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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사례를 통해 핵심행정부, 즉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부와 산하기관, 시민단체 등의 의사결정의 다면성을 살핀 책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해방 이후 50여 년간 철거 여부를 놓고 공론의 대상이었지만,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에 들어와 해체되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해방 직후 잠시 미군정 청사로 활용되었으며,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 등 그때그때 상황과 필요에 의해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그 정체성을 달리 하였다. 또한 6·25전쟁과 서울 수복, 제헌국회 개원,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는 건물 자체의 다면적 정체성보다 더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결국 건물은 해체되었지만, 당시의 의사결정 맥락은 매우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조선총독부 철거 사례는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정부 정책결정의 본질을 포착하고 국가 의사결정의 다차원적 세계를 경험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동일한 정책결정임에도 접근방법에 따라 그 사례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는 달라진다. 그러나 ‘상징정치의 차원’, ‘정책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 ‘정

  • 조선의 왕은 하늘, 땅, 사람으로 구성된 우주의 중심을 관통하는 존재였기에 절대적 권력과 영향력을 가졌고, 궁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직계가족, 왕족을 보필하는 내시와 궁녀 등 천여 명과 함께 살았다. 그러므로 왕실 사람들의 삶은 늘 동경과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특히 역사적인 사건과 삶의 굴곡이 많았던 왕일수록 더욱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조선 19대 왕인 숙종은 재위 46년(1674~1720) 동안 큰 전쟁 없이 대외 문제가 비교적 평온하여 성리학을 장려하고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또한 선조 말부터 시작된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실시해 실효를 거두었고, 주전鑄錢 사용 확대로 경제 시책의 결실을 이루었다. 그러나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 애증의 감정을 드러내며 붕당정치를 격화시킴으로써 비참한 살육사건이 수차례 일어났다. 후대의 사가들은 조선에서 당쟁이 가장 심했으나 군주의 고유 권한을 적절히 활용하여 정권을 교체하고 왕권 강화와 민생 안정에 주력할 수 있었다고도 평한다. 숙종은 어린 시절부터 감수성이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감정 기복이 심했다. 이러한 섬세하고 감정에 충실한 숙종은 사랑 때문에 왕비인 인현왕후를 폐위하고 궁녀인 장씨를 왕비로 비상하게 했다. 그러나 6년 후 왕후를 복위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끝내는 두 여인도 지키지 못했다. 지나친

  • 역사의 굴곡에서도 꿋꿋히 그 자리를 지킨 노강서원 노강서원은 팔송 윤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자 창건되어 노론과 소론 간의 격렬한 논쟁 속에서도 소론을 대표하며 무실(務實)과 청신(淸新)의 학풍을 디자인했던 소론학의 거점이었다. 서원이 창립되던 17세기는 의리의 시대였다. 성수침‧성혼 부자에게서 연원하는 도학자로서의 학문적 지향은 윤황-윤선거-윤증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학풍을 정립하였다. 그들은 정치적 약자였기에 때로는 시련이 따랐지만 그 심지만큼은 소중하게 지켜냄으로써 조선의 학술문화적 외연을 확대하고 격조를 더했다. 천인벽립의 기상이 서린 의리학의 본산 화양서원 화양서원은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인 화양동에 자리한 채 300년의 풍상을 거치면서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을 배향하며 조선 후기 정치권력의 상징이자 사림의 본거지로 구심적 역할을 하였다. 송시열에게 있어 화양동은 주자학적 이상을 실천하는 공간이었고, 그가 존주의리를 주창하다 정쟁에 희생되었을 때 화양서원은 의리학의 본산이자 기호학의 성지가 되었다. 송시열 철학의 요체는 곧음[直]에 있었고, 이를 통해 그는 ‘의리주인’을 자처하며 17세기 조선의 사상계를 풍미했다. 그 의리는 화양동의 수려한 풍광과 어우러져 기호학의 지적 자양분이 되어 조선의 지성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문화적 역할, 가

  • 조선 후기 한양 도성의 방위를 담당했던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의 군영에서 작성한 군영등록은 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약 3백년에 걸쳐 기록되어, 현재까지 89종 689책의 방대한 분량이 남아 있다. 군영등록은 각 군영의 업무 과정에서 생성된 기록으로, 군영의 일지, 규정, 왕의 거둥 수행, 성역(城役) 감독, 군사 훈련, 재정, 공문 모음, 민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관찬 자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어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자료이다. 이 책은 규모가 가장 큰 군영인 훈련도감의 기록인 『훈국등록(訓局謄錄)』의 내용을 10개의 주제로 엮어 소개한다. 군병의 충원과 신분의 변화, 상설 군영으로의 변모, 도망병의 발생, 주거 문제, 신고식 관행, 세곡 운송 시스템, 군사 훈련과 깃발의 상징, 도성 축성에 참여한 군병 등 훈련도감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 군영을 배경으로 한 생생한 삶의 모습을 전하고자 한다.

  • 토기 신기술의 정착 과정으로 한반도 고대 물질문화의 형성 과정을 고찰하다 토기는 생산, 일상생활, 종교의식 등에 반드시 필요한 인류의 핵심 도구로, 한반도에 중국 내지의 토기 제작기술이 유입된 것은 대략 철기 시대이다. 이 책은 이렇게 유입된 토기 제작기술이 토착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속도가 지리적 여건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각각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토기 생산과 사용에 관한 기술적 논의를 성분 분석이나 편년작업에 국한하지 않고, 신기술의 수용에 영향을 미친 해당 지역의 경제적․사회문화적 조건을 고려함으로써 기존의 논의방식과 차별성을 두었다. 이 책은 크게 시기, 지역, 토기 형태라는 범주 안에서 자료를 제시하며 한반도의 물질문화를 종합적으로 재현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 토착사회에 수용되며 획기적 변화를 가져와 한국 토기문화의 주요 전통을 이루게 될 철기시대의 토기 제작기술 변동 맥락을 확인하였다. 동북아 지역의 장각두형토기 확산 과정과 주변 지역에서 새로운 토기 형식이 출현하는 맥락, 북한강 유역의 토착문화가 새로운 타날 기술을 체화하면서 토기기술을 전수하고 생산시스템을 재조직하는 변화상, 창원에서 김해 지역으로 와질토기의 제작 전통이 확산되는 현상과 사례, 토착문화의 일상토기를 근거로 동남 해안권역 목곽묘 문화 세력 출현의 시간차 규명 등을 서술하였다. 유적 중심

  • The Questions and their Answers: A New Look into the Korean State Examination System is an illustrated catalog based on Sigwon-Listening to the Wisdom of the State Management (2015). It provides a revisionist view of the state examination system (Kr. gwageo or Ch. keju), a long East Asian tradition that has often criticized as an outdated relic of the past. Our catalog provides a revisionist view of what the examination system meant to Korea. We do so by narrowing the focus to the answer sheets of the examination, the sigwons, as seen in the sources. Topic covered included an overview of the history of the civil service exam in Korea, aspect of the everyday

  • 1950년 12월, 한국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한국의 경제를 전쟁 이전의 수준으로 재건하기 위해 국제연합 한국재건단(UNKRA)이 설립되었다. 전쟁기간 동안에 UNKRA의 활동이 민간인에 대한 긴급구호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전쟁 이후에는 산업․교통․통신시설의 사회기반산업의 복구와 주택․의료․교육 등 생활환경 개선에 주력하였다. 이들은 한국전쟁 이전의 상태로 경제 수준을 되돌려놓기 위해 당대의 사회・경제에 대한 면밀한 ‘진단’이 필요했고, 당대 최고의 경제전문가 로버트 R. 네이산에게 한국 경제에 대한 현지 조사 및 보고를 의뢰하게 된다. 네이산이 1946년에 설립한 민간경제자문기관인 네이산 협회는 1952년에 예비 보고서인 “한국의 경제 재건에 관한 예비 보고”를, 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에 “한국 재건을 위한 경제 계획(An Economic Programme for Korean Reconstruction)”이라는 제목의 최종보고서를 UNKRA에 제출하였다. 이 최종보고서가 이른바 「네이산보고」, ‘한국경제 재건계획’ 또는 ‘Nathan Report’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네이산보고」는 4명의

  • 국내 종교계의 실제 수련 체계와 의의에 관한 해설서 1980년대부터 한국에서는 개인의 종교적 이상을 실천하기 위한 심신수련이 발흥하여 일반 신도들에게 널리 퍼졌다. 이러한 ‘수련문화’의 형성과 발달은 기존의 종교적 수행 전통과 맥을 달리 하는 현대의 특징이다. 이러한 양상을 키워드로 삼아 주요 종교단체의 현주소와 수련 현장을 살핀 『한국 종교교단 연구 Ⅺ - 수련문화 편』이 출간되었다. 주요 연구대상을 불교(안국선원, 호두마을 등), 신종교(천도교, 증산도, 대종교, 원불교 등), 천주교(베네딕트 수도회, 예수회 등), 개신교(동광원, 예수원 등)로 분류하여 일차적으로 관련 문헌을 수집함으로써 접근방법을 분명히 했다. 그 결과로 위치․인적 규모․체험담 등 현장조사 없이는 파악하기 어려운 실제 정보들을 일관성 있게 조명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수련활동 맥락과 실제 현장을 대조하여 수련법의 변동이나 분파 현상을 포착하고 있다. 주요 종교단체의 실제 수련프로그램과 수련 내용을 객관적으로 서술함으로써 현대적인 종교 수련이 수련자, 혹은 신도들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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