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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6월호 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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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프랑스 교과서 전문가 초청 한국문화연수
“진달래의 나라에서” 아를레트 파튀레 모리(Arlette Pature Maury)
오를레앙 교육청 역사지리 교사 지방 마을의 한 고등학교 역사지리 교사였던 나는 동아시아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사관 문화부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프랑스어 교사들을 위한 한국 관련 교과서 프로젝트는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나의 호기심과 궁금증에 불을 지폈다. 우리의 지리 프로그램은 일본과 중국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을 뿐,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저 얼른 훑고 지나가는, 우리 학생들이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힘든 신화 속의 “용”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대사관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초대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의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때까지 나의 한국에 관한 지식이란 한국의 나에게 감동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마늘과 파가 너무 많이 들어간 음식으로) 믿음을 주었던(이 믿음 덕분에 나중에 한국의 ‘차’를 발견하게 된다) 파리의 한국 식당들에서의 몇몇 경험들 외에 나는 선입관 없는 풍부한 앎에 목말라 있었다. 나는 눈멀고 주눅이 든 채로 돌아왔다. 마치 밤의 색깔과 같은 낮의 색깔들로 인해 눈이 부셨다. 한창 물오른 벚꽃이 활짝 피는 계절을 기대했었기에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진달래 꽃봉오리의 현란한 색깔이 모든 길을 따라, 도시의 돌들 위로, 공원 이 곳 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나는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내 고향에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으며 오히려 그 보다 더 편안했다. 처음 한국에 머무를 때 우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있는 매혹적인 곳, 평화로운 분위기와 전통의 영감을 받았지만 실용적인 건물, 작은 다리가 있고 벚꽃의 마지막 봉오리들로 둘러싸인 잘 관리된 초록색 공간에서 유숙했다. 곧바로 나는 인상파 그림의 한 풍경, 특히 지베르니의 끌로드 모네의 정원에 있는 일본의 다리를 떠올렸다. 인상주의 그림, 더 나아가 점묘화의 이러한 인상을 나는 이전에도 여러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작은 그릇들이 차려진 상, 접시를 둘러싸고 있는 갖가지 색깔들, 온갖 네온사인의 간판들로 빛나는 밤의 서울에서도 볼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놀라움은 한국인들의 반응 속도였다. 빨리, 빨리는 신화가 아니다. 인천공항에서, 이민 창구 앞에 적어도 3분은 기다려야할 것 같은 줄이 늘어져 있었는데 창구에서 한꺼번에 5명 안쪽의 사람들을 순식간에 흡수하고는 직원 한 명이 최소한의 대기가 가능하도록 그 많은 인파를 관리하는 것을 보았다. 또 놀라운 것은, 세미나가 시작될 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동료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번역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아주 큰 노트에 참고하기 쉽도록 모든 사항들을 연결해서 적어 놓은 것을 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응 능력이나 속도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는데 다른 사람의 필요를 예상해서 주의를 기울이려는 의지가 있었다. 여러 번, 나는 이러한 친절한 행동에 놀랐는데, 특히 우리를 태우기로 한 버스 운전사가 우산을 준비한다거나 짐 가방이 있는 우리를 도우러 KTX 안에까지 들어오는 걸 볼 때였다.  건축물과 유적지의 놀라움도 많았는데 그 중에 두 가지만 예로 들겠다. 서울은 일반적으로, 영혼 없는 도시, 단조로운 건물들이 위로 길게 뻗은 서구화된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 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모든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도시 전체를 탐방해 본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의 건축 양식은 매우 흥미로웠고 심미적인 성공을 거둔 것 같았다. 나는 경복궁의 내부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도시의 한복판에서, 세종로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다른 시대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고, 다시 머리를 들면 21세기의 건물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 하나의 뜻밖의 발견은 경주라는 도시였는데 그 곳에서도 나는 현대적인 도시와 고분 사이의 공간들이 지척에 있음에 놀랐고, 이 고분들 중 하나에서 아주 교육적인 복원을 이루어낸 것에 놀랐다. 우리는 박물관을 방문할 것을 주장했고 이러한 우리의 요구에 응해준 가이드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바이다. 그 곳에서도 나는 마치 고향에 있는 듯 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고대 말과 중세 초기의 일상생활에서 쓰였던 수많은 물건들과, 그것과 대조적으로 보석의 놀라운 장식들을 보면서. 그리고 효과적인 고고학 업무를 아주 신속하게 정립하고 대중에 대한 소통의 감각을 가진 그런 책임감 있는 모든 노력들 앞에 나는 또 한 번 감탄했다. 한국 음식에 대한 나의 선입관도 일소되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만 한국의 마늘은 나를 아프지 않게 했고, 김치도 별 문제없이 먹을 수 있었으며, 바비큐에 나온 고기의 품질에 놀랐고, 고기는 입 안에서 녹을 정도로 맛있었다. 프랑스로 돌아와서 처음 비프스테이크를 먹기가 힘들었을 정도로.   반면, 차(차나무의 말린 잎을 우린)를 마신 일은 큰 경험이었다. 나는 “홍차 주세요”라고 말할 줄 알았기에 자신 있게 말했고, 종업원도 내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고는 아연실색했다. 그녀는 나에게 프랑스에서 아주 잘 알려진, 내가 차 중에 가장 못하다고 생각하는 상표의 차 티백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식당 사람들에게 다른 종류의 차들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들은 모든 차 문명을 나열했다. 결국 나는 인삼차와 함께 아침을 먹었고, 한국에 머무르는 내내 홍차가 아닌 여러 종류의 기분 좋은 차들을 마셨다.   나는 라틴어 같은 모양의 한국의 글자 체계에도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한글이 알파벳이지만 나는 그것을 배울 시간이 없었다. 유럽을 여행할 때, 사람들은 언어를 몰라도 같은 로마-앵글로색슨 어근을 사용하기 때문에 자기가 어디쯤에 있는지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정확한 발음을 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훨씬 더 복잡했다. 세종로에 있는 이(Yi) 장군의 동상에 흥미를 느낀 나는 우리 가이드에게 말했지만... 그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난 그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켜야 했고 가이드는 웃으며 말했다. “아, 네! 이(Hi) 장군이요.” 이런 좋지 않은 경험은 나에게 여러 번 찾아왔다. 신라를 씰라로, 노 대통령을 로 대통령으로 발음하는 나에게 그때까지 시종일관 예의발랐던 한국인들은 당혹스러워 했다. 게다가, DMZ 방문을 그렇게도 학수고대했었지만 그것은 나에게 의아한 경험으로 남았다. 모든 상황은 짜증이 올라올 수밖에 없도록 맞춰져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와 동행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호텔 안에서 서로 만나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했던 첫 번째 여권 확인을 알지 못한 채 그 물결을 따라 버스에 올랐다. 영어를 하는 한 가이드가 우리에게 한국전쟁에 대해 이야기했고, 올바른(?) 복장을 할 것과 특히 버스 번호와 그의 이름을 잘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탄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해서, 여권을 확인받고 또 확인받았다. 마지막 버스에서는 여권과 사진기도 소지할 수 없었다. 우리는 다른 언어를 하는 두 번째 버스 탑승자들과 같이 회의실에 들어갔는데 슬라이드에 나오는 설명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 다음, 각 그룹들은 계단 난간에 쭉 늘어서 있었는데 지혜로운 우리 쪽 가이드가 우리에게 계단을 다 올라온 다음에 만남의 병사 맞은편의 낮은 층계 위로 나오는 것을 허락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신속하게 해내지 못하자 가이드는 그의 어깨를 잡고 옳은 방향을 보도록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정해진 방향에서만 사진을 찍도록 허용되었다. 누군가가 오른쪽으로 각도를 잡자 즉시 제지를 당했는데 다행히도 우리는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우리는 아주 위험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모든 조직체계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버스에 다시 올라타고 커다란 기념품 가게 앞에 멈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고, 그 곳에서 가까운 곳에 공원과 인접한 아주 넓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더 이상 이 탐방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기억에 남았었는지? 그 몇 시간이 나의 체류 전체를 뒤흔들지는 못했다. 그 주는 너무 빨리 흘러가버렸다. 순진하게도 우리는 대한항공의 조종사들이 파업을 해서 조금 더 오래 이 곳에 머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할 뿐이었다. 우리는 머릿속에 소용돌이처럼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을 간직한 채 돌아왔다. 이 나라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향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 놀라운 체류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 대한민국 대사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사진1 -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있는 다리 사진2 -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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