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금선각(金仙覺)>과 <장풍운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때가……?!

강문종 사진

강문종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 책임연구원

2004년 강문종과 김준형에 의하여 1782년 신경원(申景源)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선각(金仙覺)>이 학계에 소개되면서, 그 동안 18세기 후반 즈음에 창작된 것으로 알려진 한글소설 <장풍운전>의 연구지평을 넓히게 되었다. 학회 소개 이후 두 연구자는 각 자의 분야에서 이 작품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였다. 초기 연구에서 강문종은 이 두 작품을 이본관계로 설정하고 <장풍운전>을 <금선각>의 한 계열로 규정하고, 김준형은 <장풍운전>을 <금선각>의 영향 하에 새롭게 창작된 작품으로 규정하였다. 그 동안 두 연구자 간에 공통점은 <금선각>이 <장풍운전>에 선행한다는 지적이었다.1)

특정 이본에 실려 있는 발문과 저자로 추정되는 신경원의 생몰연도, 그리고 오다 이쿠고로[小田幾五郞]가 1794년에 지은 『상서기문』의 기록을 통해 볼 때 <장풍운전>이 <금선각>에 선행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 작품에 대한 연구는 한 편의 소설에 대한 연구의 의미를 넘어 초기 영웅소설의 모습과 영웅소설 형성 동인을 추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데 그 연구사적 의미가 있다. 따라서 13년 동안 이 작품에 대하여 끊임없이 제기해온 몇 가지 문제를 보다 심도 있게 논의하여 학계에서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 판단된다.


첫째, 창작시기를 1782년으로 확정할 필요가 있다.

김준형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이본에 저자로 기록된 신경원[陰城進士申公景源著]을 이 작품의 저자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작시기를 1722년 혹은 1782년으로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신경원이라면 그가 태어난 해인 1722년을 창작시기로 규정하거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저자가 신경원이라는 전제로 이 작품은 1782년 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둘째, 두 작품의 선후문제다.

拾取恒茶飯文字 輯成古談一部

이는 <금선각> 이본 중에 유재영본에 실려 있는 발문 중에 일부다. 위의 예문을 ‘주변에 흔히 있는 이야기들을 주워 모아 고담(소설) 한 편을 지었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따라서 <금선각>은 1782년 당시 유행하던 이야기들을 모아 지었음을 말해주고 있다.2) 이 발문과 함께 주목할 만한 자료는 오다 이쿠고로[小田幾五郞]가 1794년에 지은 『상서기문(象胥記聞)』이다. 이 자료에 <장풍운전>이 등장하는데, 오다 이쿠고로는 1765년 초량 왜관으로 와서 조선생활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그는 1767년부터 1794년 사이에 <장풍운전>을 접하였다. 이는 <금선각>이 지어진 1782년 이전에 이미 <장풍운전>이 유행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즉, 1782년은 <금선각>이 지어진 해이고, 1767년부터 1794년 사이에는 <장풍운전>이 조선어를 하는 외국인에게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었다. 두 작품의 구조가 동일하고 내용 역시 주인공의 이름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유재영본에 실려 있는 발문의 내용과 『상서기문』이라는 자료에 근거하여 판단해 보면,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장풍운전> 등의 이야기를 모아 <금선각>을 지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 추론으로 판단된다. 즉, <장풍운전>이 <금선각>에 선행했을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3)


셋째, <금선각>과 <장풍운전>의 관계를 이본으로 보느냐 아니면 어느 한 작품의 영향을 다른 작품이 창작된 즉, 이본을 넘어선 전혀 별개의 작품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다.

<그림 1>: 강문종 소장 A본 표지 뒷면. <금선각>, <장두영전>, <풍운>, <금선각전> 등의 제명이 모두 등장한다. 특히 ‘張斗英傳風雲’이라는 문구가 2회 등장한다. 즉 두 작품이 이본일 가능성을 확인해 준다.
<그림 2>: 강문종 소장 D본.

김준형은 <금선각>의 구조와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핵심적인 내용의 배분까지 동일하게 설정하였고, 삽입 문예문을 축약 혹은 생략하여 줄거리화 시킨 후 주인공의 이름이 장두영에서 장풍운으로 바꿔 이루어진 작품을 <장풍운전>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본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라는 문제는 남아 있지만, 이 정도라면 두 작품을 이본으로 보는 것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특히 <그림 1>에 보면 다양한 <금선각>의 제명(題名)과 함께 ‘장두영전 풍운(張斗英傳風雲)’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장두영’은 <금선각>의 주인공 이름이고 ‘장풍운’은 <장풍운전(張風雲傳)>의 주인공 이름이다. 특히 <금선각>의 이본 중에 <장두영전(張斗英傳)>이라는 제명(題名)의 한문본 이본이 있기 때문에 이 문구는 <장두영전>과 <장풍운전>을 같이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두 작품의 관계를 이본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위에서 제기한 세 가지 문제의식은 초기 영웅소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영웅소설 형성의 동인을 검토할 수 있는 <장풍운전>과 <금선각>의 새로운 관계 설정 역시 우리 고전소설 연구사에 시도해 볼 만한 작업이며, 그 가치와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1) 필자는 이후 이러한 주장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하여 2005년 이후 이 작품에 대한 연구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2) 물론 그 목적은 아들이 한문 문장 공부를 위한 것임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2>의 필사기의 내용에서도 잘 나타난다.
3) 특히 <장풍운전>이 <금선각>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전제 역시 가능하며, <장풍운전> 이본 중에 김동욱 소장 42장본의 필사기 “하 긔하고 드문 일린고로 이 ᄎᆡᆨ을 등셔하이 부ᄃᆡ 효측하여 이 일을 본바들지녀다 이 책 번역하기 공부 즉지 아니 부ᄃᆡ 유실치 말고 잘 간슈하압”의 근거를 통하여 한문본 <장풍운전> 존재 가능성 역시 함께 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