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의 향기

보길도에서 만난 고산의 발자취와 세전(世傳) 고문헌

박성호 사진
박성호
장서각 고문서연구실 선임연구원

지난 11월이었다. 해남윤씨 고문서 자료를 번역하는 연구팀에서 자료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하여 전남 해남군 연동의 녹우당과 완도군 보길도를 찾았다.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종가로서 고려 말부터 수 천 점의 고문헌이 전래된 한국 고문헌의 보고이다. 이 집안의 고문서들은 이미 1980년대 초반에 우리 연구원에서 조사를 하였고, 그 결과물은 『고문서집성』3집으로 출간되었다.

녹우당의 윤형식 종손은 오랜만에 찾아온 우리 연구진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고, 녹우당에 전래된 방대한 양의 고문서들이 드디어 번역된다는 소식에 더욱 기뻐하였다. 노종손의 관심은 이제 녹우당의 미래로 옮겨가 있었다. 최근 녹우당 고택 인근에 숙박시설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대한 깊은 우려, 고문헌과 서화 등 수백 년을 이어 전래된 집안의 보배들을 어떻게 더 잘 전승시킬까 하는 고민 등이었다.

이번 답사에서는 녹우당 외에도 보길도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는 말에 종손은 미리 보길도의 종친에게 연락을 해주었다. 답사팀은 이튿날 아침 해남 땅끝선착장에서 보길도행 배에 올라 출항한지 30여분 만에 노화도의 산양진항에 도착했다. 2008년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가 개통된 덕분에 해남 쪽에서 보길도로의 접근이 한결 편해졌다고 한다.

보길도에서 우리를 맞아준 분은 윤창하 선생이었다. 고산의 후손으로서 보길도에서 태어나서 한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분이다. 생업이 별도로 있지만, 외지에서 찾아오는 답사객들을 위해 틈틈이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한지도 30년이 넘는다고 하였다. 윤창하 선생의 안내로 보길도에 남아있는 세연정, 동천석실, 낙서재, 곡수당 등을 둘러보았다. 인적이 드물었던 이 섬에 고산 선생이 들어와 조성해 놓은 자취들은 하나같이 자연 속에 조화롭게 자리한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이번 보길도 답사에서는 애초 생각지 못한 성과가 있었다. 보길도에 전래되어 온 해남윤씨가의 소중한 고문헌을 접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연동의 녹우당에 전래된 고문서 가운데 보길도와 관계된 몇몇 자료만 알려졌을 뿐 보길도에서 대대로 전래된 고문헌이 알려진 적은 없었다.

윤두서의 인장이 찍혀 있는《해남윤씨족보》

‘윤두서인(尹斗緖印)’

윤창하 선생이 직접 소개해 준 자료 가운데는 《해남윤씨족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족보는 1702년(숙종 28)에 인쇄된 초간보였고, 고산의 증손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다. 고산 선생은 생의 말년을 보길도에서 보냈고, 그의 사후에도 자손들이 보길도에서 고산의 유업을 이어왔다. 공재의 인장이 찍힌 이 족보는 고산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진 보길도 해남윤씨들의 뿌리를 보여주는 보배였을 것이다.

《고산유고》, 필사본

보길도 부용동의 윤종철이 올린 소지

이 외에도 고산이 지은 ‘산중신곡(山中新曲)’을 정성스레 필사해 놓은 자료, 보길도 내에서의 묘지 분쟁 때문에 해남윤씨 집안에서 사또께 올린 소지(所志) 등도 남아 있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마주한 이 고문헌들은 이후 장서각으로 옮겨와서 기초적인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올 봄 장서각에서는 다시 한번 보길도를 찾아갈 계획이다. 보길도에서 또 어떤 자료를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한껏 기대에 부풀어 본다.

travis20195@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