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연 사람들

전시를 관람하다가 천장을 살펴보는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은 전시를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단풍으로 색감이 화려해진 한중연 캠퍼스에 장서각 특별전시가 시작되었다. 매년 여러가지 테마로 전시의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전시를 향한 열정이 단풍처럼 진한 왕실문헌연구실 하은미 선생을 만나보았다.


하은미 사진

2020년 장서각 특별전이 시작되었네요. 장서각 전시장에 가면 항상 선생님을 뵐 수 있어요.


2012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전시 담당 연구원으로 입사한 후, 매년 1~2회 장서각 소장 고문헌을 중심으로 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는 장서각아카데미를 담당하여 한국학에 관심있는 대중들을 위해 대중강좌를 꾸리고 있습니다.

장서각 전시실을 찾은 관람객은 짧으면 15분, 길면 1시간 정도 관람을 하고 장서각을 떠나십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위해 쏟아붓는 사람들의 열정과 시간은 어마어마합니다. 먼저 주제를 정하고 기획하는 데 장서각의 연구직 선생님들이 머리를 모아 고민을 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전시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자료를 열람하고, 촬영하고, 글을 쓰고, 원본 자료를 대여하고, 보존처리를 진행하고, 도록을 만들고, 전시시설물을 만들고 설치하는 일 등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은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가 없는 일이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전시는 여러 사람의 손으로 잘 차려진 밥상 같은 것입니다. 다만 밖에서는 관객에게 내드리는 일만 보이기 때문에 사실 여러 선생님들께 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전시 안내 한 번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인 것 같아요. 특히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을까요?


손이 닿았던 모든 전시가 다 애틋하지만, 아무래도 처음 연구원에 임용되었을 때 진행했던 건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타 기관에서도 전시 업무에 몇 번 참여한 적은 있었지만, 주도적으로 역할을 맡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출근한 첫날 두 달 후에 전시를 오픈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전시 주제도, 일의 진척 상황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손을 맞추는 것도 겁이 났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전시가 2012년 특별전 ‘조선의 공신’이었습니다. 유물 목록을 쳐다보며 과연 이렇게 많은 공신 초상을 모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각 박물관과 가문들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요청한다고 연락드리면 대부분 흔쾌히 응해주셔서 연구원의 위상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또 당시 이완우 관장님을 비롯하여 김학수 선생님, 윤진영 선생님, 박용만 선생님, 심영환 선생님 등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개막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선생님들 성함도 일이 닥칠 때마다 외워가면서 일했네요.


더불어 힘드신 일도 있으실 것 같아요.


전시 사진

가끔 전시 주제가 급작스럽게 바뀔 때가 있습니다. 준비하고 있던 자료를 하드디스크에 묻어두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은 저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니라 준비했던 구성원 모두 다같이 힘드니까 버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 자체는 바쁘게 돌아가더라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재미있어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트러블은 지나고 나면 다 자양분이 되고, 다음 전시 준비기간에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나 워낙 전시 업무는 쉴 새 없이 돌아가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들도 많아서 같이 참여하는 분들에게 죄송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장서각의 자료들과 선생님의 업무는 뗄레야 뗄 수가 없겠네요. 장서각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제 전공과 장서각 자료는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 없는 것이 더욱 많습니다. 다른 기관에서 전시를 하게 되면 많은 일들을 외부에 의뢰합니다. 그런데 장서각의 경우 “선생님, 이것 좀 부탁드립니다.” 하면, 마법주머니처럼 결과물이 뚝딱 나옵니다. 갑자기 열람·촬영·보존처리해야 할 자료가 생기면 위층으로, 번역할 것이 생기면 이쪽 방으로, 그림 자료가 나오면 저쪽 방으로 왔다갔다 돌아다니다보면 어느 순간 저에게 완성된 결과물이 도착합니다. 전시에 있어서 협업이 매우 중요한 데 장서각은 하나의 자료가 전시 진열장에 들어가기 가장 적확한 곳이 아닌가 합니다.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시겠네요. 일과가 끝나면 개인적인 여가시간은 무얼 하며 보내시나요?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계속 수련하지 못하고 있지만, 퇴근하면 바로 요가원으로 직행합니다. 언제쯤 다시 마음 편히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대학교 때 운동을 하다가 심하게 다친 이후 부상 방지를 위해 잔근육을 만들고자 시작한 요가인데, 저한테 잘 맞아서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아무 생각없이 거울 속에 비친 내 몸의 움직임과 호흡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이 매우 소중합니다.


오베르쉬즈우아즈_오베르 성당

오베르쉬즈우아즈_오베르 성당

인도_꾸뜹미나르

인도_꾸뜹미나르

세잔느 '생빅투아르' 그림과 엑상 프로방스

세잔느 '생빅투아르' 그림과 엑상 프로방스

중국 황산 여행

중국 황산 여행

주제를 정하고 여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것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잠정 중단이네요. 원래 올해 전시를 개막해 놓은 후 오스트리아로 날아가고 싶었는데, 언제쯤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에 갔던 프로방스 지역은 세잔느와 관련된 영화 한 편을 보고 바로 다음 날 프랑스행 티켓을 끊고 인상주의 화가들의 자취를 따라 다녔지요. 매년 쇼소인[正倉院] 전시를 보기 위해 나라[奈良]를 방문하고 교토[京都]의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사찰들을 둘러보기도 하구요. 최근에는 아버지와 함께 제주도 오름투어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 야구 보는 것도 좋아하고, 주말에 따릉이를 타고 우이천에서 중랑천까지 신나게 라이딩을 하기도 합니다. 즐길 거리가 너무 많아서 저러고 사나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주제가 있는 여행을 하신다는 것이 인상적이에요.


하은미 사진

다른 미술관과 박물관 전시를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장서각 자료와 연관된 전시를 휴일에 보는 것은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지요. 그렇지만 이런 전시든 저런 전시든 전시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천장과 벽체 뒤를 살피며, 조명은 어떤 것을 썼는지, 영상은 어떤 형식으로 상영하는지 카메라로 찍어놓게 됩니다. 시설물들을 살펴보며 여기는 예산이 얼마나 들었을까 계산해보고, 도록이 마음에 들면 제작업체를 메모해놓습니다. 혹시 독자들 중에 전시를 관람하다가 천장을 살펴보는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은 전시를 하는 사람이구나 하시면 될 거에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전시를 개막하고 나면 업무가 끝났으니 쉴 수 있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준비 기간보다 업무가 강도가 낮은 것은 맞지만, 소소히 전시실에 손을 댈 일들이 생기고 무엇보다 관람객 맞이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관람객이 더욱 뜸해졌지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1단계로 하향되었으니 그래도 많은 분들이 전시를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온라인 VR 동영상으로도 전시를 감상할 수 있으니 더 많은 분들이 장서각의 전시에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