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S 신간도서

귀화를 넘어서

책 표지


저 자
송영화
발행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발행일
2025년 2월 28일
정 가
23,000원
쪽 수
360쪽
판 형
신국판변형
분 류
역사, 한국사
ISBN
979-11-5866-799-3 93900

도서 소개

  『귀화를 넘어서: 러시아로 간 한인 이야기』(송영화 지음)는 20세기 러시아 한인의 역사를 기존의 독립운동사나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새롭게 조명한다.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은 일부는 러시아 국적을 취득해 안정적인 삶을 추구했지만, 일부는 독립의 꿈을 잃지 않았다. 저자는 이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정체성을 구축해 나간 과정에 대한 검토를 통해, 국적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유동적인 개념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들의 경제활동, 정치적 입장, 사회적 네트워크 등을 다각도로 분석한 이번 신간을 통해 역사 속 한인의 삶과 능동적 선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자 송영화와의 인터뷰


Q. 당시 한인들이 러시아 이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시기 한인들의 러시아로의 이주는 일본의 한국 식민화에 따른 역사적 산물이었습니다. 한 러시아 군인이 한인의 이주 배경을 분석한 글을 보면, 일본의 식민 지배에 저항해 정치적인 이유로 러시아로 건너간 이들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식민지 개발 과정에서 철도와 도로 등 인프라가 들어서며 삶의 터전을 잃는 등의 경제적 이유로 떠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주의 직접적인 동기는 다양했지만, 결국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고국이 식민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된 출발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러시아였을까? 당시 대한제국 지배층 일부는 러시아를 경계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에 맞서 싸운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 있었기에, 러시아에 일말의 기대를 품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복합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 많은 이들이 낯선 땅 러시아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이죠.


Q. 한인의 러시아 국적 선택에 담긴 정치적·사회적 함의는 무엇일까요?

   한인들이 러시아 국적을 선택한 것은 단지 법적인 보호를 얻기 위한 실용적 판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일본의 일방적인 신민화 정책을 피할 수 있는 방패가 되었고, 러시아 내에서 장기 체류와 취업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치적·경제적 측면 모두에서 중요한 선택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에는 좀 더 복합적인 의미도 담겨 있었습니다. 고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일본의 신민이 될 것인가 아니면 러시아의 신민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단순한 법적 소속을 넘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러시아 국적 취득은 생존을 위한 전략이면서, 동시에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주체적인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귀화는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식민지적 현실에 대한 대응이자,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했던 당시 한인들의 깊은 고민과 의지가 담긴 행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당시 이주민들에게 집이 지닌 의미와 생활상은 어떠했을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 집 마련’은 많은 사람들의 꿈입니다. 당시 러시아에 정착한 한인들에게도 그것은 간절한 바람이었죠. 특히 그들은 낯선 땅의 이민자였기에, 단순히 집이 없는 상태를 넘어 ‘자신의 땅과 집’을 갖는 일이 더 절실했습니다. 장기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하려면 주거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죠. 한인들이 모여 살던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은 당시 개발이 유망했던 지역으로, 땅값 상승이 예상되던 곳이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많은 한인들이 자신의 집을 마련하고자 단기 임대가 아닌 장기 임대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마을 전체가 당국에 의해 강제 철거되는 일도 있었기에, 그들의 꿈은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 한인들에게 ‘내 집 마련’이란 손에 잡힐 듯 가까우면서도 끝내 완전히 이루기 어려운 ‘꿈’과 같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전쟁과 혁명 속에서 한인들의 정치 참여가 지닌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제 막 정착 기반을 다져가던 한인들에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은 참으로 난감한 전쟁이었습니다. 러일동맹이 체결되면서, 러시아를 위해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일본의 이익에 기여하게 되는 딜레마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이때 한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처음부터 참전을 거부하며 저항한 이들도 있었고, 반대로 군사훈련을 받을 기회로 삼아 훗날을 준비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전쟁터에서는 차별을 경험하면서도 다른 이민자들과 연대할 가능성을 발견한 이들도 있었고, 후방에서는 공동체를 결집시키기 위해 지원 활동에 전념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러시아혁명이 발발하자, 그 혼란은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구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한인들은 언론의 자유를 적극 활용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참정권이 주어진 시기였고, 한인 대표가 러시아 국회에 진출했으며, 시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하면서 비로소 러시아 사회 안에서 한국인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대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은 한인 인물과 사연은 무엇인가요?

   집필을 하면서 ‘정재관’이라는 인물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국경과 국적을 넘나든 전형적인 초국적 인물이었습니다. 황해도에서 태어나 하와이,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기까지, 한국과 미국, 러시아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헌신했죠. 미국에서는 안창호와 함께 공립협회를 조직했고, 그 활동을 확장하기 위해 러시아로 건너와 항일운동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러시아에 귀화한 뒤 러시아군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식민지 조국을 위해 독립운동을 벌이면서도, 자신이 속한 러시아 공동체의 책임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한인 신문인 『신한민보』에 “주인의 집에 큰 일이 있을 때에 안연히 앉아 구경만 하는 것은 미안하며”라고 인터뷰를 남겼는데, 이는 자신이 선택한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잘 보여줍니다. 민족정체성과 국민정체성을 조화롭게 지켜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정재관의 삶은 이 책의 취지와도 잘 부합하기 때문에, 기억에 특히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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