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클럽
"한국학은 세계와 소통하고 디지털과 소통하는 가운데 늘 생성적으로 범주짓고 정의되어야 합니다."
이번 ‘한국학 클럽’ 코너에서는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장노현 교수님을 만나보았습니다.

Q1. 안녕하세요 교수님, 온라인 소식지 독자들(17,000여명)을 위해 교수님의 간략한 소개와 하고 계시는 연구교육 활동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02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문학(디지털 서사이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연구원 한국학정보센터(센터의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에서 오랫동안 연구원과 연구교수로 활동했습니다. 이때는 주로 한국학 분야의 온라인 디지털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제작하고, 웹사이트를 관리 운영하는 일도 했습니다. 지금은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에서 디지털문학의 한 분야인 하이퍼서사 이론 구축 및 창작 교육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Q2. 교수님께서는 디지털서사, 디지털콘텐츠 기획 뿐만 아니라 최근 하이퍼서사 이론 구축 및 창작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활동(강연, 저서 발간 등)을 하고 계시는데요. 이렇듯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창의적 연구활동을 지속하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며, 이런 분야의 연구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최근에 발표하신 연구 성과나, 관심을 갖게 된 새 연구 분야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원래 학부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해서도 문학에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석사학위논문도 해방기 문학운동을 테마로 했습니다. 관심사에 변화가 생긴 것은 박사과정 수료 이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센터 소속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학정보센터가 개소했던 1997년 당시는 디지털 매체가 한국사회에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디지털 정보를 다루는 정보센터가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고 느껴지던 때였습니다. 당시 저도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간단한 문서 정도나 작성할 수 있었고, 디지털 매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한국학정보센터에서 “디지털한국학” 사업, 한국학전자도서관 구축사업,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구축 사업 등 수많은 디지털콘텐츠 기획, 제작 작업을 수행하면서 디지털 매체기술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이 미래사회에 미칠 영향력과 가능성을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저는 원래 관심사였던 문학이 미래의 디지털사회에서 어떻게 변할까 하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고민의 첫번째 결과물이 2002년에 완성한 박사학위 논문, “하이퍼텍스트 서사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국내에는 연구할 대상작품 자체가 없어 논문작성 자체가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만큼 문학 전공자로서 넘기 힘든 선을 넘어간다는 느낌도 있었던 같아요.
  박사학위 논문을 끝내고, 다음해인 2003년에 아주 중요한 기획 작업을 하나 했는데요. 바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사업입니다. 아마 지금까지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가장 중요한 기획 사업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업은 전국의 향토문화를 집대성한다는 목표 하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간헐적으로 추진하던 연구사업을 완전 디지털사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됩니다. 제가 2003년 4월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사업을 위한 최초의 기획서를 작성해서 발표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이후 이것을 여러 차례 업그레이드했고, 관련 정부 부처에 보내 사업비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한국학정보센터 소장이었던 전택수 교수와 함께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가서 교육인적자원부 공무원들을 설득하던 기억, 사업 승인이 이루어졌던 중앙정부의 인적자원개발회의에 배석했던 기억도 나네요.
  이렇게 저는 일반적으로 문학전공 연구자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렇다고 문학연구자의 정체성을 버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디지털과 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연구를 계속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예전에 비해 창작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하이퍼서사나 디지털포엠 창작교육의 비중이 좀 더 커졌습니다. 새로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완전한 디지털 창작자로 키워내면, 그들이 근대문학을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문학을 건설해 나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창의적인 연구 활동의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죠? 아마도 미래세대와 미래문학에 대한 희망과 상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연구하고 교육하는 하이퍼서사나 여러 형식의 디지털문학이 머지않아 널리 대중화된 상황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연구와 교육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Q3.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문학이론을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대학원 시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며, 교수님의 인생에는 대학원 당시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하이퍼텍스트 서사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세부전공이 디지털 서사이론인 셈이죠. 하지만 당시 한국학대학원에는 디지털 서사이론을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국문학 전공이 개설되어 있었지만 대개 한문학이 주류였죠. 수업도 현대문학 전공자인 제가 한문학 관련 교과목을 다수 수강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다닐 때는 대학원생 대부분이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여기서 한문학을 비롯해서 역사학, 철학, 사회학, 예술 등 다른 전공의 선후배들과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후에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만 이런 교류가 특정 전공에 갇히지 않고 선을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를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디지털과 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평생의 연구테마를 찾게 해 준 것이 바로 이 때의 대학원 생활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대학원 시절에는 열린 시야와 열린 생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한국학 분야의 여러 전공을 함께 공부했던, 그리고 지금의 제 모습이 있게 한 출발점이 되었던 한국학대학원, 그 시절이 갑자기 그립네요.
Q4. 최근 글로벌 한국학, K-Culture, K-Pop 등 한국문화, 한국연구의 세계화가 화두인데요. 한국학자로서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앞으로 이런 사회 변화에 발맞춰 연구자들은 어떤 자세로 연구하면 좋을지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한국학을 어떻게 정의하면 될지에 대해서도 여쭙니다.
  분명 전세계는 지금 K-Culture, K-Pop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한국학의 위상은 그것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문학연구는 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자주 생각합니다. 물론 문학 작품의 해외 번역 지원과 문인 교류 사업 등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학연구 분야에서 전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계의 문학계에 뭔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연구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는 한국문학 연구자들이 많이 등장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한국학이 K-Culture나 K-Pop처럼 세계의 학문을 선도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공부한 경험을 가진 한국학대학원 출신의 소장학자들에게 이런 기대를 걸어보게 됩니다. 세계와 소통하지 않으면 학문의 세계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디지털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제 한국학도 디지털한국학(디지털인문학)으로 확장하면서 새로운 연구대상과 방법론을 발굴하고 수립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한국학을 뭔가 고정된 실체나 실제라는 관념 속에 가두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한국학은 세계와 소통하고 디지털과 소통하는 가운데 늘 생성적으로 범주짓고 정의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한국학의 새로운 위상을 결정하게 되겠지요.
Q5. 한국학 연구자로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교수님께서는 대학 교육에서는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지요? 향후 소속 대학에서 전개하실 연구·교육 활동 계획도 알려주세요.

  근대문학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습니다. 근대문학을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디지털문학이 필요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디지털문학은 디지털 매체 상에서 창작, 유통, 소비되는 새로운 문학 양식이어야 합니다.디지털 매체 상에서 창작된다는 말은 창작방법론이나 미학 자체가 디지털 매체에 맞춰지거나 특화되는 것을 말하고, 디지털 매체 상에서 유통된다는 것은 책과 같은 레거시한 인쇄매체로 전환할 수 없고 오직 온라인 상에서 유통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디지털 매체 상에서 소비된다는 말은 단순한 선형적, 수동적 작품 읽기를 넘어서서 웹과 같은 디지털 공간을 일종의 수행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다선형적 능동적 탐색적 독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런 디지털문학을 활성화하고 대중화하기 위한 연구와 교육 활동을 계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현재는 디지털문학 중에서도 하이퍼서사와 디지털포엠 두 분야의 작품 창작과 이론 구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를 위해 ‘HN2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HN2 프로젝트’는 웹상에서 하이퍼서사 작품을 창작, 연구, 교육하고 그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디지털 창작문화를 실험하고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한 프로그램인데, 최근에는 프로젝트의 범위를 하이퍼서사에서 디지털문학 전반으로, 특히 디지털포엠 창작 분야로 확장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위해 현재 교수 3인과 연구보조원 4인으로 구성된 HN2 프로젝트팀이 가동되고 있고, ‘하이퍼레터’(뉴스레터)를 정기, 부정기로 발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자신들의 디지털 감수성을 디지털 형식으로 표현한 하이퍼서사와 디지털포엠이 대중적인 문학 장르로 자리잡아 가면 좋겠습니다.
Q6. 마지막으로 온라인소식지 독자들 및 이 글을 읽으실 학계 연구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문학연구의 대부분은 이미 쓰여진 작품이나 이미 과거가 된 작가들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문학이 어떠해야 한다는 논의는 일부 평론 작업의 대상으로 한정되었던 것 같아요. 어떤 문학연구자도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래 사회를 대변하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이를 실제로 작품화하는 시도나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아쉬워하는 것이 그 부분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매체가 급변하는 시기에는 새로운 문학에 대한 실험과 시도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서 이야기한 ‘HN2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디지털 작품을 창작하고 실험하기를 계속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시도가 성공적인 결과에 이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제 역할은 끝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 글을 어떤 분들이 보실지 모르겠지만,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시도하고 실험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만큼 우리사회는 혁신적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창의적 아이디어를 갖고 끊임없는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