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1906년 취입된 한국의 첫 음반: 소리에 대한 분석과 해석

김인숙교수
김인숙
한국학중앙연구원 음악학 전공 교수

   역사상 처음으로 소리를 기록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프랑스의 에두아르-레옹 스콧 드 마르탱빌(Édouard-Léon Scott de Martinville, 1817~1879)이다. 그는 인간의 귀를 모방하여 소리를 모으는 나팔통과 파동을 전달하는 바늘(돼지털)로 먹지 위에 그래프와 같은 파장을 그려냈다. 1853년에서 1860년 사이의 일이다. 후에 에디슨에 의해 실용화된 유성기(Phonograph)의 원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이 장치가 일명 포노토그래프(Phonautograph)다. 재생은 안되고 기록만 가능했던 이 종이는 2008년 디지털 기술에 의해 되살아났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인류 최초의 음성 녹음’이다.


   소리를 기록하고 재생하여 듣는 행위는 진정한 의미의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 음악이 특정 작품이나 녹음, 집중적인 감상, 작곡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녹음된 음악을 통조림 음악이라 하여 레코딩 자체를 거부하는 음악가들도 있었다. 미디어의 발달은 음악의 향유와 유통, 창작과 소통, 나아가 교육의 방식까지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기존 방식에 대한 반성과 본질적 음악 행위의 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음악학, 특히 인류음악학에서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녹음된 음악은 이처럼 본질적 한계가 있지만 100여 년 전 미디어 발달 태동기에 전통음악을 담은 음반은 특별한 가치를 갖는다. 음악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녹음은 가장 확실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인류학 연구에서 녹음 기술이 활용되기도 하였으나 음악 감상용으로 음반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1902년 이탈리아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오페라 취입에서 비롯된다. 1906년 봄 미국 콜럼비아 회사는 일본에 진출하여 일본음악을 취입했는데 조선음악을 30면 곁들였다. 같은 해 10월 미국 빅타는 조선에서 약 100면의 음반을 녹음했다. 녹음한 음원은 미국에서 음반으로 제작되어 이듬해 조선에 판매되었다. 현재 발견된 당시의 음반 실물이 30면을 조금 넘는다.


   2020년 공동과제 ‘대한제국기의 한국음반과 음악문화 연구’는 이 초기 음반에 대한 본격 연구로서 문헌이나 악보가 부재한 상태에서 음악(소리) 자체를 대상으로 음악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대한제국기의 음반을 토대로 그 음악을 연구하고 당시 음악 문화에 대한 연구로 확장하려는 기획이었다. 자료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렵고 재생 기술도 부족하여 초기음반은 그동안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1906년 빅타가 제작한 조선 음반의 존재가 알려진 것이 1990년경이다. 그동안 관련 자료가 꾸준히 드러났고 새롭게 개발된 복원기술이 사설의 채록과 음반·음악 연구, 일반 감상까지 가능하게 했다. 자료의 발굴에서부터 재생 기술의 발전, 연구 인력과 역량이 갖추어지는 데까지 30여년이 걸렸다.


   연구는 기초 자료 정리와 개별 주제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연구를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가사 채록과 악곡 채보가 선행되었다. 채록과 채보는 본 연구의 수행과도 관련이 있지만 향후 희귀 음반에 대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주제 연구의 방향은 크게 두 갈래로서, 악곡에 대한 분석과 음악사적 의미를 탐구하는 연구가 한 축을 이루고, 음반 제작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국내외로 나누어 살핀 주제가 다른 하나다. 대한제국기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연주 전통의 특성상 그 이전 시대를 웬만큼 유추해 낼 수 있다고 보았다.


   연구자의 관점으로 볼 때 녹음된 음악은 통조림 음악이 맞다. 통조림 속의 고등어가 바닷속 살아있는 물고기가 아니듯, 음반 속의 음악은 어딘가를 꾸미고 골라내고 내세워진 표본이다. 녹음된 음악을 학술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폭넓은 자료의 도움과 훈련된 안목이 필요하다.


   1906년의 녹음은 패권주의가 대세였던 20세기초에 서구 음반회사가 가졌던 상업적 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지만 역설적으로 박물학적 호기심에서 다양한 음악을 고루 실은 장점이 있다. 음반 속 연주자들의 다소 투박해 보이는 소리 역시 아직은 꾸미지 못한 일상의 모습에 가깝게 느껴져 흥미롭게 탐구 중이다. 본 연구 결과와 자료의 공개가 계기가 돼 음악사의 빈 공간이 활발히 메꾸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일차적으로 엮어낸 공동 연구의 미비점은 지속적인 연구 과정에서 고쳐지고 극복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