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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09월호 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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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文宗)과 시권 [사진] 안장리 (국학자료연구실 책임연구원) 시권에는 조광조의 시권처럼 훌륭한 시험답안지도 있지만 그런 답안을 쓰게 만드는 시험문제지도 있다. 멋있는 답변이 적절한 질문에서 나오듯 국가경영의 요긴한 답안에는 그만큼 절실한 국왕의 질문이 필요하다. 조선의 제5대 국왕 문종은 몇 편의 글을 남기지 않았지만 진심이 담긴 시험문제지를 남기고 있어 주목된다. “내가 부덕한 몸으로서 큰 기업(基業)을 이어받아 밤낮으로 삼가고 두려워하여 마치 연못의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하니, 과실 듣기를 강구하여 내가 부족한 바를 도움 받고자 한다...... 비록 문장이 뛰어나게 아름답고 펼친 바가 넓더라도 뜻이 도리어 부족하면 나는 한갓 배우처럼 보겠으며, 임금의 덕을 칭찬하여 걸핏하면 요·순에 비유하면서도 실행이 도리어 이를 덮을 만하지 못하다면 나는 한갓 아첨에 불과하다고 보겠다. 오늘의 대책은 힘써 좇아서 정성껏 실행하겠다.” 이 〈책문제(策問題)〉는 문종이 즉위한 1450년 10월 9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문과시험을 볼 때 낸 문제이다. 문종은 즉위한 뒤 정사를 이끄는 것이 살얼음을 밟듯이 조심스럽다고 하였다. 당대는 조선 최고의 임금 세종의 치적으로 그야말로 문화융성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문종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 때문이었다. 문종은 국가경영과 관련하여 자신이 잘 모르는 자신의 과오에 대해 말해달라는 출제를 한다. 세종의 치적에 오점을 남길 일을 싹부터 자르겠다는 각오이다. 그리고 진심어린 시험답안지를 요구한다. 답안지에 아무리 멋있는 청사진을 그려도 현실성이 없으면 그저 우스게로 취급할 것이며, 실천력을 갖추지 못한 성군(聖君)에의 비유는 아첨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다만 제대로 된 대책이라면 정말 힘써 좇아서 정성껏 실행하겠다고 공언한다. 우리는 이 문제지에서 선왕의 업적을 잇기 위해 자신을 반성하고, 이를 진심으로 알아주고 함께할 신하를 뽑고 싶어 하는 문종의 절실한 마음을 읽게 된다. [사진] 장서각에 소장된 열성어제(列聖御製) 문종 즉위 이듬해인 1451년 2월 25일, 문종은 경기관찰사 박중림에게 농사는 때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유서를 내렸다. “내가 일찍이 비오는 절기를 상고해 보니, 대개 정월에는 해동비[解凍雨]가 있었고, 2월에는 초목에 싹이 돋는 비가 있고, 3월에는 파종비[播種雨]가 있고, 4월에는 못자리비[立苗雨]가 있다. 그 사이에 비록 많고 적음과 더디고 빠른 차이는 있으나, 오로지 그 절기를 잃은 해는 일찍이 없었으니, 진실로 시기를 맞추어 사람의 할 일만 다할 수 있으면, 비록 날을 기(期)한다 하여도 기필코 그대로 될 것이요.......이제 듣건대 권농(勸農)하는 자가 시기의 조만(早晩)이나 우수(雨水)의 충족이나 종자의 유무는 헤아리지 아니하고 독촉하여 파종하게 하면, 백성들은 혹 거짓으로 논을 갈아서 물을 담아 놓고 실지로는 파종하지 아니한 자가 많을 것이니, 모가 날 때를 당하여 비록 그 거짓임을 알지라도 어쩔 수 없게 될 것이다.” 농사지을 땅을 해동시키는 비를 ‘해동비’, 씨 뿌릴 때 필요한 비를 ‘파종비’, 못자리를 심을 때 내리는 비를 ‘못자리비’ 라고 하는 등 농사에 맞춰 구분한 비의 명칭에서 농사에 대한 문종의 깊은 관심을 엿보게 된다. 국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농사의 세세한 시기까지 알고 있으며, 이를 지킬 것을 독려하고 또 그에 따라 하늘은 시기를 잃지 않고 비를 내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점 등에서 국왕 문종의 모범적이고 성실한 성격을 확인하게 된다. 게다가 이 글에서는 백성을 곤경에 빠트리는 지방관의 폐해에 대해 지방관에게 가르치는 영명한 국왕의 면모가 확인된다. 재위 3년의 짧은 기간이기에 문종이 남긴 어제(御製)는 7수의 시와 5편의 문 뿐이다. 그러나 그 울림은 수십수백편의 글을 남긴 누구보다도 큰데 이처럼 문종의 주옥같은 어제는 장서각에 소장된 1,286책의 『열성어제』에 전하고 있다. [사진] 장서각에 소장된 열성어제(列聖御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