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한국학 개념에 대한 여러가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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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은
기획처 혁신홍보팀 선임연구원

‘은둔의 나라 한국’,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다이나믹 코리아’..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생성된 한국에 대한 여러 수사(rhetoric)를 통해 그 말이 성행하였던 당시 한국의 지위와 정체성을 엿볼 수 있고,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해석 의도를 가늠해 볼 수 있으며, 개인의 주관적 경험에 빗대어 국가와 나와의 관계를 반추해 보게 된다. 이렇게 한국에 대한 설명과 해석이 다양하듯, 한국학(Korean studies)에 대한 정의 또한 매우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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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연구현장에서 만난 한국학자들은 한국학을 다음과 같이 개념화하였다. 한글소설을 연구하는 어느 연구자는 한국학을 ‘외국에서 바라보는 지역학, 그리고 내부에서 형성된 국학이 포괄된 학문’이라고 소개하였는데, 이것은 한국학 개념을 다루는 문헌에서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것과 동일한 설명이다. 한편 조선후기사를 전공한 학자는 “한국학은 시간적으로는 전통시대에, 학문영역으로는 문사철(文史哲)에 무게중심을 두되, 현재와 미래 한국인의 삶의 발전을 위해 시사점을 주는 학문이다’라며 한국학의 범위를 보수적으로 제한하되 학문의 현재적 의미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한국을 연구하는 학문’(고문헌관리학 전공), ‘한국을 주제로 하는 모든 범주의 심화된 학문’(미술사 전공), 즉 탐구대상이 한국인 경우 한국학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되었으며, 한국학은 곧 ‘한국이 인류에 미친 파장’(조선경제사 전공)이라며 영향력의 차원에서 접근하기도 하고, ‘한국 사람이 하는 학문 활동 전반’(한국현대사 전공)으로서 한국학을 연구주체에 따라 결정되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문제는 한국학에 대한 통일된 개념이 없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합의의 부재는 필연적인가, 아니면 개별 학문분과에 종사하는 연구자들로 하여금 학문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해 심도 있게 사유하게끔 하는 개념화 또는 이론화 작업이 미진한 탓일까? 전자를 뒷받침하는 경우로 한국학 개념을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 있다. 1981년 3월 5일, 본원에서 <종합학문으로서의 한국학>이라는 주제로 열린 특별좌담에서 박병호(朴秉濠) 연구부장은 ‘한국’이라는 말을 붙여 ‘한국학’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즉 주체를 강조하는 욕구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나 바탕을 모두 연구하면 한국학이란 말도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한편 여러 경험과 논증이 쌓여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 지식을 추상적인 언어로 만들어내는 이론가들에게 한국의 특수성에 주목하는 한국화(Koreanization)에 대한 논의와 한국학의 개념화 시도는 학문적 낭비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학이라는 용어는 합의된 개념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을 뿐 광범위한 영역에서 독립적 또는 제3의 학문분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학문의 한국화를 위한 논의의 장이 펼쳐지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 행정학계에서는 서구에 지적 뿌리를 두고 있는 학문을 우리 행정현상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합성을 이유로 학문의 적실성 차원에서 “우리”의 이론개발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학문 활동의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나”를 발견하고 “우리 학문”을 연구하고자 하는 목마름이 중견학자들과 원로학자들로 하여금 한국화 논단을 꾸리게끔 하였다.


그렇다면 한국학에 대한 합의된 개념을 정립하기 위하여 어떤 작업을 준비하여야 할까. 우선 한국학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끌어 모으는 일을 하여야 한다. 이때 한국학 개념을 학계에서만 찾아볼 것이 아니라 여러 출처에서부터 발견하려는 열린 자세가 요구된다. 우리는 각계 조직에서 한국학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대한민국학술원은 매년 우수학술도서를 선정하면서 그 영역을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한국학이라는 네 가지로 구분한다. 이때 한국학에 한국사, 국어학, 고전·현대문학, 국악 등을 포함시킴으로써 한국 사회문화의 특질을 담고 있는 학문을 한국학 범주에 포함시킨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정관(定款)에서는 한국학 진흥이 본원의 목적임을 명시하지만 정작 한국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는 없다. 다만 한국문화에 관한 인문·사회과학적 연구를 주요사업에 포함시키는 것을 볼 때 한국학이란 한국문화에 대한 인문학적·사회과학적 접근임을 추론해 볼 수 있다.


23년간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규태코너

23년간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규태 코너

또한 한국학 개념을 구성하고 설명해주는 요소를 발굴하기 위하여 ‘한국적’, ‘한국성’ 등과 같은 연관개념의 의미를 풀이하여야 한다. <이규태 코너>로 이름난 이규태 기자는 1983년부터 23년간 조선일보 지면에 일상적 삶으로부터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속성을 발견한 내용의 글을 칼럼 형식으로 연재하였는데, 그는 ‘한국적’이라는 용어를 ‘한국 사람에게만 있는 한국다운 동일성’이라고 설명하였다. 철학자 박이문(朴異汶)은 다른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는 특수성과 유일성에 기반 한 ‘한국적’인 것을 찾아내는 학문을 한국학이라고 정의하였다.


더 나아가 한국학의 범위를 설정하기 위한 철학적, 방법론적 사유가 요구된다. ‘한국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마음에 품고 지내는 동안 한국학이 지니는 학문적 본질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그 중 하나가 한국학에 이학과 공학이 포함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한국학에서 다루고자 하는 영역은 자연이나 물리적 세계가 아니라 정신 내지 의식의 세계이므로 한국학은 정신과학이며, 한국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은 한국학 범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인문학자들의 논의가 이미 40여 년 전에 전개된 바 있다. 이러한 생각에 기초한다면 정교한 실험상황에서 규명이 가능한 객관적 사실을 다루는 과학 분야, 즉 가치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영역은 한국학이 다루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며, 한국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한국학 탐구의 소재가 된다. 그렇다면 한국학은 필경 가치가 반영되는 학문이자 주관성이 개입되는 학문이고, 한국학에서의 글감은 한국의 시대와 사회를 담고 있으며, ‘모든 글은 정치적’이라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지적과 같이 한국학적 글쓰기는 연구자의 시각과 해석이 반영된 작업으로 귀결된다.


현재 한국학 개념에 대한 정의는 담론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결국 ‘한국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성의 특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한국학의 범위에 관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며, 한국학자들의 학문의 본질에 대해 성찰이 쉼 없이 이어져야 한다.


nkotb517@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