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리는 기록유산
종이, '식물의 섬유를 물에 풀어 평평하면서 얇게 서로 엉기도록 하여 물을 빼고 말린 것 '
종이는 언뜻 보기에 하나의 면으로 보이지만, 수많은 섬유들이 모여 ‘한 장’을 이루고 있다. 중국은 종이의 역사가 오래 된 만큼 많은 식물 섬유를 사용하여 종이를 만들어 왔다. 우리가 종이 발명가로 알고 있는 채륜은 사실 종이 개량자로 실제 글의 제목처럼 식물의 섬유를 물에 풀어 평평하면서 얇게, 서로 엉기도록 하여 물을 빼고 말리기까지 인류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목화
대마
저마
닥
삼지닥
짚
대나무
종이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식물섬유에는 종자섬유(면, 면 린터), 인피섬유(아마, 대마, 저마, 황마, 닥, 삼지닥, 등), 엽섬유(마닐라 마 등), 초본류섬유(짚, 대나무 등), 목재펄프(쇄목펄프, 화학펄프)가 있다.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수많은 종이 기록유산 가운데 ‘중국본’으로 분류된 자료에서 우리는 이러한 여러 가지 식물 섬유를 관찰할 수 있다. 장서각 중국본 고서에 사용된 식물 섬유는 크게 인피(靭皮)섬유, 초본류(草本類)섬유, 목재 펄프(pulp) 세 가지 섬유가 발견된다. 인피섬유나 초본류 섬유를 사용해 손으로 뜨는 수록지가 기계화 되는 목재펄프로 바뀌기 까지 제지 기술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제지기술 발전 과정
중국에서는 종이 발명 이전 뼈, 청동기, 간(簡)과 독(牘)을 서사 재료로 사용하다가 양잠업의 발전으로 비단이 서사 재료가 되었다.
양한시기(기원전 206-220년)는 수피지(樹皮紙) 발명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 전한(前漢) 때에는 낡은 마 밧줄이나 조각을 이용해서 종이를 만들었다. 후한(後漢) 때에는 제지기술이 개선되어 기존의 재료를 대체하지는 못하였지만 마지(麻紙)가 만들어졌다. 화제(和帝, 89-105년) 때 채륜(蔡倫)이 질 좋은 종이를 만들어(元興 원년(105년))에 조정에 바쳤다.
화제(和帝, 89-105년)때 채륜(蔡倫)이 질 좋은 종이를 만들어(元興 원년(105년)) 조정에 바쳤다.
위, 진, 남북조 시기(3-6세기)는 종이가 사회적으로 보급되었다. 제지 원료가 확대되어 마섬유에 수피와 인피섬유를 섞은 종이를 만들어 종이를 개선하고, 초지용 틀을 개량하여 노동 생산율을 높이고, 생산 시간을 단축했다. 종이표면에 탄산칼슘, 석고, 활석, 석회, 백토 등으로 도포하기도 했다. 황색, 푸른색, 적색, 옥색, 분홍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의 색지를 생산하는 등 가공 기술이 발전한 시기다.
수, 당, 오대(6-10세기)는 중국 제지기술의 발전 단계로, 이 시기의 제지 원료는 위, 진, 남북조 때보다 증가하여 수피지가 발전했으며, 죽지가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또 제지의 원가가 낮아지고 종이 제품이 민간의 일상생활까지 보급되었다. 제지업도 남북 각지와 소수민족 지역까지 확대 되었다. 제지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부 유명한 가공종이도 출현하였다. 이 시기에 중국 제지술은 일본, 아랍, 인도, 네팔 등 동아시아, 동남아, 서아시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송, 원시기(10-14세기)는 중국제지술의 성숙단계로, 이 시기의 제지원료는 이전 시기에 비하여 새로운 진전을 보였다. 대나무, 밀짚, 볏짚 등으로 만든 종이가 출현했다. 또한 종이의 산지와 품종이 많아지고 용도도 넓어졌다. 설비의 개선으로 물레방아를 이용해 지료(紙料)를 고해하기도 하였다. 당나라 때 종이가 필사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면, 이 시기는 대부분 인쇄하는 데 이용되었다. 제지기술이나 종이 가공에서 전면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종이를 연구하는 전문 서적이 출현하였다.
명, 청대(14-20세기)의 제지 기술은 종합적인 발전 단계로, 제지의 원료, 기술, 설비, 가공 등에서 역사상의 성과가 집대성 되었다. 종이의 생산량, 품질, 용도, 산지 등도 종래보다 증가하였다. 이 밖에도 전문적으로 제지와 가공지 기술을 저술한 서적도 증가하였다. 이 시기 외국과의 경제·문화 교류에 의해 종이와 가공지 기술이 유럽과 미주 각국에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며, 청 말(19세기 말)에 서구의 기술이 도입되어 기계적 제지가 출현하였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유럽에 비해 비교적 이른 시기(한국(2-4세기)과 일본(7세기))에 제지술이 전래되었다. 유럽에는 11세기, 아메리카 대륙에는 17세기에 들어서야 제지술이 전래되었다.
초기 유럽의 제조법은 동양의 종이 뜨는 방식과 유사한 방법이었고 제지원료는 넝마가 주로 사용되었지만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에서 고해기가 발명되고부터 종이의 기계화와 대량생산을 시작하였다.
종이를 대량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 지면서 종이의 원료가 대량으로 필요해 졌고, 이때부터 목재펄프가 종이 원료로 사용되었다.
유럽의 수록지 제작 과정 (출처 : Dard Hunter-Paper making)
이러한 기계식 대량생산 제지법이 19세기 동양으로 다시 전파된 것이다. 실제 장서각 소장 중국본에도 20세기 출판 책들에 목재 펄프가 나타난다.
종이 제작에 사용된 식물섬유는 이렇듯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기록자료에 사용된 종이를 어떤 식물섬유로 만들었는지 식별을 위한 분석법에는 정색반응법과 형태적 특징 분석법이 있다. 정색반응 분석의 대표적인 방법은 C-stain 분석법이다. 섬유를 C염색 하면 각 섬유마다 고유한 색을 나타낸다. 이 방법을 형태적인 분석과 함께 이용하면 보다 정확한 섬유식별을 할 수 있다.
<정색반응: c-stain 분석법>
닥 섬유(탁한 적색)
대나무(탁한 청색)
쇄목펄프(황색)
화학펄프(회분홍색)
인피(靭皮)섬유는 식물의 껍질부분을 가공해서 만든 종이다. 장서각 중국본에서는 닥나무 인피섬유를 볼 수 있다. 닥(楮)섬유의 특징은 섬유가 길고 섬유에 마디와 왜곡이 있는 것이다. 닥섬유와 다른 섬유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투명막의 존재이다.
<인피섬유: 닥(楮)>
장서각 초본류(草本類)섬유는 대나무 섬유로 볼 수 있다. 초본류 섬유의 특징은 후벽(厚壁)이며, 섬유 끝의 형태가 다양하고, 벽공이 있는 박벽(薄壁)의 섬유도 존재한다. 이외에 초본류에는 다양한 형태의 도관요소와 가도관, 유세포, 표피세포 등이 존재한다.
<초본류 섬유: 대나무>
목재 펄프(pulp)로 된 종이는 다양한 펄프 섬유가 혼합되어 사용되었다. 1장의 책지에서 쇄목펄프, 화학펄프, 인피섬유까지 발견되었다. 그리고 재활용한 섬유도 발견되었다. 목재펄프에서는 수분이동 역할을 하는 유연세포가 발견된다. 또한 나무길이방향 섬유와 길이 방향의 직각방향으로 생장하는 방사조직의 섬유가 만나는 곳에 생기는 교분야벽공을 관찰할 수 있다. 물리적인 가공방법을 통해 만들어진 쇄목펄프는 각각의 섬유가 깨지고 뭉쳐있다. 약품으로 목재의 섬유를 풀어만든 화학펄프는 정련(精練)이 잘되어 섬유의 형태가 매끈하다. 그리고 재활용된 섬유는 재활용을 위해 섬유끝이 파쇄된 단면이 관찰된다.
참고문헌
반지씽, 중국제지기술사, 2002
이승철, 한지(아름다운 우리종이), 2012
Dard Hunter, paper making,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