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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웅, 안중근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하얼빈 역
탕, 탕, 타앙!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

안중근 의사는 세 발의 총알로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 옆구리, 복부를 저격했습니다.
을사늑약에 따라 대한제국 통감부의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민족의 원흉이었습니다.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재무상과 회담하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하얼빈 역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소_사진 중앙 하단 삼각형 부분

하얼빈 역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소_사진 중앙 하단 삼각형 부분


1909년 10월 26일 오후 일본 영사관

안중근 의사는 여순에서 온 일본인 검찰관 미조부치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미조부치는 안중근 의사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추궁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당당한 태도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5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내가 이토를 죽인 까닭은 이토가 열다섯 가지 죄를 지었기 때문이오. 첫째는 대한 제국의 명성 황후를 죽인 죄요, 둘째는 고종 황제를 강제로 물러나게 한 죄요.·····”
안중근 의사는 여순에서 온 일본인 검찰관 미조부치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미조부치는 안중근 의사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추궁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당당한 태도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5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1910년 2월 14일, 마지막 공판

“피고 안중근을 사형에 처한다.”
안중근은 죽음을 각오한 듯 항소를 포기하고, 대신 두 동생들에게 해방이 되면 자신의 유해를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 해 다오”


-최후의 유언-<여순 관동주 법원>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안중근 의사 순국

사건 발생 152일 후, 안중근 의사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그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투옥 장소

안중근 의사 투옥 장소



이 영상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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