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연 사람들

수많은 민원을 대응하며 오로지 학문적 견지에서 승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세계 최초의 민족문화사전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대표하는 성과물이다. 오늘은 이 방대한 사전 편찬에 열정과 자부심으로 무장한 백과사전편찬실의 강재광 연구원을 만나보았다.


강재광 사진

하시는 일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저는 2009년 백과사전편찬실에 전임연구원으로 입사했어요. 이후 편찬실에서 쌓은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2012년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전임연구원 시절과 정규직 연구원 기간을 합하여 총10년 넘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하 ‘민백’)을 개정하고 증보하는 사업을 담당해 왔습니다.

현재 백과사전편찬실 원고팀장으로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요. 민백 항목 개발 및 선정 작업에서부터 원고전수조사, 항목 교열·교정, 내부집필, 편찬지침서 정비, 대국민 민원 응대 업무 등 민백 원고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원고팀 연구원들과 더불어 수행하고 있답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대표적인 성과로 주목되고 있는데요. 향후 편찬방향이나 개정 계획이 있나요?


강제광 사진

민백이 본원을 대표하는 인문학 출판사업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한중연 교직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민백은 우리나라 최고의 한국학종합전문사전이자 세계 최초의 민족문화사전이기도 해요. 민백 초판본(총 27권)은 1991년 12월에 발간되었는데요. 1980년부터 1991년까지 3,800여명의 국내의 교수급 집필자가 참여해서 6만 5천 항목, 42만매를 집필하는 위대한 업적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주도하여 추진한 편찬사업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초판본은 1990년대 초중반 7만여 질이나 판매되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민백의 인기와 관심도를 실감할 수가 있어요. 민족주의 전성시대에 그리고 우리나라 경제개발이 최고도에 올랐을 때 민백의 인기는 최고조에 있었다고 할 수가 있죠.

이러한 민백은 2001년에 CD-ROM판으로 발간되어 컴퓨터에서 전자문서 형태로 항목을 열람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후 민백 초판본 종이사전을 인터넷에서 웹 서비스하기 위해 민백 개정증보사업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진행되었습니다. 민백 개정증보사업은 한국학진흥사업단 수탁연구과제였으므로 사업구조가 불안정하였고 예산 규모도 적어서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임연구원 선생님들의 분투와 노력으로 신규항목 1만여 개를 증보한 점은 큰 결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현재 민백 사업은 본원 출연금 사업으로 전환되었는데, 2018년부터 2027년까지 10개년 간 1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지속편찬사업이 추진될 예정입니다. 이번 지속편찬사업에서는 기존원고에 대한 전수조사사업과 신규항목 증보가 중점을 이루고 있어요. 원고전수조사사업은 민백 기존원고를 학계의 연구자들과 연구용역 계약을 체결해서 항목검토를 요청하여 오류를 수정하고 학계 연구성과를 충분히 반영하려고 기획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 현대사, 북한, 해외문화, 문화재 관련 신규항목을 대거 증보해서 민백의 현대 부문을 확장하고 전통과 현대의 비중을 균형있게 맞춰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담고 있는 사전인 만큼 여러 경로로 제기되는 민원도 많을 것 같아요.


강제광 사진

민백의 현재 항목 수는 7만 5천개 정도 됩니다. 민백에 수록된 항목이 많고 주제별 분야도 다양하다보니 엄청난 양의 민원 제기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건 민백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민백이 민족문화사전이자 한국학종합사전이다 보니까 제기되는 민원의 유형도 무척이나 다양하죠. 단순 오탈자 수정 요청에서부터 문중 다툼, 이념·사상의 대결, 그리고 학계 정설을 배척하는 이설(異說) 등재 등등 민원의 유형은 천차만별이랍니다. 한 해에 대략 3,000건 내외의 민원이 접수되는 실정이라서 한국학사전편찬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민백 편찬사업에서 제기되는 민원의 루트는 크게 ‘온라인 민원’과 ‘오프라인 민원’으로 양분됩니다. ‘온라인 민원’은 <네이버 지식백과> 및 <카카오 백과사전>에서 인터넷 웹 서비스되고 있는 민백 민원이 중심을 이뤄요. 특히 <네이버 지식백과> 측에서 제기되는 민원 수량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한 해에 2,000여 건 이상 접수되고 있답니다. 이와 같은 포털사이트 온라인 민원 이외에도 본원 홈페이지 사이버민원실 창구로 접수되는 민원도 있는데 본원 사이버민원실 민원의 대다수가 민백과 관련된 민원이라서 백과사전편찬실 민원 담당자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처지이지요. 저는 2012년 10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온라인 민원’을 담당하였고, 이후부터는 ‘오프라인 민원’을 전담했답니다.

‘오프라인 민원’은 전화, 우편, 이메일, 방문 등으로 접수되는데, 문중 관계자나 이익단체, 국가기관 등의 민원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형편입니다. ‘오프라인 민원’ 중에서도 전화 민원이 가장 많아요. 한 해에 1,000여 건이 넘는 전화 민원이 접수되고 있는데, 단순 문의가 대부분입니다. 백과사전편찬실은 이러한 단순 전화 민원도 가볍게 보고 있지 않으며 친철하고 적절하게 응대하고 있답니다.


말씀해주신 민원 중 기억에 남거나 시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들이 있나요?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민백 편찬사업을 수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민원은 전통시대 인물 민원이 아니었나 싶어요. 민백 편찬사업에서는 문중 인물 민원이 제일 난감해요. 문중의 어르신들이 백과사전 내용을 고쳐달라고 강하게 항의하시거든요. 그분들은 자기 문중에게 유리한 것은 종교적 신념처럼 신봉하기도 합니다.

‘장하(張夏)’의 본관을 결성(結城)에서 단양(丹陽)으로 바꾸어 달라는 민원이 있었습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해 본 결과, 『고려사』에 등장하는 장하 인물은 본관이 결성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동명이인(同名異人)이었던 단양장씨 측의 장하는 결성장씨 측의 장하와 행적이 달랐습니다. 따라서 민백 장하 항목의 서술내용을 고칠 필요가 없었죠. 그러나 단양장씨 문중의 민원인이 백과사전 내용을 수정해주지 않는다면서 저와 백과사전편찬실장을 청와대 국민신문고, 감사원 및 교육부 등에 고발해서 엄중히 처벌할 것을 요청한 사건이 있었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했었죠.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자괴감도 많이 들었지만, 오로지 학문적 견지에서 승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저와 실장님(당시 박용만 실장)은 장하 민원관련 자료를 교육부 및 감사원 공무원들에게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해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로써 2년 넘게 진행된 쟁점이 무사히 해결될 수 있었어요.


연구원에서 오래 근무하셨는데 연구원에 대한 느낌을 여쭤보고 싶어요. 또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연구원은 한국학 연구기관으로는 국사편찬위원회 다음으로 역사가 깊습니다. 자연환경도 수목원 같은 느낌이 들어서 포근하고 정겹습니다. 건물형태는 청와대 건물과 유사한 점이 많고 고풍스럽기까지 합니다. 깊은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는 우리 연구원은 어느 인문학 연구기관에 견주어도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연구원이 한국학 진흥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재광 사진

제가 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잊지 못하는 순간은 2017년 6월에 개최된 민백 국내학술대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 사업의 회고와 전망』)에서 나름 의미 있는 발표를 했다는 점입니다. 그 당시 저는 수탁연구과제로 수행되었던 민백 개정증보사업을 마무리하느라고 불철주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국내학술대회에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년 편찬사업의 성과」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었는데, 민백 개정증보사업의 성과뿐만 아니라 향후 발전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기조연설을 하셨던 조동일 명예교수님의 민백 발전에 대한 격려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백 지속편찬사업의 토대가 되었던 국내학술대회였던 만큼 평생 잊기 어려운 순간이었습니다.

향후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민백 지속편찬사업의 성공과 민백의 대중화·세계화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민백 지속편찬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백과사전편찬실에 실력 있고 경험이 풍부한 연구원들이 많이 배치되어야 하고 애초 교육부에서 약속한 예산(100억 원)이 지속적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민백의 대분야가 13개이므로 적어도 10명 정도의 연구원이 원고팀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민백 지속편찬사업이 초창기라서 원장님과 원무위원님들께서 우리 백과사전편찬실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주신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아울러 민백 지속편찬사업과는 별도로 민백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 『전통시대 인물전문사전』이나 『영문백과사전』 등을 편찬하는 사업을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사업은 교육부를 설득해야하고 기재부로부터 예산을 따내야 하므로 본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로지 민백 하나만을 추구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기 때문에, 민백 사업은 그대로 유지하되 민백에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다양한 편찬사업을 전개해야 합니다. 저희 한중연의 미래를 보아서도 이러한 사업은 필수적으로 요청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