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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6월호 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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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 이 땅의 문화를 찾아서
 
이 땅의 문화를 찾아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홈페이지 바로가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은 전국 230개 시·군·구 지역의 다양한 향토문화 자료를 발굴․수집, 연구․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이를 디지털화하여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 통신 매체를 통해 서비스하며, 이용자가 또 새로운 지식의 생산자가 되는 순환형 지식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대규모 문화 콘텐츠 편찬사업입니다. 이는 그간 미진했던 전국의 향토문화 자료의 보존 및 계승의 대책 마련과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지역문화 정리사업의 필요성에 의해 추진되는 사업으로서, 지식·문화산업의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간 균형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며, 인터넷을 통해 전국 향토문화의 세계화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Tip.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이란? 디지털하동문화대전 홈페이지 바로가기 4. 악양 들판의 악양루와 동정호
불일폭포에서 악양 쪽으로 내려오면 드넓은 악양 평야가 펼쳐진다. 악양면은 중국의 명승지 악양루(岳陽樓)의 이름을 옮겨 놓은 곳이다. 지리산 계곡물이 섬진강으로 흘러들면서 보기 드물게 큰 평야를 이루고 있어, 중국 양자강 중류의 악양과 동정호(洞庭湖)를 연상하여 이름 붙인 것이라 한다. 그래서 악양면에는 악양루가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고, 악양 들판 가운데는 규모는 작지만 동정호가 있다. [사진] 동정호 연결 항목 바로가기 또 동정호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에서 이름을 따온 평사리도 있다. 평사리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곳으로 최근 소설에 등장하는 ‘최참판댁’도 지어져 관광 명소가 되었다. [사진] 최참판댁 5. 형제봉
호숫가 언덕 위에 세워진 성에 다시 높은 누각 건물로 세워진 중국 악양루와는 달리 악양 들판과 섬진강, 그리고 지리산 줄기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나오는 곳은 악양들을 감싸고 있는 형제봉 능선이다. 이곳에서는 악양 들판과 지리산·섬진강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형제봉[1,115m]은 지리산 줄기가 천왕봉에서 제석봉·촛대봉을 거쳐 남부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산줄기가 섬진강으로 향하는 곳에 있다. 형제봉에서 신선대, 고소산성으로 이어진 구간은 등산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넓게 펼쳐진 악양 들판과 섬진강, 그리고 지리산 남쪽 줄기를 멀리 조망하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봄철에는 특히 형제봉 가득 핀 철쭉이 장관을 이룬다. [사진] 형제봉 형제봉 연결 항목 바로가기 [사진] 형제봉 철쭉 형제봉 능선이 섬진강을 만나는 험준한 비탈에 고소산성이 있다. 삼국 시대에 쌓았다고 전해지는 고소산성[사적 제151호]은 큰 산줄기를 등지고 앞은 큰 강으로 막혀 섬진강이 남해 바다로 통하는 뱃길을 장악하는 요충지에 건설된 산성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사진] 고소산성 6. 섬진강가 하동 송림
하동 송림은 섬진강 백사장을 끼고 있으며, 면적은 2만 6400㎡에 달하고 길이는 약 2㎞이다. 900여 그루의 노송이 자라고 있는데, 나무껍질 모양은 마치 옛날 장군들이 입었던 철갑을 두른 듯하다.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된 하동 송림은 섬진강가 백사장에 있다고 하여 ‘백사 송림(白沙松林)’ 또는 소나무가 푸르다는 의미의 ‘하동 창송(蒼松)’이라고도 한다. 또한 ‘창(蒼)’에는 ‘늙다’라는 뜻도 있어 등 여러 의미로 쓰여, ‘푸른 소나무’라는 의미 외에 ‘노송(老松)’을 뜻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사진] 하동 송림과 백사장 하동 송림 연결 항목 바로가기 1745년(영조 21) 당시 도호부사 전천상(田天詳)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소나무를 심은 것이 오늘날의 하동 송림이다. 원래 지금의 하동고등학교와 하동중학교 및 광평 마을 일부까지 소나무가 있었으나 그 후 섬진강 홍수 예방을 위하여 하동 제방 제2호를 축조하면서 현재와 같이 제방을 사이로 둘로 나뉘어 송림 바깥쪽은 학교와 주거지가 되었다. 제방을 쌓기 전에는 제방 안쪽에도 1,0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있었으나, 현재는 상당수가 고사하여 900그루 정도만 남아 있다. 현재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문화, 휴식 공간으로 거듭났다. 공원 주차장에는 노거수 소나무 밑에 ‘백사청송(白沙靑松)’이라는 글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거센 모래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소나무의 기상과 백성을 위하는 목민관의 정신을 의미한다. 숲에는 ‘하상정(河上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옛날에 활을 쏘는 곳이었다고 한다. [사진] 하상정 7. 하동 포구
하동 송림에서 섬진강 하구쪽으로 내려가면 하동 포구에 이른다. ‘하동 포구 80리’라는 표현으로 유명한데 이에 대해서는 실제 거리를 말하는 것으로 보고 그 지리적 범위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들이 제기되어 있다. 한편 문학적・정서적 표현으로 만들어진 말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동 포구 80리는 남해와 섬진강이 연결되는 뱃길로, 이 뱃길을 따라 남해와 섬진강, 그리고 지리산지의 사람들이 소통하고 더불어 여러 산물이 유통되었다. [사진] 하동 포구 시설 하동 포구는 현재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섬진강 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으며, 과거 이곳이 포구였음을 알리는 배 형상의 알림판이 서 있다. 이곳은 MBC 드라마 「허준」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이를 알리는 입간판이 서 있다. 강변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그리고 실제 소규모의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포구 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 하동 포구 표지판과 하동 포구 아가씨 노래비 하동 포구 공원 연결 항목 바로가기 8. 한려 해상 국립공원
섬진강을 따라서 남해 바다로 이어지는데, 이곳이 한려 해상 국립공원이다. 한려 해상 국립공원은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도에 이르는 한려수도와 남해도·거제도의 해안 일부를 포함하는 해안 및 도서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가꾸기 위해 처음으로 지정된 해상 국립공원이다. 이 가운데 경상남도 하동군에 포함된 유명한 관광지는 노량해협이다. 노량해협은 폭이 좁아 조수의 흐름이 빠르고 맑아 청정 해역으로 이름난 지역이다. 또한  교통의 요지로 여수, 통영, 부산 간을 잇는 쾌속선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다. 아울러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하동군의 맞은편에 위치한 남해 노량에는 충무공을 기리는 충렬사(忠烈祠)가 있다. 북쪽에 솟아 있는 금오산에서 바라본 노량해협의 경관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금오산은 한려 해상 국립공원 다도해를 사천과 광양 양쪽으로 모두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으로 돌아서면 지리산의 주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는 남해안 최고의 바다와 산악 전망대로 손꼽힌다. [사진] 금오산에서 바라본 한려 해상 국립공원 한려 해상 국립공원 연결 항목 바로가기 금오산 연결 항목 바로가기
연구원 홈페이지 한국문화교류센터 Newsletter 한국학진흥사업단 Newsletter 관리자에게
「디지털하동문화대전」속으로의 여행(1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대표적인 전자 편찬 사업『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그 중 경상남도 하동 지역 정보를 총망라한「디지털하동문화대전」을 소개합니다. [사진] 디지털하동문화대전 홈페이지 그럼 하동에 대해 알아보는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디지털하동문화대전」에 담긴 정보와 자료들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사이트 및 지역별 사이트(하동문화대전), 대형 민간 포털(네이버, 다음, 구글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4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약 2년에 걸친 작업 기간을 통해 원고 집필, 멀티미디어 제작, 서비스 시스템 구축 사업이 진행되었고, 총 1,684개의 항목, 원고지 12,249매, 사진과 동영상 등 총 4,397종의 멀티미디어 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2010년 4월 하동군과의 협약을 통해 추진되었으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앞서 2009년 4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①선행 조사 연구(남해 역사 연구회)를 통해 하동군의 향토문화 자원을 조사ㆍ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후 ②원고 집필 사업(2010년 5월~2011년 2월, 경상대학교), ③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 사업(2010년 12월~2011년 9월, ㈜르네틴트), ④원고 윤문․교열 사업(2011년 5월~11월, ㈜휴머니타스), ⑤XML 데이터 제작 사업(2011년 5월~11월, ㈜지식공학), ⑥서비스 시스템 개발 사업(2011년 6월~12월, ㈜올인텍아이엔씨)이 수행되었습니다. 「디지털하동문화대전」(http://hadong.grandculture.net)은 경상남도 하동군의 디지털 백과사전으로, 하동군의 지리, 역사와 문화를 비롯해 정치·경제·사회의 발전상 등에 관한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집대성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게 제작되었습니다. 산, 강, 들, 바다가 아름다운 하동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하동군의 입지를 “산을 지고 바다에 임했다[負山枕海]”라고 하였고, 그 경치를 “한쪽 변은 넓디넓은 푸른 바다와 닿았고, 삼면은 높고 높은 푸른 산이 솟아 있다[一邊浩浩連滄海, 三面峨峨聳碧山].”고 하였다. 지리산 줄기에 삼면이 둘러싸여 있고, 그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이 섬진강을 이루어 남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하동의 지리적 특성을 말한 것이다. 지형지세가 이러하니, 하동 경치의 아름다움은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 말 최치원이 지리산 화개동에 머무른 이래, 조선 시대에 들어서 여러 선비들이 지리산을 비롯한 하동의 아름다운 곳들을 유람하였다. 특히 지리산 일대는 유학자들이 숭상하는 최치원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일 뿐 아니라, 최치원이 불일암에서 공부를 하다가 신선이 되어 날아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신선이 사는’ 선경(仙景)을 간직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많은 선비들이 하동 지역을 찾아 유람하면서 그 아름다운 풍광을 시와 글로 남기기도 하였다. 그들의 글 속에는 지리산 줄기와 계곡에 있는 불일폭포, 쌍계사 석문, 화개 10리 벚꽃길, 삼신봉 청학동 등이 대상으로 등장한다. 지리산을 내려오면 악양 들판과 형제봉 능선, ‘하동 포구 80리’로 표현되는 섬진강 물길, 섬진강 주변 하동 송림을 볼 수 있고 이것이 연결되는 남해 바다를 볼 수 있다. 1. 화개동천
화개동천은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진주목 산천(山川) 조에 “화개부곡에 있고 주(州)[진주]의 서쪽 136리에 있다. 발원지는 지리산의 남쪽 영신사가 있는 봉우리와 삼정동이다. 시내가 흘러 삼신동을 지나고 그 남쪽에서 청학동 물이 합하여 남으로 흘러 섬진강으로 흘러든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속수하동지(續修河東誌)』 상권 산천 조에는 “군의 북쪽에 있으니 근원은 지리산에서 발하여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양쪽 언덕에 핀 복사꽃은 길을 끼고 찌는 듯이 붉었으니, 여기가 무릉동천인가 의심하게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글만 보더라도 화개동천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화개동천과 불일폭포 주변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가장 많이 찾던 곳이다. [사진] 화개동천 세이암 화개동천은 화개면 대성리에서 시작하여 탑리에서 끝난다. 쌍계사가 있는 화개동천 중류에서 탑리까지의 약 6㎞ 구간은 봄철의 벚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탑리는 화개장터로 유명하여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붐빈다. 화개동천 양쪽은 경사가 가파른 산지로 곳곳에서 녹차가 재배된다. [사진] 화개 10리 벚꽃길 화개동천 연결 항목 바로가기 2. 쌍계사
지리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쌍계사이다. 쌍계사는 통일 신라 시대에 건립된 절이다. 의상(義湘) 대사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대비(大悲)·선백과 함께 당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정상(頂相)[머리뼈]을 가지고 신라로 돌아와서, 봉안한 뒤 조그만 암자를 세우고 정진하다가 입적하였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폐사되었다가 그 뒤에 진감 선사(眞鑑國師) 혜소(慧昭)가 그 장소를 찾아서 절을 세운 것이 지금의 지리산 쌍계사 금당이라 한다. [사진] 쌍계사 일주문 [사진] 쌍계사 대웅전 쌍계사 대웅전 앞마당 가운데 서 있는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에 이러한 내력이 기록되어 있는데, 창건 당시에는 ‘옥천사(玉泉寺)’라 이름하였으나 이후 헌강왕이 즉위하여 옥천사에 와 보니 이웃 산에도 옥천사라는 절이 있으므로 백성들이 미혹할까 봐 염려하여, 그 절터를 보니 동구에 두 시냇물이 마주 대하고 있어 ‘쌍계사’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사진] 진감선사 대공탑비 지리산 쌍계사는 육조의 정상을 모신 금당 영역과 대웅전 영역의 두 공간으로 구분되는 독특한 가람 구성을 이루고 있다. 금당 영역은 남북의 축선을, 대웅전 영역은 동서의 축선을 갖게 되어 두 영역이 서로 교차하는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배치는 터가 좁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금당 영역은 국사암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경사가 급하여 가람 조성을 하단, 중단, 상단으로 구성하고 있다. 배경이 되는 산봉우리는 지리산의 주봉인 토끼봉·형제봉이며, 대웅전 영역은 삼신산을 주산으로 하여 동에서 서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산지 가람을 형성하기에 알맞은 형세이다. 금당 영역에 육조 정상 탑전과 동방장(東方丈), 서방장(西方丈), 팔상전, 영모전과 그밖에 요사채와 청학루가 있다. 대웅전 영역에는 쌍계사 일주문, 쌍계사 금강문, 쌍계사 천왕문, 팔영루, 쌍계사 대웅전, 쌍계사 명부전, 쌍계사 나한전, 화엄전, 삼성각, 금강계단, 쌍계사 적묵당과 쌍계사 설선당,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 마애불 등이 있다. 또 대웅전 앞에 석등이 있다. 그 밖에 많은 유물들이 2001년에 지어진 성보전[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쌍계사 연결 항목 바로가기 3. 불일폭포
불일폭포는 쌍계사가 자리한 지리산 화개동천 계곡 상류부에 있다. 지리산에 있는 유일한 대형 폭포로서 상하 2단에 총 높이는 약 60m이며, 폭포 아래 소는 용추(龍湫)·학추(鶴湫)라 한다. 인근에 고려 중기의 고승 지눌의 수행지인 불일암이 있는데 이 암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불일암 남쪽으로 경사가 가파른 청학동 계곡이 있다. 조선 시대의 많은 선비들은 불일폭포가 있는 곳을 청학동으로 생각하여 유람하고는 많은 글을 남겼다. 이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유두류록(遊頭流錄)」,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지리산 청학동기(智異山靑鶴洞記)」 등이 있다. [사진] 불일폭포 불일폭포 연결 항목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