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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문화를 찾아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02월호 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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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 이 땅의 문화를 찾아서
 
디지털화순문화대전 홈페이지 바로가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홈페이지 바로바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은 전국 230개 시·군·구 지역의 다양한 향토문화 자료를 발굴․수집, 연구․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이를 디지털화하여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 통신 매체를 통해 서비스하며, 이용자가 또 새로운 지식의 생산자가 되는 순환형 지식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대규모 문화 콘텐츠 편찬사업입니다. 이는 그간 미진했던 전국의 향토문화 자료의 보존 및 계승의 대책 마련과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지역문화 정리사업의 필요성에 의해 추진되는 사업으로서, 지식·문화산업의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간 균형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며, 인터넷을 통해 전국 향토문화의 세계화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TIP)『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이란? 한천 농악 동영상 바로보기 한천 농악 관련 항목 바로가기민속 문화적 가치의 보고전라남도를 대표하는 농악 중 하나인 한천 농악은 11대에 걸친 상쇠들의 전승 계보에서 볼 수 있듯, 깊은 전통과 기예,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전통적인 마을 농악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대외적 활동을 통해 축적된 예술적 표현 방식이 풍부하여 그 가치를 높게 평가 받고 있다. [사진] 당산 입구에서 방울진 하는 모습 쌍봉사 철감선사 탑비 쌍봉사를 세운 철감선사의 탑비는 몸돌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龜趺]과 머릿돌[이수]만 남아 있다. 네모난 바닥 돌 위의 거북은 용의 머리를 하고 여의주를 문 채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특히 오른쪽 앞발을 살짝 올리고 있다. 머릿돌은 용 조각을 생략한 채 구름무늬만으로 채우고 있다. 앞면 가운데에 제액을 만들고 비제를 음각 예서체로 새겼다. [사진] 철감 선사 탑비, 철감 선사 탑비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지만, 전체적인 조각 수법이 뛰어나 통일 신라 시대 석조 미술을 대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국 불교 미술사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이다. 멋과 흥겨움의 한천 농악 네모난 바닥돌 위의 거북은 용의 머리를 하고 여의주를 문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귀부의 네 발은 발가락이 3개씩인데 오른쪽 앞발만 발가락을 위로 들고 있어 생동감을 주고 있다. 머리 위에는 뿔이 하나 있으며 입가에는 날개 같은 것이 있다. 비몸돌의 행방에 대해서는 1786년에 세워진 쌍봉사 사적비에 ‘철감 선사의 이름마저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한 점과 ‘절의 동서 양쪽에 비석이 있는데 서쪽의 것은 신라 때의 것이고 동쪽의 것은 고려 때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고 하였는데 서쪽의 것이 철감 선사의 비가 아닌가 추정된다. 마을에 전해지는 구전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탑비 부근의 땅 속에 이 비를 묻었을 것이라고 한다.쌍봉사 연결 항목 바로가기 한천 농악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리 한천 마을에서 전승되어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농악이다.20세기 중반부터 체계화된 한천 농악은 1950년대 후반 젊은이들이 농악계(農樂契)를 만들면서 활발한 전승이 이루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1962년에 열린 제1회 전라남도 민속 예술 경연 대회와 1963년에 열린 제2회 전라남도 민속 예술 경연 대회, 1968년에 열린 제9회 전국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 출전하여 수상을 하기도 하였다. 정월대보름의 흥겨운 농악판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의 한천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 무렵에 짧게는 1~2일, 길게는 일주일 이상 농악을 하고 논다. 연행 내용은 판어울림과 영제(令祭), 들당산, 철룡굿(天龍굿), 마을 샘굿, 마당밟이, 판굿, 날당의 일곱 개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공동체의 안녕과 각 가정의 복을 빌기 위해 마을신에게 농악을 연행하면서 축원을 하고 주민들이 신명을 나눈다. 농촌이 고령화되고 젊은 노동력이 도시로 유출되면서 마을에 활력이 줄고 마을 내에서 농악을 연행할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20여 년 전까지는 마을 축제로서 농악판이 성대하게 펼쳐졌다. [그림] 한천 농악 관련 동영상 [사진] 화순 한천 농악 보존회, 1950년대부터 체계적으로 농악을 전승해온 한천 농악 보존회는 농악보존과 계승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TIP)『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이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은 전국 230개 시·군·구 지역의 다양한 향토문화 자료를 발굴․수집, 연구․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이를 디지털화하여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 통신 매체를 통해 서비스하며, 이용자가 또 새로운 지식의 생산자가 되는 순환형 지식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대규모 문화 콘텐츠 편찬사업입니다. 이는 그간 미진했던 전국의 향토문화 자료의 보존 및 계승의 대책 마련과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지역문화 정리사업의 필요성에 의해 추진되는 사업으로서, 지식·문화산업의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간 균형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며, 인터넷을 통해 전국 향토문화의 세계화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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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순문화대전」속으로의 여행 1
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대표적인 사업『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그림]「디지털화순문화대전」홈페이지 화면 「디지털화순문화대전」(http://hwasun.grandculture.net/)은 전라남도 화순군의 디지털 백과사전으로, 화순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한 모든 정보를 집대성하여, 인터넷을 통하여 누구든지 이를 쉽게 활용할 수 있게 제작되었습니다. 2012년 1월 화순군과의 협약을 통해 추진된 이 사업은 2012년 4월부터 10월까지 기초조사연구를 통해 화순군의 향토문화 자원을 조사ㆍ분석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화순 지역 마을지 제작 사업(2012년 4월~2013년 5월,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원고집필 사업(2013년 1월~8월,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 사업(2013년 8월~2014년 4월, 생태계탐사연구제작단), 원고 교열윤문사업(2013년 12월~ 2014년 2월,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 XML 데이터 제작사업(2014년 1월~5월, 나라지식정보), 서비스 시스템 개발 사업(2014년 6월~8월, 올인텍아이엔씨)이 수행되었습니다. 2012년 1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약 2년 9개월에 걸친 작업 기간을 통해 기초조사연구, 마을지 제작, 원고집필, 멀티미디어 자료 수집, 콘텐츠 제작, 서비스 시스템 개발 사업이 진행되었고, 총 2,002개의 항목, 원고지 14,215매, 사진과 동영상 등 총 2,721종의 멀티미디어 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로 구축된 정보는 지역별 사이트와 대형 민간 포털(네이버, 다음, 구글 등)을 통해 이용자들이 손쉽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조각 장식이 화려하고 정교한 쌍봉사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 있는 쌍봉사는 순천 송광사의 말사로 고려 시대 최씨 무인 정권의 비호를 받는 무진주[광주] 일대의 선종 대가람이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왕실의 지원을 받는 등 창건 이래 꾸준히 사세(寺勢)가 유지되어 왔지만,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사세가 꺾여 해남 대흥사와 순천 송광사의 말사에 편입되었다. [사진]쌍봉사 대웅전, 쌍봉사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희귀한 목탑 양식의 건축물이다. 3층 목탑 형식의 쌍봉사 대웅전 쌍봉사의 해탈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3층 건물이 바로 대웅전이다. 쌍봉사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현존하는 희귀한 목탑 양식의 건축물이었다. 쌍봉사 대웅전은 보물 제163호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 소실되어 현재는 보물에서 제외가 되었다. 대웅전은 평면이 정사각형인 3층 전각으로 1층에는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는데, 2층과 3층은 통층으로 중심에 심주가 하나 있다. 같은 목조탑인 법주사 팔상전의 전체 모습이 윗 층으로 올라갈수록 체감이 심한 것에 비해 쌍봉사 대웅전은 각 층마다 완만한 비례를 가져 더 통일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팔상전이 통간 형식으로 되어 있음에 비하여 쌍봉사의 목탑은 적층식으로 되어 있어 중국이나 일본의 목탑 형식과 유사한 구조를 하고 있다. 쌍봉사 극락전 극락전은 쌍봉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이다. 그 내부에는 1694년에 조성된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배흘림기둥을 세운 맞배지붕의 다포계 건축이다. 전반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고 호화롭지 않아 단아한 느낌을 준다. 다만 건물에 비해 배흘림기둥이 너무 크고, 기둥에 비해 천정의 부재가 빈약해서 원래는 중층의 건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사진] 쌍봉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인 극락전 운주사 석조 불감 화순 쌍봉사 극락전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원래 양옆에 협시불인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함께 삼존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으나, 1989년 8월경 양 협시불이 도난당하여 이후 새로 조성하였다. 아미타여래 불상은 1694년(숙종 20)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51호 목조 삼존 불상과 크기와 수인만 다를 뿐 조각 형식이 매우 흡사하다. 이 불상은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하여 연대를 알 수 없는 다른 조각상의 시대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표준이 되는 것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사진] 쌍봉사 극락전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사진] 쌍봉사 극락전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원래는 양 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협시불과 함께 삼존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으나, 협시불을 도난당하여 새로 조성하였다. 쌍봉사 철감선사 탑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탑은 868년 쌍봉사의 주지를 맡고 있던 철감 선사가 입적하자 이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신라 시대 부도로, 팔각 원당형의 격식을 제대로 갖추었다. 탑신에는 문비(門扉)와 사천왕 입상, 비천상 등이 조각되었고 옥개석은 기왓골을 조각하되 막새 기와까지 표현하여 목조 건축의 의장까지 보이는 등 석조 건축물로서는 물론 조각으로서도 극치를 보이고 있다. [사진] 쌍봉사 철감 선사탑, 전형적인 신라 시대 부도인 화순 쌍봉사 철감 선사탑은 탑 전체에 치밀하고 정교한 새김 장식이 있으며 탑신에는 정밀한 표현이 돋보여 통일 신라 시대 승탑 중 최고의 걸작에 속한다. 조각 하나 하나를 조심스럽게 다듬은 석공의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작품으로, 당시에 만들어진 탑 가운데 최대의 걸작품이다. 신라의 여러 승탑 중 각부의 조각이 가장 화려한 작품으로 상·하 각부가 조화되어 있고 장중한 작풍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