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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문화를 찾아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12월호 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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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나라, 한국 베로니카 발코바(Veronika Valkova)
SPN 출판사 역사교과서 저자 및 고등학교 교사 쾅!! 비행기는 이제 막 활주로에 착륙했고, 서서히 정지했다. 아니, 아직 끝이 아니다. 잠깐만!! 내가 이 것을 끝까지 볼 수 있도록 내게 시간을 줘... 그러나 비행기는 무자비하게 멈춰 섰다. 물론, 나는 이순신 장군이 왜구를 물리침으로써 그들이 불쌍하게 열도로 돌아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전투에 대해 잘 안다. 그러나, 기함의 지휘봉을 잡았던 배설장군의 어린 아들은 살아 남았을까? 그리고 임준영은? 만약 이 전투에 대한 소설을 쓴 시나리오 작가라면 감동을 주기 위해 둘 중 한 명을 죽게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의 아들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해변가에서 입을 벌린 채 전투를 바라보게 했을까? 내가 체코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난 뒤 가장 먼저 할 일은 명확하다. 나는 이 영화를 인터넷을 통해 찾을 것이며, 시차로 인해 한밤중이라 하더라도 이 영화를 꼭 볼 것이다. 왜냐고? 나는 어차피 올빼미형 타입이라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난 이 영화를 꼭 봐야해! 사실 나는 체코에서 한국으로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계획을 갖고 출발 했다. 한국까지 가는 데 9시간, 체코로 돌아오는 데 11시간. 그리고 나는 이번 달 말까지 원고를 마무리 해 넘겨야 했다. 20시간,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 계획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프라하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원고를 작성하였는데, 프라하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한 줄도 못 썼다. 체코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 머리는 한국을 떠나지 말라는 말을 계속 하고 있었고, 한국을 떠나 내 가장 최근 소설 배경인 10세기 체코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우선 한국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고, 그리고는 한국의 역사와 관련된 영화들을 찾아서 봤다. 나는 [상의원]이라는 영화를 보며 울었고, 어마어마한 감동을 받았다. 그 영화가 내 인생의 첫 번째 한국 영화였다.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역사적인 의복에 큰 감명을 받았고, 궁중 예법이 그토록 엄격했음에 놀랐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내가 이틀 전에 들렀던 궁에서 찍혔다는 것을 즐기면서 감상할 수 있었다. 난 이 영화가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제작되었는지 궁금하여 찾아보았으나, 600년간 한국을 통치했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 외에 정확한 연도나 시대 등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영화의 스토리에 몰입한 뒤에는 그 게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영화가 어디에서 찍혔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스토리는 시대를 초월할 만큼 대단하고, 인간적이며, 이런 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지 이러한 스토리가 한국의 고풍스러움을 배경으로 해 접목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아이슬란드 북부에서부터 남부 유럽 시칠리아까지, 그리고 서부 유럽인 스코틀랜드부터 동부 유럽인 러시아까지 등 유럽 전역과 이집트, 이스라엘, 중국, 일본 등 많은 국가를 여행해 본 경험이 있어 한국을 이들 국가들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었다. 한국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나는 한국에서 이국적인 느낌을 받았다. 젓가락을 사용해 한식을 먹어야 했으며, 한식은 체코 음식과는 차이가 많았다. 프라하에서 최근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는 까마귀가 한국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새라는 점이 흥미로웠으며, 가장 이국적인 동물은 내 손 위에서 비스킷을 먹던 얼룩 다람쥐였다. 체코의 다람쥐는 줄무늬가 없으며, 조금 더 크다. 그러나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뻔뻔함은 한국이나 체코나 다를 바 없었다. 중국에서 택시를 탔을 때는 기사가 중국말 밖에 할 줄 몰랐고, 지도 및 표지판도 모두 중국어로 되어 있었는데, 한국은 중국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많이 났고 마치 집처럼 아늑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름 없이 안전하고 자유롭고 평안한 느낌을 줬다. 모든 표지판은 영어가 병행 표기되어 있어 원활한 의사소통 및 생활이 가능했다. 서울은 프라하로부터 8,245km 떨어진 먼 곳에 위치해 있지만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상의원도 나와 가깝게 느껴졌는데, 스토리를 나레이션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집에서 어머니로부터 스토리를 들었던 방식과 유사했다. 그리고 나는 한국의 전통적인 것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친숙한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한국은 이미 한국이 아닌 느낌이었다. 도로에는 내가 체코에서 보던 브랜드의 쇼윈도가 이어지고, 사람들 옷차림도 내가 마치 집에 와 있나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프라하에서와 같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고, 쌀로 만든 차를 선물하려고 들른 가게에서는 스니커즈 초코바와 프링글스 과자 등 체코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들은 전혀 이국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잠깐. 이런 것들이 이제 더 이상 체코도 체코가 아니다 라는 것을 의미할까? 서울에 스타벅스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프라하의 Wenceslas Square에 스타벅스가 있으면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의미일까? 내가 체코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스니커트 초코바를 사 먹으면서 한국 마트에 이런 것들이 있다고 단순히 놀라는 것일까? 아마도 나는 무의식 중에 한국이 일종의 박물관이라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국 하면 고풍스러운 그림 같은 초가집, 여성들은 한복을 입고 있고 남자들은 깔끔하게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수염을 멋있게 기른 그런 장면들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한국인들은 체코사람들과 같은 양식의 옷을 입었고, 헤어스타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은 매우 현대적이었으며, 높은 빌딩들로 이뤄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고궁이 있었는데, 마치 유리로 된 거대한 빌딩들에 짓밟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 것처럼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우리가 경주로 가는 길에서 목격한 고층 건물들은 마치 논에서 벼가 자라듯, 바위가 땅에서 자라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곳, 1,500년 된 왕릉 등이 위치한 고궁은 마치 한국 전통문화를 위해 마지 못해 용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이러한 변화는 30~40년 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토록 단기간에 한국은 전통적인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고층 건물 사이에 있는 그녀를 똑똑히 보았고, 그녀는 여전히 그 곳에 있을 것이다. 나의 한국 체류 기간이 짧았던 관계로 안타깝게도 그녀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전통적인 한국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영감을 얻어 내 소설의 주인공인 12세 Bara를 흥미로운 한국의 역사 한 가운데로 보낼 것이다. 그녀는 다락방에서 과거의 집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 여행자이다. 이로 인해 선생님 및 학생들은 그녀의 스토리를 읽을 것이고, 이러한 흥미로운 요소들이 역사를 가르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역사 중 흥미로운 시기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주일간 머문 이후, 나는 여기 한국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한국은 어떤 점에서는 우리와 매우 흡사하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완전 다르고 거리감 있기 때문이다. 이 거리감은 내 책과도 연계되어 있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의무감을 느끼면서 어려운 책을 통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노력이 기울이지 않고도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체코 아이들이 적은 노력으로도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학교 공부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한국 아이들만큼 체코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킨다면 학생들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우리 학생들에게 한국 고등학생들은 학교에서 하루 15시간 가량을 공부한다고 말 했을 때, 학생들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체코 학생들은 일주일 내내 숙제를 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하지 않는다. 물론 체코 학생들도 한국 학생들만큼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면 [미]나 [양] 대신 [수]의 성적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면 운동, 취미생활, 여행, PC게임, 채팅, 이성친구를 사귀는 것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부모님들은 자녀가 초등학교, 중학교 때 받아왔던 것처럼 고등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아 온다면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체코의 부모님들이 공부를 위해 아이들의 과외 활동을 제한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오히려 학교로부터의 의무를 줄이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한국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학교를 마친 후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통해 선행학습을 시킨다. 사실 나는 한국의 부모들이나 자녀들이 이런 시스템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얘기 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단지 그 것이 올바른 길이기 때문에 아무 불평 없이 따르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을 따른다면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인 것일까? 그 것도 아니라면 스스로 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체코에서는 방과 후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 하는데, 한국에서는 과연 이런 공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궁금하다. 궁금한 것이 또 하나 있다. 한국인들은 처음 만났을 때 상대방의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대방이 연장자인지 연하인지 파악한 후 연장자에게 예를 갖춘다. 체코 사람들이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는다면 이는 매우 무례한 것이다. 상대방의 나이를 묻는 것은 버릇 없는 행동인데, 특히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에티켓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그러나 유교 가르침에 의하면, 단 한 살이 많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다 하기에, 이런 한국식 문화를 이해를 할 수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한국 가정의 동생은 형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존경한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오빠의 말을 들으라고 했고, 그럴 때마다 길길이 날뛰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내 오빠가 그럴 자격이 없다는 반증이었고, 어머니의 생각과는 반대로 나는 내가 오빠를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빠는 비현실적인 공상가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이들도 이와 같은 문제로 고민을 할까? 그렇다. 한국은 내게 문을 조금 열어주기는 했지만, 한국을 알 수 있도록 허락하는 대신 얼굴만 조금 비추고 많은 비밀과 미스터리를 남겼다. 그리고 내게 아무런 대답을 해 주지 않는 대신 많은 질문을 남겼다. 두꺼운 책 중 아무 페이지나 펼쳤는데 나와 매우 잘 맞았고, 잘 쓰여졌고, 다음에 언젠가 그 책을 전부 다 읽고 싶게 만들었다. 그 책의 시작과 끝을 전혀 모르는데도.. 한국은 내게 그런 두꺼운 책과 같이 느껴졌다. 최종 전투는 정말 끝이 없었다. 나는 3번 가량 엔딩을 생각했지만, 정말 끝이 아니었고 언제나 반전이 있었다. 때때로 나는 역사 영화를 보고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판타지를 보고 있다고 느꼈는데, 전통적인 갑옷이 내 생각과는 너무 다른 형식이었고 동화에서 나온 것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배설 장군은 끝내 살아남았지만, 임준영은 죽어 시나리오 작가는 관객들이 슬퍼할 여지를 남겼다. 아마도 좋은 사람들이 모두 살아남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이순신의 아들이 영화가 끝나갈 때까지 해변에서 전투를 응시할 뿐이긴 했지만. 내가 임진왜란에 대해 공부를 끝냈을 때, 나는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음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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