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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생산과 유통은 역사 일반에 관련된 문제인 동시에 지식사·사상사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어떤 책을, 어떤 주체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는가?”라는 물음은 특정 지식과 사상의 생산 의도를 묻는 것이다. 책의 유통을 엄밀히 고찰하는 것은, 지식과 사상의 유포 이면에 있는 권력의 문제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넓게 말해, 책의 생산과 유통을 따지는 것은 한 사회의 성격을 추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서적문화사에서 숙종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족(士族)이 국가를 이끌었던 조선에서 책은 이들의 의도에 따라 생산되고 유통되었다. 조선이 끝날 때까지 책의 인쇄, 출판, 생산, 유통 등 거의 모든 문제의 결정권은 사족이 장악하고 있었다. 비록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와 예송, 환국 등 내부적인 큰 진통을 겪으면서도, 조선의 사족체제는 이후 3세기 동안 유지되었다. 사족 체제에 봉사하는 서적문화는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그 기본적인 성격이 변하지 않았고, 숙종조의 변화도 이러한 기본적 성격 위에서의 세부적 변화였다. 당시의 정국 변화는 사족을 지역별로 정치권력에서 배제하는 과정이었고, 여기서 등장한 경화세족의 존재와 당쟁은 숙종조 나아가 조선 후기 서적문화를 간섭하였다. 숙종조에 사족체제가 다시 보유하게 된 서적의 인쇄&

  • 이 책은 일본의 신화학자 다카기 도시오(高木敏雄)가 1917년 일본어로 출판한 『新日本敎育昔噺』을 처음으로 완역한 것이다. 다카하시 도루(高橋亨) 등 당시 일본의 관학자들은 조선의 사회관찰자임을 자처하며 부정적이고 비관적‧운명론적 내용의 설화를 근거로 한국인들의 민족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와 달리 다카기 도시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주로 선집하여 독자들이 웃고 즐기며 이야기를 읽는 가운데 교훈을 얻기 바랐고, 다른 일본인들이 출판한 옛이야기집에 비해 다양하고 개성 있는 작품을 많이 실어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다카기 도시오의 미덕은 한국 옛이야기에서 ‘해학과 전복’의 미학을 발견하여 작품을 선집 한 점이다. 해학은 억압받는 대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를 향한 시선을 동정적으로 만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해학은 교훈적 메시지를 은근히 숨겨 직접적 표현보다 더 효과적으로 주제를 드러낸다. 그의 옛이야기에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짓궂은 장난이 허다하게 그려진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의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예측하기 힘든 결말을 갑작스럽다고 보여준다. 지략담이나 바보담을 통해서는 어리석음이나 욕심, 따라 하기, 게으름으로 인한 실패와 몰락, 고지식함을 비웃고 지혜를 강조하였다. 도박이나 욕심, 게으름, 술 취함 등을 경계하였지만, 그것도

    • 도서명 역주 열성후비지문
    • 저자 황문환, 이현주, 김학수, 박부자, 이종덕 역주
    • 발행일 2019-12-20
    • 정가 35,000원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藏書閣) 유일본이자, 한글 필사본인 <녈셩후비지문>(2권 2책)을 현대어로 번역하고 어휘 주석을 단 것이다. <녈셩후비지문>은 태조대왕비 신의왕후 한씨부터 영조대왕비 정성왕후 서씨까지, 총 31명의 역대 왕비들과 관련된 글을 지문(誌文)을 중심으로 한 편씩 선별하여 편찬한 책이다. 지문이란 ‘죽은 사람의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날, 행적, 무덤의 위치와 좌향 따위를 적은 글’로 일반적으로 지석에 쓰여 있다. 왕비의 가계, 성품, 행적 등이 담겨 있어 그 사람의 평생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녈셩후비지문>의 편찬 목적은 당대 비빈들이 역대 왕비들의 행적을 정확히 알고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데 있었다. <녈셩후비지문>은 필사본이기는 하나 한문 원문을 직역했기 때문에 언해문을 한문 원문과 대조하여 상세히 살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더욱이 <녈셩후비지문>은 역시 장서각 유일본인 <녈셩지장통긔>와 더불어 한문본 <列聖誌狀通紀>를 같은 언해 저본(底本)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언해가 시차를 두고 이루어진 점에서 언해 양상의 차이를 비교 연구할 수 있다. 그동안 고어(古語)를 붓으로 흘려 써 판독조차 어려웠던 <녈셩후비지문>이 본 역주서의 출간으로 새롭게 재조명될 것이다.

  • 『보은기우록(報恩奇遇錄)』은 ‘조선 왕실의 소설’ 열한 번째 책이다. 제목에서 은혜를 베푼 자에게 은혜를 갚고 악행을 한 자에게는 벌을 주는 인과응보[報恩]와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奇遇]이 길게 펼쳐지는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늘에서 학문과 문장을 주관하는 별인 문창성은 지상으로 귀양 와 주인공 위연청으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 위지덕은 명문가 자제로 가세가 기울며 공부가 집안을 망친다고 생각해 철저하게 돈만 밝히는 고리대금업자이다. 위연청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던 중 평생 자신의 측근이 되어 준 유한이라는 자를 만나기도 하고, 백양의 딸 백승설과 백년가약을 약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연청은 고리대금의 원금과 열 배의 이자를 받아오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이자를 탕감해주어 무자비하게 매질을 당하다 죽을 위기를 맞는다. 백승설 또한 아버지 백양이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가자 아버지를 온갖 고초를 겪고 자결하려 한다. 거듭된 고난에도 두 사람은 과연 무사히 죽음의 고비를 넘어 위지덕의 허락을 얻고 혼인을 할 수 있을까? 혼인한 이후에는 평탄한 삶을 이어갈까? ‘조선 왕실의 소설’은 조선 왕실에서 널리 읽혔던 창덕궁 낙선재본 소설을 교주본과 현대어본으로 나누어 엮어 내어 전문 연구자는 물론 일반 독

  • 죽계(竹溪)를 품고 백운(白雲)을 머금은 사림교학의 전당,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에서 출발하여 동방에 성리학을 보급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한 안향의 뜻을 기렸다. 소백산의 좋은 기운을 받아 인문 환경을 갖추고 참된 선비를 육성하고자 하였다.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의 발원지이며, 서원 경영을 위한 기부와 운영 참여라는 사적 학습공간에 대한 공적 경영으로 서원 운영의 좋은 전통을 남겼다. 화산(花山)이 양성하고 낙수(洛水)가 비장했던 서애학의 본산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낙동강의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미가 돋보이는 서애학의 본산이다. 서애 류성룡은 학문에 있어 경학, 특히 대학을 중시하여 경세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특히 충효의 가치를 강조하는 그의 학문적 지향은 교학의 정수를 발견하고 꽃피우게 하였다. 포용과 개방의 상징처로서 국난 타개에 앞장섰고 자기 시대의 학문을 한 단계 진보시킨 제향처였다. 사회문화적 역할, 가치, 제향 인물의 역사성 등을 종합하여, 각 서원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에 역점을 두다 서원은 교육기관이기 전에 서원에 제향된 인물을 정신적 뿌리로 하여 조선시대 중앙은 물론 지역 사회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며, 한국 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서원은 존현(尊賢)과 교학(敎學)의 공간이라는 보편

  • 1776년에 영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고 봉모당을 마련하였다. 봉모당은 역대 국왕의 어제와 어필, 왕실 계보류 등 국왕 관련 자료들을 봉안하여 관리하던 장소로 조선 국왕들의 의지와 지혜를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이 책은 역사학, 건축학, 서지학, 문학 등 여러 학문 영역에서 봉모당과 봉모당 소장 자료를 다각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한 숙종, 경종, 영조, 정조가 편찬한 왕실자료를 봉모당 설치 이후 수집, 보관하는 과정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봉모당의 역사적 의미와 특징을 고찰하였다. 봉모당 봉장 목록에 수록된 당대 최고 수준의 문헌들을 소장한 내력과 현재의 소장처를 일일이 밝혔다. 봉모당 소장 어필, 책문과 석각의 현황과 특징을 파악하고,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에 사용된 국새와 어보를 망라하고 있는 인신 목록을 살폈다. 역대 국왕 중 가장 많은 어제를 남긴 영조의 어제를 문집, 열성어제, 간본, 첩본의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국왕과 신하가 함께 통치하는 성리학적 이념에 따라 설계된 조선은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국왕에게도 하나의 완성된 지식인의 모습을 요구했고, 경연을 통해 성군(聖君)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게 했다. 두 번의 큰 전란을 겪은 뒤 조선의 국왕은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하였으며, 그것이 현재 어떻게

  •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가 말년에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며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생각한 바를 적어, 이를 이관(耳官), 목관(木官), 심관(心官)의 ‘삼관(三官)’으로 분류하여 수록한 『삼관기(三官記)』의 내용을 현대적으로 엮은 책이다. 총 6장으로 1장은 이재 자신의 개인사와 가문의 인물들과 얽힌 에피소드를 2장은 이모인 인현왕후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궁 안에서 처음 뵙던 일, 폐위되어 안국동 본가에서 지내는 모습이나 왕후로 복위되기까지의 여러 일화를 담았다. 3장과 4장은 조정 생활과 벼슬을 하며 겪은 관료들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이재가 활동한 17세기 말엽에서 18세기 전반은 남인과 서인의 당파적 대립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서인 내부에서도 노론과 소론의 분기가 이루어진 시기여서 당파 간의 대립과 분화에 따른 당시 사회의 변모 양상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5장과 6장은 이재의 주변 인물들 이야기가 많은데 실록이나 여타 자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한다.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구운몽』을 쓴 김만중, 인자하고 인품이 훌륭하였지만 자식들에게는 엄격했던 황희 정승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사례를 통해 핵심행정부, 즉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부와 산하기관, 시민단체 등의 의사결정의 다면성을 살핀 책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해방 이후 50여 년간 철거 여부를 놓고 공론의 대상이었지만,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에 들어와 해체되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해방 직후 잠시 미군정 청사로 활용되었으며,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 등 그때그때 상황과 필요에 의해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그 정체성을 달리 하였다. 또한 6·25전쟁과 서울 수복, 제헌국회 개원,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는 건물 자체의 다면적 정체성보다 더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결국 건물은 해체되었지만, 당시의 의사결정 맥락은 매우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조선총독부 철거 사례는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정부 정책결정의 본질을 포착하고 국가 의사결정의 다차원적 세계를 경험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동일한 정책결정임에도 접근방법에 따라 그 사례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는 달라진다. 그러나 ‘상징정치의 차원’, ‘정책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 ‘정

  • 역사의 굴곡에서도 꿋꿋히 그 자리를 지킨 노강서원 노강서원은 팔송 윤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자 창건되어 노론과 소론 간의 격렬한 논쟁 속에서도 소론을 대표하며 무실(務實)과 청신(淸新)의 학풍을 디자인했던 소론학의 거점이었다. 서원이 창립되던 17세기는 의리의 시대였다. 성수침‧성혼 부자에게서 연원하는 도학자로서의 학문적 지향은 윤황-윤선거-윤증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학풍을 정립하였다. 그들은 정치적 약자였기에 때로는 시련이 따랐지만 그 심지만큼은 소중하게 지켜냄으로써 조선의 학술문화적 외연을 확대하고 격조를 더했다. 천인벽립의 기상이 서린 의리학의 본산 화양서원 화양서원은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인 화양동에 자리한 채 300년의 풍상을 거치면서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을 배향하며 조선 후기 정치권력의 상징이자 사림의 본거지로 구심적 역할을 하였다. 송시열에게 있어 화양동은 주자학적 이상을 실천하는 공간이었고, 그가 존주의리를 주창하다 정쟁에 희생되었을 때 화양서원은 의리학의 본산이자 기호학의 성지가 되었다. 송시열 철학의 요체는 곧음[直]에 있었고, 이를 통해 그는 ‘의리주인’을 자처하며 17세기 조선의 사상계를 풍미했다. 그 의리는 화양동의 수려한 풍광과 어우러져 기호학의 지적 자양분이 되어 조선의 지성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문화적 역할, 가

  • 조선 후기 한양 도성의 방위를 담당했던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의 군영에서 작성한 군영등록은 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약 3백년에 걸쳐 기록되어, 현재까지 89종 689책의 방대한 분량이 남아 있다. 군영등록은 각 군영의 업무 과정에서 생성된 기록으로, 군영의 일지, 규정, 왕의 거둥 수행, 성역(城役) 감독, 군사 훈련, 재정, 공문 모음, 민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관찬 자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어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자료이다. 이 책은 규모가 가장 큰 군영인 훈련도감의 기록인 『훈국등록(訓局謄錄)』의 내용을 10개의 주제로 엮어 소개한다. 군병의 충원과 신분의 변화, 상설 군영으로의 변모, 도망병의 발생, 주거 문제, 신고식 관행, 세곡 운송 시스템, 군사 훈련과 깃발의 상징, 도성 축성에 참여한 군병 등 훈련도감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 군영을 배경으로 한 생생한 삶의 모습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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