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조선 왕실과 사대부, 그리고 민간에 전승된 고문헌을 수집·보존·연구해온 국가 연구기관이다. 1978년 설립 이후 왕실 문헌 12만 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국내외에 산재한 민간 자료를 지속적으로 조사·수집해왔다. 특히 1997년 안동 전주유씨 무실 종가 전적을 계기로 기증기탁 사업을 본격화하여, 30여 년간 130여 소장처로부터 10만여 점에 이르는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개인과 문중이 소장 자료를 공공의 지적 자산으로 환원한 데 따른 것으로, 기증기탁자의 자발적 참여와 공공적 책임 의식, 그리고 학술 문화에 대한 깊은 기여 의지의 소중한 결실이다. 장서각은 이러한 뜻에 깊이 감사하며, 이들 자료를 학계와 일반에 소개하고 한국학 연구 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지난 2013년까지 19차례에 걸쳐 기증기탁 목록집을 간행했다. 이 책은 그 간행을 재개하는 성과로서 의의를 지닌다. 이 책에는 5개 문중과 개인이 기증기탁한 자료를 수록했다. 밀양 여주이씨 쌍매당 이우성 전적을 비롯하여 간찰과 묵적, 충청 지역의 토지 매매 문서를 중심으로 한 고문서, 해남윤씨가와 풍양조씨 양진당 전래 자료, 그리고 지석(誌石) 등 다양한 유형의 자료를 포괄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자발적인 참여와 합의로 계를 조직했다. 또한 계는 당시에 다양한 조직이나 집단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왕조를 이해하는 데 당대 사회 조직으로서 여러 기능을 수행한 계를 연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 책은 호혜와 협동이라는 관점에서 계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모습을 조망한다. 그러나 이 책이 분석하는 계의 실상은 막연하고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조선시대 다양한 지역별 사례를 발굴하여 운영 주체와 목적에 따라 계의 결속 양상이 각기 다르게 나타났음을 실증적으로 살폈다. 장흥 상금동 반촌이 촌락의 화합보다 문중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허울뿐인 동계를 꾸렸다면, 경주 옥산동 서얼 마을은 적손 마을에 대항하며 동계를 구심점 삼아 강고하게 결속했다. 이러한 상이한 양상은 다른 계 조직에서도 확인된다. 같은 관청이나 관직에 제수된 관원들 간에 조직된 동관계도 실제로는 관청마다 결속력에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구체적인 계 조직과 지역 사례를 분석한 이 책은 조선시대 향촌사회 조직의 다층적인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으로서 그 의미가 깊다. 나아가 이 책은 단일한 공동체라는 환상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인 인적 결합의 복합적인 실상을 폭넓게 고민하도록 이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왕조 교체와 정도전의 문제의식 고려 말의 혼란은 단순한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원리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였고, 그 속에서 정도전은 새로운 질서를 설계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보았다. 14세기 말 고려는 대외 관계의 불안, 왜구의 침입, 권문세족의 토지 지배, 약화된 왕권 등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하였다. 국왕의 권위는 크게 흔들렸고, 정치 체제 역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한 채 국가를 다시 세울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였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이 문제에 대해 고려 말의 혼란을 단순한 정치 세력의 갈등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할 문제로 이해하였다. 위화도 회군 이후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고 제도 개혁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정도전은 이러한 변화에 사상적 방향을 제시한 핵심 인물이었다. 왕조 교체는 단순한 권력 이동이 아니라 사회 문제 해결의 방향을 둘러싼 역사적 선택이었다. 성리학과 새로운 국가 구상 정도전의 사상은 새로운 국가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치적 답변이었다.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반은 성리학이었으며, 고려 말 성균관을 중심으로 성장한 신진 사대부들은 이를 새로운 정치 질서의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인간과 사회의
한국금석학의 체계와 금석문으로 새롭게 조명한 한국사 금석학은 문자와 문헌이 남기지 못한 역사 정보를 복원하는 학문이며, 특히 ‘한국금석학’은 단순한 비문 해독을 넘어 한 시대의 사상·제도·예술·언어가 교차한 복합적 자료를 다룬다. 돌과 금속 등에 새겨진 글자는 당시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문헌과 다른 차원의 역사 자료를 제공한다. 이 책은 금석문을 중심 자료로 삼아 한국 고대와 중세의 역사 이해를 확장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승탑과 탑비, 묘지명 등 다양한 금석 자료를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사서와 문집이 포착하지 못한 역사 현실을 복원하고, 문헌과 조형 예술이 결합된 역사 기록으로서 금석문의 성격을 밝힌다. 저자는 수십 년간의 현지 조사와 탁본 대조를 바탕으로 금석문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정본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흩어져 있던 연구 성과를 하나의 통론으로 정리하여 한국금석학의 연구 방향과 과제를 드러낸다. 금석문 정본 확립과 현지 조사로 구축한 연구 체계 이 책은 전국 각지에 남아 있거나, 기록으로만 전하는 승탑·탑비·묘지명·부도명 등 다양한 금석문 자료를 바탕으로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는 한국 고중세사 이해의 범위를 넓힌다
주자학 비판자로서의 윤휴와 경서 해석 17세기 조선의 학자 백호(白湖) 윤휴(尹鑴, 1617~1680)는 오랫동안 위험한 인물, 배제되어야 할 사상가로 기억되어 왔다. 그는 동시대 서인 계열 학자들로부터 ‘사문난적(斯文亂賊)’, ‘적휴(賊鑴)’, ‘흑수(黑水)’라는 극단적인 낙인을 받았고, 결국 역모 혐의로 처형되었으며 사후에도 오랜 기간 신원되지 못했다. 이러한 배척의 중심에는 주희의 『중용장구』를 따르지 않고 『중용』·『대학』·『효경』·『서경』 등 경전을 독자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비판은 주로 ‘주자학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집중되었을 뿐, 윤휴가 제시한 해석의 실제 내용과 문제의식은 거의 검토되지 않았다. 윤휴의 경서 해석은 단순한 학문적 이탈이나 불손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직면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 기존의 주자학적 질서만으로는 부국강병과 국가 재조라는 과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사유의 결과였다. 윤휴가 『중용』을 새롭게 읽고, 『효경』과 『대학』에 주목하며 독자적인 해석 체계를 구축한 이유는 경학을 통해 당대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
불교 수행자로서의 균여 사상 고려 초기의 승려이자 사상가인 균여(均如, 923~973)는 시인이나 정치가, 혹은 신비한 영험의 주인공으로 주로 다뤄져 왔다. 이 책은 균여를 불교의 출가 수행자라는 정체성에 기초해 그가 평생에 걸쳐 무엇을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는지,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했는지, 그리고 그 사유의 핵심은 무엇이었는지를 통합적으로 규명한다. 균여 사상의 핵심은 화엄사상에 기반한 열반과 그에 이르는 길, 다시 말해 자신을 포함한 일체 중생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실현하려는 수행자의 서원에 있다. 균여는 의상이 정초한 한국 화엄사상을 고려 초의 현실 속에서 재정립한 화엄학의 거장인 동시에 그 사유를 향가 「보현십원가」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전하고자 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나’라는 존재의 참모습을 어떻게 인식하고[境], 그 인식을 어떻게 수행으로 전환하며[行], 그 결과를 삶 속에서 증명할 것인가[證]라는 물음을 일관되게 추구했다. 이 책은 이러한 사유 구조를 중심으로 균여의 교리 이해와 수행관을 분석함으로써, 그의 사상이 개인의 깨달음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삶과 연결되었음을 밝힌다. 문헌으로 본 균여 사유와 고려 불교의 현재성 이 책은 『균여전』을 비롯한 균여 전기 자료와 그가 남긴 화엄 관련 저술,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가곡마을에는 박세영을 파조로 하는 함양박씨 구당공파 종가가 자리하고 있다. 함양박씨가에는 500여 년에 걸쳐 생산·수집된 방대한 문헌자료 9천여 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 특별히 19세기 철학자 최한기의 미발견 저서 『통경(通經)』이 포함되어 있어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그 밖에도 조선 후기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의 다양한 서책 목록과 수백 점에 이르는 척독(尺牘) 및 근대 사법, 지방행정 관련 희귀본 자료가 다수 남아 있다. 이 책은 다양한 형식과 분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친 문헌자료로 구성된 함양박씨가 고문서를 크게 세 가지 주제의식(1부 함양박씨가의 역사와 인물, 2부 함양박씨가의 진적 연구, 3부 함양박씨가의 자료를 통해 본 사회와 역사)을 중심으로 엮어낸다. 1부에서는 세거지 변동에 따른 조선시대 함양박씨가의 경제적 상황 변화를 살펴보고, 20세기 이후 함양박씨가의 은산흥산상회, 곡부정미소 투자 및 경영을 통해 일제 식민지 근대와 조우한 양반지주가의 새로운 경제활동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2부에서는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일제강점기 지방행정 잡지 『면정연구』, 『면강습회록』등의 분석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지방행정의 실상과 출판계의 경쟁 구도를 파
조선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기록이 남긴 삶의 흔적을 다시 읽다. 고문서 한 장이 드러내는 역사의 순간과 그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한다. 지금까지 고문서는 흔히 연구자만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난해한 문체와 복잡한 형식, 맥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관용적 표현은 고문서를 활용하는 데 높은 장벽으로 작용했다. 이 책은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 조선시대 고문서를 ‘자료’가 아니라 ‘읽는 텍스트’로 되살린다.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고문서를 오늘의 우리가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냄으로써, 당대 사람들의 삶과 사회 질서가 문서 속에서 어떻게 기록되고 작동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실린 문서들은 토지 매매명문, 고용 계약서, 가계와 친족 관계를 정리한 족보, 국가와 개인이 주고받은 각종 증빙 문서 등 일상과 제도가 교차하는 기록들이다. 이를 통해 조선 사회의 법적 관습과 경제 활동, 가족 관계, 신분 질서가 추상적 제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문서 행위를 통해 유지되고 조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각 글은 한 편의 고문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먼저 문서의 성격과 작성 배경을 간략히 제시한 뒤, 원문이 지닌 의미를 풀어 설명하는 이를 당대의 시대적 맥락 속에서 해석한다. 이를
영조 대는 조선 후기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시기로, 그 변화는 제도와 담론뿐 아니라 공간의 재편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국왕의 사저였던 창의궁은 정치적 기억과 정체성이 응축된 상징 공간으로 부상했고, 대리청정이 이루어진 경희궁은 후계 구도를 둘러싼 국정 운영 전략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영조는 왕실 능전 정비를 통해 효제 윤리를 개인적 덕목에서 국가 운영의 원리로 확장했으며, 남송의 역사 인식과 대보단을 결합해 조선의 소중화 사상과 정치적 정당성을 공고히 했다. 나아가 탕춘대성 축조와 청계천 준설은 도성 방어와 민생 안정이라는 실천적 과제가 결합된 도시 공간의 거대한 변모였다. 이 책은 이러한 영조 대 공간 운영의 양상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왕의 글과 기록, 의궤·능전지·지도·도시 관련 문헌 등 풍부한 사료를 토대로 정치·사상·의례·도시사의 교차 지점에서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정치’, ‘숭조’, ‘소중화’, ‘도시’라는 공간 범주 아래 총 9장의 글을 수록하여, 영조 대 공간 운영이 지닌 통치론적 함의를 새롭게 규명하고 인문학적 사유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였는지 보여준다. &n
칠궁(七宮)은 조선시대 왕의 생모였으나 왕비가 아니라는 이유로 종묘에 들지 못했던 역대 일곱 후궁을 위해 조성된 별도의 왕실 제향 공간이다. 영조가 어머니 숙빈 최씨를 위해 종묘와 구별되는 사당과 제향 체계를 마련한 제도인 ‘궁원제(宮園制)’를 출발점으로, 정조·순조·고종 대에 걸쳐 일곱 궁이 단계적으로 성립했다. 칠궁에는 후궁의 아들로서 왕이 된 군주가 마주해야 했던 정통성의 문제, 왕이자 아들이었던 존재가 품었던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정치적 선택, 그리고 왕실 여성의 삶과 위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칠궁은 조선 왕실이 효와 정통성, 예와 현실을 어떻게 조율했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칠궁은 고종 대에 합설과 이건을 거쳐,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궁내성 이왕직의 관리 체계 아래 편입되면서 제향 공간으로서 위상과 의미가 크게 왜곡되었다. 본래의 장소성과 역사적 맥락이 해체된 채 관리 편의에 따라 재편된 이 과정은, 조선 왕실 의례가 식민지 통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궁원제 관련 규정집을 비롯해 의궤·등록류, 교지, 묘지명, 제문, 의례 관련 유물 등 방대한 1차 자료를 토대로, 칠궁의 성립과 변천, 운영과 의례, 건축적 특징,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