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아름드리

장애인 차별의 역사, 그 근원을 추적하다

정창권 사진
정창권
고려대학교 교수

장애인 차별의 역사는 근대부터 본격화되었다
우리 역사에서 장애인은 언제부터 차별을 받아왔을까? 지금까지 필자는 주로 여성, 장애인, 기타 하층민 등 역사 속 소외계층을 연구해왔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문학동네, 2005)에서는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장애인 복지정책과 각 유형별 장애인사를 개괄적으로 검토했고,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글항아리, 2011)에서는 그 시기의 다양한 장애인사를 사료와 함께 심층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장애 문제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근대, 특히 일제강점기에 본격화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복지정책과 사회적 인식은 대단히 선진적이었다. 당시 장애인은 일반 사람들과 더불어 스스럼없이 살아갔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훨씬 덜했다. 양반층의 경우만 해도 과거시험을 치러 정1품 정승의 높은 벼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조선시대 장애인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근대, 특히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장애인사는 크게 위축되었다. 일제강점기엔 근대화, 산업화, 식민지적 상황으로 인해 장애인의 수가 급증한 반면 그들을 위한 복지정책은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또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어서, 이제 장애인은 동정과 비유의 대상을 넘어 놀림과 학대,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장애인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택하기도 했다. 이렇게 근대는 장애가 하나의 ‘낙인’, 즉 사회적 질곡이 되고, 지금과 같은 편견과 차별, 배제로서의 장애인사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던 시기였다. 다시 말해 현대의 장애 문제는 조선시대가 아닌 근대 이후에 비롯되었던 것이다.


근대에 ‘장애’가 출현하게 된 배경은 과연 무엇인가?
근대 장애인의 사회적 처지는 장애에 대한 용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장애인은 공식적인 기록에선 잔질(殘疾), 폐질(廢疾), 독질(篤疾)이라 했고, 민간에서는 ‘병신’이라 부르곤 했다. 장애를 병, 특히 고치기 어려운 고질병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런데 본디 ‘병’이란 언제든지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 용어이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장애(disability)’란 항구적으로 뭔가를 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 용어이다. 실제로 옛 사람들은 『삼국유사』의 <맹아득명(盲兒得明)>이나 『심청전』의 심봉사처럼 장애를 언제든지 나을 수 있다고 여겼다. 다시 말해 전통시대의 장애는 그저 개인적인 장애에 국한되었고, 오늘날처럼 사회적 장애, 즉 낙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불구자’란 용어가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했다. 불구자는 ‘후구샤(不具者)’란 근대의 일본어에서 유입된 용어로 뭔가를 갖추지 못한 사람, 즉 몸의 기능이 결여된 사람이요,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렇게 근대, 특히 일제강점기에 이르면 장애에 대한 용어부터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또한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일제강점기에 이르면 과도한 사회적 ‧ 경제적 수탈로 인해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면서 장애인의 수는 급증한 반면 그들을 위한 지원정책은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그 결과 장애인은 거리로 내몰려 구걸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은 장애인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1930년대에는 우생학이 확산되어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심화시켰다. 우생학은 정신장애인을 비롯한 각종 장애인들을 국가나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존재로 간주하는 한편, 알코올 중독자나 상습 강간자 같은 중독, 범죄의 한 부류로 취급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시키고 장애인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데 과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다시 말해 이제 장애인은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일 뿐 아니라 세상에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장애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
지금까지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은 지나치게 복지나 제도, 법 개선 같은 사회과학적 측면에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실상 장애 문제는 특수학교 설립반대, 장애아 학대사건, 정신장애인인 조현병의 범죄시 같은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학교나 정부, 언론, 기업 등에서 장애 인권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양성평등교육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젠더토크콘서트-문학, 미술, 음악 속의 젠더 이야기’ 같은 융합적이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개발하여 보다 쉽고 재미있게 장애 인권 교육을 실시했으면 한다. 또 사회복지학과나 특수교육학과에서도 ‘한국장애인사’와 같은 인문학적 과목을 개설하여 장애에 대한 이해부터 교육했으면 싶다.

장애인은 우리 역사의 한 축을 이루어왔다. 한국사의 최대 암흑기인 근대에도 다양한 방면에서 커다란 업적들을 남겼다. 그처럼 소중한 인재들을 현대에 이르러 ‘장애’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배제하려고 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