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두려우면서도 친숙한 존재, 요괴… 활용 가능성 무궁무진해

-요괴 연구의 동향과 전망

이후남 사진
이후남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학박사

‘요괴(妖怪)’라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드라마 ‘전설의 고향’의 단골손님이었던 무덤을 파는 구미호, 인간의 간 백 개를 먹는 여우, 인간과 결혼 해 백 일 동안 정체를 숨기는 여우, 씨름은 좋아하지만 팥죽은 싫어한다는 외발 도깨비, 장화홍련과 같이 원통하게 죽은 각종 귀신들. 우리가 ‘요괴’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이처럼 ‘요괴’의 어감은 대체로 ‘부정적인 것, 사악한 것, 무서운 것, 피해야 할 것’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요괴는 인간 세계에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닌, 인간과 친숙한 존재이다.


드라마 구미호의 한장면

중국 서적《산해경》에 제시된 구미호 이미지

요괴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및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양상으로 분포되어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에는 요괴에 관한 서적이 상당수 존재한다. 중국의 대표적 신화집이자 지리서인 《산해경》은 동북아권 요괴 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육조 시대의 《수신기》와 송나라 때의 《태평광기》 등의 설화집, 명나라 때에 성행한 <평요전>, <서유기>, <봉신전> 등의 소설에도 많은 종류의 요괴가 등장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요괴의 나라’, ‘동아시아 요괴학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만큼 일찍부터 요괴학이 발전하였다. 대학 과목에 요괴학이 개설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요괴대사전이나 요괴 화집 등이 끊임없이 발간되고 있다. 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요괴 관련 특별전을 개최하고, 민간에서는 요괴의 인기투표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요괴를 활용한 문화산업을 다방면에서 활성화시키고 있다. 요괴워치라는 닌텐도 게임을 필두로 애니메이션, 만화, 완구, 어플 및 웹사이트 등에서 요괴가 활용된다. 특히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의 ‘요괴·괴이 데이터베이스’는 요괴의 혈통이나 출신지역, 이력과 분포, 자료의 출전 등을 명기하여 웹상에서 요괴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요괴 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화면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요괴·괴이 데이터베이스 (www.nichibun.ac.jp/YoukaiGazouMenu)
메인 화면(좌), 검색 페이지(우).

한국에서도 요괴는 그 실존 여부를 떠나 구비 설화 및 기록 문헌 등에 끊임없이 언급되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와 같은 구비 설화집, 《삼국유사》 및《삼국사기》 등의 문헌 설화집,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 기록, 고전소설 등에 각종 요괴에 대한 서술이 다양하게 전한다. 이처럼 인간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맺어온 요괴에 대한 고찰은 인간의 경계심과 공포, 욕망 등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연구이며, 문화현상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요괴’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미흡하다. 물론 설화에 나타난 요괴 연구는 상당수 성과를 축적하였고, 설화 속 요괴와 문화콘텐츠를 연계시키는 논의가 최근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고전소설은 설화와의 영향 관계를 밝히거나, 주인공의 영웅성 발현 삽화로써 설명하는 정도로만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일찍부터 널리 알려진 작품만을 대상으로, 매우 제한적인 선에서 이루어졌다. 설화와 고전소설, 야담 등을 포괄한 고전문학 속 요괴 연구가 여전히 부족한 것이다.

드라마 구미호의 한장면

SBS 드라마‘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한 장면.

최근 고전소설 34종에 나타난 요괴를 조망하여 요괴 서사를 유형 분류하고, 서사적 기능, 설화와의 차별적 특징, 향유층의 요괴관 등에 대해 고찰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고전소설에는 약 27종 가량의 다채로운 요괴가 등장한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여우, 용과 뱀, 돼지와 원숭이, 나무 귀신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 요괴에 대한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적 설정과 흥미로움으로 서사를 이끌어가거나, 작품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천상 세계에 머물면서 지상의 인간을 조종하는 여우(<삼한습유>), 여주인공에게 교화되어 승천한 여우(<옥루몽>), 천상에서부터 짝사랑한 남주인공을 따라 지상에 환생한 여우(<구래공정충직절기>, <임씨삼대록>), 사람을 홀리는 환약을 만드는 여우(<쌍성봉효록>), 인간 여자를 겁탈하여 낳은 아들을 왕위에 앉히는 뱀(<원회록>), 인간이 되고 싶어 인간의 정기를 흡입하는 물귀신(<범문정충절언행록>), 1장 5척의 키·쇠 몸·구리 머리·금으로 된 눈·옥으로 된 치아를 가진 응천대장군(<태원지>),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천리안․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순풍이(<태원지>) 등이 그 예이다.

이처럼 단적인 예만 보아도 고전소설에 매우 흥미롭고 다양한 요괴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은 요괴라는 원천소스를 학문의 영역과 산업의 영역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고전문학의 요괴를 활용하여 한국만의 문화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국내 및 동아시아, 넓게는 세계에 홍보하는 일은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환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 이윤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요괴학이 학문의 영역으로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한국엔 이렇다 할 요괴 사전이 없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 《중국요괴사전》이나 《일본요괴대사전》, 《일본괴이요괴대사전》 등이 끊임없이 개정·발간되고 있다. 단순한 모방 혹은 무조건적인 따라하기가 아니라 한국만의 특색이 담긴 요괴 사전의 편찬이 시급하다. 더불어 요괴 삽화집이나 그림집을 발간하여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일반 대중도 알아볼 수 있도록 고전문학의 현대어역을 꾸준히 진행하고, 요괴 관련 학회를 개최하는 것도 후속 연구자를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요괴 문화원’ 혹은 ‘요괴 문화 연구소’ 같은 연구 기관을 설립하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고전문학 속 요괴는 현대인의 감성에 맞는 각색 및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완구 등의 캐릭터 산업이나 지형도 및 DB 구축, 교육용 콘텐츠 및 에듀케이션 어플 개발, 게임 산업, 동화책이나 만화책 등으로의 출판 매체 변용, 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 등으로의 영상 매체 변용 등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특히 고전소설의 요괴 서사는 요괴와 주인공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그 해결 양상이 단순한 흥미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이 접해보지 못한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따라서 고전문학의 요괴를 문화콘텐츠화하여 확대․생산하는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우치전 표지 내지

경판 37장본(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전우치전> 표지(좌), 내지(우).
표제와 내제는 각각 “젼운치젼”, “뎐운치젼”이지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명칭은 ‘전우치전’이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전우치’(최동훈 감독, 영화사 집)가 누적 관객 수 60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을 거둔 것을 떠올려 보자. 현대에 봉인 해제된 전우치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와 맞서 싸운다는 기본 스토리는 원작인 고전소설 <전우치전>과 다르다. 그러나 악동이지만 사랑스러운 주인공과, 사악하기 그지없는 요괴를 선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전우치와 요괴의 대결을 극대화한 것이야말로 흥행요소였다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별주부전>, <변강쇠전> 등의 판소리계 고전소설을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각종 공연(뮤지컬, 연극, 창극, 마당놀이) 등으로 매체 변용하거나, ‘남원춘향제’ 등의 축제, 전시, TV 광고 등의 문화산업에 활용해 왔다. 그러나 요괴가 등장하는 고전소설을 대상으로 한 매체 변용은 <홍길동전>과 <전우치전> 정도로 지극히 적다. 이 중에서도 <홍길동전>은 홍길동이 울동이라는 요괴를 퇴치하는 것에 집중한 것이 아니다. 홍길동의 영웅적 행적이나 체제 개혁에 더 주목하고 있다. 결국 <전우치전>의 경우만 요괴 이야기를 매체 변용하여 성공한 사례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요괴에 대한 관심을 미신이나 저급한 신령에 대한 연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요괴에 투영된 한국인의 상상력 및 요괴관, 더 나아가서는 미의식까지 읽어내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alfn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