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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환(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1392년 7월 16일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건국된 조선(이 국호는 1393년에 명의 승인에 의하여 채택)은 말할 것도 없이 이전 왕조인 고려의 제도를 계승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본격적인 제도 개혁은 이후 태종, 세종, 성종 대를 거치면서 완성되어 간다. 따라서 조선초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는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는 고문서 1점을 들어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현존하는 조선 최고(最古)의 임명문서는 1393년(태조2) 10월 일에 도응(都膺)을 전의소감(典醫少監)에 임명하는 문서이다.(도판 참조) [사진]

[석문]
1) 王旨
2)	都膺, 爲朝奉大
3)	夫·典醫少監者. 
4)	洪武卄六年十月 日
[朝鮮王寶] 도응의 임명문서는 시작 부분을 따서 ‘王旨’라고 부르거나, 『태조실록』의 기사를 따라 ‘敎命’으로 부르거나, 『경국대전』의 규정에 따라 ‘告身’으로 부르기도 한다. 본문이 겨우 넉 줄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문서는 그러나 독법이 만만하지 않다. 먼저 이 문서는 초서(草書)로 작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문서를 읽기 위해서는 초서에 대한 지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글씨는 시대적으로 원나라 조맹부(趙孟頫)의 서풍인 송설체(松雪體)의 영향을 받았다. 다음으로 문서의 양식은 조선초에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양식은 원의 부마(駙馬)로 있던 고려의 왕들이 원을 왕복하면서 임시로 발급한 문서의 양식이다. 이 양식이 조선을 건국하고 그대로 고려의 옛 제도를 이어 정식의 문서 양식으로 정착한 것이다. 이 양식은 1)행은 문서의 제목에 해당하고, 2)와 3)행은 문서의 본문, 4)행은 문서의 발급일자이다. 1)행의 ‘王旨’는 세종 17년(1435) 9월에 ‘敎旨’로 변경되어 이후 조선시대 내내 사용된다. 다음 2)와 3)행의 구조를 보면 ‘A爲B者’, 곧 A(관인의 이름)를 B(관직의 이름)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 양식은 실은 원의 몽골어 직해체(直解體)에서 흔히 등장하는 표현으로 이때 ‘者’자는 명령, 권유의 뜻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도응을 조봉대부·전의소감으로 하라.”고 번역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연호인 “洪武‘와 연도 사이에 찍은 보인은 [朝鮮王寶]이다. 고려말에 사용하던 [高麗國王之印]을 조선초에 임시로 사용하다가 1393년 초에 주조한 보인이다. 이 보인은 여러 번 변천을 거쳐 성종대 이후 [施命之寶]로 정착되어 조선조 내내 사용된다. 이를 종합해 보면 도응왕지는 서예사적으로는 고려말 송설체의 수용과 운용, 문서의 양식사적으로는 고려말 임시 문서양식의 정착, 인장사로는 보인의 변화 등 다양한 역사적 변이를 읽어낼 수 있다. 사실 고문서의 매력은 이보다도 훨씬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