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리는 기록유산

함양박씨 전적류의 보존처리

지주연 사진
지주연
장서각 자료보존관리팀 부전문위원

예천 함양박씨 미산고택은 9종 54점의 전적을 2017년 본원에 기탁하였다. 함양박씨 전적류는 4대에 걸쳐 작성된 가문의 기록으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당대 농촌생활사와 역사적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보물 제1008호로 지정되었다.

국가지정문화재의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청을 통해 ‘국가지정 동산문화재 정기조사’가 이루어지는데 함양박씨 전적류의 조사 결과 보존처리 필요 대상 유물로 선정되었다. 물론 조사자의 입장에 따라 유물의 보존상태나 손상의 정도는 다르게 판단될 수 있지만, 함양박씨 전적류의 경우 장정상태가 양호하지 못해 결손의 우려가 보이는 상태였다.

따라서 본원에서 정밀 상태조사를 통해 손상상태가 열악한 나암수록羅巖隨錄(4점), 당조책림唐朝策林(1점), 저상일월渚上日月(20점), 저상일용渚上日用(16점) 4건 (총 41점)에 대하여 ‘2017 장서각 소장 중요문화재 보존처리 사업’을 계획하였다. 이에 앞서 소장자의 보존처리 동의를 득한 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 심사를 거쳐 보존처리사업을 진행하였다.


<함양박씨 전적류 상태조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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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류의 보존처리는 정밀 상태조사, 촬영, 해체, 클리닝, 구배접지 제거, 결실부 메움, 건조, 평판, 장정의 과정으로 실시되었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총 3차례의 자문회의가 이루어졌다. 문화재보존학, 서지학, 역사학 등 다방면의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였다. 자문 대상이 총 41점으로 다양한 안건과 긴 토론으로 강도 높은 자문회의가 진행되었다. 특히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안건은 보존처리 후 전적의 형태와 장정 방법이었다.


저상일월과 저상일용의 경우 크기가 전혀 다른 서적이나 책지를 모아 1점의 책으로 묶은 형태가 있었다. 크기 차이에 따라 표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외부에 노출되어 오염되고 두께 차이에 따라 꺾임, 말리는 손상 양상이 보였다.

[사진 1] 저상일월(4-11)(좌), 저상일용(5-16)(우): 크기가 다른 서적의 일괄 제책 형태

[사진 1] 저상일월(4-11)(좌), 저상일용(5-16)(우): 크기가 다른 서적의 일괄 제책 형태

1차 자문회의에서는 이와 같은 형태의 경우 향후 보존·관리를 위해 본래 장정형태는 기록으로 남겨두고 크기별로 각기 분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2차 자문회의에서 전적의 내용을 확인하고 검토한 결과 묶어 놓은 형태 자체가 소장 가문에서 기록의 연대에 따라 수집하고 구분하여 묶어 놓은 ‘목적’에 의한 행위임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유물이 가지는 역사적 흔적과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분리하지 않고 처리 후 기존 형태로 장정하기로 하였다.

또한, 저상일월의 경우 다른 종이를 재사용하여 기록한 사례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책지의 판심부를 갈라 뒷면에도 기록을 남긴 형태, 피봉을 펼쳐 앞뒤로 기록한 후 첩 형태로 접은 채 묶어 내부 기록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등 일관되지 않은 장정 형식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런 경우 기록이 노출될 수 있도록 판심을 연결하지 않고 각각 낱장으로 보존처리 하였으며 피봉의 경우 길게 펼쳐 마지막 부분만 제책하고 접어 넣어 내부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도록 위치를 조정하였다.

[사진 2] 저상일월(4-2), 책지에 앞뒤로 기록된 사례

[사진 2] 저상일월(4-2), 책지에 앞뒤로 기록된 사례

[사진 3] 저상일월(5-5), 피봉을 펼쳐 기록한 사례

[사진 3] 저상일월(5-5), 피봉을 펼쳐 기록한 사례

마지막 안건으로 저상일월의 가표지 부착 여부가 논의 대상이었다. 대부분 서적은 80년대 전수리에 의해 앞뒤로 펄프지인 가표지가 부착되어 있어 유물의 본래 형태를 확인하기 어렵고, 차후 가표지의 열화 또한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유물 원형을 되살려주기 위해 가표지를 제거하고 본래 표지를 노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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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저상일월(4-4): 가표지 부착 형태

보존처리가 완료된 함양박씨 전적류는 개별 중성폴더로 감싼 후 오동나무 상자에 분류하여 보관하였으며 처리 과정에서 제거된 구배접지, 가표지 등은 모두 기록한 후 보관하였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확인된 다양한 사례들은 사진 촬영을 통해 연구 자료로 이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함양박씨 전적류 보존처리 전·후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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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박씨 전적류는 본원에서 ‘예천 맛질 朴氏家 日記’라는 8권의 연구 서적이 발간된 만큼 당대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소장자료이다. 이러한 연구 자료를 토대로 유물의 고유한 특성과 실체에 대한 다각도의 고민이 이루어질 때 최적의 보존처리 방향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장서각은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장서각 자료의 이해를 바탕으로 보존처리 담당자와 인문학 연구자가 함께 논의하여 유물 각각에 대한 합리적 보존 방향을 설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장서각 소장된 기록유산의 가치를 향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