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포럼

한국학 확장을 위한 한국 문명 연구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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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연구정책실 책임연구원

한국학 연구 확장을 위해 한국문명 담론 형성이 필요하다. 외부에서 볼 때, 한국은 크게는 동아시아문명권, 작게는 중국문명이나 일본문명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한국을 안다고 하는 학자들은 한국을 중국의 아류 문화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이런 시각이 계속되면, 한국인이 만든 세계사적 정신문화 유산 및 기술 문명의 가치들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중국문명과 다른 자기들의 역사와 문화의 독자성을 주장하면서 일본문명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가에 확산된 일본문명을 주장해 오고 있다. 2001년부터는 문부과학성 산하에 있는 국제일본문화센터에 문명연구프로젝트실을 두어 비교문명연구팀과 일본문명연구팀을 가동시켜 일본문명의식의 이론적 기반을 구축하게 하면서, 그러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일본의 일본문명담론전략의 경우 주효해 토인비, 윌 듀런트, 새뮤엘 헌팅턴 같은 서양 학자들의 세계 주요 문명 분류에 일본문명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윌 듀런트는『문명이야기』에서 대표적 동양문명으로 인도와 중국, 일본의 문명사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일본문명 서술 속에는 현재 일본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준 한반도, 조선에 대해서는 단 몇 개의 문장에 그치고 있다. 최근에는 사무엘 헌팅턴이『문명의 충돌』에서 세계의 주요 문명으로 일본문명을 언급해 일본문명이라는 말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서양학자들이 동양을 대표하는 주요한 문명으로 일본문명을 언급하게 된 까닭은 서구학자 주도의 문명 담론의 한계와 그들이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자료의 한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이 동양을 대표하는 문명으로 자신들을 끊임없이 선전하고, 내세워 왔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를 볼 때 한국의 문명 연구는 국가전략적 차원에서도 검토해 볼만한 사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국문명 연구는 과거 제국주의적 문명 연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브로델이 주장하듯이, 이제는 유일무이의 이상으로 정의되는 문명 개념은 폐기되고, 소수의 특권적 개인이나 집단, 인류의 엘리트에게만 국한된 문명화의 단일화 기준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지금의 문명 개념은 다른 복수적 문명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가치관, 제도, 관행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보편 문명’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학 연구에서 한국문명 연구는 여러 가지 점에서 이로운 점이 있다. 첫째 한국문명 연구는 한국학의 연구 단위를 민족 보다 더 넓은‘문명권’이라는 범위로 확장해 줄 수 있다. 둘째, 혼융적 특성을 가진 문명 개념은역사적으로 어떤 이질적인 문화도 흡수·소화하여 창조적으로 융합시켜 왔던 한국문명의 가치와 특수성을 잘 드러내 줄 수 있다. 셋째, 문명이 가진 보편적 성격 때문에 한국문명 연구는 한국학을 지역학이 아닌 보편 학문으로 자리매김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dhrhie@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