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민족지영화와 온라인 국제민족지영화제

조일동 사진
조일동
한국학대학원 문화예술학부 조교수
KIEFF 2021 포스터

KIEFF 2021 포스터


지난 9월 9일부터 11일까지 한국시각인류학회가 개최한 제3회 한국국제민족지영화제(Korea International Ethnographic Film Festival, 이하 KIEFF)가 온라인에서 진행되었다. 2020년 12월 서울의 한 예술전용극장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영화제는 두 차례 연기 끝에 결국 온라인 상영을 결정했다. 필자는 한국시각인류학회 창립 회원이면서 KIEFF 집행위원으로, 이 영화제의 준비와 진행 전반에 참여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중소영화제 대부분이 개최를 익년으로 연기하는 와중에 학술적 성격이 짙은 이 작은 영화제를 온라인으로라도 강행한 까닭은 이번 KIEFF에 학생 부문이 처음 신설되었고, 각국 학생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민족지영화를 꼭 관객과 만나게 하고 싶다는 집행위의 의지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계속하기에 앞서 ‘민족지영화’라는 독자에게 친숙치 않은 개념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민족지영화는 1922년 발표된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의 '북극의 나눅(Nanook of the North)'' 상영을 시작으로 100년의 역사를 가진 다큐멘터리 영화 장르다. 초기 민족지영화는 플래허티 같은 아마추어 인류학자를 포함, 인류학자가 타문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영화로 한정되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영화제작자가 촬영 대상과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며 얻은 이해를 다양한 영상 기법으로 표현한 영화를 포괄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영화의 소재 또한 자문화, 특히 현대사회가 마주한 복잡한 삶과 현실을 포함한다. 현대인의 일상을 낯선 시선과 화면, 밀도 높은 소리 등으로 담아내 관객과 함께 성찰해 볼 기회를 만드는 인류학적 영상실천까지로 그 범주가 확장된 셈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극영화적 요소를 차용한 인류학자의 실험영화까지도 민족지영화의 일부로 이해된다. 결국 민족지영화는 관객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신들의 문화적 현실이 전혀 당연하고 보편적인 경험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문화가 만든 특별한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KIEFF 상영작_바다의 신부_스틸컷

KIEFF 상영작 '바다의 신부' 스틸컷

KIEFF 상영작_생명을 구하는 사람들 포스터

상영작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 포스터

KIEFF 상영작 '하늘 마을' 포스터

상영작 '하늘 마을' 포스터

상업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민족지영화는 주로 영화제와 대학을 중심으로 상영되곤 한다. 대표적인 민족지영화제로는 시네마 베리떼(cinema verite)라는 새로운 영상 언어를 개척한 영상인류학자 장 루쉬의 이름을 딴 프랑스의 장루쉬국제영화제(The Jean Rouch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영국의 왕립인류학연구소영화제(RAI Film Festival), 독일 괴팅겐에서 격년으로 개최되는 독일국제민족지영화제(The German International Ethnographic Film Festival) 등을 꼽을 수 있다. 2001년 아시아 최초의 민족지영화제로 시작한 타이완국제민족지영화제(The Taiwan International Ethnographic Film Festival)는 이주, 가족제도, 원주민 문화, 저항, 국경과 삶 등 현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를 내세우며 각국의 민족지영화 제작자들이 주목하는 영화제로 자리 잡은 바 있다.


2018년 시작된 KIEFF는 매년 이틀 동안 세계 각국에서 제작된 민족지영화 6-7편을 소개해왔다. 특히 상대적으로 민족지영화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아시아 각국의 작품을 상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20년, KIEFF 집행위는 처음으로 학생 작품 부문을 신설하고 전 세계 학부, 대학원생이 제작한 민족지영화를 공개 모집했다. 아시아는 물론,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73개 국에서 436편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출품작의 숫자는 집행위원들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을 뿐 아니라, 민족지영화에 대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세 번의 심사과정을 통해 엄선된 7편의 민족지영화는 노르웨이, 카메룬, 인도,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영국, 멕시코에서 인류학과 미디어를 전공한 학생들이 직접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제작한 작품이었다. 영상에 등장하는 대상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카메라만이 담아낼 수 있는 삶의 깊숙한 이야기와 일상적인 경험 속에는 도시, 이주, 환경, 여성 문제 등이 깊게 묻어 있었다.


학생 부문 수상작의 상영은 물론, 고전 민족지영화 회고전, 시각인류학과 민족지영화에 대한 심포지엄을 포함한 꽤 큰 행사로 준비 중이던 2020년 한국국제민족지영화제는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며 연기를 거듭했다. 주요 상영 예정작에 대한 온라인 상영권을 얻지 못했던 집행위는 쉽사리 온라인 영화제로의 전환을 결정할 수 없었다. 두 번의 연기 끝에 결국 온라인 상영을 결정했는데, 이는 학생 부문 선정작을 꼭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생 감독의 동의를 얻어 결국 온라인 영화제가 열렸다. 당연히! 엄청난 호응 같은 것은 없었다. 심지어 집행위원들도 유튜브에 임시로 연 영화제 페이지를 줌 화면에 띄우고 각자의 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였을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며칠 후 카메룬의 대학 강의실에서 학생과 교수들이 함께 영상을 시청했다는 이메일을 받으며 민족지영화를 매개로 세계 여러 지역의 학자, 연구자가 같은 기간, 같은 영상을 보고 감동했음에 작은 기쁨을 느꼈다.


KIEFF가 한국에서 민족지영화에 대한 이해를 얼마나 넓힐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단 몇 명이라도 학자의 카메라가 낯설게 읽어 낸 세상 이야기를 학문이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리란 소박한 희망으로 이 작업을 지속하고자 한다. 내년 1월 1일 열리는 2022년 KIEFF 학생 부문 접수(https://filmfreeway.com/KIEFF)에는 한국 학생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