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과거사 자료의 학술적 가치와 활용의 현주소

곽병훈 사진
곽병훈
연구처 연구정책실 선임연구원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주화운동에 영향을 주었으며, 민주화과정에서 진상 규명을 통해 나온 자료들은 이런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부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18개 과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수집자료, 조사보고서, 일반 행정기록 등 다양한 과거사 자료들을 생산해 냈다. 이들 과거사 자료는 지난 과거의 기록과 민주화운동 역사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귀중한 연구 기초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자료는 학술적 가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실질적으로 활용되지 못한 채 사장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관련 자료들이 현재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인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었거나 이관 중에 있으나 자료 가치에 대한 인식 결여로 인해 자료 접근성이 상당 수준 제약되어 있다. 특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과 1950~80년대 인권 침해 사건(간첩, 공안 등 국가폭력 사건) 등 한국 현대사 및 국가폭력과 관련된 다양한 사건 사례를 보고ㆍ정리한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자료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않고, 학계나 한국 근현대사(정치사, 문화사, 사회사 등) 연구에도 체계적으로 반영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과거사위원회가 수집ㆍ생산한 기록물 가운데 일반 행정기록은 위원회와 관련한 각종 법규나 지침 또는 급여나 예산 운영 기록, 근무상황 등과 같이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생산ㆍ접수되는 기록으로, 위원회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그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다(임희연, 2008). 과거사위원회의 조사기록은 위원회가 생산한 가장 중요한 자료로서 위원회의 활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자료다. 이들 대부분은 그동안 묻혀 있던 진실을 규명해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소중한 기록이다. 과거사위원회의 생산 기록물 가운데 일반 공공기관에서 생산되는 기록물과 그 성격이 차별화되는 자료가 이 조사기록이라 할 수 있다(이인주, 2009). 마지막으로 수집자료는 조사기록을 만들어내는 기초자료로 활용되는 과거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수집자료는 위원회의 주 업무인 조사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국내ㆍ외 출장 등을 통해 수집하거나 기증 받기도 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문서뿐만 아니라 오래된 사진, 음반, 상장, 오디오테이프, 편지 등의 시청각류와 행정박물류도 있다. 이 수집자료는 학술 연구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기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수집자료 역시 조사기록 못지않은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임희연, 2008).


과거사위원회의 수집ㆍ생산 자료의 연구 활용 가치

구분 내용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민간인 학살을 비롯해 권위주의 통치기 국가폭력과 관련된 다수 사건, 간첩조작 사건 등의 연구자료로서의 가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 인혁당 사건과 관련된 장석구 사례, 학생운동 관련 가수 사건 등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사 사건 등의 연구자료로서의 가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 일제 식민시기 관련 주요 쟁점(재산환수의 근거, 강제징용의 성격 등) 등의 연구자료로서의 가치()

5.18(광주)민주화운동보상지원위원회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 주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부의 성격 규명과 정부의 권위주의 통치 규명 등의 연구자료로서의 가치()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 한국 현대사의 주요 흐름과 주요 방향 정립 등의 연구자료로서의 가치()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및명예회복위원회

▪ 한국 전쟁기 전후 민간인 학살 등의 연구자료로서의 가치()

삼청교육피해자보상위원회

▪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주요 내용 등의 연구자료로서의 가치()

국방부과거사위원회

12.12, 5.17, 5.18 사건과 사회정화조치 관련 법난 등의 연구자료로서의 가치()

경찰청과거사위원회

▪ 불법 선거 개입, 민간인 사찰, 용공조작, 서울대 깃발 사건, 민청련 사건, 유서대필 사건, 자주대오 사건, 남민전 사건, 보도연맹 사건, 대구 10.1사건, 나주부대 민간인 피해 사건 등의 연구자료로서의 가치()

국정원과거사위원회

▪ 부일장학회 및 경향신문 관련 사건,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 동백림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김형욱 실종 사건, KAL기 사건, 남조선노동당 사건 등을 중심으로 한 한국 현대사 재조명 및 전교조 사건 등 국가폭력에 의한 민주화운동 탄압 사례(사법, 노동, 간첩) 등의 연구자료로서의 가치()


이런 맥락에서 과거사위원회의 대표 사례로 여겨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South Africa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의 경우 투명한 공개 원칙을 통해 생산자료의 연구 자원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독일 또한 2000년 별도 재단(‘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Remembrance, Responsibility and Future]’ 재단)을 설립해 과거사위원회 기록물들의 전자아카이브화를 통해 학계 및 전문가 등에게 소중한 연구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관련 연구ㆍ교육 프로젝트도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과거사위원회의 각종 자료들도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손쉽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식하고 진실 규명을 위해 생산된 자료들을 연구와 연계시키려는 다른 나라의 노력은 한국의 현실에 비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현재 과거사위원회가 수집ㆍ생산한 자료에도 일반행정기관의 공공기록물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자료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과거사 자료들의 연구 공공자원화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kbh3440@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