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습재 일기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요인에 대한 소고

반욱 사진
반욱
한국학대학원 사회과학부 박사과정(중국)

작년 연말에 북한이 도발 예고를 했지만 끝내 도발을 하지 않았다. 4월에 있었던 김정은 유고설에도 조용했다. 하지만 6월에 들어 갑자기 처음도 아닌 한국에서 날린 대북전단을 가지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김여정 담화에 이어 남북공동 연락사무소폭파까지 매우 턱없는 행동들을 강행했다. 이에 한국 정부가 강경대응에 나서며 평화가 위태로워 보일 즈음 김정은이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를 지시했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다. 벌써 2020년 연말이 되는데 그럼 당시 북한의 공동사무소 폭파 행보의 요인이 대체 무엇인가?


코로나 시대의 존재감 과시


코로나 시대에 미국의 급선무는 코로나 대응이다. 게다가 올해 미국에는 대선이 있어서 트럼프 행정부의 초점은 자국내 문제에 있었을 것이다. 2020년 상반기 미국은 혹인 시위, 존 볼턴 회고록 파문, 경제 악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비록 한국은 OECD선진국 중에 상대적으로 코로나를 잘 관리하고 있지만 피해도 역시 적지 않다고 본다. 코로나 극복 외에 한국 정부의 가장 큰 관심사는 경제 살리기였다. 이를 위해 한국정부는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 전에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경제 부양책들을 펼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특별한 도발행위를 하지 않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도 코로나 사태가 악화되기 전까지 도쿄올림픽에만 신경을 썼으며 올림픽이 연기되자 대대적으로 코로나 확산 방지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러시아도 역시 코로나 확산에 대응하면서 푸틴대통령 본인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한 개헌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중국은 더더욱 북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인구가 천 만명에 달하는 우한시 전체를 봉쇄하는 강경책을 시행할 만큼 코로나 사태가 매우 심각했다. 때문에 당시로써는 일본, 러시아, 중국에게 북한은 큰 관심사가 될 수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 북한은 초조하기 마련이었다. 비록 북한이 공식적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없다고 하지만, 북한 조선중앙방송 화면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북한 인민을 볼 때 북한도 역시 코로나 청정국은 아니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몇 차례의 남북, 북미, 북중 회담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통치계층의 내부적인 단결, 그리고 북한 인민의 지지를 유지하는데 나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

코로나 시대의 북한은 세계로부터 잊혀진 존재가 되었는데, 북한으로써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코로나 방역도 중요하지만 나도 중요해. 나한테도 관심 좀 줘’. 북한은 뭐라도 좀 해서 다른 나라들의 관심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한 존재감 과시를 위해 대북전단을 구실로 대남 압박을 가했다고 본다. 사실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또한 북한이 이를 비판하자 한국정부가 ‘종북물이’의 오명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호응을 해서 적극적으로 단속에 나섰다. 그래도 북한은 김여정의 담화에 이어 결국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비 상식적인 행동을 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BBC, CNN, NHK등 세계 여러 나라 매체들이 속보로 보도했다. 폭파되는 건물 영상으로 북한은 다시 전세계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포스트 김정은 시대의 기반 마련


6월 4일,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머지않아 쓸모없는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가 6월 16일 14시 50분경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김여정이 2018년 평화의 사신으로 한국을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본인이 직접 나서는가 하는 것이다.

그 발단은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김정은 유고설이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11일 조선노동당 정치국 회의 주재 뒤3주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중병설, 사망설 등이 퍼진 적이 있었다. 비록 5월 2일 조선중앙방송은 김정은이 노동절이었던 전날 평안남도 순천 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함으로 유고설을 없앴지만 아직도 의문은 남아 있다.

4월 14일, 원산에서 태양절을 기념하여 미사일 발사를 했으나 김정은은 불참했다. 이런 미사일 발사에는 항상 김정은이 참석했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김정은은 현장 참관을 자제함으로 도발 수준을 낮추려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에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할아버지의 제사날에 어떻게 장손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가? 다른 행사는 몰라도 태양절 참배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고로 김정은은 집권 후 태양절에 금수산 태양궁전을 매년 참배했다.

분명히 무슨 일이 생겨서 참배하지 못한 것이다. 4월 24일, 로이터통신은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의 고위 관리가 이끄는 대표단이 지난 23일 베이징을 출발해 북한으로 향했다고 전했다. 4월 26일, 아사히신문은 쑹타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 부장이 중국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인 301병원 의료진 50명과 함께 23일 이전에 방북했다고 보도했다. 쑹타오는 중국 공산당의 대외협력을 총괄하는 고위인사로 북중 관계의 핵심 인물이다. 또한 301병원은 중국 공산당 최고위 간부들을 위한 최고 수준의 병원이다. 쑹타오가 직접 301병원 의료진을 이끌고 방북한 점은 매우 비상한 사태가 있음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김여정이 김정은 보좌하는 모습

김정은의 건강 상태는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만 분명히 무슨 일이 있어서 태양절 참배를 못했고 3주 동안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김정은도 역시 후계 사항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왕조 체제인 북한에서 김정은 유고 시 권력 승계 1순위는 김정은의 자녀들이다. 현재까지 자녀가 몇 명인지, 그리고 아들이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자녀들이 모두 10대 미만의 어린 나이인 것은 확실하다. 바꾸어 말하면 김정은의 자녀들은 후계자로서 너무나 어리다.

그러므로 김정은의 친 동생인 김여정을 지목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과 거의 모든 일정을 같이 하는 것을 보면 김여정은 김정은이 매우 신뢰하고 의지하는 존재다. 포스트 김정은 시대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2인자로 승격시켜줘야 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김여정을 내세워 대남 강경 이미지를 만들며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위업을 이룩해서 지도자로 부각시켰다. 설사 후계자가 아니더라도 나이 어린 왕을 대신하여 섭정하게 만들어 주려는 생각일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소외감을 느꼈던 북한이 코로나 시대의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대북전단을 구실로 대남 도발에 나섰다. 그리고 포스트 김정은 시대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김여정을 내세워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공적을 만들어주었다. 결국은 김여정의 대남 강경 이미지 만들기를 달성하였고, 한국 정부의 강경대응에 김정은이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함으로써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북한의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행보, 그리고 북한이 저지른 과거의 수많은 도발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북한은 도발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나라다. 대남, 대미, 대일 등 도발을 통해 대내적으로 지도층의 단결, 민중의 결속을 이끌며 대외적으로 체제보장을 달성하려고 한다.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굴복하지 않아야 하며, 한편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기다려줘야 한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결국 북한은 개혁을 통해 체제를 바꾸거나 아니면 스스로 붕괴될 것이다. 도발로 더 이상 존재감을 과시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