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아름드리

해외한국학자를 만나다

: 아르헨티나 살바도르대학교

María del Pilar Álvarez 사진
María del Pilar Álvarez
(Universidad del Salvador, USAL)

Q. 독자를 위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살바도르대학교(Universidad del Salvador, USAL) 소속 조교수 마리아 델 필라르 알바레즈(María del Pilar Álvarez)입니다. 본교의 한국학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국립과학기술연구회에서 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부터 다른 문화와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계 아르헨티나인 친구를 둔 덕분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다만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한국어 어학 과정이나 대학 내 한국 관련 과목이 없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에 대해 배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 교육부의 국립국제교육개발원 장학금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2004년 8월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하여 경희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연세대학교에서 한국학 석사과정을 이수했습니다. 한국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 좋아서 2009년까지 서울에 머물렀습니다.

그 후 2010년에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서 한·일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살바도르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국제정치학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에는 저희 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해외한국학씨앗형사업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씨앗형사업 지원금을 받아 살바도르대학교에서 한국학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올해 초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한류가 아르헨티나를 휩쓸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지난 10년간 아르헨티나에서 한국 관련 문화상품의 소비가 현저하게 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힘입어 여러 지역에서 한식 음식점이 개점하고, 한국어 강좌가 증가하고, K-Pop 팬들은 소셜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신들만의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팬클럽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전에는 한식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많은 한식 요리사들이 현지 TV 프로그램에 초대되곤 합니다.

최근에는 한인 사회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한국-아르헨티나 유튜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운영하는 한국 관련 채널들에 많은 구독자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 기간에는 막대한 시청자를 가진 넷플릭스 등의 플랫폼을 통한 한국 TV 시리즈물 소비가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한국의 서예, 태권도, 문학 강좌(특히 웹툰) 또한 현지인들의 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상품들의 부상은 아르헨티나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켰습니다. 과거 한국에 대한 뉴스는 주로 ‘경제적 기적’에 국한됐지만, 오늘날의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한국의 문화, 전통, 음식, 도시계획 등 여러 사회문화적 측면들을 더 많이 알고 싶어 합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에 대한 인식은 분명 긍정적입니다. 물론 그 인식에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도 여전히 조금 남아 있지만, 그런 긍정적 인식이 한국학 관련 분야의 심화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Q. 살바로드대학교는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사립대학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최초로 동양학부를 설립하고 2018년에는 한국학 센터를 열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라틴아메리카에서 한국학의 전반적인 현황과 한국학에 대한 수요는 어떻습니까?


살바도르대학교는 라틴아메리카의 아시아학 발전에 있어 선구적인 대학입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아시아학이 체계적으로 연구되기 시작된 것은 1960년대부터인데, 유네스코의 ‘동서양문화 상호이해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Major Project for the Mutual Understanding of Eastern and Western Cultures)’를 바탕으로 몇몇 대학들이 아시아 관련 주제로 세미나나 관련 활동을 시작했었죠. 아쉽게도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에는 살바도르대학교의 학부과정과 콜멕스(Colmex-Mexico)대학교의 석사과정 등 두 대학의 학위과정만 정규 제도로 정착했습니다.

한국학 관련 출판물

1967년에는 유네스코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스마엘 킬레스(Ismael Quiles) 신부가 살바도르대학교에 동양학부를 설립했습니다. 아시아 문화에 심취해 있던 킬레스 신부가 유네스코는 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권유로 최초의 아시아학부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는 또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연구 개발에도 노력했고, 동서 문명 간 소통을 위한 학술지도 창간했으며, 다양한 계기로 살바도르대학교를 방문한 아시아 지역의 교수들과도 교류했습니다. 1987년에는 『한국의 혼: 교육, 문화, 철학(The Soul of Korea: Education, Culture, and Philosophy)』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수십 년간 살바도르대학교와 콜멕스대학교만 아시아학 관련 학위과정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시아 호랑이들”의 출현과 라틴아메리카로의 한국인 이주 증가에 힘입어 아시아, 특히 한국에 대한 새로운 연구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중남미한국학회(Congress of Korean Studies of Latin America, EECAL)가 설립되었고 새로운 한국학 연구 분야들이 개척됐으며, 한국 관련 출판물들이 스페인어로 출간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문 자격을 갖춘 교수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현지 한국학의 성장은 여전히 더딘 수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참여 연구자들은 한국학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상태였고, 그들의 출판물 역시 2차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제가 정치학과를 졸업할 때의 상황이 이러했기 때문에 저는 한국에 가서 공부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아르헨티나 한국학의 전환점은 한류였습니다. 한국 문화상품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면서 한국의 언어, 역사, 문화에 대한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의 관심과 흥미도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붐으로 인해 한국과 관련된 새 학술 프로그램들이 멕시코와 브라질, 칠레 등의 대학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아울러 대다수의 라틴아메리카 대학들이 한국 관련 이슈를 다룬 활동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살바도르대학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인 2014년에는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국립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de La Plata)가 유일하게 한국학센터를 운영하면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글로벌 e-스쿨 수업(학점이 없는 공개강좌)을 제공했습니다. 라플라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 있는 도시고, 살바도르대학교는 연방 수도에 있습니다. 그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한국학이 아닌 아시아나 동아시아 관련 학위과정만 존재했습니다. 살바도르대학교는 아시아학의 발전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2014년 당시 한국학은 중국학이나 일본학처럼 독립적 전공으로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희는 2016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해외한국학씨앗형사업에 지원하였고, 지원금을 바탕으로 2018년 한국학센터를 설립했으며, 2020년 한국학 학위과정을 만들었습니다. 더 많은 한국학 언어강좌를 개설한 결과 현재는 6가지 레벨의 한국학 언어강좌를 운영하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 관심이 컸던 북한학을 포함해 한국학 연구의 저변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한국학에 대한 수요는 저희가 상상했던 것보다 매우 많았습니다. 2020년 7월에 학사과정을 열었을 때 저희는 얼마나 많은 학생이 지원할지 예상하지 못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2020년 7월에 제1기 28명, 2020년 9월에 제2기 33명, 2021년 3월에 제3기 52명, 2021년 5월에 제4기 29명, 그리고 2021년 8월에 제5기 27명의 학생이 한국학 전공에 들어왔습니다. 이 학생들의 관심사와 학업적 배경도 매우 다양합니다. 학생들은 한국어와 번역, 도시계획, 여성학뿐만 아니라 북한과 한반도의 국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학위과정 또한 이러한 수요를 바탕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역 규모의 한국학 네트워크가 최근 몇 년간 개선되었다는 점입니다. 저희는 한국학 석사과정을 운영하는 칠레중앙대학교(Central University of Chile) 및 한국 관련 타 기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대학원 학위과정 및 한국어 프로그램을 이수한 젊은 교수들이 저희와 함께 중남미 지역의 한국학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살바도르대학교의 한국학 관련 교육 프로그램과 연구활동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학온라인 프로그램ㄴ 출판물

2016년부터 저희는 한국학의 교육, 연구, 출판‧보급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초빙교수 세미나나 현지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하고, 학부 및 대학원생을 위해 한국 관련 이슈를 다룬 강좌(학점 이수 강좌 포함)들을 개설했습니다. 2019년 마침내 한국학 학위과정 개설을 계획하여 2020년에 공식 승인을 받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다섯 기수로 구성된 160명 이상의 학부생이 한국학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지역 어디에서나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고 여러 직업군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러한 다양성이 한국학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배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온라인 프로그램은 전근대사, 남북한의 현대정치, 사회문화의 변화, 한국어, 그리고 국제관계 및 비지니스 등 총 5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 활동은 한국 관련 연구프로젝트 개발과 병행하여 기획되었습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저희는 사회과학연구원(Institute for Social Sciences Research, IDICSO-CONICET) 지원으로 아르헨티나 속 한국의 문화외교를 심층 연구했는데, 그 결과는 전문 학술저널에 게재되었습니다. 저희는 탈식민주의와 여성학에 관한 연구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고, 특히 ‘위안부’ 관련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중에 있으며, 2019년부터는 남북관계·교류에서의 시민사회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북한연구주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또한 학술 관련 출판물 간행에 그치지 않고, 매년 에세이 공모전 개최, 한국 관련 이슈에 대한 공개 집담회 주관, 그리고 한국 관련 학술회의 참여 등 연구성과의 보급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포함해 여러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저희의 활동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이 한국학 학위과정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Q. 살바도르대학교는 2016년 이래 해외한국학씨앗형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는 ‘살바도르대학교 내 한국학의 정착: 아르헨티나의 첫 한국학 학위과정 구축’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하면서 거둔 가장 뛰어난 성과들과, 가장 어려웠던 문제들은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에 씨앗형사업의 주요 성과는 한국학 학위과정의 개설, 높은 지원 학생 수, 스페인어로 된 한국 관련 출판물 간행, 한국학센터 설립 및 정착, 한국어 수업 개설(원래 2급까지 밖에 없었으나 현재 7급까지 있음), 그리고 한국 관련 새로운 연구주제 개발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씨앗형사업이 완료될 2022년 5월 이후에도 상기한 성과를 유지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살바도르대학교의 지원에 힘입어 한국학 연구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 다른 과제로는 저희 학생과 교수들에게 한국에서 공부하거나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희 한국학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과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에 한국학센터의 학생 및 회원들에게 장학금과 펠로십 기회를 제공하고자 저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한 한국 내 여러 학술기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려고 합니다.

Q. 씨앗형사업의 남은 기간 동안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까?


내년에도 많은 학생이 한국학 과정에 지원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에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유지하면서 오프라인 프로그램도 개설해보려고 합니다. 한국학 학술회의와 한국 관련 에세이 대회도 개최할 계획이며, 지역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한, 라틴아메리카의 관점에서 바라본 남북관계를 주제로 한 책의 출판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Q. 질문에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두 나라의 한국학을 위해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두 나라 간의 지리적 거리와 아르헨티나 교육제도의 한국학 관련 물적 기반 부족을 고려할 때, 교수와 학생의 원활한 교환 및 왕래를 위해 아르헨티나와 한국 간의 교육‧연구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예를 들어, 저희 아르헨티나 학자들은 한국어 실력 향상 및 유지를 위해서라도 한국 현지에서 더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한국어 어학 수업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한국학의 발달을 위해서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확보되어야 합니다. 또한 한국학센터의 연구의 질은 물론 스페인어로 된 한국 출판물들의 우수성 또한 유지하는 것이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