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연 사람들

낯선 곳에서는 저도 새로워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국학진흥사업단은 국내외의 한국학 연구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을 하는 기관이다. 한국학이 국내외에서 더 크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사업기획실 최병용 실장을 만나보았다. 그의 꿈처럼 한국학의 장기적인 여행이 이곳, 한중연에서 시작되길 바란다.


최병용 사진

한국학사업단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중책을 맡아 힘드실 것 같아요.


해외 현지 사업 설명회 :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지역

해외 현지 사업 설명회 :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지역

한국학진흥사업단은 국내외의 한국학 연구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을 하는 기관입니다. 특히, 글로벌 한국학 거점 지원, 국제적 한국학자 양성, 한국학 기초자료 수집 및 DB구축을 통한 연구기반 강화와 확산을 위해 글로벌 한국학, 한국학 인프라 구축사업, 한국학 총서 사업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학술 성과 57만여 건은 한국학성과포털(http://waks.aks.ac.kr)에 DB형태로 축적되어 있어 연구자분이 기초자료로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한국학진흥사업의 전반적 기획·예산·성과관리·홍보 부문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작년 7월에 실장으로 처음 정식 보직을 맡았습니다. 아직 병아리 실장이지요. 새로 신입 사원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배워야 할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팀원 들에게 답답한 업무에 대해 혜안을 제시하는 작은 하늘이 되고 싶었는데요. 아직까지는 요원한 일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병아리는 예쁘기라도 하지 전 예쁘지도 않잖아요. ^^

여러 부서를 거쳐 사업기획실에 오셨는데 제일 재미있었던 업무는 무엇인가요?


나름대로 다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추억은 늘 아름다움으로 채색된다고했는데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힘들었던 일 조차 아름답게만 느껴집니다. 재미있는 일도 많았는데요.^^

처음 연구원에 입사했을 때는 재무회계팀의 회계 업무를 맡아 근무했었는데 오자마자 강원도로 워크숍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남정삼 국장님이 계셨었는데 직접 가져오신 복분자주가 너무 맛있어서 많이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한참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리를 쿵하고 탁자에 찧었는데, 이마에 피가 난다고 동료 선생님들이 난리가 났었습니다. 저도 거울을 보고 피가 나는 줄 알고 깜짝 놀랐지요. 사실은 초고추장이 범인이었습니다. 참 지금 생각해도 웃을 수 밖에 없는 기억이네요.

그리고 예전에는 노란 봉투에 월급명세서를 담아서 월급날마다 배포를 했었는데 이것이 전산화되어 이메일로 배포되다가 나중에는 종합정보시스템으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모든 시스템이 투명해지자 모두들 편리하다고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그동안 월급 중 일부를 배우자분 모르게 사용하시던 선생님들은 월급명세서를 손수 만드시는 등의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의 내역과 차이가 나면 안되니까요. 모든 것이 확실하게 기록되는 전산화의 편리함 뒤에 숨겨진 씁쓸한 단면이지요.

가장 보람이 있었던 업무는 교학실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업무인데요.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졸업 논문이 통과되고 학위기를 받을 때 행복감과 성취감이 교차하는 짧은 눈빛을 보면 새삼 뿌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비록 학생들을 위해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고 행정적인 업무 처리만을 담당했지만, 그 순간을 함께 한다는 그런 느낌, 그들의 행복이 저에게 빛이 되어준 순간이었습니다.

근무가 없을 때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그동안은 참 편하게 살았나 싶네요. 여가 시간에 집중적으로 무엇을 한 건 없는 것 같아서요. 그냥 그 때 그 때 하고 싶었던 것을 하였을 뿐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퇴근 후에는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과였는데 제가 주로 공룡 또는 상어(죠스) 같은 역할이었고 아이들은 도망치는 역할이었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제가 아이들을 잡으면 저는 더 나쁜 공룡이 되어야 하고, 아이들은 또다시 도망치는 역할이 반복되었죠. 그래도 그때는 공룡 등으로라도 활용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중학교에 간 이후부터는 놀이터와 함께 저도 처참하게 버려져서 재활용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r가족사진

여행의 동반자이자 항상 힘이 되는 가족

그 이후에는 역할이 바뀌어서 첫째 아이가 중간고사에서 시험을 망치고 돌아오면, 같이 원인 분석을 하고 노력하여 다음번 시험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한다든가, 둘째 아이가 국어는 자기와 맞지 않는 과목이라고 좌절을 하면 도서관에서 그냥 같이 재밌는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던가 하며(물론 맛있는 점심을 사주는 것은 필수이구요^^) 어느덧 같이 고민하는 사이가 되었네요.

그래도 예전만큼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은 없는 것 같아서 항상 아쉽구요.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가장 소중한 가족과 자기 자신은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매일 학원가서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데 과연 그 시간이 정말 값어치 있게 사용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많이 듭니다. 어쩌면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부모와 함께하는 것이 더 많은 가르침을 주지 않을까요?

학원에서 속성으로 배우는 것보다는 부모와 함께 성숙된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 앞에서는 함께할 시간이 늘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매년 가족이 함께 떠나는 해외 여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낯선 여행지에서 집중적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만드는 거죠. 해외 여행은 국내와는 다른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고, 휴대전화 등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가족들이 시간과 경험을 오롯이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국내 여행에 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데요. 그래도 저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해외 여행이 더욱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돈보다 소중하고 한번 가버린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으니까요.


마지막 말씀이 의미심장 하네요.^^ 여행이야기를 좀더 들려주세요.

네. 지금까지 ‘15년 일본, ‘16년 베트남, ‘17년 이탈리아, ‘18년 태국, ‘19년 유럽(영국, 프랑스, 독일, 핀란드)을 다녀왔습니다. ’15년 이전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크게 기억에 남을 것 같지 않아서 가지 않았었습니다. 매년 짧게는 3박 4일, 길게는 2주일 정도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사실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길게 해외 여행을 가기도 힘들 것 같아서, 아마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에 다시 여행을 시작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가볍게 여행사 패키지 여행을 했었구요. 편하긴 제일 편한데 시간 제약이라든가 쇼핑이라든가 원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이탈리아 여행 때부터 자유여행으로 계획을 짰습니다.

그중 이탈리아 여행은 저희 가족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첫 자유여행, 내가 기획한 여행, 장기 여행(12박 14일), 가보고 싶었던 유럽 여행, 13시간의 오랜 비행 시간, 현지 렌트카 여행 등등 기존과는 색다른 새로운 여행이었습니다.

최병용 사진

(좌)천사의 성(산탄젤로 성) 앞의 다리에서, (우)로마 콜로세움

첫 번째 자유여행지로 이탈리아를 선택한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를 꽃피운 찬란한 이야기와 문화유산이 있는 곳이라 늘 동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가보고 싶어하는 유럽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맛있는 음식(파스타, 피자, 스테이크, 크라상, 젤라또, 커피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안에는 또 다른 나라 “바티칸 시국”에서 흔히 알고 계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카라바조 등의 작품을 본것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탈리아는 모든 게 새로웠고, 우리 나라처럼 남북으로 긴 반도 국가여서 북쪽과 남쪽의 지방색이 많이 다른것도 신기한 점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남부의 음식이 훨씬 더 맛있었고 북부보다는 남무 사람들의 성격이 더 급했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밀라노같은 북부의 산업화된 도시보다 남부 지역이 훨씬 매력있는 곳이었어요.

아씨씨의 성프란체스코 성당 전경

아씨씨의 성프란체스코 성당 전경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라는 곳은 렌터카가 없다면 여행하기 힘든 곳이어서 렌터카 중심의 여행루트를 짜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겨울에도 오렌지가 열리는 신기한 곳이었고, 강렬한 태양과 바다가 환상적이었어요. 특히 아이들은 드디어 박물관, 미술관으로부터 해방되어 정말 행복해했습니다. ^^

남부 여행을 하며 1월 1일 신년 미사를 아씨씨의 성프란체스코 성당에서 드렸것도 기억이 납니다. 이탈리아어라서 미사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되는 그런 미사였어요. 동양인이 미사를 참석하고 있으니 그날 우리가족은 각별한 관심을 받았고, 잘은 모르지만 이탈리아어로 새해 인사도 많이 받았었던 것 같아요. 참 고즈넉하고 담백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이탈리아 사람들도 죽기전에 꼭 가보고 싶어하는 신앙의 모태같은 곳이라고도 하네요.

이 여행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여러번의 여행이 더 있었지만 처음의 의미가 너무 강했기에 여행하면 할수록 이탈리아의 모습과 그때 여행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더욱 생각나곤 합니다.

진정한 워라밸을 실현하고 계신 것 같아요.


혹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입사하고 싶은 분들은 이러한 부분도 고려해보셔야 할 것 같네요. 휴가를 업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자유롭게 쓸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월급은 대기업보다 많지 않지만 연구원에 다니면서 일과 삶의 균형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아요. 연구원에 다니기 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행복이지요. 물론 그나마 업무가 적은 연말/연초에 여행을 떠났구요. 연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왠만하면 휴가를 아끼는 편입니다. 차곡차곡 저축하여 업무 공백이 있는 시기에 장기여행을 떠나는 거죠. 가장 바쁠 때 휴가내면 상식적으로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되겠죠. 이런 부분을 감안해서 늘 여행하기엔 좀 추운 한겨울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떠나는 게 어디인가요 ^^

가족이 모두 해외로 떠나려면 비용이 정말 많이 들지 않나요?


그리고 해외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비용이 많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만, 항공권 및 호텔을 얼마나 일찍 예약하느냐에 따라 절약할 수 있는 팁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내년 1월에 계획이 잡혔다면 비행기 티켓은 8월에 미리 예약하고, 호텔도 2-3개월전인 10월 정도에 예약을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현지 철도 등 교통편 등도 최소 두 달 정도 전에 예약을 하면 좀더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이 가능합니다. 예약 시기에 따라 금액이 최대 두 세배 차이가 납니다. 호텔은 최소 3성급 이상 중에서 깨끗한 곳 그리고 미국식 조식이 나오는 곳을 위주로 선정하고 있어요. 어차피 외부 관광이 주요 목적이므로 호텔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행 초기에는 호텔을, 여행 후반기에는 아파트형의 레지던스 등을 예약해서 현지 음식이 먹기 힘들어지면 현지 슈퍼 등에서 식재료를 구해 간단한 음식을 조리해 먹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에 컵밥 등의 휴대용 음식이 잘 나와 있어서 캐리어에 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특히 외국 음식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이 더 좋아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날은 5성급의 꽤 좋은 호텔에서 묵을 수 있도록 배려했었습니다. 경비를 절약하는 것과 인색한 것은 다른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마지막이 좋으면 항상 좋았던 기억만을 간직하지 않을까라는 저희 희망사항입니다.^^

다음 여행도 계획중이신 거죠?


태국에서 아이들이 만들었던 디저트 요리

태국에서 아이들이 만들었던 디저트 요리

여행지는 집이 아닙니다. 잘 모르는 곳에 가는 것애 대한 불편함이 있지만 설렘도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과 장소를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상황에 놓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해진 일과만을 반복적으로 살다보면 '그 안에 적응되어 있는 나'만을 알게 되는데, 사실 그 모습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나 자신을 잊기전에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곳에서는 저도 새로워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장기간의 여행은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풍요로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여행은 꼭 먹고 즐기기 위해서 가기 보다는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인처럼 살아보자는 취지로 현지의 시장, 마트, 작은 빵집, 작은 음식점, 버스, 철도, 렌트카 등도 이용하였습니다. 저는 미술관 및 박물관을 견학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이들은 지금도 시장과 마트 갔던 것과 길거리 음식 먹었던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 그리고 현지에서 직접 요리를 한다든가하는 체험 활동이 더 많은 행복과 추억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한번은 태국을 여행 할 때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된 적이 있었습니다. 렌트카 회사에 전화를 했지만 두 세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근처에 있는 자동차 수리점을 찾았습니다. 수리점을 찾기 매우 어려웠지만 식사를 했던 식당 종업원께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셔서 수리점을 찾을 수 있었고, 말이 통하지 않자 그 분이 통역까지 해주셔서 차를 고칠 수 있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친절한 사람을 만나 어려운 일을 해결하면 참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런 경험때문에 여행을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최병용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은 모두들 그렇겠지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미래는 사전적으로 ‘앞으로 올 때’라고 정의되어 있네요. 그런데 ‘현재’는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상태’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제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지만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아 잘 모릅니다. 따라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재를 즐기며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은 세울 수 있지만 그 계획대로 전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고, 결국 변화된 미래에 대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 미래 행복을 결정하지 않을까요?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속된 한 사람으로서 우리 연구원을 바라볼 때, 과거에는 국내 한국학 분야 연구에 좀 더 중점을 두었다면, 현재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따라 한국학의 국제화 시대 환경이 갖추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국내외 한국학을 지원하고 있는 한국학진흥사업단에 있고 그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에 큰 보람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지원 환경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노력하여 한국학이라는 이름이 국내외에서 더 크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한국학은 아직 완성된 학문이 아니므로, 이것 또한 새로운 곳으로의 장기 여행이 되겠네요.(웃음)

ithink@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