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향기

그림 부채로 더위와 시름을 날리다

정은주 사진
정은주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장

여름이 시작되는 단오절에 선물하던 부채는 옛 문인들의 여름 필수품 중 하나였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선호하던 부채 그림의 소재는 폭포를 바라보는 관폭(觀瀑)뿐만 아니라 물에 발을 담근 탁족(濯足), 물가 바위나 정자에서 계곡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는 “최상의 선은 물과 같으니,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 때문에 도에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고 했던 노자의 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림 속 인물처럼 시원하게 흐르는 물을 보며 한 여름의 더위와 시름을 날리기 위한 목적도 컸다. 이에 옛 사람의 지혜를 빌려 독자 여러분께 ‘쿨’한 바람을 선사하려 한다.


세검정에 앉아 세찬 계곡물을 바라보다

그림 . 정선, <세검정>,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 정선, <세검정>,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널찍한 차일암의 암반에 세워진 T자 형태의 정자 위에 두 명의 선비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고, 그 주위로 북악에서 흘러내린 물이 반석 사이를 세차게 흘러가고 있다. 겸재 정선(1676~1759)이 부채에 그린 <세검정(洗劍亭)>이다. 세검정은 도성의 북쪽 창의문 밖으로 5리 거리에 위치하여 도성의 인후가 되는 요충지로, 그 지명은 인조반정 이후 반정 세력이 이곳에서 칼을 씻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됐다. 그림 속 원경에 보이는 백악산과 북한산의 산성은 영조 때 총융청을 이 인근으로 옮겨 도성과 북한산성을 방비한 시대 상황을 반영했다.

세검정 앞으로 흐르는 동령폭포(洞嶺瀑布)는 장마철에 물이 불어날 때면 도성 사람들이 나가서 구경할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다. 세검정 앞으로 세차게 흐르는 계곡물은 ‘국도팔영(國都八詠)’에 포함될 만큼 명승으로 꼽혔고, 많은 문인이 이곳에서 피서를 즐겼다.


성난 폭포 소리에 시름을 잊다

그림 2. 이인상, <송하관폭도>,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2. 이인상, <송하관폭도>,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가지가 심하게 굴절된 큰 소나무는 바위에 의지하여 위태롭게 기울고, 선비는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옆 바위 위에 명상하듯 고요히 앉았다. 능호관 이인상(1710~1760)이 부채에 그린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로, 병중에 있는 위암 이최중(李最中, 1715~1784)을 위해 그린 것이다. 그림의 왼쪽 여백에 쓴 “성난 폭포 절로 허공에 울리고, 시름겨운 구름 도성 하늘에 그늘 지우려 하네[怒瀑自成空外響 愁雲欲結日邊陰].”라는 시구는 연산군 때 사화에 희생된 박은(朴誾, 1479~1504)의 「역암(櫪巖)을 노닐며」 중 일부이다. 역암은 개성의 연경궁 북쪽 송악산 기슭에 있는 바위이다. 이인상은 난세에도 꼿꼿했던 젊은 선비 박은을 동경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폭도는 대개 처사가 폭포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이인상이 그린 선비는 먼 곳을 응시하며 폭포소리 삼매경에 빠져 세상 시름을 잊은 듯하다.


진주담의 영롱한 물줄기 만 갈래로 흩어지다

그림 3. 김윤겸, <진주담>, 1756년,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3. 김윤겸, <진주담>, 1756년, 국립중앙박물관

한 선비가 내금강 만폭동을 배경으로 수려한 명승 속 큰 너럭바위에 앉아 물끄러미 소(沼)를 바라보고 있고 그 옆에 시동이 다소곳이 서있다. 진재 이윤겸(1711~1775)이 1756년 부채에 그린 <진주담(眞珠潭)>이다. 진주담의 지명은 폭포수가 떨어지며 영롱한 구슬처럼 흩날리는 모습에서 유래했다. 채제공은 진주담을 “화려한 색채 영롱하니 맑게 갠 하늘색과 어울리고, 만 갈래 구슬 목걸이 흩어지네[浮彩玲瓏霽色宜 萬行瓔珞散離離].”라는 시구로 그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수량이 풍부한 내금강의 계곡은 낮은 암벽 위로 쏟아져 내려 폭포를 이루고 그 아래 너른 암반 주위를 돌아 소용돌이쳐 자글거리며 경쾌한 리듬감을 준다.


jeje@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