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의 향기

전근대 정절의 아이콘, 도미부인

백영빈 사진
백영빈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 연구원

대중용 교화서, 삼강행실도

잠시 《삼강행실도》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잘 알다시피 《삼강행실도》는 세종대왕이 대중 교화용으로 개발 보급한 그림 이야기책이며,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는 한글 언해까지 덧붙어 각지에서 재판되었고,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그 변천 과정을 살펴보자면, 대개 1434년(세종16) 효자, 충신, 열녀 세 강령(綱領)으로 나누어 각각 110명의 그림과 스토리를 실었는데,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꼭 10년 전이니, 기록된 문자는 당연히 모두 한자(漢字)였다. 이 때는 각 강령별로 1책씩 묶어 《삼강행실도》는 모두 3책이었다. 등장 인물은 80% 이상이 삼대(三代) 이래의 역대 중국 사람이고, 그 나머지가 삼국(三國) 이래 동국 사람이다. 이것이 이른바 ‘초간본’이다. 이후 1490년(성종21) 분량이 방대하여 읽기 힘들다는 건의에 따라 구본(舊本)에서 각 35명씩만 뽑아 줄이고 난상(欄上)에 한글 언해를 덧붙여 1책으로 만들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산정언해본(刪定諺解本)’이다. 현재 초간본은 찾아보기 힘들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거의 전부가 이 산정언해본 계열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세종조 이후의 효자와 충신과 열녀들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1514년(중종9) 조선 초기 인물을 위주로 총 69명의 행실을 새로 발굴해 1책으로 만든 《속삼강행실도》가 있다. 대중 교화서인 《삼강행실도》를 보충하려는 움직임은 후속 인물의 보충뿐만 아니라 그 외연을 넓히려고도 시도하였다. 즉 오륜(五倫) 중에서 빠진 ‘형제’와 ‘붕우’ 이륜(二倫)에 대한 총 48명의 사적(事跡)을 뽑아 1책으로 만든 《이륜행실도》가 1518년(중종13)에 간행되었다. 단, 이 《이륜행실도》에는 동국 인물이 1명도 실려 있지 않다. 임진왜란을 거치고 나서 고난을 극복한 민심을 위로할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각 지방의 보고자료 중에서 대거 1,515명의 사적을 뽑아 1617년(광해군9)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를 편찬한다. 이 책은 기존의 《삼강행실도》와 《속삼강행실도》에 실려 있던 동국 인물 72명만 별도로 뽑아 부록으로 만들었으니, 도합 1,587명의 동국 인물을 망라하여 18책으로 간행 보급하였다. 이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특징은 동국 인물만 가려 뽑은 방대한 권질(卷帙)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신분과 관계없이 천민(賤民)도 행실이 뛰어난 자는 모두 포함하였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삼강류는 조선후기 문화의 절정기였던 1797년(정조21)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한 5권 4책의 《오륜행실도》의 간행으로 행실도류의 종합을 이루게 된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 도미부인

이 가운데 <열녀도(烈女圖)>의 첫 번째 동국 인물 사례로 나오는 도미(都彌) 부인을 소개하려고 한다.

도미는 백제 시대의 평민인데, 그의 부인은 빼어난 용모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 부인이 개루왕의 겁박에 시험 당하지만 슬기롭게 벗어난다. 화가 난 왕은 도미의 눈을 해코지한 다음 배에 실어 외딴 곳으로 보내고, 다시 부인에게 음행하려 하지만 또 기지를 발휘해 도망친다. 이후 극적으로 살아 있는 남편을 만나 풀뿌리를 캐어 먹이고, 함께 멀리 고구려 땅으로 가서 여생을 마친다는 애틋한 이야기이다. 이 설화는 본래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있는데, 《삼강행실도》 <열녀편>에 동국인의 첫 사례로 기록되면서, 이후 도미 부인은 고난을 극복하고 해로(偕老)하는 정절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다.

<장서각 B9C_15C>

[상단] 왕의 복색을 한 신하를 시켜 도미 부인을 시험하는 장면

[중간 오른쪽] 속은 사실을 알게 된 왕이 도미의 눈을 해코지하게 하는 장면

[중간 왼쪽] 궁으로 끌려온 도미 부인과 왕이 만나는 장면

[중간 아래] 강가로 도망쳐 온 도미 부인이 하늘에 호소하는 장면

[하단] 남편과 다시 만난 도미 부인이 풀뿌리를 캐는 장면

지금도 경기도 하남시 팔당댐 아래에서 도미 부인이 하늘에 기도를 하고 배를 타고 건넜다는 도미나루터가 조성되어 있고, 충청남도 부여군 백제역사문화관 앞과 서울 강동구 천호동 공원에는 각각 도미 부인의 동상이 있고, 충청남도 보령시에서는 도미 부인의 무덤과 영정을 봉안한 정절사(貞節祠)에서 해마다 ‘도미부인 경모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100건이 넘는 전시자료, 글과 그림 그리고 유물

옛사람들의 애틋한 혹은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본원 장서각의 전시실로 오면 된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개인 시문집, 한글소설, 서간문, 고문서 등 종이 기록물뿐만 아니라 풍속화와 유물 등이 포함된, 옛사람의 사랑을 테마로 한 다양한 자료들이 공개된다.

dmg100@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