월 이욱 신주(神主)는혼령의집일까?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