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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시대 조선인들의 ‘내지시찰(內地視察)’:  
한-일 문화교류의 새로운 해석을 위하여
김순주 (연구정책실 선임연구원) 시모노세키(下關)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조선과 일본을 활발히 매개한 항구이다. 개항 직후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修信使)나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은 시모노세키에 첫발을 내디디며 시가의 활력, 물산의 풍부함, 거기에다 울창한 산림에 감탄을 표한 바 있다. 그런데 필자가 시모노세키를 찾아간 몇 년 전, 그 과거의 영광이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근 상가는 한적했고, 드문드문 얼굴을 내민 상점 주인들은 맥 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자료에서 읽던 그 시모노세키란 말인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하고 한반도를 넘어 대륙에 대한 제국주의적 야심을 불태우던 그때의 시모노세키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시모노세키는 일본이 한반도와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였다. 1905년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이어주는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이 첫 취항을 한 이래, 이 페리(ferry)에 승선한 조선인 여객 수는 매년 증가하여 1925년에는 무려 24만 3천 명에 이르렀다. 근대기에 들어와 관부연락선을 통해 본격화된 한국과 일본 간의 이동과 교류에서 필자가 주목해 보고 싶은 대상은 여행, 그중에서도 조선인들의 내지시찰(內地視察)이다. 근대기에 널리 사용된 시찰이란 표현은 순시관찰(巡視觀察)에서 파생되었다. 그것은 ‘두루 다니면서 주의 깊게 관찰하는 행동, 사회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치 지향적 활동, 낭만적인 여행 때 사물을 보는 시선과는 상이한 시선을 내포하는 여행’으로 개념화할 수 있다. 시찰은 여가 위주의 여행과 다른 목적을 지향하는 측정하고 판단하며 분석하는 시선을 내포한 성격의 여행이라 할 수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이하 ‘동척’)가 1910년부터 1914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조선인을 대상으로 조직한 내지시찰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식산흥업을 모토로 한 동척의 시찰은 식민 본국의 내무성과 농상무성에서 시찰지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시찰지로 일반 관광객이 찾지 않는 ‘무라(村)’, 개인의 농원, 심지어 ‘부라쿠(部落)’와 같은 산간벽지가 식민지 시찰자들을 위해 특별히 개방되었다. 이곳들은 메이지기 근대적 개혁 속에서 자력갱생에 성공하여 일본에서 전국적으로도 명성이 드높은 모범촌이었다. 농촌 생활현장 외에도 메이지기 이후 새로 건설된 산업현장이 시찰 대상에 여럿 포함되었다. 이런 시찰지는 모범촌에 엿보이는 정신적 가치의 도도함이나 실용성, 공동체성과는 사뭇 다른 거대하고 격렬하며 경이롭기까지 한 산업적, 군사적, 제국적 위용을 내뿜고 있었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시찰은 정책적으로 보급되었다. 현대의 선행연구는 조선인들에게 보급된 내지시찰을 동화정책(同化政策)의 일환으로 간주하여 시찰 후 조선인들이 ‘동화(同化)’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시선의 주체성을 내포한 시찰의 개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판단은 개념적,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면이 있다. 단적으로, 조선인들이 주체적으로 ‘시찰자의 시선’을 가지는 것은 가능했는가? 식민 본국은 어떠한 이유에서 식민지민에게 본국을 시찰하도록 했는가? 서구의 관광연구에서 게스트(guest)는 관광객이자 서구인이며, 호스트(host)는 관광의 대상이 되는 현지사회로 주로 구 식민지 사회이다. 게스트는 보는 주체가 되고, 호스트는 보여지는 객체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시선(gaze)을 둘러싼 쟁점들은 항상 게스트의 시선, 즉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관광객의 시선(tourist gaze)’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일제 식민지시대 조선인들의 내지시찰은 이와 맥락을 달리한다. 호스트는 시찰을 주최하는 식민 본국 사회이며, 식민지민은 방문하는 게스트일 뿐이다. 식민지민에게 식민 본국을 시찰하도록 한 것은 이들에게 ‘시찰자의 시선’을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조선인들의 내지시찰에서 보는 주체로서의 게스트, 즉 시찰자의 시선은 조선인에게 귀속되지 않고, 거꾸로 보여지는 객체인 식민 본국에 귀속되어 있었다. 식민 본국은 내지시찰에 나선 조선인들에게 보여지는 객체인 동시에 실은 조선인들로 하여금 본국의 발전상을 보게 만드는 진정한 주체였다. 바로 여기에서 보여지면서 동시에 보여주는 ‘호스트의 시선(host gaze)’이 성립한다. 내지시찰은 조선인에 대한 동화(정책)가 작동한 일방적 장이 아니다. 오히려 식민 본국이 식민지 손님에 대해 주인 의식을 갖고자 기획한 식민 본국의 자기인식 형성에 더욱 의미심장한 장이었다. 몇 년 전 필자는 쇠락한 시모노세키를 게스트의 시선으로 관광하면서 필자와는 다른 시선으로 내지시찰에 임해야 했던 일제 식민지시대 조선인들의 착잡한 심경을 생각해 보았다. 1) 洪淵津(2006), 「釜關連絡船 始末과 釜山府 日本人 人口變動」, 『한일민족문제연구』11: 141-175, 156-157쪽.
2) 박성용(2010), 「일제시대 한국인의 일본여행에 비친 일본-시찰단의 근대 공간성과 타자성 인식-」, 『대구사학』99: 31-54, 37쪽.
3) Smith, Valene L.(1989), Hosts and Guests, 2nd ed.,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4) Urry, John and Jonas Larsen(2011[1990]), The Tourist Gaze 3.0, LA: Sage.
5) 이 글은 『동아시아 관광의 상호시선』(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6.10) 중 필자가 쓴 제2장의 일부 내용을 발췌, 축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