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연 사람들

국내 역사민속학자, 김일권 교수의 별 이야기

한국학대학원 김일권 교수를 만나보았다. 그는 자연대학을 졸업하고 역사민속학이라는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학자이다. 책과 자료로 빼곡한 연구실에서 그의 별 이야기를 들어본다.


김일권 교수 사진

별자리를 연구하신다구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학다닐 때까지만 해도 저는 별자리 연구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세상 일이라는게 필연도 있고 우연도 있을텐데 우연이 3번 겹치니 필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필연같은 그 3번의 우연이 찾아왔고 그 때문에 제가 이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우연히 비전공과목 수업인 ‘한국 고대 국가의 형성 연구’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고 수업 내용중 한국고대인의 종교문화와 놀이 관련 장면을 슬라이드 자료집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북한의 『조선유적유물도감』시리즈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장면 분석을 해야하니 몇 달간 그 책을 탐독했습니다. 그 와중에 고구려 고분벽화 속 둥글게 빛나는 별그림들이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사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출처 : 위키백과)

그후 두 번째 인연이 생기게되었죠. 한국고대종교사연구회 모임에서 한국 암각화 답사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 울주 반구대, 고령 양전리 알터, 경주 금장대 선각 암각화, 영일 칠포리 고인돌 암각화 등의 암각화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게 되었지요. 그중 영일 신흥리 계곡에서 돌에 새겨진 성혈(바위에 새겨진 구멍)을 보게되었는데, 이것은 희한하게도 홈줄로 연결되어있어 W자 모양을 나타내고 있었어요. 그 당시 암각화 연구에서 천문학적 장르가 분리되어있지 않은 상태라 바위구멍은 모두 풍요와 주술을 기원하는 생식기 성혈 신앙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제가 그 암각화를 보니 이건 누가봐도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새긴 것이라 여겨지는 거에요. 이 문제의 타당한 배경을 설명하게 위해 고구려 덕흥리 고분 서벽에 그려진 W모양 별자리와 비교연구를 하게 되었고 이전 논문들의 문제점과 잘못된 해석 등등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별자리 성혈연구를 별도로 해야한다 라는 주장을 하게 되었고, 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인연은 고구려연구회가 주제공모한 제3회 동경 고구려 국제학술대회(1997. 7)에 제 논문안이 선정되면서 발표를 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이때는 제가 박사수료도 못한 학생 처지였으나 도전적이고 발전가능성이 큰 연구주제라고 인정해주셔서 한중일 사계의 대학자들과 함께 토론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회장님과의 인연이 가장 커서 이후로 고구려 역사연구의 새로운 분야로 역사천문학이란 장르를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등 여러 책들을 내셨고, 우수도서로 선정이 되었어요.


책표지 사진

여러권의 책을 냈고 2010 백상 한국출판문화대상, 2012 대학민국학술원 우수도서 선정 2009 청소년권장도서 등 여러 타이틀이 있어요. 그중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는 고구려 벽화속 별자리와 신화 하늘의 세계에 대한 생각들을 담은 책으로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전국 중․고교 도서관에 거의다 들어가 있어요.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라는 책은 고인돌 시대부터 고려, 근대 직전까지 우리역사 속에 있는 별자리 자료, 하늘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이 어떻게 펼쳐졌고 바뀌어왔는지 다룬 책입니다.

이 책들을 보면 재미있는 별자리 역사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함경북도 신포리에 신석기시대의 집터유적을 발굴할 당시 갈돌판이 발견되었어요. 갈돌판이라는게 간단히 말하면 무언가를 갈수 있는 돌, 맷돌과는 좀 다르게 생긴 돌입니다. 그 뒷면에 별자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북한에 연구자료로는 많이 확보가 되어 있습니다. 남한보다 이런 연구가 활발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한가지 예로 보면 선사시대 고인돌 상판 위에도 별자리 그림이 발견된 기록도 있어요. 또 삼국사기를 보면 동예사람들이 새벽에 별을 보고 한해의 풍년을 점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사료들을 모아 우리 선조들이 선사시대부터 계속해서 별자리를 보고 기록했다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민속학이라는 분야 중 ‘별자리’ 연구 분야가 좀 특별하게 느껴져요.


책과 자료들로 가득한 연구실

책과 자료들로 가득한 연구실

별자리에 대한 이전 기록들은 선조들이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고 잡아내려고 하는 노력의 집약이라고 생각되어요. 그것이 별자리 연구로 이어졌고, 행성, 해와 달 운행의 원리를 알아내고 종합해서 시, 분, 초의 단위까지 잡아내는 과정이 몇 천 년이 걸린 것이죠. 그러는 과정에서 24절기가 생겨났고 세시풍속이 생겨나게 되었던 겁니다.

저는 세부적으로 민속학 중에 역사민속학 분야에 있습니다. 역사민속학은 우리 민속문화의 연원에 대해 알아보고 역사 속의 수많은 이야기를 해명하는 일인데요. 예를들면 삼국시대에 절기는 어떻게 되느냐, 그 시기에 단오가 있었느냐, 동맹제천은 왜 10월에 있느냐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하며 검증해 내는 연구들이 역사민속학이라고 불립니다.

역사민속학은 우리 문화에 어떤 문화가 어떻게 섞여들어왔는지 천문, 시간, 절기, 기상, 농정, 등의 자료를 통해 우리 생활들을 설명해내고 옛 우리 역사속 실제생활을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는 학문분야입니다. 별자리로 시작해서 역사천문학으로 발전하고 이것은 시간 생활을 하는 민속학의 한 부분이 되는 거죠.

민속학을 다른 말로 한국문화사라고도 합니다. 말 그대로 예부터 이어온 '우리 생활상을 연구하는 것이 민속학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별자리 연구를 하시며 여러 곳에 답사도 다니셨을 것 같아요. 기억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바이칼 여행 사진

(좌) 북두칠성과 남두육성 , (우) 바이칼 여행 사진

2002년경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답사갔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혹자는 이곳을 우리 민족의 발상지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이 호수안에 알혼이라는 섬이 있고 그곳에서 숙박을 하는데 백야 현상을 겪었어요. 저녁11시까지 대낮처럼 밝다가 한순간 전등의 스위치를 끄듯이 칠흙같은 어둠이 찾아오는데, 그곳의 전기 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한치앞도 분간할 수 없었어요. 그런 어둠이 오니 비로소 하늘의 별들이 정말 눈부시게 쏟아지더라구요. 쏟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7등성 8등성까지도 육안으로 보일 만큼 많고 밝은 별들의 향연이 펼쳐졌습니다.

그때 역사 천문도에 묘사된 희미한 별들까지 직접 확인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관찰경험이었지요. 이론으로만 보던 남두육성도 육안으로 처음 또렷이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남두주생북두주사 南斗注生 北斗注死 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두육성은 생을 주관하고 북두칠성은 사를 주관한다. 죽어서 잘되려면 북두칠성에게 빌고, 살아서 잘되려면 남두육성에 빈다.’ 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사람들은 모두 북두칠성만 찾아서 하늘의 칠성님이 힘들어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웃음)

남두육성은 한여름철에 나타나는데, 위도가 낮아서 한시적으로 아주 잠깐 나타납니다. 산이 높으면 바로 가려져서 안보이고 드넓은 평야에서만 볼 수 있어 한국에서는 여름 우기도 겹쳐 보기가 힘든 별자리 중 하나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연구원에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처음 한중연에 왔을 때 연구교수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연구실을 주고 건물을 오픈해주었습니다. 다른 대학은 보안 문제로 건물을 통제하고 하는데, 그 덕분에 새벽별을 보며 나올 때도 있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연구를 했던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는 탁구를 마음껏 칠수 있다는 것입니다.

점심시간 탁구치는 모습

저는 거의 하루종일 앉아서 연구만 하고 있어서 모든 체력관리를 점심시간 탁구치는 것으로 합니다. 원내 탁구동호회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탁구치는 이 시간이 너무 기다려지고 소중해서 여간해서는 점심시간에 약속을 잡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며 사교적인 시간을 가지곤 하는데, 저는 일분이라도 빨리 밥을 먹어야 탁구를 더 칠수 있기 때문이에요. 요즘도 구내식당에서 얼른 식사를 마치고 탁구장에 모여 단식, 복식 경기를 하며 신나게 지내고 있습니다.

탁구는 좋은 운동입니다. 제가 대학원 때 장학금을 받던 재단에서 장학생들을 각 대학에서 모두 모아 운동하고 식사도 하며 교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당시 후원하시던 회장님이 연세가 70 넘으신 분인데, 탁구를 열심히 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탁구는 나이와 상관없는 운동이라는 것을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나 연구원에 바라는 점이나 하고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김일권 교수 사진

여기는 조용한 환경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말 그대로 ‘학문의 전당’입니다. 기관명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이다보니 한국학이라는 베이스캠프에서 여러 학문분야를 넘나들며 연구할 수 있는 장점이 큽니다. 요즘 시대가 중시하는 융복합 흐름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구요. 한가지 아쉬운 점을 말한다면, 좋은 인재를 집중 지원한다는 원대한 전략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시대는 빠르게 돌아가는 2010년대인데 연구시설 지원이나 조건 조성은 아직 과거에 머문 느낌이 있습니다. 대개 그렇듯 하향 평균화 마인드가 커서 형평성 논리를 넘어서는 더 담대한 구상과 공유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kig110@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