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자연학〉 시리즈는 『삼국사기』에서 인간의 역사로 끌어들인 모든 자연의 관찰 기록을 ‘자연학’이라는 분석틀로 집성한 연구서다. 천문 기상의 ‘물리 자연학’ 분야와 함께 각종 신화 영징의 기록도 자연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또 하나의 통로라는 점에서 ‘인문 자연학’ 분야로 포괄한다. 이같이 넓은 자연학 관점 아래 천문, 기상, 역법, 시간 및 신화, 영징, 제사의 분야별 주제사를 통찰하고자 시도한다. 제1책 『삼국사기 일식 기록과 금석문 역일 기록』은 『삼국사기』 일식 기록을 중국 고대 일식 사료와 전면 대조하고 아울러 시각적 역사 일식 도면을 통해 일식의 실제성을 경험과학적으로 재구성한다. 그 결과로 삼국이 독립적으로 관측 기록한 일식 사료와 삼국 왕경 발생의 실제 개기일식의 기록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국내외 처음으로 밝혀낸다. 이는 『삼국사기』 일식 기록이 천변재이학의 일환으로 후대에 삽입된 기록임을 의미하며, 이에 따라 일식 기록에서 비롯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신뢰성 논란이 사료 인과성과는 무관한 논의임을 보여준다. 후반부에서는 한국 고대사 1천 년간의 역법 기록 변화와 근거를 새롭게 밝혀 한국 역법학사 연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국내 최초로 『삼국사기』 및 고대 금석문의 시간 기
〈삼국사기 자연학〉 시리즈는 『삼국사기』에서 인간의 역사로 끌어들인 모든 자연의 관찰 기록을 ‘자연학’이라는 분석틀로 집성한 연구서다. 천문 기상의 ‘물리 자연학’ 분야와 함께 각종 신화 영징의 기록도 자연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또 하나의 통로라는 점에서 ‘인문 자연학’ 분야로 포괄한다. 이같이 넓은 자연학 관점 아래 천문, 기상, 역법, 시간 및 신화, 영징, 제사의 분야별 주제사를 통찰하고자 시도한다. 제2책 『삼국사기 천문지와 한국사 핼리혜성 기록』은 고대 천문학이 추구한 성변(星變) 분류의 관점을 중심으로 『삼국사기』 천문 기록을 재구성하고 그 특성을 고찰한다. 『삼국사기』일식 기록이 중국사 의존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성변 기록에는 고대 한국의 천문 관측 역량을 보여주는 독자적인 기록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후반부는『삼국사기』의 방대한 기록 속에서, 혜성 중 가장 강렬한 핼리혜성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 많은 『삼국사기』의 혜성 기록 중에 과연 눈부신 핼리혜성 기록이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삼국사기』에 수록된 혜성 기록을 종합하여 정리하고 중국사 기록과 비교 분석한 결과, 핼리혜성 기록이 단 한 건도 없음을 확인하는 한편, 그 대상을 한국사 기
〈삼국사기 자연학〉 시리즈는 『삼국사기』에서 인간의 역사로 끌어들인 모든 자연의 관찰 기록을 ‘자연학’이라는 분석틀로 집성한 연구서다. 천문 기상의 ‘물리 자연학’ 분야와 함께 각종 신화 영징의 기록도 자연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또 하나의 통로라는 점에서 ‘인문 자연학’ 분야로 포괄한다. 이같이 넓은 자연학 관점 아래 천문, 기상, 역법, 시간 및 신화, 영징, 제사의 분야별 주제사를 통찰하고자 시도한다. 제3책 『삼국사기 기상지와 자연재해 기록』은 『삼국사기』 기상 기록 전체를 분석하여 삼국시대 기상 기후적 특성과 기상, 재해, 역질, 농사로 연쇄되는 자연재해 관리 연계망을 재구성한다. 『삼국사기』에 수록된 기상 기록이 일상적 기상현상이 아니라 재해 상황에 대한 기록 위주여서 기상재해지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 고대 기상지가 단순히 날씨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존립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가뭄과 기근 및 역질과 구휼의 민생 범위까지 포괄하는 매우 넓은 생존과학의 기록임을 드러낸다.
<삼국사기 자연학> 시리즈는 『삼국사기』에서 인간의 역사로 끌어들인 모든 자연의 관찰 기록을 ‘자연학’이라는 분석틀로 집성한 연구서다. 천문 기상의 ‘물리 자연학’ 분야와 함께 각종 신화 영징의 기록도 자연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또 하나의 통로라는 점에서 ‘인문 자연학’ 분야로 포괄한다. 이같이 넓은 자연학 관점 아래 천문, 기상, 역법, 시간 및 신화, 영징, 제사의 분야별 주제사를 통찰하고자 시도한다. 제4책 『삼국사기 시간 기록과 외교 기록일 복원』은 『삼국사기』에 수록된 시간 기록 전모를 분석하여 삼국시대 시간생활의 양상과 특성을 복원한 책이다. 하루 12진시와 오야(五夜) 시간법, 세시절일, 연월일 기록, 윤달 기록을 검토하고, 특히 『삼국사기』와 중국 사료 20종을 전수 대조하는 방법을 통해 고구려·백제·신라의 대중국 외교 기록의 연월일을 복원하고 양력으로 환산함으로써 한국 고대사 연대기 독법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시간 기록을 단순한 날짜 표기가 아니라 고대 국가의 외교, 제례, 생활 질서를 구성하는 핵심 정보로 읽어낸 이 책은, 『삼국사기』를 정확한 연대 위에서 다시 읽고자 하는 연구자와 독자에게 정교하고 치밀한 시간학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
조선시대 사람들은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자발적인 참여와 합의로 계를 조직했다. 또한 계는 당시에 다양한 조직이나 집단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왕조를 이해하는 데 당대 사회 조직으로서 여러 기능을 수행한 계를 연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 책은 호혜와 협동이라는 관점에서 계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모습을 조망한다. 그러나 이 책이 분석하는 계의 실상은 막연하고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조선시대 다양한 지역별 사례를 발굴하여 운영 주체와 목적에 따라 계의 결속 양상이 각기 다르게 나타났음을 실증적으로 살폈다. 장흥 상금동 반촌이 촌락의 화합보다 문중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허울뿐인 동계를 꾸렸다면, 경주 옥산동 서얼 마을은 적손 마을에 대항하며 동계를 구심점 삼아 강고하게 결속했다. 이러한 상이한 양상은 다른 계 조직에서도 확인된다. 같은 관청이나 관직에 제수된 관원들 간에 조직된 동관계도 실제로는 관청마다 결속력에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구체적인 계 조직과 지역 사례를 분석한 이 책은 조선시대 향촌사회 조직의 다층적인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으로서 그 의미가 깊다. 나아가 이 책은 단일한 공동체라는 환상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인 인적 결합의 복합적인 실상을 폭넓게 고민하도록 이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왕조 교체와 정도전의 문제의식 고려 말의 혼란은 단순한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원리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였고, 그 속에서 정도전은 새로운 질서를 설계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보았다. 14세기 말 고려는 대외 관계의 불안, 왜구의 침입, 권문세족의 토지 지배, 약화된 왕권 등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하였다. 국왕의 권위는 크게 흔들렸고, 정치 체제 역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한 채 국가를 다시 세울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였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이 문제에 대해 고려 말의 혼란을 단순한 정치 세력의 갈등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할 문제로 이해하였다. 위화도 회군 이후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고 제도 개혁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정도전은 이러한 변화에 사상적 방향을 제시한 핵심 인물이었다. 왕조 교체는 단순한 권력 이동이 아니라 사회 문제 해결의 방향을 둘러싼 역사적 선택이었다. 성리학과 새로운 국가 구상 정도전의 사상은 새로운 국가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치적 답변이었다.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반은 성리학이었으며, 고려 말 성균관을 중심으로 성장한 신진 사대부들은 이를 새로운 정치 질서의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인간과 사회의
한국금석학의 체계와 금석문으로 새롭게 조명한 한국사 금석학은 문자와 문헌이 남기지 못한 역사 정보를 복원하는 학문이며, 특히 ‘한국금석학’은 단순한 비문 해독을 넘어 한 시대의 사상·제도·예술·언어가 교차한 복합적 자료를 다룬다. 돌과 금속 등에 새겨진 글자는 당시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문헌과 다른 차원의 역사 자료를 제공한다. 이 책은 금석문을 중심 자료로 삼아 한국 고대와 중세의 역사 이해를 확장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승탑과 탑비, 묘지명 등 다양한 금석 자료를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사서와 문집이 포착하지 못한 역사 현실을 복원하고, 문헌과 조형 예술이 결합된 역사 기록으로서 금석문의 성격을 밝힌다. 저자는 수십 년간의 현지 조사와 탁본 대조를 바탕으로 금석문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정본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흩어져 있던 연구 성과를 하나의 통론으로 정리하여 한국금석학의 연구 방향과 과제를 드러낸다. 금석문 정본 확립과 현지 조사로 구축한 연구 체계 이 책은 전국 각지에 남아 있거나, 기록으로만 전하는 승탑·탑비·묘지명·부도명 등 다양한 금석문 자료를 바탕으로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는 한국 고중세사 이해의 범위를 넓힌다
주자학 비판자로서의 윤휴와 경서 해석 17세기 조선의 학자 백호(白湖) 윤휴(尹鑴, 1617~1680)는 오랫동안 위험한 인물, 배제되어야 할 사상가로 기억되어 왔다. 그는 동시대 서인 계열 학자들로부터 ‘사문난적(斯文亂賊)’, ‘적휴(賊鑴)’, ‘흑수(黑水)’라는 극단적인 낙인을 받았고, 결국 역모 혐의로 처형되었으며 사후에도 오랜 기간 신원되지 못했다. 이러한 배척의 중심에는 주희의 『중용장구』를 따르지 않고 『중용』·『대학』·『효경』·『서경』 등 경전을 독자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비판은 주로 ‘주자학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집중되었을 뿐, 윤휴가 제시한 해석의 실제 내용과 문제의식은 거의 검토되지 않았다. 윤휴의 경서 해석은 단순한 학문적 이탈이나 불손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직면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 기존의 주자학적 질서만으로는 부국강병과 국가 재조라는 과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사유의 결과였다. 윤휴가 『중용』을 새롭게 읽고, 『효경』과 『대학』에 주목하며 독자적인 해석 체계를 구축한 이유는 경학을 통해 당대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
불교 수행자로서의 균여 사상 고려 초기의 승려이자 사상가인 균여(均如, 923~973)는 시인이나 정치가, 혹은 신비한 영험의 주인공으로 주로 다뤄져 왔다. 이 책은 균여를 불교의 출가 수행자라는 정체성에 기초해 그가 평생에 걸쳐 무엇을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는지,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했는지, 그리고 그 사유의 핵심은 무엇이었는지를 통합적으로 규명한다. 균여 사상의 핵심은 화엄사상에 기반한 열반과 그에 이르는 길, 다시 말해 자신을 포함한 일체 중생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실현하려는 수행자의 서원에 있다. 균여는 의상이 정초한 한국 화엄사상을 고려 초의 현실 속에서 재정립한 화엄학의 거장인 동시에 그 사유를 향가 「보현십원가」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전하고자 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나’라는 존재의 참모습을 어떻게 인식하고[境], 그 인식을 어떻게 수행으로 전환하며[行], 그 결과를 삶 속에서 증명할 것인가[證]라는 물음을 일관되게 추구했다. 이 책은 이러한 사유 구조를 중심으로 균여의 교리 이해와 수행관을 분석함으로써, 그의 사상이 개인의 깨달음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삶과 연결되었음을 밝힌다. 문헌으로 본 균여 사유와 고려 불교의 현재성 이 책은 『균여전』을 비롯한 균여 전기 자료와 그가 남긴 화엄 관련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