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입수 경위로 본 ‘장서각도서’의 구성과 의미

이재준
장서각 자료보존관리팀 선임사서원

한일병탄 직후인 1911년에 공식 설립된 장서각(이왕직장서각)은 무주사고 소장 도서를 기반으로 궐내 전각과 정부 각사에 흩어져 있던 도서들을 수집ㆍ관리하며 왕실도서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왕실도서 일변도의 장서 구성은 문화재관리국 장서각사무소의 소장도서 8만 여점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이관되던 1981년까지 유지되었다. 장서각이 <정문연>으로 이관된 후 장서 구성의 다양화를 위해 80년대부터 고전적 구입 사업을 시작하였고 90년대 들어서는 고전적 기탁 사업을 발족하여 현재까지 약 10만 여점의 고전적 수집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장서각도서’는 기존의 왕실도서 뿐만 아니라 구입도서 및 기탁도서 그룹이 새롭게 편입되어 출처와 이력이 다양한 도서들이 공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장서각도서’의 장점인 다양성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어 이른바 ‘장서각도서’의 구성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성이 생겼다.

구입도서, 기탁도서, 왕실도서 협의의 ‘장서각도서’는 장서각을 근대식 도서관의 명칭으로 처음 사용했던 ‘이왕직장서각’ 소장본으로 한정하여 한일병탄 전후로 수집된 제실도서와 사고도서 정도만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이왕직장서각>부터 <창경궁장서각>을 거치는 1970년대까지 장서각의 이름하에 순차적으로 수집된 모든 도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흔히 ‘장서각도서’와 ‘왕실도서’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장서각 설립 초기의 개념이다. ‘장서각도서’는 물리적 보관처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고 ‘왕실도서’는 주제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다른 뜻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는 ‘장서각도서’의 의미는 한순간 수집된 후 일체의 변동 없이 고착화된 정적인 컬렉션이 아니라 <이왕직장서각>,<창경궁장서각>,<정문연장서각>,<한중연장서각>으로 변천하는 100년 동안 수집과 축적의 과정을 거듭하며 성장해 온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컬렉션이라 할 수 있다. 향후 기존 그룹과 차별화된 컬렉션이 새롭게 추가되면 장서각의 외연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따라서 ‘장서각도서’=‘왕실도서’로 보는 초기 개념은 현재와 맞지 않으며 ‘장서각도서’는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도서’의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장서각도서’를 ‘왕실도서’로만 인식하고 세 그룹의 도서를 과도하게 구분하는 사례도 많은데 이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도 적지 않다. 학술적 목적으로 명확히 구분ㆍ기술하는 것은 사실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겠지만 대외적 관심이 낮은 일반 사안까지도 지나치게 구분함으로써 불필요한 일을 추가로 발생시키는 빌미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구입도서, 기탁도서, 왕실도서가 서로 비교 우위에 있다는 논리로 각자의 우월성만을 부각시키며 부자연스러운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기탁도서는 ‘본원자산’이 아니라는 인식하에 보존처리 및 복본제작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볼 때 과도한 구분을 통해 얻는 장점은 별로 없어 보인다. ‘장서각’이란 명사를 좁은 의미로 한정하고 그에 매몰된 해석만 고집하는 것은 ‘장서각도서’의 가치와 잠재력을 축소하는 비생산적인 일이다.

「입학도설」 보물 제1136호
<구입도서>

「통감속편」 국보 제283호
<기탁도서>

「동의보감」 국보 제319-2호
<왕실도서>

구입도서, 기탁도서, 왕실도서는 출처에 따른 개성이 명확하고 그룹별 소종래가 독특하여 상충의 여지가 적다. 문헌의 평가 척도로 사용되는 가치와 연한을 통해 비교해 봐도 세 그룹의 도서들은 매우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가 통치 관계 사료와 민간 생활 관계 사료가 적절히 혼합되고 절충되어 서로의 가치를 높이는 발전적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차별적 구분은 지양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통합적 개발 논리를 확립하는 것이 ‘장서각도서’의 가치를 높이는 가장 합리적이고 무난한 방법이 될 것이다.

librarian@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