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위기와 율곡 이이의 문제의식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는 흔히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삶은 성리학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열아홉 살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했고, 노자의 『도덕경』을 산삭하여 『순언』을 편찬했으며, <화석정>과 <고산구곡가>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다. 이러한 면모는 그를 성리학자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이자, 문학과 사상, 정치와 현실을 함께 고민한 통유(通儒)로 보게 한다. 16세기 후반 조선은 훈구와 권간의 폐정이 누적되고 제도는 시대 변화를 따르지 못했으며, 동인과 서인의 분당으로 공론마저 무력화되던 시기였다. 이이는 이를 단순한 정치 세력 간의 갈등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창업과 수성의 시기가 지난 ‘경장(更張)의 시대’로 진단하고, 법과 제도를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할 과제로 이해하였다. 이기지묘의 철학에서 경장과 개혁의 정치로 이이의 학문은 세계와 인간의 원리를 밝히는 데 머물지 않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문제로 나아갔다. 그는 이(理)와 기(氣)가 서로 떨어질 수도, 뒤섞일 수도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보고, 이를 ‘이기지묘(理氣之妙)’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한국어를 제대로 처리하려면 먼저 한국어를 어떤 단위로 나눌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 책은 자연어처리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이 알고리즘만이 아니라, 언어 자원을 어떤 단위와 구조로 설계하느냐에 있음을 밝힌다. 저자는 공백 중심의 어절 단위가 한국어의 복잡한 형태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형태소 중심의 처리 체계를 제안한다. 이를 품사 태깅, 개체명 인식, 의존 구문 분석, 프레임넷(FrameNet) 등 자연어처리의 여러 과제에 적용하여 그 효과를 실험적으로 검증한다. 이 책은 형태소 기반 자원이 어절 기반 자원보다 한국어 처리 성능을 더 일관되게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며, 한국어의 특성을 보존하면서 국제 표준과도 호환되는 언어 자원 설계의 방향을 제시한다. 나아가 한국어 자연어처리의 정밀도를 높이고, 교착어 자연어처리 연구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책은 2023년 일본 고요쇼보(晃洋書房)에서 간행된 『帝國日本と朝鮮牛: 畜産資源の確保と植民地化』의 완역본이다. 조선 소(朝鮮牛)가 일본에 의해 하나의 자원으로 인식되고, 식민지화 과정에서 한·일 간 유통·검역·군사적 활용의 대상으로 편입되어 간 역사를 본격적으로 규명한다. 최근 일제강점기 소를 다루는 연구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조선 소를 자원사(資源史)의 관점에서 추적한 선구적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전체 구성은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개항 이후 조선 소를 둘러싼 변화를 두 개의 축으로 나누어 전개된다. ‘제1부 근대 조선 소 무역의 변용’에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군수적 가치가 높아진 조선 소에 주목하여, 조선 내 유통망과 상권의 형성, 일본 상인의 진출, 검역제도의 강화 과정을 분석한다. 개항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조선 소 시장에서 조선인 상인들의 대응과 일본 상인의 우위 확보 과정을 함께 조명하고, 일본에서 발생한 우역(牛疫)이 지역 사회와 법 제도에 미친 영향, 조선 북부의 대러시아 교역권 재편 양상까지 폭넓게 다룬다. 이를 통해 조선 소 유통 구조가 점차 일본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제2부 식민지화의 진행과 조선 소 이용 확대’에서는
Re-Born Korea is a series that reintroduces significant works from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to a global readership, bringing influential scholarship into conversation with contemporary questions. This inaugural volume begins with a timely yet enduring question: Why Korean Studies, and why now? Although Korean Studies is commonly understood as the study of Korea, its origins were anything but straightforward. Emerging at the intersection of colonial systems of knowledge and efforts to reclaim Korean history and identity, the field evolved through continuing debates over universalism and particularism, tradition and modernity, and nationalism and global
‘Re-Born Korea’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지에 발표된 주요 학술 논문을 엄선해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읽고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기획한 시리즈이다. 첫 번째 권인 이 책은 “왜 지금 한국학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한국학은 ‘한국’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학문이지만, 그 성립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식민지 시기의 조선학과 국학은 식민 지배의 지식 체계와 민족 저항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보편성과 특수성, 전통과 근대, 민족주의와 세계성 등을 둘러싼 논의를 거치며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이 책은 한국학이 형성되고 변화해 온 과정을 되짚으며 그 현재와 미래를 성찰한다. 근대전환기와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 이후에 이르기까지 한국학이 어떤 문제의식 속에서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고, 오늘날 한국학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특히 한국학을 고정된 ‘한국다움’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학은 조선과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을 잇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 개방적 지식 체계였으며, 오늘날에는 한국의 역사와 현실을 세계사적 맥락에서 이해하기 위한 통합적 인문학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 이 책은 영문판 『Remapping Korean Studies』로도 발간
〈삼국사기 자연학〉 시리즈는 『삼국사기』에서 인간의 역사로 끌어들인 모든 자연의 관찰 기록을 ‘자연학’이라는 분석틀로 집성한 연구서다. 천문 기상의 ‘물리 자연학’ 분야와 함께 각종 신화 영징의 기록도 자연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또 하나의 통로라는 점에서 ‘인문 자연학’ 분야로 포괄한다. 이같이 넓은 자연학 관점 아래 천문, 기상, 역법, 시간 및 신화, 영징, 제사의 분야별 주제사를 통찰하고자 시도한다. 제1책 『삼국사기 일식 기록과 금석문 역일 기록』은 『삼국사기』 일식 기록을 중국 고대 일식 사료와 전면 대조하고 아울러 시각적 역사 일식 도면을 통해 일식의 실제성을 경험과학적으로 재구성한다. 그 결과로 삼국이 독립적으로 관측 기록한 일식 사료와 삼국 왕경 발생의 실제 개기일식의 기록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국내외 처음으로 밝혀낸다. 이는 『삼국사기』 일식 기록이 천변재이학의 일환으로 후대에 삽입된 기록임을 의미하며, 이에 따라 일식 기록에서 비롯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신뢰성 논란이 사료 인과성과는 무관한 논의임을 보여준다. 후반부에서는 한국 고대사 1천 년간의 역법 기록 변화와 근거를 새롭게 밝혀 한국 역법학사 연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국내 최초로 『삼국사기』 및 고대 금석문의 시간 기
〈삼국사기 자연학〉 시리즈는 『삼국사기』에서 인간의 역사로 끌어들인 모든 자연의 관찰 기록을 ‘자연학’이라는 분석틀로 집성한 연구서다. 천문 기상의 ‘물리 자연학’ 분야와 함께 각종 신화 영징의 기록도 자연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또 하나의 통로라는 점에서 ‘인문 자연학’ 분야로 포괄한다. 이같이 넓은 자연학 관점 아래 천문, 기상, 역법, 시간 및 신화, 영징, 제사의 분야별 주제사를 통찰하고자 시도한다. 제2책 『삼국사기 천문지와 한국사 핼리혜성 기록』은 고대 천문학이 추구한 성변(星變) 분류의 관점을 중심으로 『삼국사기』 천문 기록을 재구성하고 그 특성을 고찰한다. 『삼국사기』일식 기록이 중국사 의존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성변 기록에는 고대 한국의 천문 관측 역량을 보여주는 독자적인 기록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후반부는『삼국사기』의 방대한 기록 속에서, 혜성 중 가장 강렬한 핼리혜성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 많은 『삼국사기』의 혜성 기록 중에 과연 눈부신 핼리혜성 기록이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삼국사기』에 수록된 혜성 기록을 종합하여 정리하고 중국사 기록과 비교 분석한 결과, 핼리혜성 기록이 단 한 건도 없음을 확인하는 한편, 그 대상을 한국사 기
조선시대 사람들은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자발적인 참여와 합의로 계를 조직했다. 또한 계는 당시에 다양한 조직이나 집단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왕조를 이해하는 데 당대 사회 조직으로서 여러 기능을 수행한 계를 연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 책은 호혜와 협동이라는 관점에서 계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모습을 조망한다. 그러나 이 책이 분석하는 계의 실상은 막연하고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조선시대 다양한 지역별 사례를 발굴하여 운영 주체와 목적에 따라 계의 결속 양상이 각기 다르게 나타났음을 실증적으로 살폈다. 장흥 상금동 반촌이 촌락의 화합보다 문중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허울뿐인 동계를 꾸렸다면, 경주 옥산동 서얼 마을은 적손 마을에 대항하며 동계를 구심점 삼아 강고하게 결속했다. 이러한 상이한 양상은 다른 계 조직에서도 확인된다. 같은 관청이나 관직에 제수된 관원들 간에 조직된 동관계도 실제로는 관청마다 결속력에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구체적인 계 조직과 지역 사례를 분석한 이 책은 조선시대 향촌사회 조직의 다층적인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으로서 그 의미가 깊다. 나아가 이 책은 단일한 공동체라는 환상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인 인적 결합의 복합적인 실상을 폭넓게 고민하도록 이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왕조 교체와 정도전의 문제의식 고려 말의 혼란은 단순한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원리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였고, 그 속에서 정도전은 새로운 질서를 설계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보았다. 14세기 말 고려는 대외 관계의 불안, 왜구의 침입, 권문세족의 토지 지배, 약화된 왕권 등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하였다. 국왕의 권위는 크게 흔들렸고, 정치 체제 역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한 채 국가를 다시 세울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였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이 문제에 대해 고려 말의 혼란을 단순한 정치 세력의 갈등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할 문제로 이해하였다. 위화도 회군 이후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고 제도 개혁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정도전은 이러한 변화에 사상적 방향을 제시한 핵심 인물이었다. 왕조 교체는 단순한 권력 이동이 아니라 사회 문제 해결의 방향을 둘러싼 역사적 선택이었다. 성리학과 새로운 국가 구상 정도전의 사상은 새로운 국가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치적 답변이었다.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반은 성리학이었으며, 고려 말 성균관을 중심으로 성장한 신진 사대부들은 이를 새로운 정치 질서의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인간과 사회의
한국금석학의 체계와 금석문으로 새롭게 조명한 한국사 금석학은 문자와 문헌이 남기지 못한 역사 정보를 복원하는 학문이며, 특히 ‘한국금석학’은 단순한 비문 해독을 넘어 한 시대의 사상·제도·예술·언어가 교차한 복합적 자료를 다룬다. 돌과 금속 등에 새겨진 글자는 당시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문헌과 다른 차원의 역사 자료를 제공한다. 이 책은 금석문을 중심 자료로 삼아 한국 고대와 중세의 역사 이해를 확장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승탑과 탑비, 묘지명 등 다양한 금석 자료를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사서와 문집이 포착하지 못한 역사 현실을 복원하고, 문헌과 조형 예술이 결합된 역사 기록으로서 금석문의 성격을 밝힌다. 저자는 수십 년간의 현지 조사와 탁본 대조를 바탕으로 금석문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정본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흩어져 있던 연구 성과를 하나의 통론으로 정리하여 한국금석학의 연구 방향과 과제를 드러낸다. 금석문 정본 확립과 현지 조사로 구축한 연구 체계 이 책은 전국 각지에 남아 있거나, 기록으로만 전하는 승탑·탑비·묘지명·부도명 등 다양한 금석문 자료를 바탕으로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는 한국 고중세사 이해의 범위를 넓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