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우리 집안 조상님인가? 우리 국민의 조상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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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진
기획처 혁신홍보팀장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인전기를 초등학생 때부터 많이 읽는다. 이런 교육 덕분에 나라를 빛낸 훌륭한 사람들은 그 성씨가 어떻든 국민 모두의 조상으로 존경을 받고 자랑스러워하게 된다. 이쯤 되면 이 위인들에게 성씨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문 존숭 의식이 강해서인지 위인을 통해서 국가보다 자신의 가문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한 경우도 많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거창신씨는 그동안 ‘신(愼)’으로 성씨를 표기해 왔다. 그러던 것이 최근 거창신씨 일부 종원들이 ‘신(慎)’으로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표기하는 것을 넘어 호적이나 주민등록 등본까지도 慎으로 바꾸는 경우가 생겨났다. 정부에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기 시작하면서 호적의 성씨 표기 변경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성씨의 글자를 바꾸게 된 이유는 옛 전통을 따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즉, 문헌에 慎으로 쓰여 있지만, 컴퓨터에 慎자 폰트가 없어서 정자인 愼으로 표기하다가 이제 표기할 수 있게 되자 옛 전통에 따라 慎으로 표기하는 것이며 이것이 옳다는 것이다. 사실 『문과방목』 등 인명이 집중적으로 표기된 옛 문헌에는 慎으로 표기된 것들이 많다. 하지만 愼으로 표기된 것도 많이 있을 정도로 혼재되어 있다.


<같은 사람의 성씨를 문헌에 따라 편의상 愼 또는 慎으로 표기한 사례>

좌: 국조방목[장서각 K2-3538] 우: 국조방목[奎11655]

좌: 국조방목[장서각 K2-3538] 우: 국조방목[奎11655]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임진왜란을 극복한 경험과 교훈을 전하기 위해 『징비록(懲毖錄)』을 지은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성룡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그런데 풍산유씨 후손들은 얼마 전부터 ‘유’를 ‘류’로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두음법칙 등의 사유로 ‘유’로 많이 읽고 써 왔지만, 이제는 옛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배우 류시원도 그 후손이다.


문제는 그 후의 사태이다. 거창신씨와 풍산유씨 후손들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인물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의 성씨 표기를 ‘慎’이나 ‘류’로 바꾸라고 민원을 넣기도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대부분의 국민은 수십년 동안 ‘유성룡’으로 교육받아 왔고 이미 뇌리에 완전히 각인되었다.


자신들이 자기 방식대로 읽고 쓰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변경하여 사용하는 성씨 표기를 자신들의 사례를 따라 사회 전체도 바꿔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상상해 보자. 현실을 무시하고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원하는 바로 바꾸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의 조상과 현재의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성향이 매우 강한 것 같다. 그런데 누구나 존경하는 국가적 인물이 된 위인들은 이미 한 가문의 소유가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소유하는 국가적 유산이기도 하다. 자신의 조상들을 드높이는 최고의 방법은 자신들만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소유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 아닐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uridul@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