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향기

영화 『뮬란』과 21세기, 그리고 대한민국

조원희 사진
조원희
한국학대학원 글로벌한국학부 조교수

2020년 9월 10일 영화 『뮬란』의 실사판이 개봉되었다. 본래 이 영화는 2020년 3월 초 전 세계적인 극장 개봉이 예정되었으나,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하여 여러번 연기되었다. 그러다 약 반년 후가 지나서야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 극장 개봉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점은 이 영화가 미국에서는 온라인으로만 공개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0년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중국사 입문』 수업 조교를 할 때의 일이다. 수업을 담당한 교수는 수업 첫날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너희가 중국에 대해서 알고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단 3가지이다. Confucius (공자), Marco Polo (마르코 폴로), 그리고 Mulan (뮬란).” 수업을 듣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10대 시절 미국 디즈니 사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뮬란』(1998)을 보았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하신 교수님의 말에,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충격적인 말을 하셨다. “뮬란은 사실, 한(漢)족 아니다” 첫 수업인 만큼 학생들에게 추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으나, 청강 여부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살짝 충격을 주고 수업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 내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렇다면 뮬란이 한(漢)족이 아니란 말은 사실일까?

뮬란 영화 포스터

뮬란 이야기는 원래 5-6세기 중국의 북위(北魏, 385-535)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목란사(木蘭辭)”라고 하는 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구려와도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였던 북위(北魏)는, 역사서에서는 선비(鮮卑)로 기록된 북방 유목민들이 세운 국가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삼국지의 조조(曹操 150-220)가 북중국을 통일할 때 중국 북방에 존재하였던 다양한 유목민들의 도움을 받았던 이래로 많은 유목민들이 오랫동안 북중국으로 이주하여 여러 국가를 세웠는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북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란사”에서는 병사 징집의 명령을 내린 것은 “왕” 혹은 “황제”가 아니라 가한(可汗) [칭기스 칸, 쿠빌라이 카안의 칸/카안과 같은 어원을 가진, 유목민들의 최고의 지도자를 호칭하는 칭호]이었다. 즉 뮬란이 활동한 북위라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유목민 군주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징집의 대상이 된 뮬란 – 정확히 말하면 뮬란의 아버지 – 은 누구였을까? 학자들마다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뮬란이 여성으로서 무예 능력이 있었고, 징집의 대상이 되었을 북위의 백성들 중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중국 북방에서 남으로 이주하였던 이들이었기 때문에, 뮬란이 북위를 세운 선비족 출신이라고 보는 설이 있다. 이런 점에서 뮬란이 한인이 아니라는 말은 상당히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이다.

22년 만에 실사화된 『뮬란』은 여러 가지로 ‘21세기적’인 영화이다. 과거와는 달리 중국과 동아시아에 대한 전 세계인의 이해가 높아져서인지, 영화 전반에 걸쳐 역사적인 고증에 좀 더 신경을 쓴 모습이 보인다. 또한, 제작사인 디즈니는 할리우드 영화계의 ‘화이트워싱(비백인 역을 백인에게 무리하게 캐스팅하는 것)’ 논란을 벗어나기 위하여 뮬란 역에는 한국 배우들과 여러 편의 영화를 찍어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유역비(劉亦菲)를 캐스팅했으며, 감독으로는 뉴질랜드 출신 여성 감독인 니콜라 카로(Nikola Caro)를 채용하여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확실히 우리는 1998년보다는 훨씬 더 다양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21세기가 그렇게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는 중국 내 팬들의 압박 속에서 유역비는 SNS에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라”는 메시지를 남겼으며 이로 인해 인터넷에서는 『뮬란』 보이코트 운동이 촉발되었다. 한편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100만 명 이상의 위구르인들이 “재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사실상 집단 강제 수용 시설에 갇혀 있는데, 『뮬란』 제작사 측에서 촬영에 협조를 해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지구에 대한 감사의 말을 엔딩 크레딧에 넣어 다시한번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화 시위와 촛불 혁명을 경험했던 우리들의 모습과 홍콩의 현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시대 ‘문화말살 정책’을 당했던 선조들의 고통과 현재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모습들이 겹쳐지며, 동아시아의 역사와 세계화를 같이 고민해야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방역의 성공, 이른바 K방역의 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뮬란』의 극장 개봉이 마냥 자랑스럽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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