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연 사람들

한국학진흥사업단 부단장, 김창겸

무르익은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이번 달에는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서 신라사를 연구하며 왕성한 학회 활동에 푹 빠진 한국학진흥사업단 김창겸 부단장을 만나보았다.


이준녕 사진

입사당시 연구원을 기억하시나요?


신라와바다 사진

생각해 보니, 참 오래 되었습니다. 입사한 것은 1983년 6월입니다. 저는 처음에 일간신문에 게시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편찬할 편수원을 공개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지방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원서를 접수하고자 연구원을 찾아오는데, 경상북도 김천에서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출발했지만 길을 묻고 물어서 연구원에 도착하니 오후 늦은 시간에야 도착했습니다. 당시 백과사전편찬부는 우리 연구원 가장 위쪽에 있는 건물인 지금의 운중관(당시 문형관) 2층에 있었는데, 건물 현관을 들어서니 입구부터 일직선으로 아주 넓고 깨끗한 진홍색 카펫트가 깔려 있었습니다. 보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아주 조심조심 계단을 따라 올라갔지요. 행정실에 가니 근무하던 직원이 신발을 벗어 든 내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란 표정을 짓다가 곧 웃으면서 여기는 신발을 싣는 곳이라고 말해 주어서, 엉거주춤 신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우리 연구원 정식명칭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었습니다. 이 이름 때문에 밖에서는 우리 기관을 시니컬하게 보곤 했는데, 저는 이곳에 근무하는 것이 엄청 좋아서 신나게 자랑을 하면 일부 대학 교수님들이나 대학 친구들은 나에게 정신병원에 취직했다고 우스개소리를 하며 ‘입사’한 것이 아니라 ‘입원’한 것이다, 인턴이냐? 레지던트냐? 하며 놀리곤 했어요. 참 고약한 분들이었습니다.(웃음) 하지만 저는 그것은 당시 학계와 국민들이 우리 연구원에 갖는 기대와 관심이 그만큼 높았음을 반영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저는 매우 오랜 기간 근무하고 있으니, 추억을 이야기 하자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계획으로는 퇴직후에는 시간적 여유가 있을 테니, 연구원 생활하면서 겪었고 느낀 희로애락을 담은 회고록을 집필해 볼까 합니다.


하루하루 바쁜 날을 보내고 계시죠?


USC 한국전통문화도서관 자료수집을 위한 업무협의

(좌)2017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심포지엄 / (우)USC 한국전통문화도서관 자료수집을 위한 업무협의

제가 출장을 많이 다닌다는 것이 알려졌나 봅니다. 지금은 거의 다니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바쁜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진흥사업단은 교육부로부터 수탁을 받아 글로벌 한국학 거점 및 인력양성을 통한 해외 한국학 인프라 강화, 한국학 기초자료 수집 및 테이더 베이스 구축을 통한 한국학 기초연구, 한국학 연구력 강화를 통한 국내외 한국학 위상 제고하는 사업을 하며, 매년 약 300억이란 예산을 집행하는 부서입니다. 이런 까닭에 사업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구기획은 물론 연구과제를 개발하고, 국내와 해외에 소재하는 대학, 연구소 그리고 연구자들에게 연구과제를 공모하여 선정하고 그 진행과정을 매 과제별로 선정평가, 연차 평가, 최종결과 평가, 재심평가, 이의심의 등 단계별 평가업무가 매우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출장 보다는 연구과제 개발과 평가업무 등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출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제가 출장을 자주 다닌 것은 사실입니다. 작년까지 제가 한국학지식정보센터에서 진행중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편찬사업의 실무 잭임자인 문화콘텐츠편찬실장으로 일하던 시절에 참 많이 다녔지요. 이 사업은 전국 230개 기초 지방자치단체와 많은 해외동포가 거주하는 10개 권역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라, 편찬연구사업을 진행하려면 현장의 역사문화콘텐츠를 확인하고, 또 관계자와 업무를 협의하기 위해서는 새벽에 출발해 밤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심지어는 해당 지자체의 사정에 따라 일요일 오후에 출발해 밤늦게 현지에 도착해서 숙식하고 월요일 아침 7시나 8시에 시장·군수와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참 그러고 보니, 이 기회를 빌려서 그 일을 함께 하셨던 지식정보센터 직원분들에게 수고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라와 바다’ ‘일제강점기 언론의 신라상 왜곡’ 등 ‘신라’에 관한 소재로 논문도 많이 쓰시고 책도 많이 내셨어요.


신라와바다 사진

한국 역사연구에서 모든 시대사와 분야사가 중요합니다만, 제가 신라사를 연구하는 이유는 우리 민족과 문화의 토대가 신라에서 형성되어 오늘날 계승 발전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에는 고구려, 백제, 가야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 발전되어 오던 것을 신라가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동일한 민족과 역사문화를 성립시켰다고 봅니다. 이것은 통일신라가 지금 우리의 민족과 역사문화를 만든 하나의 큰 호수와 같은 구실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라는 오늘날 우리 민족과 문화의 오리진이라고 보겠습니다.

저는 연구저서도 틈틈이 출간하고, 연구논문은 매년 등재 학술지에 한두 편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연구자에게는 연구가 기본이기 때문에 하지 말래도 하는 것이 연구이지요. 그래서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조만간 신라 하대의 국왕과 정치사를 다룬 또 한권의 책을 출간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얼마 전에 출간된 ‘신라와 바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전문연구서치고는 제목이 간단명료하여 눈에 쏙 들어옵니다. 그리고 문장도 아주 쉽게 썼습니다. 이 책은 신라의 역사문화를 바다(해양)와 연계하여 이해한 연구서인데, 신라 상대는 동해를 통한 신라의 국가 발전을, 중대는 서해(황해)를 이용한 신라의 삼국통일과 번영을, 그리고 하대는 주로 남해를 통한 신라인의 해외 진출이라는 발전적 관점에서 연구하였습니다. 결국 신라시대 역사 발전과 문화의 시기적 특성을 동해, 서해, 남해 바다(해양)를 통해 계기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신라해양사(新羅海洋史)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특히 종래에는 신라 하대 정치사회를 내부적 변화에 초점을 두어 혼란과 멸망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대외적으로는 신라인들의 당과 일본 등 해외로 진출하여 동아시아에서 인구이동이 이루어져 상호 문화발전에 영향을 주었다는 긍정적 시각으로 본 점에서 매우 학술적 의의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흔히 ‘행유여력 즉이학문(行有餘力 則以學文)’이라고 하나요? 연구원에서 제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고, 틈이 나면 연구하고 논문을 써야 하기에, 그 동안은 별도의 취미랄까 여가활동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2000년대 초에 신라사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 학자들이랑 신라사학회라는 연구단체를 창립하여 처음부터 회장직을 맡아 2년전까지 무려 13년 동안 매월 학술발표회를 개최하고, 또 학술지 ‘신라사학보’를 매년 3회 발행하여 한국연구재단이 평가하는 등재지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토요일은 대부분 학회 활동으로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연구를 위해서는 답사를 많이 다닙니다. 때로는 요청이 있으면 초중등학교 역사담당 교사와 일행들에게 현장과 관련된 강의와 설명을 해주기도 합니다.

작업 화면

초중등학교 역사담당 교사 연수, 해상왕 장보고 중국 유적지 답사단 인솔 및 선상 강의

작업 화면

중국 산동성 태산의 마애석각벽 앞

당구 사진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연구원 조직에 피해주지 않고 자기 개발해서 업무에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입니다. 이런 활동을 통한 외부 연구자들과의 활발한 교류, 학계의 연구동향 파악은 연구원에서 업무수행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취미생활이랄까 여가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당구를 치기 시작했는데 실력이 쉽게 늘지 않아요. 이것도 젊은 나이에 익혀야 하는 것을 이제야 배우기 시작하니, 참 어렵습니다. 공을 때려서 맞추는 점, 공을 굴리는 방향과 속도, 그리고 공이 부딪치고 굴러나오는 각도 등등을 계산하고 치려니 엄청난 집중력과 머리를 필요로 하는군요. 다행히 고등학교 친구들이 가르쳐 주면서 같이 놀자고 하니 무척 고맙지요. 그래서 가끔 금요일에는 연구원에서 퇴근하다가 집 근처에서 기다리는 친구들을 만나 치다보면 새벽이 되어서 집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아내는 늦은 나이에 당구랑 연애하느냐고 놀립니다. 좀 문제가 있지요? 늦게 배운 당구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할까요? (웃음)

후배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나요?

제가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에 사양했음에도, 이번에는 꼭 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신 까닭은 아마 제가 얼마 후에 정년퇴직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서, 저의 향후에 대해 지금 구체적인 계획을 이야기하기에는 조심스럽고요.

다만 제가 그동안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삶의 터전이 되어준 우리 연구원에 대해 항상 애정과 관심을 갖도록 하겠으며, 아울러 업무적으로건 개인적인 것으로건 한국학중앙연구원이라는 같은 울타리에서 공존하며 삶의 일부를 함께 해준 많은 교직원 여러분들에게 건강하시길 바라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미리 드립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제 심정을 잘 드러낸 시 한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kimck@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