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플랫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들의 가치, 그리고 미래
  1980년대,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우리 민족의 소중한 구비문학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전국 60여 개 시군에서 4,000명이 넘는 구술·구연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었고, 그 결과 설화·민요·무가 등을 집대성한 한국구비문학대계(85권)을 출간했다. 이 방대한 작업은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사라져가던 우리 민족의 이야기와 노래, 그리고 삶의 지혜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국구비문학대계는 문학 작품을 넘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얼을 담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0년대, 도시화와 현대화가 가속화되면서 구비문학의 전승 현장이 급격히 해체되는 위기가 찾아왔다. 이야기꾼과 노래꾼이 사라지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야기판과 노래판·굿판 등도 점차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한국구비문학대계 개정·증보 사업’을 추진했다. 1980년대에 진행된 1차 사업의 성과를 계승하면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구비문학 자료를 질적·양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또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수집되었던 자료들을 디지털로 통합하여 ‘한국학디지털아카이브(구 역사정보통합시스템)’을 거쳐, 현재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에서 서비스하기에 이르렀다.

[그림 1]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 '한국구비문학대계' 누리집 화면
가장 많은 검색이 이루어지는 DB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에서 이용자들의 가장 많은 검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자료가 바로 ‘한국구비문학대계’이다. 해당 자료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고유의 DB인 ‘독립컨텐츠’에 소속되어 있는데, 가장 많은 조회수를 보일 뿐 아니라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박물관 및 도서관 등에서 전시나 자료집 작성을 위해 자료를 이용하려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국문학·문화학·음악학·교육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관련 연구가 최근까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를 통한 심층 연구가 가능한 이유는 사라져 가는 구비문학을 채록한 유일한 기록일 뿐 아니라, 자료를 체계적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채록 내용을 비롯하여, 조사일시와 장소 및 조사자와 구연 상황 등 구체적인 배경 설명을 통해 주변 정보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특히 음성자료도 링크되어 있어, 당시 채록자가 들고 간 막걸리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으로,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주인공들은 1980년대에 연세가 지긋하니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을 테지만 그분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남아 있어, 가만히 듣고 있으면 묘한 감정이 일어난다.

[그림 2] '한국구비문학대계' 제주도 북제주군의 <해녀노래> 화면 ☞ 세부 항목 누리집 살펴보기
   한편으로는 당시에 어떻게 이런 사업을 구상했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학 연구자인 나 자신도 이처럼 활용도가 높은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된다. ‘한국구비문학대계’와 같이 영원히 퍼가도 줄어들지 않는 샘물처럼, 연구자와 일반인들이 끊임없이 이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연구 성과는 좀처럼 만들어내기 어려운 것 같다.
새로운 시대의 한국구비문학대계
   최근 AI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한국구비문학대계 데이터를 LLM(Large Language Model)으로 학습시켜 각종 연구나 서비스에 활용하려는 요청도 있다. 이들을 통해 머지않아 ‘한국구비문학대계’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AI 서비스가 나올 것이 예상된다. 전래 설화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자동 생성하는 창작 AI, 지역별 구비문학과 연계된 관광 콘텐츠 추천 AI, 민요의 리듬과 가락을 학습하여 새로운 노래를 창작하는 작곡 AI, 구술자의 말투와 감정을 반영한 감성 대화형 AI 챗봇,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옛이야기를 풀어내는 학습용 동화 AI 등이 그런 경우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구비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한국구비문학대계의 자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다양한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그를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던 옛이야기가, AI 기술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되살아나려고 한다. 새로운 시대, 한국구비문학대계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전 세계와 소통하며 한국학의 가치를 창조하는 살아 있는 문화 자산으로 활용될 것이다.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은 국내외 기관의 한국학 자료를 통합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2025년 7월 현재 총 34개 기관, 101개 DB가 연계되어 있습니다. 한국학 학술행사, 채용공고 소식도 매일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이용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