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향기

식목일(植木日)과 친경례(親耕禮)

이 욱 사진
이 욱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 연구원

봄날의 4월에 빨간색 공휴일 하나 없는 게 아쉽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게 식목일이다. 4월 5일이면 나무를 심기 위해 분주하였던 때가 있었다. 1949년에 공휴일로 제정된 식목일은 1960년에 잠시 제외된 적도 있었지만 2005년까지 이어졌다. 이 날이면 관공서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산과 들로 나아가 나무를 심었다. 4월 5일에 한 그루의 나무도 제대로 심은 적이 없는 나이기에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어도 이의를 제기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봄바람이 살갗을 스칠 때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분주한 그때가 그립다.


조선시대 이맘때면 중요한 행사가 친경례(親耕禮)였다. 식목일이 4월 5일로 정해진 것도 이 친경례와 관련되었다. 1493년(성종 24) 3월 10일(음력)에 성종이 선농단에 나아가 제사지내고 몸소 쟁기질[親耕]을 하였는데 그 날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이었다. 친경례는 『예기』 「월령(月令)」에 나온다. 매년 정월에 좋은 날을 택하여 천자가 신하들을 거느리고 몸소 밭갈이를 하고 이를 끝내면 모두 모여 노주(勞酒)를 마셨다. 한대(漢代) 문제(文帝) 때부터 친경례 때 선농(先農)에게 제사하였는데 이후 선농제는 친경례와 무관하게 매년 거행되었다.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선농단이나 선농제는 모두 이와 연관된 것이다.

친경의궤 사진

<그림> <<친경의궤>>(장서각 소장, 1767년(영조 43)에 영조가 거행하였던 친경례(親耕禮)를 기념하여 기록한 의궤)

『예기』에는 친경을 정월에 거행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규정을 쫓아 고려시대에는 정월에 선농제를 지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월은 농사일을 시작하기에 이른 시기였다. 아직 땅이 다 녹지 않아서 쟁기질을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그 날짜를 경칩(驚蟄) 후 첫 ‘해일(亥日)’로 변경하였는데 한식이나 청명 때였다. 농업사회였던 조선시대 친경례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친경례는 생각보다 많이 거행되지 않았다. 매년 선농제는 거행하였지만 국왕의 친경례는 태조부터 순종 때까지 16회에 그쳤다. 왜 그랬을까?


이는 흥겨운 축제와 척박한 현실의 상충 때문이었다. 친경례는 농사일을 권면하는 의식이고, 봄의 축제였다. 친경례는 궁궐 속에 있던 왕을 나오게 한다. 궁궐에서 선농단까지의 문, 도로, 교량 등은 색종이와 색천으로 꾸며지고, 화려한 의장과 가마가 그 길을 통과한다. 그 앞에 가면을 쓴 처용이나 재인(才人)들이 먼저 지나가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환궁할 때면 기로(耆老), 유생(儒生), 기녀(妓女)들이 길에 나와 왕에게 가요를 바치며 그 업적을 칭송하였다. 이 모든 것이 당시에 큰 볼거리였다. 사람들을 이를 ‘관광(觀光)’하기 위해 전날부터 천막을 치고, 먹을거리를 장만하였다. 양반이나 천민이나 모두 구경하러 거리로 나왔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친경례를 ‘태평성대’의 표상이라고 하였다.

성종대 이후 여러 왕들이 친경례를 거행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재난이 이어지면서 농사 걱정이 심해지고 풍년에 대한 바램도 간절해졌다. 왕은 친경례로써 백성을 권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친경례에 딸린 축제적인 행사들이 재난의 상황에 맞지 않다며 그 실행은 유보되었다. 친경례보다 실질적인 정책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앞섰다. 임란과 호란의 위기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17세기 조선은 기근과 전염병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태평성대의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광해군 이후 100여 년이 지난 1739년에 영조가 마침내 친경례를 거행하였다. 이때에도 흉년으로 허덕이든 시기였기에 친경례를 거행하였지만 나례, 결채, 가요 등은 모두 제거하였다. 친경례의 원래 목적인 권면(勸勉)과 중농(重農)의 정신을 살리려 하였다. 이후 영조는 세 번의 친경례를 더 거행하였다. 농사일보다 그 행사에 즐거워했던 사람 역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말이 전도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우리는 축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축제가 경제의 동력이 될 만큼 중시되었다. 축제가 없는 삶이란 안쓰럽지만 현실과 유린된 축제도 원치 않는다. 내일의 희망과 노동의 건강함으로 가꾸는 귀한 축제의 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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