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대는 조선 후기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시기로, 그 변화는 제도와 담론뿐 아니라 공간의 재편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국왕의 사저였던 창의궁은 정치적 기억과 정체성이 응축된 상징 공간으로 부상했고, 대리청정이 이루어진 경희궁은 후계 구도를 둘러싼 국정 운영 전략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영조는 왕실 능전 정비를 통해 효제 윤리를 개인적 덕목에서 국가 운영의 원리로 확장했으며, 남송의 역사 인식과 대보단을 결합해 조선의 소중화 사상과 정치적 정당성을 공고히 했다. 나아가 탕춘대성 축조와 청계천 준설은 도성 방어와 민생 안정이라는 실천적 과제가 결합된 도시 공간의 거대한 변모였다. 이 책은 이러한 영조 대 공간 운영의 양상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왕의 글과 기록, 의궤·능전지·지도·도시 관련 문헌 등 풍부한 사료를 토대로 정치·사상·의례·도시사의 교차 지점에서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정치’, ‘숭조’, ‘소중화’, ‘도시’라는 공간 범주 아래 총 9장의 글을 수록하여, 영조 대 공간 운영이 지닌 통치론적 함의를 새롭게 규명하고 인문학적 사유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였는지 보여준다. &n
칠궁(七宮)은 조선시대 왕의 생모였으나 왕비가 아니라는 이유로 종묘에 들지 못했던 역대 일곱 후궁을 위해 조성된 별도의 왕실 제향 공간이다. 영조가 어머니 숙빈 최씨를 위해 종묘와 구별되는 사당과 제향 체계를 마련한 제도인 ‘궁원제(宮園制)’를 출발점으로, 정조·순조·고종 대에 걸쳐 일곱 궁이 단계적으로 성립했다. 칠궁에는 후궁의 아들로서 왕이 된 군주가 마주해야 했던 정통성의 문제, 왕이자 아들이었던 존재가 품었던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정치적 선택, 그리고 왕실 여성의 삶과 위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칠궁은 조선 왕실이 효와 정통성, 예와 현실을 어떻게 조율했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칠궁은 고종 대에 합설과 이건을 거쳐,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궁내성 이왕직의 관리 체계 아래 편입되면서 제향 공간으로서 위상과 의미가 크게 왜곡되었다. 본래의 장소성과 역사적 맥락이 해체된 채 관리 편의에 따라 재편된 이 과정은, 조선 왕실 의례가 식민지 통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궁원제 관련 규정집을 비롯해 의궤·등록류, 교지, 묘지명, 제문, 의례 관련 유물 등 방대한 1차 자료를 토대로, 칠궁의 성립과 변천, 운영과 의례, 건축적 특징, 문학
춘천 중도유적은 총 3,091기의 유구가 조사된 한국 고고학 사상 최대 규모의 취락 유적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마을과 무덤이 연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 유적은 문헌상 예맥(濊貊)의 역사적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핵심적인 단서가 된다. 이 책은 중도유적을 중심으로 춘천분지의 물질문화를 토기, 석기, 취락의 관점에서 정밀하게 분석한다. 구체적으로는 돌대문토기와 적색마연토기의 출현과 전개, 중도식토기의 생산과 기술 체계를 세밀하게 살피고, 이례적으로 청동기시대 전 시기에 걸쳐 출토된 대규모 석기군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아울러 화재 주거지를 통하여 마을의 관리와 운영 양상을 검토하며, 환호를 중심으로 취락의 설계 원리와 의례적 특징을 고찰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이 책은 중도유적의 물질문화를 체계적으로 복원하고, 나아가 한국 고고학 연구의 실증적 기초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침묵하는 도시 공간이 건네는 속삭임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공간은 그 자체로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지나온 시간의 흔적과 다양한 집단의 기억, 제도와 권력의 작동 방식, 그리고 수많은 일상적 실천이 층층이 쌓여 있다. 이 책은 도시를 단순히 건물의 집합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행위와 사회작용이 쉼 없이 교차하는 역동적인 장으로 정의한다. 정헌목 교수와 6명의 연구자로 구성된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시인류학 모임’은 추상적인 계획도 속에 갇힌 도시를 넘어, 서울의 안팎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통해 이 지역의 문화적·역사적 맥락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힙지로’의 골목부터 신도시 먹거리촌의 재편까지 저자들은 서울의 오래된 도심에서 출발해 경기도의 신도시까지 발을 넓히며, 각 공간이 어떻게 고유한 서사를 갖게 되었는지 세밀하게 기록했다. 낡은 철공소 골목이 젊은 세대의 열광 속에 ‘힙지로’라는 새로운 경관으로 거듭난 을지로3가를 시작으로, 성소수자들의 퀴어문화축제와 시민의 목소리가 부딪치며 공공성의 의미를 매 순간 새롭게 써 내려가는 서울광장의 뜨거운 현장을 포착했다. 이어 전형적인 농촌에서 거대 자본이 응축된 계급적 상징으로 변모한 강남의 탄생 신화를 들여다보고, &lsqu
1910년, 조선왕조의 상징공간이었던 종묘는 어떤 운명을 마주했을까? 국권 피탈로 대한제국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자, 종묘의 위엄도 자연스레 빛을 바랬다. 대한제국 황실은 이왕가로, 종묘도 국가 신전에서 한 가문의 사당으로 격하되었다. 외형적으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종묘는 내부적으로는 식민 권력 구조 아래 대대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20세기 전반 종묘가 겪었던 변형과 재편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복원한다. 국가 제사의 해체, 식민지 행정으로 편입된 종묘 책의 전반부는 거시적으로는 제도의 변화와 미시적으로는 물품의 관리 실태를 다룬다. 제1장에서는 국가 제사가 해체되고 이왕가의 제향으로 축소되는 과정을 제도적으로 추적한다. 향사이정(享祀釐整)을 통해 달라진 제향의 범위와 종류를 살피고, 축식(祝式)의 변화를 분석해 식민지 제향의 실체를 밝힌다. 이어 제2장에서는 종묘 내 건축물의 용도 변화와 물품 분류 체계를 다룬다. 물품 대장의 명칭이 통일되며 일본어가 정착해가는 과정은 식민지 행정이 공간을 어떻게 재편했는지 보여준다. 제3장은 제향의 핵심인 제물(祭物)에 주목한다. 제물의 구성과 규모를 조선시대와 비교 검토하고, 매달 올리는 천신(薦新) 물품의 공급 과정과 제사 후 남은 음식인 준여(餕餘)의 분
『옥선몽(玉仙夢)』은 19세기 말 조선의 지식인이 공유했던 학문적 지평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소설 작품이다. 주인공 허거통이 꿈속에서 전몽옥이라는 빼어난 인물로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현실로 돌아와 깨달음을 얻는 전형적인 환몽 구조의 소설이지만, 기존의 몽자류 소설과는 달리 『옥선몽』은 사건 전개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윤리, 사상, 현실 문제 등에 대한 논변을 비중 있게 다룬다. 작가 탕옹(宕翁)은 소설의 허구성을 인지하면서도 문헌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박학(博學)의 서사를 지향한다. 또한『옥선몽』은 구술 중심의 통속적 서술에서 벗어나 문인 취향의 섬세하고 우아한 문체를 보여준다. 한문뿐만 아니라 이두문, 백화체, 시(詩)·사(詞)·과문(科文)과 각종 문서식(文書式)의 다채로운 문체를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특징들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소설이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당대 지식인의 지적 교양과 문학적 자의식을 투영한 지적 창작물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은 난해한 문체와 방대한 인용으로 인해 그동안 번역이 쉽지 않았던 『옥선몽』을 완역하여 학계와 대중 여러분께 선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본을 저본으로 삼고 서강대학교본을 정밀하게 대조하여 교감본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주해 작업을 진행했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어휘, 지명
『경의기문록(經義記聞錄)』은 사서와 역경 및 성리학의 여러 학설을 기호학파의 경학적 관점에서 비판 정리한 책으로,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조선의 성리학은 리(理)와 기(氣)의 관계에 대한 관점에 따라 나뉘는데, 한원진은 이발보다 기발에 무게 중심을 둔 이이의 사상 노선에 속했다. 그는 이황과 이이의 설이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니라 각각 특정 맥락을 전제하는 정당한 입론이라고 밝히면서도, 이이의 학맥을 통해야 주자의 성리학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자가 돌아간 뒤에 유가의 도가 우리나라로 왔는데, 그 도를 전수하는 데 책임진 분으로는 오직 율곡(이이)과 우암(송시열) 두 선생만이 가장 두드러졌다.” 이이와 송시열의 도통(道統)이 스승 권상하에게 이어졌다는 자부심과 함께 도통 전수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경의기문록』을 지은 것이다. 이 책 『경의기문록 역주 (하권)』에는 『경의기문록』전체 6권 가운데 권4~6의 내용을 담았다. ‘권4 역학계몽’에서는 주자 역학의 체계와 기본 개념을 자세히 해설한다. ‘권5 부록’에서는 「역학답문」과 「문왕역석의」를 다룬다. 「역학답문」은 역학의 기본 원리를 이루는 개념들을 도해한 12개의 그림을 분석하고,「문왕역석의」는 선천역학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해방공간을 극적으로 살다 간 설정식(薛貞植, 1912~1953)의 문학 작품을 모아 기획한 책이다. 희곡, 논평과 대담, 단편소설, 신문 연재소설을 중심으로 미공개 자료를 수록하였다. 설정식의 생애와 작품을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엮은이의 해설을 함께 실었다. 해방공간을 누구보다도 극적으로 살다 간 작가, 설정식 1988년 7월 7일 남북 관계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온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7·7선언’이라고 불리는 이 발표는 북한 및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골자로 하고 있어 흔히 대북 포용 정책의 효시로 평가된다. 곧이어 월북 작가 120여 명의 해방 이전 문학 작품 출판을 허용하는 해금 조치가 이루어졌다. 그 덕분에 정지용과 김기림의 작품이 조명되고 재평가받았지만, 해금의 혜택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인식에 자리하지 못한 월북 작가는 여전히 많다. 이 책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설정식이 그 대표적인 예다. 1912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난 설정식은 식민지기와 해방기를 누구보다도 극적으로 살다 간 지식인이었다. 17살의 나이에 광주학생운동 서울 시위에 가담했다가 퇴학당한 뒤, 그는 만주로 유학을 떠나 학업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만주사변의 빌미가 된 만보산 사건이 일어나면서
『양명학』은 한국 사상가와 철학적 개념을 탐구하여 우리 안에 잠재한 사유와 문화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기획·발간한 ‘사유의 한국사’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책은 한국 양명학(陽明學) 의 독자적 전개 양상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주자학과의 관계, 동아시아 양명학 내 위상, 현대적 의의까지 폭넓게 다룬다. 기존 철학사 중심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는 대신, 사상사적 관점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한국 양명학의 수용·변형·비판 과정을 종합적으로 해석한다. 중국·일본과 달리 조선에서는 주자학의 강한 비판 속에서도 양명학이 성리학·실학·서학 등과 상호작용하며 특수하게 전개되었으며, 이는 경학적 해석과 개념 재구성을 통해 가능했다. 특히 이 책은 양명학이 ‘마음’을 중심으로 한 자기 수양과 실천윤리를 강조하며, 조선과 근대 지식인들에게 경세적 이상을 제공한 점에 주목한다. 특히 박은식, 정인보 등이 양명학을 통해 시대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던 실천적 지향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이성 중심주의, 공동체 해체 문제 등 현대 사회의 난제를 진단하고 대응하는 데 시사점을 제공한다. 나아가 양명학 관련 자료의 폭넓은 발굴과 사료 연구의 확대가 향후 연구의 지평을 넓히
한국전쟁이 동북아시아 지역 사회와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조명한 Korean war in Asia: A Hidden History(2018)를 번역 소개하는 책이다. 호주국립대학 테사 모리스-스즈키 교수의 주도하에 집필된 이 책은 한국전쟁을 단순히 한반도 내전이나 미소 냉전의 대리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 걸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국제전으로 해석한다. 한국전쟁이 아시아태평양전쟁, 중국 내전 등의 이 지역 다른 분쟁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제시하고, 전쟁이 주변국에 미친 영향력을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지난 75년간 우리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각인되어 있던 6․25전쟁을 동아시아 지역의 관점에서 ‘잊혀진 전쟁’, ‘잘못 기억된 전쟁’으로 새롭게 정의하며, 한국전쟁의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들을 파헤친다. 교전국의 이데올로기, 선전, 첩보 전략에 휘말려 국경을 넘나든 중국인들의 여정을 비롯하여 중국 내 조선족 사회, 일본 내 재일교포 사회,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오키나와, 만저우리 같은 지역에서의 삶이 한국전쟁으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본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혹은 야화 또는 음모설의 일부로 떠돌던 이야기를 실증적인 학술 연구의 대상으로 끄집어내어 한국전쟁의 정치적·사회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