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구운몽》 을 읽는 또 다른 독법

홍현성 사진
홍현성
한국학지식정보센터 백과사전편찬실 전임연구원
구운몽 표지

고전소설 구운몽 표지(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구운몽》 인기는 우리나라에 그치지 않았다. 중국으로 건너간 《구운몽》은 《구운기(九雲記)》로 개작되었다. 또 일본 근대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소설가 히구치이치요(樋口一葉)는 1892년 5월 일기에 《구운몽》 한문본을 필사했다고 적고 있다. 선교사 게일(James Scarth Gale)은 1922년 《구운몽》을 《The Cloud Dream of the Nine》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구운몽》은 세계적으로 읽혔다.


고전소설 연구자는 《구운몽》을 몹시 사랑했다. 《구운몽》을 다룬 논문은 현재까지 400여 편을 헤아렸다. 소논문만 따져 그러하고 학위논문과 관련 저술을 헤아리면, 그야말로 한우충동이라 하겠다. 중국에 《홍루몽(紅樓夢)》을 주로 하는 ‘홍학(紅學)’이 있다면 우리는 ‘구운몽학’이 있겠다.


《구운몽》을 두고 연구자마다 백가쟁명(百家爭鳴)하지만, 다음 견해는 대체로 동의하는 듯하다. 첫째, 양소유는 실재하지 않는 꿈속 허상이다. 둘째, 성진의 꿈속 꿈(양소유의 꿈)은 현실로 이어진다. 셋째, 성진이 꿈을 통해 깨닫지 못했다면 양소유로 태어났을 것이다.


세 가지 견해 모두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자세히 따지면 그렇지 않다. 특히, 둘째 견해는 《구운몽》 설정과 모순되는 까닭에 문제가 크다. 둘째 견해는 다음 논지로 정립된다. 부정의 부정 곧, 이중부정(二重否定)은 긍정이다. 꿈속 꿈은 이중부정에 해당하므로 현실이다. 따라서 꿈속 양소유의 꿈은 성진의 현실이다. 양소유 꿈속 육관대사는 성진의 스승이다. 육관대사는 양소유에게 아직 때가 이르다고 말하는바 꿈 깰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는 성진 꿈속 양소유가 꿈을 꿔 동정호 용왕, 백능파도 만났다는 데 있다. 양소유 꿈속 육관대사가 성진이 모셨던 스승이라면 동정호 용왕도 술을 권했던 바로 그 용왕이어야 맞다. 그렇다면 동정호 용왕의 딸 백능파는 현실 속 인물이 된다. 백능파는 성진 꿈속 양소유가 꿈속에 만난 여인이자 육관대사, 동정호 용왕과 같은 시공간에 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둘째 견해를 따르면, 백능파는 동정호 용왕이 성진에게 권주할 때 용궁 한편에 존재하는 ‘현실 속 인물’이 되는 셈이다. 둘째 견해가 《구운몽》 서사와 모순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꿈속 양소유가 꿈에서 만난 육관대사는 《금강경》 한 권만 들고 다닌다는 그 육관대사가 맞다. 또 백능파 부왕(父王) 동정호 용왕도 동정호를 책임지는 그 용왕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백능파가 한 말에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양소유 꿈속에 나타난 백능파는 자신을 소개하며 아버지 동정호 용왕이 들은 예언을 말한다.


첩의 팔자를 무르니 진인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이의 운명이 전세에 선가에 있다가 하강하여 이번 생에 용신의 딸이 되었나니, 다시 사람의 몸으로 바뀌어 인간세계 크게 귀한 사람의 첩이 되어 일생 부귀영화를 누리고 나중에 불가에 귀의할 것이로다.’

진인에 따르면, 백능파는 전생에 천상계 여선(女仙)이었다. 금생에 용신의 딸로 태어나 귀한 사람의 첩이 될 운명이었다. 여기서 귀한 사람은 다름 아닌 ‘양소유’였다. 또 백능파는 나중에 불가에 귀의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백능파가 불가에 귀의하는 내용은 《구운몽》 문면에 없다. 여덟 미녀가 관음 화상(畫像) 앞에서 의자매를 맺지만 이를 두고 불가에 귀의했다고 보기 어렵다.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하겠다는 말이나 생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불가에 귀의하는 이는 여덟 미녀가 아닌, 여덟 선녀다. 여덟 선녀는 백능파를 위시해 여덟 미녀를 꿈꿨던 바로 그들이다. 꿈을 깬 팔선녀는 머리를 깎고 성진의 제자 비구니로 거듭난다. 바로 이 시절이 진인의 예언에 나오는 ‘나중’에 해당한다. 비구니가 될 때가 위부인 문하 선녀이던 삶이니 용신의 딸이자 양소유의 희첩이 되는 삶의 나중 삶 곧, 내생이라 하겠다. 백능파는 전생에 여선이었고 현생에 용신의 딸이자 양소유의 희첩, 내생에 비구니가 될 운명이었던 셈이다.


여덟 비구니 가운데 한 명의 전생이 백능파다. 백능파는 용신의 딸이자 양소유의 희첩이었다. 따라서 양소유가 지니는 의미는 성진 머릿속 상상화에 그치지 않는다. 여덟 비구니 가운데 한 명의 전생이 백능파였으니 성진은 전생에 백능파를 위시한 여덟 미녀를 거느렸던 양소유이다. 그러므로 성진은 누려본 적 없는 삶을 꿈꾼 게 아니다. 성진은 전생에 실컷 누려 신물 났던 삶을 꿈꾼 것이다.


또 성진이 내생에 자칫 양소유로 태어날 뻔했던 게 아니었다. 거꾸로, 양소유가 말년에 불교에 큰 서원을 둬 내생에 육관대사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양소유 꿈속 육관대사가 때가 아니라고 말했던 까닭은 아직 인연이 무르익지 않아서였다. 그러니 성진이 육관대사, 동정호 용왕, 여덟 선녀와 만난 일은 빠짐없이 숙연과 연기가 빚은 결과였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불교 관점에서 본다면, 세 살 버릇은 여든 살에서 그치지 않는다. 세 살 버릇은 현생을 넘어 내생까지 간다. 버릇이 내생까지 가는 연유로 우리는 전생 버릇대로 행동하며 이번 생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우리가 번뇌를 거듭하며 윤회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다.


구운몽도

구운몽도(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버릇을 다른 말로 ‘습관’이라고 한다. ‘습관’을 일으키는 게 ‘습기(習氣)’이다. 습기는 향기와 같다. 의복 곁에 향수를 두면 향기가 옷에 남는다. 새롭게 태어났으나 전생에 버리지 못했던 습관은 향기처럼 습기로 남는다. 습기는 씨앗에 비유하기도 한다. 습기는 적당한 상황을 만나면 습관으로 발아한다. 발아한 습관은 전생 버릇과 닮은꼴이다. 자주감자에서 자주 꽃, 흰 감자에서 흰 꽃이 피는 일과 같은 이치다.


성진은 전생에 일대 호색한(好色漢)이자 호남아(好男兒)였던 양소유였다. 전생 인연이 있던 동정호 용왕을 만나자 술을 마시며 계율을 어겼다. 전생 부부였던 까닭에 성진은 여덟 선녀를 보자 성욕에 꺼둘렸다. 그는 선방에 돌아와서 출장입상하고픈 욕망에 휩싸였다. 숙연에 따른 만남을 말미암아 전생 양소유에게서 발원한 습기가 부지불식 발아한 결과였다.


육관대사는 꿈을 통해 욕망을 꽃피웠던 ‘뿌리’와 그 뿌리를 내렸던 ‘씨앗’을 보여줬을 뿐이다. 씨앗은 전생 양소유에게서 발원(發源)한 습기였다. 그러니 육관대사가 성진을 일깨운 ‘네 흥에 갔다가 흥이 그쳐 왔을 뿐 나는 한 게 없다.’라는 말은 겸사가 아니었다. 습기도 성진의 것이고 꿈도 성진의 것이기 때문이다.


전생을 꿈꿨다는 설정을 통해 《구운몽》은 다음과 같이 위로하고 더하여 일깨운다. 만약 지금 이 삶이 꿈이라면 나는 전생을 꿈꾸고 있다. 꿈을 깬 나는 꿈속 인물이 그토록 원하던 삶을 살고 있을 터이다. 양소유가 만년에 그토록 그리던 삶을 성진이 사는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현실이라면, 이 삶은 전생에 그토록 원했던 삶이다. 양소유는 향락에 염증을 느껴 스승을 찾아 불도를 닦으려던 참이었다.


그러니 꿈 깨어도 행복하고 꿈꿔도 행복하다. 그러나 마냥 꿈속일 수만은 없다. 꿈이란 언제가 되었든 깨기 마련이다. 어차피 깨어날 꿈에 꺼둘리지 마라. 꿈 깨는 것을 두려워 마라. 지금을 꿈이라며 부정하고 싶은 불행한 이에게 《구운몽》이 주는 위로와 일깨움이다.


hhyunsung@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