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 속달마을과 동래정씨 정난종 종택 고문서
  • 저자 허원영·이혜정·성연심·이민주·유지복·김지영·이재옥·이은진·배다빈·이동범·한동수·이호선·이민재
  • 발행일 2024-12-30
  • 판형 신국판
  • 쪽수 408쪽
  • ISBN 979-11-5866-764-1, 94910
  • 정가 25,000원
  • 분류 AKS총서  >  장서각 한국사 강의
    역사
  • 구입처 교보문고 예스24  

도서 소개

동래정씨는 조선 초기부터 구한말까지 고관대작을 꾸준히 배출한 명문가이다. 정승 자리에 오른 동래정씨 인물은 총 17명에 달하는데, 이는 전주이씨 22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이다. 동래정씨 가문은 조선 전기 훈구파의 중진으로 활동한 명신이자, 서예에서도 업적을 남긴 동래부원군 정난종(鄭蘭宗, 1433~1489)을 파조로 하는 익혜공파(翼惠公派)의 종가이다. 정난종은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의 수리산 기슭과 그 일대를 왕으로부터 사패지(賜牌地)로 받았고, 그의 장자 정광보(鄭光輔, 1457~1524)가 이곳에 거처를 마련한 이래로 후손의 묘역과 종택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정난종 종가가 500년 동안 사패지를 대대로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사회가 추구하는 정체성과 가치를 충실히 실천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정난종 종가는 동래정씨 문중을 대표하며 속달을 경영했고,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지역 유지이자 마을의 대표 가문으로서 지도적 역할을 해왔다. 현재도 종택과 구성원들은 마을과 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정난종 종가는 2012년에 문화유산국민신탁과 국민신탁 계약을 체결하여 종택과 묘역, 전답 등 7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증하여, 토지의 혜택을 시민과 공유하는 뜻깊은 선택을 했다. 또한 2015년과 2017년에는 두 차례에 걸쳐 가전유물과 전적 일체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증했다. 금관조복과 서화, 편액을 비롯하여 정난종의 필적 등 문화유산 가치가 높은 사료가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고문서를 포함한 전적은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지는 동래정씨 정난종 종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역사를 조명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저자 소개

허원영. 조선 후기 및 일제강점기 사회경제사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이혜정. 서지학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성연심. 문화재보존처리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 
이민주. 한국복식사 전공,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유지복. 미술사학 전공,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연구교수 
김지영. 조선 후기 문화사 전공,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재옥. 인문정보학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 
이은진. 고문서학 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배다빈. 중국 철학 전공,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이동범. 건축역사이론비평 전공,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박사과정, ㈜지유건축 대표 
한동수. 건축역사이론 전공,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이호선. 건축역사이론비평 전공,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이민재. 민속학(생업민속) 전공, 목포대학교 문화와자연유산연구소 전임연구원 

목차

1부 군포 속달 동래정씨가의 역사와 유물

군포 속달마을과 정난종 종택의 고문서_허원영

군포 동래정씨 동래부원군 정난종 종가 기증 전적의 현황과 내용_이혜정

군포 속달 동래정씨 동래부원군 정난종 종가의 유물류 현황과 보존처리의 실제_성연심

군포 속달마을 관복 연구: 조복의 주인공을 찾아서_이민주

<동래군필적(東萊君筆蹟)>을 통해 본 정난종의 서예_유지복

 

2부 동래정씨가의 인물과 활동

군포 속달동 동래정씨 인물의 정치활동과 문중 입지_김지영

문과 합격자로 본 군포 속달 동래정씨 정난종 종가_이재옥

정학묵의 관직 일기와 「어목규도(禦牧規度)」_이은진

『주영편(晝永編)』·『현동실유고(玄同室遺稿)』를 통해 본 정동유의 사상적 특징_배다빈

 

3부 동래정씨가의 공간: 종택, 묘역 그리고 마을

조선 후기 경기지역 사대부가의 건축적 특징에 대한 연구: 군포 속달 동래정씨 동래부원군 종택을 중심으로_이동범·한동수

동래정씨 정난종 종택과 선산의 풍수_이호선

군포 속달 동래정씨 정난종 종택 사례로 본 공유지 전환_이민재

서평 및 출판사 리뷰

“동래정씨는 주로 동래와 양산 등 영남일대에 산거해왔으며, 정난종 역시 예천 출신이다. 현재 종택과 묘역이 소재한 속달지역과 동래정씨가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정난종이 관직에서 이루어낸 성과의 대가로 이 지역을 사패지로 받게 되면서부터이다. 정난종의 사후 인근에 있던 부인 완산이 씨의 묘소를 이장하여 현 위치에 함께 쌍분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이는 정난종의 유명에 따른 것이라 한다. 이후 정광보가 선영을 좇아 이곳에 최초로 유택을 세우고 거주한 이래 정난종 종택은 현재까지 500년 이상을 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 본문 25쪽


“2023년도에 종택을 방문하여 유물을 보관했던 장소를 견학했다. 9월이었지만 당시에 매우 덥고 습한 날씨였는데 유물을 보관했다는 다락과 창고방은 쾌적하고 습도가 적정했다. 내부 벽이나 천정 등의 상태도 습기로 인한 곰팡이나 충해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교적 안정한 온습도의 보관환경과 청결한 공간관리가 현재 유물 상태에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 본문 114쪽

 

“<동래군필적>은 돌에 새겨진 정난종의 글씨로 제작된 필적이다. 1481년에 건립된 <이보정신도비명>을 탑본하여 서첩으로 꾸민 이 필적은 지금까지 정식으로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자료이다. 정난종이 작고하기 8년 전에 쓴 이 글씨는 서예가로서 완숙기에 남긴 필적으로, 대부분 탑본으로 남아 있는 정난종의 유작 중 상태가 가장 좋은 선본의 필적이다. 14면으로 구성된 이 필적은 비액과 신도비명에 새겨진 전서와 행초서 글씨가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다.” - 본문 202쪽

 

“18세기 후반 당시의 유력가문을 지칭하는 두 가지 역사 용어가 있다. 하나는 ‘교목세가(喬木世家)’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벌열가문(閥閱家門)’이다. 둘 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가문을 지칭하는 말이다. 후자가 흔히 말하는 세력 있는 집안 즉 가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권세가라면 전자는 나라를 지탱하고 나라와 운명을 같이할 것으로 기대받는, 공공의 신뢰가 있는 가문을 말한다. 정조는 당시 조선에 교목세가가 점점 사라지 고 있다고 말하며 안타까워한 바 있다. 11명의 재상과 1명의 의빈을 배출한 동래정씨 가문은 정조가 말한 대표적인 교목세가 가문이었다. 교목세가와 벌열가문은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라진다. 수많은 집안이 교목세가가 되기를 꿈꾸지만 실제로는 실패했고, 벌열로 세상의 혐원의 대상이 되어 스러져갔다.” - 본문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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