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유산의 보고(寶庫)
장서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조선 왕실과 민간 사대부의 고문헌을 소장한 ‘조선시대 기록유산의 보고’입니다. 장서각은 조선왕실이 남긴 최고 수준의 문화유산인 12만여 책의 왕실도서와 전국에서 수집한 민간 고문헌 6만5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멸실 위기에 있는 민간 고문헌을 조사 · 수집하여 과학적 보존에 힘쓰고 있습니다.

제실도서목록(帝室圖書目錄)

대한제국 제실도서관의 꿈이 담긴 장서각

1908년 대한제국은 새로운 시대흐름에 맞춰 ‘문명대국의 문화적 인프라’로서 궁궐 및 사고(史庫)에 소장된 왕실도서를 모아 제실도서관을 건립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의 준동으로 제실도서관의 설립은 성사되지 못하였고, 왕실도서들은 이왕직 도서과와 창덕궁도서고를 거쳐 1981년 문화재관리국에서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위탁되었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왕실자료뿐만 아니라 민간의 고문서 수집으로 그 외연을 넓힘으로써 명실상부한 한국학 연구 중심 기관으로 그 위상을 정립하고 있습니다.

  • 1908. 대한제국 궁내부에서 왕실서고의 도서를 인수궁(仁修宮)으로 옮긴 후 제실도서관(帝室圖書館) 건립 계획
  • 1911. 왕실 도서 관리를 일본 궁내성 소속 이왕직 도서과로 이관
  • 무주 적상산사고 소장 문헌 이왕직 도서과로 이관
  • 1914. 이왕직에서 각 군영(軍營)의 고문헌 인수
  • 1915. 동궐 추경원(秋景苑) 터에 ‘창덕궁도서고’를 4층으로 신축 이전
  • 1918. 창덕궁도서고에 ‘藏書閣’ 현판 게액(揭額)
  • 1938. 창경궁 자경전 터에 세운 제실박물관의 기능을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관하고, 옛 박물관 건물을 장서각 서고로 사용
  • 1945. 광복 후 이왕직 업무 미군정청 소속 ‘구황실사무청’으로 이관
  • 1948. 대한민국 수립 후 구황실사무청에서 ‘구왕궁재산관리위원회’로 명칭 변경
  • 1950. 6․25전쟁 시 적상산사고 소장 조선왕조실록 등 반출,
  • 9월 서울 수복 후 낙선재(樂善齋) 한글소설류를 장서각으로 이관
  • 1954. 국회에서 구황실재산처리법을 개정하여 구 황실 재산 전체를 국가에 환원
  • 1955. 대통령령 제1035호에 의거하여 구왕궁재산관리위원회를 ‘구황실재산사무총국’으로 개편
  • 1960. 창경궁 내 구황실재산사무총국 사무실 방화사건 발생
  • 1961. 구황실재산사무총국 폐지, 문화재관리국을 설립하여 장서각 자료 및 문화재 관리 업무 관할□ 1964. 칠궁(七宮) 소장 고문헌을 문화재관리국으로 이관
  • 1969. 대통령령 제4203호에 의거하여 문화재관리국 ‘장서각사무소’ 설립,
  • 봉모당(奉謨堂) · 보각(譜閣)의 고문헌 이관
  • 1970. 종묘(宗廟)와 각 능원 재실(齋室) 고문헌 문화재관리국 장서각사무소로 이관
  • 1978.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 1981. 대통령령 제10588호에 의거하여 문화재관리국 장서각사무소 관할 고문헌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위탁, 전국 명문가의 고문헌 조사 수집 개시
  • 2005.01.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개칭
  • 2008.03 ~
    2010.12.
    전문 수장시설과 보존처리 환경 갖춘 장서각 신축
  • 2011.07. 신축 장서각으로 고문헌 이전 및 개관
1915년 신축된 창덕궁도서고 도면
도1. 1915년 신축된 창덕궁도서고 도면
(1938년 이후 생물표본관, 1984년 철거)
1918년 도서고 내에 걸린 장서각 현판
도2. 1918년 도서고 내에 걸린 장서각 현판
1938년부터 舊제실박물관 건물에 들어선 장서각 서고
도3. 1938년부터 舊제실박물관 건물에 들어선 장서각 서고
(1911년 창경궁 자경전 터에 건립, 1992년 철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도4.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現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도서관)
2011년 신축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5. 2011년 신축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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